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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경전연구회) 녹취8
시중(示衆)
師云 煦日發生鋪地錦이요 孾孩垂髮白如絲로다
사운 후일발생포지금 영해수발백여사
僧云 如何是奪境不奪人고 師云 王令已行天下徧이요
승운 여하시탈경불탈인 사운 왕령이행천하변
將軍塞外絶煙塵이로다 僧云 如何是人境兩俱奪고
장군새외절연진 승운 여하시인경양구탈
師云 幷汾絶信하야 獨處一方이로다 僧云
사운 병분절신 독처일방 승운
如何是人境俱不奪고 師云 王登寶殿하니 野老謳歌로다
여하시인경구불탈 사운 왕등보전 야노구가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이 떠오르니 땅에 비단을 편 듯하고, 어린아이의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명주실처럼 희구나.”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왕의 명령이 이미 떨어지니 천하에 두루 시행되고, 변방을 지키는 장수는 전쟁을 할 일이 없어졌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 것 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병주(幷州)와 분주(汾州)는 소식을 끊고 각기 한 지방을 차지하였다.”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임제 스님이 말씀하셨다. “왕은 보배 궁전에 오르고 시골 노인은 태평가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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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云 煦日發生鋪地錦이요 孾孩垂髮白如絲로다
사운 후일발생포지금 영해수발백여사
두 구(句)로서 탈인불탈경의 소식을 대답했는데 “후일발생포지금(煦日發生鋪地錦)”후일(煦日)이라는 것은 따뜻한 태양입니다. 따뜻한 태양이 척~ 이렇게 뜨면 만물이 거기서 막 솟아오르죠. 지금이 봄이 올 무렵인데 봄빛이 따뜻하잖아요. 그 들판에 봄빛이 마치 비단을 깔아 놓은 거와 같은 거야.‘포지금(鋪地錦)!’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애. 겨울의 눈이 다 녹아버리고 새싹이 막 돋고 아주 찬란한 햇빛이 착~ 넓은 광야를 비출 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영해수발백여사(孾孩垂髮白如絲)로다” 어린아이의 머리털 희기가 마치 실과 같다. 어린아이들, 털갈이 안했을 때 얼마나 그 털이 가늘고 곱고 그렇습니까? 희지요? 노란색도 있지마는 대개 흰색으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는‘탈인불탈경’주인(주관)을 부정하고, 경계를 부정하지 않는 것. 모습을 그대로! 현상을 개인의 감정이나 개인의 느낌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 보는 것. 뭐 이렇게 밖에 설명드릴 수가 없어요.
僧云 如何是奪境不奪人고 師云 王令已行天下徧이요
승운 여하시탈경불탈인 사운 왕령이행천하변
그러면 어떤 것이 경계를 부정하고 주관을 부정하지 않는 것입니까? 왕의 명령이 한번 떨어지면 천하에 가득 차요. 요즈음은 담화문도 발표하고 TV에 나와서 연설도 하고 그래서 잘 알죠.
將軍塞外絶煙塵이로다
장군새외절연진
장군은, 저기 휴전선 같은데서 국경을 지키는데‘새외(塞外)’라는 것은 국경을 지키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거기에‘연진(煙塵)’이 끊어졌다. 전쟁이 끝났더라. 왕의 명령은 천하에 다 이루고 전쟁은 끝났다 이거야. 이게 뭡니까? 경계는 부정하고 주인만 남아 있는 거라. 주인, 왕만 남아 있는 거야. 잘 맞추어보면 좀 이해가 돌아 갈 거예요 이게! 그런 식으로 법을 설한다. 편다하는 말입니다.
僧云 如何是人境兩俱奪고
승운 여하시인경양구탈
주인과 경계! 주관과 객관을 함께 다 빼앗는 것이냐?
師云 幷汾絶信하야 獨處一方이로다
사운 병분절신 독처일방
병주와 군주, 이건 변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태원부하고 군주부를 다스리는 지방장관이 어떤 나라, 당나라의 그 어떤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변방에서 독립했다는 그런 고사에서 나온 거예요. 병주(幷州)와 분주(汾州)가 그런 일이 한번 있었어요. 그러면 거기의 소식이 끊어지죠.‘절신(絶信)이라’소식이 다 끊어지는 거야. 그래서 “독처일방(獨處一方)이라” 거기서 그만 중앙하고 거래가 없는 거야. 거기서 혁명을 일으켜가지고 자기나라다 하고 있으니까,‘양구탈(兩俱奪)이라’주인도 객도 거래가 없는 거야. 다 함께 부정당한 거니까 그건 조금 더 이해하기 쉽죠?
