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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대강좌 2강 - 4
21. 爾時大衆中 有諸聲聞 漏盡阿羅漢 阿若憍陳如等 千二百人
이시대중중 유제성문 누진아라한 아야교진여등 천이백인
及發聲聞辟支佛心 比丘 比丘尼 優婆塞優婆夷 各作是念
급발성문 벽지불심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 각작시념
그 때에 대중 가운데 聲聞 漏盡阿羅漢. 성문으로서 루가 다한 아라한인 아야교진여등 1200인과 聲聞辟支佛心한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낸 사람. 비구 · 비구니 ·우바새 · 우바이들이 각각 이런 생각을 하대,
22. 今者世尊 何故 慇懃稱歎方便 而作是言 佛 所得法
금자세존 하고 은근칭탄방편 이작시언 불 소득법
甚深難解 有所言說 意趣難知 一切聲聞 辟支佛 所不能及
심심난해 유소언설 의취난지 일체성문 벽지불 소불능급
‘지금 세존이 무슨 닭으로 은근히 방편을 찬탄하시고’ 이런 말을 하시대,
佛 所得法은. ‘부처님이 얻은 법은 매우 깊고 난해해서 有所言說을 말한바 言說은 意趣가 難知라.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움이라.
一切聲聞과 辟支佛은 所不能及.
성문 · 벽지불은 능히 알지 못한다.’ 고 이렇게만 자꾸 말씀하시는가?
23. 佛說一解脫義 我等 亦得此法 到於涅槃 而今不知 是義所趣
불설일해탈의 아등 역득차법 도어열반 이금부지 시의소취
佛說一解脫義하시면. 부처님이 하나의 해탈의 뜻을 말씀하시면 우리도 그것 다 안다 이겁니다.
亦得此法하리. 또한 이법을 얻어서 열반에 이른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이미 열반에 이를 경지는 충분히 됩니다. 그런데, 而今不知 是義所趣로다. 지금 부처님이 말씀은 이것에 대해서 도대체 낙처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잘 가르쳤고, 가르친 대로 열반을 우리가 다 증득했다 이겁니다. 다 증득해서 크게 문제없는데, 왜 갑자기 부처님이 지혜를 들먹이면서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이런 궁금증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24. 爾時 舍利弗 知 四衆心疑 自亦未了 而白佛言
이시 사리불 지 사중심의 자역미료 이백불언
그 때 사리불이 사부대중들의 마음에 의심하는 것을 잘 살펴가지고서, 그리고 또 자기도 잘 모르겠거든요.
自亦未了. 자신도 또한 깨닫지 못해서 而白佛言호대, 부처님께 말하기를,
25. 世尊 何因何緣 慇懃稱歎 諸佛第一方便 甚深微妙
세존 하인하연 은근칭탄 제불제일방편 심심미묘
難解之法 我自昔來 未曾從佛聞 如是說
난해지법 아자석래 미증종불문 여시설
세존이시여, 무슨 연으로 은근히 諸佛의 第一方便이 甚深微妙해서 난해난지라고 찬탄하십니까?
我自昔來로 우리들은 옛날부터 일찍이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법문을 그냥 고의적으로 잘 설명하면 우리 잘 받아드렸고, 잘 깨달았고, 열반 정등을 증득을 했고, 그래서 편안하게 잘 사는데, 지금 같이 이렇게 설법 하시는 것은 아직도 듣지 못했습니다. 처음 듣는다 이 말이지요.
26. 今者四衆 咸皆有疑 惟願世尊 敷演斯事 世尊 何故
금자사중 함개유의 유원세존 부연사사 세존 하고
慇懃稱歎 甚深微妙 難解之法
은근칭탄 심심미묘 난해지법
今者四衆도 지금 사부대중이 다 의심합니다.
惟願世尊은 원컨대 세존께서는 敷演斯事하소서. 이 일에 대해서 부연 설명해주십시오. 세존이 무슨 까닭으로 은근히 甚深微妙 難解之法이라고 찬탄하십니까?