僧云 如何是人境俱不奪고 師云 王登寶殿하니 野老謳歌로다
승운 여하시인경구불탈 사운 왕등보전 야노구가
그러면 주인과 객을 함께 다 부정하지 않는 것이냐? 왕이 보전에 떡 올랐어. 왕궁에 떡 올라가고 그리고 저기 시골 노인들은 평화를 노래하면서 태평가를 부르는 그런 모습, 그게‘ 구불탈(俱不奪)’이야. 함께 다 살려주는 것. 선지식도 살고, 묻는 제자도 살고 이렇게 되는 거죠. 이게 “사료간(四料揀)”이라고 해서 이것도 임제 스님 법문 중에 아주 까다로운 법문중의 법문입니다. 이런 것은 좀 사유를 깊이 해야 조금 이해가 미칩니다.
뭐“아이구! 깨달아야 아는 것 아닙니까?” 그거 아니 예요. 깨닫지 못한 우리 마음도 저 하늘에 인공위성을 띄워 보내요. 컴퓨터 같은 기가 막힌 기계도 만들어내. 이 깨닫지 못한 우리 마음의 위력도 대단해요. 꼭 깨달아야만 대단한 게 아니야. 깨닫지 못한 마음도 대단해요. 그 위력이! 그것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잘 사유하면 이런 것도 이해가 돌아갑니다. 물론 확철대오 해서 아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겠습니다마는 그 나름대로 또 이해는 될 수가 있는 거죠. 이제부터 조금 이해하기 괜찮은 그런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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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생사에 젖지 않는다
師乃云 今時學佛法者는 且要求眞正見解니
사내운 금시학불법자 차요구진정견해
若得眞正見解하면 生死不染하야 去住自由하야
약득진정견해 생사불염 거주자유
不要求殊勝이나 殊勝自至니라
불요구수승 수승자지
임제 스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요즘 불교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되고 바른 견해[진정견해]를 구하는 일이다. 만약 참되고 바른 견해만 얻는다면 나고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워 수승함을 구하지 않아도 수승함이 저절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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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乃云 今時學佛法者는 且要求眞正見解니
사내운 금시학불법자 차요구진정견해
지금 불법을 배우는 사람,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차요(且要)’무엇보다 중요한 것은‘구진정견해(求眞正見解)니’진정견해를 구해야 된다. 참되고 바른 소견을 가져야 된다. 그렇죠! 세상에는 눈이 보배다. 마찬가지예요. 불법 공부하는데도 눈이 보배야! 안목이 제일이라 구요.
若得眞正見解하면 生死不染하야 去住自由하야
약득진정견해 생사불염 거주자유
정말 참되고 바른 견해를 얻을 것 같으면, 그 소견 중요합니다. 우리가 불교 공부한다고 하면서 소견이 잘못 들어가지고 인생 망치는 사람들 적지 않습니다. 신도들 중에는 더해. 스님들도 그렇지마는 그 진정견해(眞正見解), 참되고 바른 견해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생사불염(生死不染)하야 거주자유(去住自由)라”생과 사에 물들지 아니해. 끄달리지 않는다 이거야. 젖지 안 해. “거주자유(去住自由)야”가든 머물든 내가 죽든 더 오래 살던 거기에 자유로워.
아! 가는구나. 아침에 뜬 해가 저녁에 지는구나. 저녁에 해 질 시간에 안 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요. 단풍이 들어서 낙엽이 져야지 당연히! 그런데 낙엽이 안지고 퍼렇게 달려있다 그래 봐요. 그거 너무 이상하잖아요. 이것 철두철미하게 그대로 꿰뚫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게 거주자유(去住自由)입니다. 생사불염(生死不染)이예요. 아~이! 당연히 가는 이치를 가지고 이걸 거부하고 그래봤자 그게 거부가 됩니까? 그게 거부되는 게 아니 예요. 그냥 가는 거야. “아! 가는 구나.”하고 “그래! 잘 있어라.”하고 “잘 가라!” 하고 우리가 여행 갔다가 헤어질 때 공항에서 그러잖아요. 아~이! 또 보자고. 그래 또 보자하고 그렇게 헤어지면 되는 거예요. 생사의 이별도 그게 거주자유지. 아니 생사해탈이 그걸 그대로, 그야말로 마른 땅에 물이 스며들 듯이 죽음이 내 마음 속에 그렇게 스며들어 오면 그러면 끝나는 것.
그게 생사해탈이야! 세상에 안 죽는 놈 있나요? 석가. 달마도 다 죽었는데. 그 죽은 모습이 뭐 앉아서 죽었느냐? 서서 죽었느냐? 이것도 별 의미가 없어요. 한 5~600년 안 죽고 살았으면 그거는 이야기 꺼리가 돼. 그런데 뭘 서서 죽었느니 앉아서 죽었느니. 사실 앉으려면 쉬운 것도 아닌데 억지로 또 앉혀가지고 앉아서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해가지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금방 갖다가 태울 텐데! 금방 갖다가 태울 것을 그걸 갖다가 앉혀봐야 뭔 의미가 있어요?
안 죽었다면 이건 이야기가 됩니다. 한 5~600년 안 죽고 살았다면 이건 이야기가 되지마는 서서 죽었느니 앉아서 죽었느니 이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거 가지고 너무 우리 떠들지 맙시다. 아~이! 등은봉(鄧隱峰)인가 하는 그 친구 서서죽었다가 그 뭐야? 누이인 비구니가 와가지고 이 자식 너는 말이야! 속가에서도 그렇게 말썽을 부리고 절에서도 말썽을 부리더니 죽어서도 이렇게 말썽을 부리냐고 호 대게 꾸중을 하니까 그래서 그냥 슬며시 넘어가서는 대중들이 장례를 치뤘다는 것 아닙니까. 거꾸로 서서 죽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것 태워 버릴 건데. 그러니까 비구니한테 욕을 먹는 거지. 하하하하하~~~ 그걸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하하하하하~ 오늘 비구니 이야기 많이 하네.
뭐 비구니. 비구가 없어요. 여기 임제 문중에는 그런 것 없어요. 분별이! 그게 있다면 불법이 아니지. 그거 있는 불법이라면 스님들 이렇게 머리 깎고 와서 이러고 있겠어요? 기분 나빠서 다 떠나지. 내라도 기분 나빠서 떠나겠네. 이치가 그렇게 되어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누나인 비구니가 와가지고 말이야 막 욕을 퍼부어 싸니까 슬며시 넘어가가지고 그때사 비로소 대중들이 수습을 해서 장례를 치루었다는 것 아닙니까? 천하가 다 아는 이야기죠. 죽음! 생사대사 아니 예요. 이제 남은 일은 그거야!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잘 이해하고 소화하느냐 하는 게 우리의 남은 일이라고!
여기뭐라고?“생사불염(生死不染)하야 거주자유(去住自由)라”고 했네. 아! 이거 다급한 일인데 이것! 어째서 자유가 되느냐? 몰라, 천년 안 죽고 살았다면 그거는 아이고~ 대단하다고 말 할 수가 있어. 그걸 가지고 생사자유라고 하지 않습니다. 설사 천년을 살았다 해도 그게 자유가 아니 예요. 천년 너머에 또 세월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할 거야? 그거! 어떻게 할 거야? 그거! 그냥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단풍들면 떨어지게 되어있어. 마지막 잎새처럼 혼자 윙윙거리면서 붙어 있다가 결국은 떨어지잖아. 그거! 뭐 하루 이틀 상관이라고. 아! 참 좋은 대목이네요. 그러니까“진정견해(眞正見解)”소견만 제대로 갖추면, 생사불염(生死不染)하고 거주자유(去住自由)해서
不要求殊勝이나 殊勝自至니라
불요구수승 수승자지
아주 훌륭한 인생, 아주 뛰어난 인생, 최고의 인생을 우리가 구하지 않더라도 그 최고의 인생이 저절로 돌아온다. “거주자유(去住自由)고 생사불염(生死不染)”하는 게 최상의 인생이야! 최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무슨 총무원장하고 무슨 본사주지 한 백번쯤하고 대통령 한 열 번해야 최고로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고요.“생사불염(生死不染)하고 거주자유(去住自由)”하면 이게 성공한 인생이라.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이건 천번 만번 억 만 번 해도 괜찮은 이야기인데 뭐가 생사불염이고 거주자유냐?
생사(生死)가 오면 포송포송하게 마른 땅, 가물었을 때 비가 착~ 내리면 그냥 얼른 오너라. 하고 쑥쑥 스며들어 버리잖아요. 땅에! 물이 그렇게 스며들어야 돼. 우리는 차돌이 되어가지고 그거 안 받아 들이려고 옆으로 흘러 보내고, 흘러 보내고 흘러 보내고 그래봤자 나중에 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마는데 그러니까 생사를 그렇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 인생사, 모든 것들을 그렇게 순리대로 철저하게 이치에 것. 나와 그 이치 자체가 둘이 안 되고 따로 놀지 않고 내 감정대로 막 피하려고 하고 따로 놀려고 하고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복이니 재앙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복도 올 때는 이것 아무리 내가 복을 거절하려해도 복이 와! 재앙도 똑 같애. 재앙도 나에게 재앙이 올 때가 되어서 오는 것은 이건 아무리 재앙을 거절하려해도 안 오는 게 아니라고. 와요! 와진다고! 그런 이치 알자고 하는 게 우리 불교 공부하는 것이고, 연기도 결국은 그렇게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 수승(殊勝)을 구하지 않더라도 수승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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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祇如自古先德은 皆有出人底路니라 如山僧指示人處는
도류 지여자고선덕 개유출인저로 여산승지시인처
祇要儞不受人惑이니 要用便用하야 更莫遲疑하라
지요이불수인혹 요용편용 갱막지의
如今學者不得은 病在甚處오 病在不自信處니 儞若自信不及하면
여금학자부득 병재심처 병재불자신처 이약자신불급
卽便忙忙地하야 徇一切境轉하야 被他萬境回換하야 不得自由니라
즉편망망지 순일체경전 피타만경회환 부득자유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예부터 선지식들은 모두가 그들만의 특별한 교화의 방법[路]이 있었다. 예컨대 산승(山僧)이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가르치는 것은 다만 그대들이 다른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작용하게 되면 곧 작용할 뿐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의심하지 말라.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병이 어디에 있는가? 병은 스스로를 믿지 않는 데 있다. 그대들이 만약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곧 바쁘게 돌아다님ㄴ서 일체 경계에 끌려 다닌다. 수만 가지 경계에 자신을 빼앗겨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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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祇如自古先德은 皆有出人底路니라
도류 지여자고선덕 개유출인저로
도류야! 도 닦는 여러분들이여! 여기 도류(道流)라는 말이 나오네요. 임제 스님은 도류(道流)라는 말을 잘 써요. 도 닦는 벗들이여! 이런 말이 예요. “지여자고선덕(祗如自古先德)”옛날 선지식들은“개유출인저로(皆有出人底路)”생사로부터 벗어나는 그런 길이 있었으니
如山僧指示人處는 祇要儞不受人惑이니
여산승지시인처 지요이불수인혹
이것 아주 유명한 말이죠.‘산승지시인처(山僧指示人處)’산승의 불교는! 이런 말입니다. 산승의 불교를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지요(祗要)’다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새길 수가 있죠. 그대들이‘불수인혹(不受人惑)이라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미혹을 받지 않는 것. 딴 사람한테 안 속으면 된다 이거야! 딴 사람한테 안 속으면 된다. 부처가 뭐라고 하면 부처한테 속고, 보살이 뭐라고 하면 보살한테 속고, 조사가 뭐라고 하면 조사한테 속고, 이웃사람한테 속고, 도반에게 속고, 뭣에 속고, 책에 속고, 전부 이리 끄달리고 저리 끄달리고...
‘혹(惑)’이라는 게 이리 끄달리고, 속고, 휘둘리고, 넘어가고하는 것. 그런 거죠. 누가 꼭 사기를 쳐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거기에 미혹이 되고 끄달리고 그러면 그냥 넘어가는 거죠. 미혹 당하는 거지. “너 자신! 제대로 지키고 살라”이거야. 끄달리지 않고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느 곳에 있던지 간에 너 주인으로서 살라”주인으로서 내가 여기 있으면 되는 거야. 내가 여기 있다고 하는 사실! 우리가 망각하지 아니하면 걱정 없어. 집에 불이 났던지 말았던지. 내가 여기 안전하게 있는데 뭘.
要用便用하야 更莫遲疑하라
요용편용 갱막지의
쓰고 싶으면 쓰고, 작용하고 싶으면 곧 작용해! 보고자하면 보고, 듣고자하면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리고 “ 갱막지의(更莫遲疑)”이것 봐야 되는가? 들어야 되는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이거야. 더 이상‘지의(遲疑)’하지 말라. 머뭇거리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
如今學者不得은 病在甚處오 病在不自信處니
여금학자부득 병재심처 병재불자신처
지금 그런데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 불수인혹(不受人惑)이 되지 못하는 것. 요용편용(要用便用)! 너무 조심하고 그렇지요? “병재심처(病在甚處)오”병이 어디에 있느냐? “병재불자신처(病在不自信處)니” 병이라고 하는 것은 믿지 못하는데 있다. 저 앞에서 그런 말 있었죠? “불속인부재연(不屬因不在緣)이라”인연에 관계없이 요것은 완전무결하게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
우리가 무슨 육바라밀을 닦고, 기도하고, 정진하고, 참선하고, 뭘 이렇게 막 해야 만이 된다고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이거야. 본래가 아무 문제없어! 완전무결한 존재로 있는데 그걸 못 믿어!“병재심처(病在甚處)” 병이 어디에 있느냐?‘부자신(不自信)이야!’병이라고 하는 것이 내 자신에 대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儞若自信不及하면 卽便忙忙地하야
이약자신불급 즉변망망지
그대가 만약에 스스로 믿는 것이 안 되면, 미쳐지지 못하면 곧‘망망지(忙忙地)’바쁘게 아주 갈 때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고, 돌아다닐 것도 많고 너무 많지요.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불교라디오에서 신행상담을 들어보면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뭘하고 뭐하고 뭐하고 뭘~ 한다고 해가지고 뭐 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쭉 소개하는 것을 내가 자주 듣는데 얼마나 불교를 알아갖고 할 게 많은지 망망지(忙忙地)야! 전부 관세음보살도 불러야 되고, 지장보살도 불러야 되고 예를 들어서 천수경도 외워야 되고, 금강경도 외워야 되고 또 쓰기도 해야 되고 반야심경도 해야 되고 하여튼 열심히 하는 것은 참 좋은 현상이지. 그런데 그렇게 바빠가지고
徇一切境轉하야 被他萬境回換하야 不得自由니라
순일체경전 피타만경회환 부득자유
일체의 경계를 따라서 그만 굴러가! 거기에 굴러간다고! 그게 습관이 돼. 또! 습관이 되가지고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좋은 것이긴 한데 그 좋은 것이 이 임제 스님의 불법, 진짜불법, 제가 법화경을 “이것이 불교다” 그렇게 했고 《임제록》은“이것이 진짜 불교다”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하하하하하하~~~ “이것이 진짜 불교다!” 그렇게 말하는데 이 진짜 불교의 입장, 임제 스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뭐~ 아! 법화경도 좋고, 금강경도 좋고, 화엄경도 좋고 기도가 좋고, 뭐가 좋고 이렇게 가는 것도 이게 귀신에 휘둘린 것이나 똑 같다고 봐요.
여기 이제 뒤에 곧 나옵니다. 정신없이 그렇게, 그리고 무슨 아무리 그게 좋은 것이라 한들 좋은 곳에 정신 빼앗기는 게 더 문제지. 안 좋은 곳에 정신 빼앗기는 것은 금방 돌아올 수가 있는데, 좋은 곳에 정신 빼앗긴 것은 돌아오기 힘들어. 이 진짜 불교에서는 그런 것, 안 맞는 거라고! 진짜 불교의 안목에서는! “수처작주(隨處作主)하는 것”어디에 있던지 간에 자기 주인공을 잃지 않고, 자기 정신 차리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는 것. 이게 진짜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변망망지(便忙忙地)하야 순일체경전(徇一切境轉)하야 피타만경회환(被他萬境回換)하야” 저 만 가지 경계! 여기 나와 있네요. 만 가지 경계에 회환(回換)한다. 그만 교환을 해 버리는 거야. 내가! 내가 경계가 되어버리고 나는 어디에 가버렸어. 경계가 내가 되어 버렸어. 이것 앞뒤가 바뀌어버리고 주인공이 없어져 버렸어. “부득자유(不得自由)니라” 그럼 어떡해? 그 경계에 따라가느라고, 정해놓은 하루 일과 하느라고 아무 자유가 없는 거야.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깊이 사유해 볼 그런 겨를이 없어. 그리고 그런 것 안 하면 허전하고. 그런 것 안 하면 허전하고!
우리 스님들도 그런 것 있지. “아이고, 오늘은 뭐 무슨 재일도 아닌데 이 도반이 전화가 안 오노?”하고 앉았다 섰다. 앉았다 섰다 그러다가 못 참고 이제 지가 전화한다. 그렇게 경계에 끄달리기를 바라고 있는 거야! 우리 습관이 그래 돼가지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가요. 그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경계에다 팔아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 부득자유(不得自由)죠. 거기에 자유를 얻지 못하는 거야. 진짜 자유는 나 홀로 있어야 돼. 오롯이 내가 “나”로 있어야 그게 진짜 자유라! 내가 그 어디엔가 끌려있고 내 마음이 휘둘려 있으면 그건 자유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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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일없는 사람
儞若能歇得念念馳求心하면 便與祖佛不別이니라
이약능헐득염염치구심 편여조불불별
儞欲得識祖佛麽아 祇儞面前聽法底是니 學人信不及하고
이욕득식조불마 지이면전청법저시 학인신불급
便向外馳求하며 設求得者라도 皆是文字勝相이요
편향외치구 설구득자 개시문자승상
終不得他活祖意니라 莫錯하라 諸禪德아 此時不遇하면
종부득타활조의 막착 제선덕 차시불우
萬劫千生을 輪廻三界하야 徇好境掇去하야 驢牛肚裏甥이로다
만겁천생 윤회삼계 순호경철거 여우두리생이
“그대들이 만약 능히 생각 생각에 찾아 헤매는 마음[馳求心]을 쉴 수 있다면 곧 할아버지인 부처님[祖佛]과 더불어 다름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할아버지인 부처님을 알고자 하는가? 다만 그대들이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철저하지 못하고 곧 자신 밖을 향해 내달리면서 구하고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설사 밖에서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훌륭한 문자일 뿐이다. 마침내 살아있는 할아버지의 뜻은 얻지 못할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여러 선덕(禪德)들이여! 지금 이런 이치를 만나지 못하면 만겁 천생을 삼계에 윤회하여 좋아하는 경계에 이끌려 다니느라 나귀나 소의 뱃속에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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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若能歇得念念馳求心하면 便與祖佛不別이니라
이약능헐득염염치구심 편여조불불별
그대들이 만약 능히‘염염치구(念念馳求)’하는 마음! 순간순간에 치구(馳求)하는, 구하는 마음. 이 치구(馳求)라고 하는 말 표현이 좋죠. 달릴 치(馳)자, 구할 구(求)자 인데 우리가 그냥 구하는 정도가 아니야! 말이 달리듯이 그렇게 아주 정신없이 구하는 것. 정신없이 구하는 그런 치구심을 만약에 쉴 것 같으면 “변여조불불별(便與祖佛不別)이니라”곧 조사와 부처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바깥경계에 휘둘리고 바깥경계에 끌려가고 바깥으로 부처를 찾고. 보살을 찾는 그런 마음만 쉬어버릴 것 같으면 부처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어.
여기서 조불이라고 하는 것은 조사인 부처! 조사인 부처! 할아버지 부처! 부처를 그렇게 표현했어요. 조불(祖佛)과 다르지 않다. 부처님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저기 우리의 윗대 할아버지지 뭐. 윗대 할아버지라! 조불이야! 할아버지인 부처님이야. 여기 임제 스님의 표현이 아주 재미있다 구요. 윗대 할아버지인 부처님! 부처님도 끌어내리고 나도 올라가고 그래서 어느 정점에서 딱 맞아 떨어져야 돼. 이게 내~~~ “아이고, 우리 중생이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내~~~ 밑에 있으려고 생각하면 안 되죠.
금강경의 사상 중에 그 뭡니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중생상이라는 게 뭐예요? 열등의식이라! 열등의식이라고. 그 보면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이다. 라고 분명히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 우리는 뭘 잘못할 때 핑계되려면 ”아이고~ 내가 중생인데 뭐! 중생이 그럴 수밖에 없지. 이렇게 핑계된다고. 부처님은 중생이라고 고정시켜서 말하지 않았어요. 신은 중생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자꾸 좀 간이 붓는 게 좋아요. 하하하하하~ 어록 공부할 때 간이 좀 붓는 게 좋아. 살짝 부으면 이게 좀 뭔가 조사스님의 경계가 보일 듯 보일 듯 한다 구요. 그렇게 안 되면, 간이 살짝 살짝 붓지 않고는 부처될 날이 까마득해. 너무 멀다 구요. 간이 살짝 부어야 이게 부처되기가 쉬워!
儞欲得識祖佛麽아 祇儞面前聽法底是니
이욕득식조불마 지이면전청법저시
조불(祖佛), 조사인 부처를 그대가 알고자 하는가? 그대가 “지이면전청법저시(祗儞面前聽法底是)니”아! 이것 이제 이야기 다 했다. 다만 그대들 눈앞에서 내말을 듣고 있는 그것이 바로 조불이야! 조사인 부처라고! 조사라 해도 좋고, 부처라 해도 좋고, 조사인 부처라고 해도 좋고. 할아버지 부처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나의 얘기를 듣고, 여러분들 책보고, 나는 말하는 이 놈! 이 사실! 이것이 그거야! 그게 부처야! 그 외 달리 다른 게 없어. 그것 외 딴 것 있으면 말짱 거짓말이고 그건 사기고 사도라! 이게 진짜불교지 이게! 법화경에도 이렇게는 이야기 못했어.
법화경도 “사람이 부처다” 하는 그런 저의의 뜻을 깔고 있어요.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그 말이 법화경을 간추려서 해석을 한건데 끊임없이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은근하게 법화경에는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임제록》여기에 오면 아니야! 딱! 깨놓고 이야기 해버려 그냥! 숨기고 자시고 방편 쓰고 할 게 없다고. 법화경에도 방편이 많아요. 여기는 완전히 깨놓고 내가 바로 부처다 말이야.‘면전청법저(面前聽法底)’ 바로 이 이야기를 듣는, 뭐 욕을 해도 좋습니다. 뭐 법문을 듣는 사람만 부처가 아니라 욕을 듣는 소리 듣는 그 사실도 부처야. 이 능력, 말하는 능력, 보는 능력, 듣는 능력 이게 대단한 존재예요. 그런데
學人信不及하고 便向外馳求하며
학인신불급 편향외치구
그것을 안 믿고 곧 밖을 향해서 내달으며 딴 것을 구한다 이거야. 밖에 있는 부처를 구하려고 한다. “아니! 관세음보살이 우리보고 합장하고 있다니까! 우리한테 부처가 없으면 관세음보살이 어찌 우리 보고 합장하고 있겠어요?” 그건 큰 잘못이죠. 합장하고 있는 부처님 모셔놓았잖아요. 우리 보고 합장하고 있다 구요. 대단한 존재들이야! 대단한 존재들! 믿지를 않고 곧 밖을 향해서 치구하며
設求得者라도 皆是文字勝相이요
설구득자 개시문자승상
밖을 향해 구해서 설사 얻는다 하더라도“개시문자승상(皆是文字勝相)이요”뭐 경전에 있는 석가니, 아미타불이니 온갖 천 불 만 불은 수승한 모습이고
終不得他活祖意니라 莫錯하라 諸禪德아 此時不遇하면
종부득타활조의 막착 제선덕 차시불우
살아있는 조사의 뜻은 아니다 이거야! 펄펄 살아있는 그런 조사의 뜻은 아니고 그저 문자 상으로 이러구 저러구 해놓은 그거지 정말 산 불교는 아니다 이거야. 죽은 불교지. 문자 불교, 이론 불교지 산 불교는 아니다 이 말입니다. 이건‘활조의(活祖意)’살아있는 조사의 뜻이다. “막착(莫錯)하라” 그르치지 말라. “제선덕(諸禪德)아” 바로 이 순간 법문 듣는 그 사람을 “차시불우(此時不遇)하면” 만나지 못할 것 같으면
萬劫千生을 輪廻三界하야
만겁천생 윤회삼계
바로 그 존재! 그 존재를 만나지 못하면 이 순간, 법문 듣는 그 사실! 그 존재를 만나지 못할 것 같으면 만겁천생동안 삼계윤회해가지고, 삼계윤회 한다는 것도 죽어서 어디 간다는 것 보다는 그냥 끌려 다닌다는 거야. 그래서
徇好境掇去하야 驢牛肚裏甥이로다
순호경철거 여우두리생
좋은 경계를 따라서 얽매여 다닌다. 얽매여 간다 이 말이야! 좋은 경계가 있다면 그냥 가서 얽매여. “여우두리생(驢牛肚裏甥)이로다” 말하자면 당나귀나 소의 뱃속에서 태어난다. 이게 우리가 죽고 나서 무슨 동물로 태어난다는 그런 뜻이 아니고 바로 우리가 “자기 자신의 참주인공”을 챙기지 못하고 바깥의 어떤 세속적인 가치관, 바깥 가치관에 휘말려서 돌아다니는 그 사실이 바로 축생이다 이 말이야!
“여우두리생(驢牛肚裏甥)이라” 당나귀나 소의 창자 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다 이거야. 법화경에서도 말했듯이“단념수초(但念水草) 여무소지(餘無所知)라”동물이 뭐 하고 있어요? 죽으나 사나 그냥 먹을 것만 하루 종일 찾아다녀요. 딴 생각 없어요. 참! 법화경의 그 구절을 보고는 내가 탄복을 했어요. “단념수초(但念水草) 여무소지(餘無所知)라”다만 물과 풀만 생각하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그게 동물을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왜? 죄 없는 동물을 보고 그렇게 비난하겠어요? 부처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 하는 거야.
우리가 새로운 종교적인 가치관에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그냥 먹고 살고, 먹고 살고하면 동물이나 다를 바 없지. 동물도 지 먹고, 지 자고, 지 의식주 해결은 잘해! 참 기막히게 한다 구요. 제가 새집을 이렇게 보니까 조그마한 새집인데 겉에는 거친 것으로 이렇게 집을 짓고 나중에 차츰 차츰 차츰 부드러운 걸로 지어가지고 나중에 알을 낳는 거기에는, 알이 처음 낳았을 때 얼마나 연약하고 부드럽습니까? 그런 연약한 것도 다치지 않을 정도로 솜털보다도 더 부드러운 그런 소재들을 갖다가 안에는 싹~~ 깔아 놨어요. 그만치 영리합니다. 자기 살길은 날아다니는 새고 동물이고 다 알아서 해요. 의식주는! 사람이 의식주만 생각하고 살면 그것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이거야.
“천지지간만물지중애유인이최(天地之間萬物之中厓唯人伊最)이라고”천지간에 만물지중에 오직 귀한 사람으로 태어 나가지고 그렇지 의식주 문제만 가지고 고민하고 그것만 가지고 내~~ 관심 쓰고 그렇게 산다면 사람으로 태어난 의미가 있으며 보람이 어디 있느냐 이거야. 그걸 법화경에서 사정없이 꼬집은 거야. “ 단념수초(但念水草) 여무소지(餘無所知)라”다만 물과 풀만 생각할 줄 알았지 그 나머지는 아는 게 없다. 세상 사람들의 종교적인 가치관을 등한시하여, 보다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렇게 사정없이 꾸짖는 소리야! 의식주 문제는 동물들도 다 해결해!
우리는 무슨 복으로 부처님에게 줄서가지고 정말 최고의 가치관을 추구하고, 최고 가치 있는 최상승의 삶을 우리가 꿈꾸며 산다고 하는 이 사실만으로도 그 결과는 어쨌든 간에 되 든, 안 되든 간에 그건 다음 문제고 일단은 그 과정에 있으니까 얼마나 우리가 대단한 사람들이야! 다행하다고요. 다행스럽고 대단한 사람들이야! 스스로 대단하게 생각하면 딴 사람들도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해줘요. 내가 내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면 딴 사람들도 하찮게 봐요. 스님이라고 하는 게 보통 존귀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한 우리 자신들의 처지를 늘 염두 해 두고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 필요가 있다 하는 말씀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차시불우(此時不遇)하면 만겁천생(萬劫千生)을 윤회삼계(輪廻三界)하야” 좋은 경계만 따라서 끌려 다니고, 매여 다니고 축생의 뱃속에서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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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約山僧見處인댄 與釋迦不別이라 今日多般用處가
도류 약산승견처 여석가불별 금일다반용처
欠少什麽오 六道神光이 未曾間歇이니 若能如是見得하면
흠소십마 육도신광 미증간헐 약능여시견득
祇是一生無事人이니라
지시일생무사인
도를 배우는 여러 벗들이여! 산승의 견해에 의지한다면 그대들도 석가와 더불어 다름이 없다. 오늘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곳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섯 갈래(眼. 耳. 鼻. 舌. 身. 意)의 신령스런 빛이 잠시도 쉰 적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다만 한 평생 일 없는 사람일 뿐이다[一生無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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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約山僧見處인댄 與釋迦不別이라
도류 약산승견처 여석가불별
만약에 산승의 견해에 의지한다면, 만약에 산승의 견해에다가 기준을 둔다면 “여석가불별(與釋迦不別)이라”석가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대들이 그렇다 이 말이 예요. 나의 견해대로 라면은 여러분들이 석가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다. 털끝만치도 무게가 차이 나는 게 아니다 이거야.
今日多般用處가 欠少什麽오
금일다반용처 흠소십마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웃기면 웃고 말이야. 욕하면 그냥 바로 신경질 낼 줄 알고, 화낼 일 있으면 그냥 버럭 화도 낼 줄 아는 “야!~ 이 작용, 이 능력! 이 심통! 대단한 것 아닙니까? 다반용처(多般用處)야! 오늘날 각양각색으로 작용할 줄 아는 여기에서 무엇이 부족한가? “흠소십마(欠少什麽)오” 이게 촌철살인(寸鐵殺人)입니다. 이 한마디는 그냥 팔만대장경 전체하고 맞먹어요. 뭐가 부족해요? 지금! 지금 이렇게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 능력은 무량대복이 예요. 무량신통이고. 이미 다 갖추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지어가지고, 닦아가지고 얼마나 그걸 짓고 얼마나 닦아지겠어요? 그것, 몇 푼어치 안 되는 거예요. 본래가지고 있는 것. 이것 알아야 되거든.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은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고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이것! 우리가 알아야 되는 거예요. 이 어마어마한 능력입니다. 이것! “흠소십마(欠少什麽)오”모자라는 게 무엇이냐?
六道神光이 未曾間歇이니 若能如是見得하면
육도신광 미증간헐 약능여시견득
안. 이. 비. 설. 신. 의를 통해서 신비스런 광명이 끊임없이 발산하고 있는 이것이 일찍이 쉬는 바가 없다. “약능여시견득(若能如是見得)하면” 만약 이것을 제대로 본다면 이 이치! 앞에서 설명한 “다반용처(多般用處) 흠소십마(欠少什麽)” 이것을 제대로 볼 줄 안다면
祇是一生無事人이니라
지시일생무사인
일생무사인(一生無事人)이야! 일생에 일 없는 사람! 일 끝낸 사람이다 이거야. 여기 사람 인(人)자 또 썼죠? 일생무사인(一生無事人)이라! “평생 《임제록》만 강의 하고 싶다니까!”하하하하하~ 너무 임제록이 좋아서! 아~ 이렇게....저도 경전이라는 경전은 뭐 안 본 게 있나요? 나 만치 본 사람 있으면 나오라 그래봐! 하하하하하~ 그런데 아! 이 임제록 대단한 거야! 일체 그런 것을 그냥 싹 쓸어버려. 하루아침에!
아~ 그 법수(法數) 외운다고 법수 책 갖다놓고 그것 다 외우다시피하고, 사전 다 외우다시피하고 그것 아무 소용없이 만들어 버리는 거야. 그 고생을 하루아침에 날려주는 거야. 임제록이! 무사인(無事人)이라고 했잖아. 일 없는 사람! 뭘 가지고? 이렇게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말 할줄 알고, 화 낼 줄 아는 것? 슬퍼할 줄 아는 것? 그게 안 좋은 감정 같죠? 천만에! 그것 신통이야! 지시무사인(祇是無事人)이라! 일 없는 사람이다! 더 이상 공부할 것 없어.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큰스님! 고맙습니다. 함께 하시는 법우님! 고맙습니다._()()()_
與釋迦不別이라,,,석가와 다를바가 하나도 없는데. 欠少什마라,,,모자랄게 뭐가 있는가,,,!?
감사 합니다._()()()_
求眞正見解 _()()()_
오롯이 내가 “나”로 있어야 그게 진짜 자유... 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구진정견해(求眞正見解)! 祗是無事人!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인륜월님! 고맙 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今日多般用處가 欠少什麽오... 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眞正見解만 얻는다면 나고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워 수승함을 구하지 않아도 수승함이 저절로 온다...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_()()()_
진정견해(眞正見解)하면 생사불염(生死不染)하야 거주자유(去住自由)라...인륜월님, 고맙습니다._()()()_
^^ _()()()_
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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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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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多般用處 欠少什麽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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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