부처님의 지혜가 아주 甚深微妙하고, 難解하다. 또 難入. 들어가기도 어렵다. ←이렇게 한탄만 하십니까?
27. 爾時 舍利弗 欲 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 사리불 욕 중선차의 이설게언
그 때 사리불이 欲 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이라. 그러니까 산문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다시 게송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산문에서 표현이 제대로 안 되었던 부분까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략할 수도 없고, 또 하려니까 좀 길고요. 그래서 좀 고민인데 그래도 게송 속에 좋은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어서, 도저히 놓칠 수가 없습니다.
28. 慧日大聖尊 久乃說是法(혜일대성존 구내설시법)
지혜의 태양 大聖尊께서 오랫동안 이 법을 설하시대,
29. 自說得如是 力無畏三昧 禪定解脫等 不可思議法
자설득여시 역무외삼매 선정해탈등 불가사의법
道場所得法 無能發問者 我意難可測 亦無能問者
도량소득법 무능발문자 아의난가측 역무능문자
自說得如是 力無畏三昧와 禪定과 解脫等의 不可思議法을 설하시며, 도량에서 얻은바 법을 無能發問者하며, 능히 發問하는 사람이 없으며, 我意難可測이니라. 내 뜻으로도 정말 측량하기 어려우며 또한 능히 물을 수도 없습니다.
無問而自說 稱歎所行道 智慧甚微妙 諸佛之所得
무문이자설 칭탄소행도 지혜심미묘 제불지소득
無問而自說이라. 묻지도 아니 했는데 부처님이 저절로 말한다. 그러면서 뭐라고요? 讚歎(찬탄)所行道라. 당신이 행해온 바의 모든 도를 찬탄 하사대, 智慧甚微妙는 諸佛之所得이라. 모든 부처님이 얻으신 바라.
30. 無漏諸羅漢 及求涅槃者 今皆墮疑網 佛何故說是
무루제나한 급구열반자 금개타의망 불하고설시
無漏諸羅漢과, 무루지에 오른 모든 나한과 그리고 열반을 구하는 사람은 今皆墮疑網이어늘, 지금 다 의심의 그물에 떨어져 있거늘, 佛何故說是. 부처님은 무슨 까닭으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其求緣覺者 比丘比丘尼 諸天龍鬼神 及乾闥婆等
기구연각자 비구비구니 제천룡귀신 급건달바등
相視懷猶豫 瞻仰兩足尊 是事爲云何 願佛爲解說
상시회유예 첨앙양족존 시사위운하 원불위해설
연각을 구하는 사람. 比丘比丘尼등과 諸天龍鬼神과 건달바등이
相視懷猶豫. 모두 서로서로 쳐다보면서 머뭇거리고 망설이고 있습니다.
猶豫 = 서로 쳐다보면서 망설이고 있다. 瞻仰兩足尊이라. 망설이면서 양족존을 瞻仰하고 있습니다. 是事爲云何닛고.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願佛爲解說하소서. 원컨대 부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 해설해주십시오.
31. 於諸聲聞衆 佛說我第一 我今自於智 疑惑不能了
어제성문중 불설아제일 아금자어지 의혹불능료
모든 성문대중 가운데 佛說我第一이나, 성문대중 가운데사리불보고 “네가 지혜 제일”이라고 모두들 다 그렇게 나보고 한다 이 겁니다. 그리고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佛說我第一. “지혜 제일”이라고 그렇게 하신다 이겁니다.
我今自於智로 내가 지금 스스로 이 지혜에 疑惑不能了니다. 제 지혜로서는, 부처님도 저를 “지혜 제일”이라고 인정하고, 세상 사람이 모두 저를 “지혜 제일”이라고 하지만, 저도 도대체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사리불은 부처님 살아생전에 제자로서는 가섭. 아란 같은 이는 안중에 없고, 사리불하고 목건련이 제일이었습니다. 우리 불교 역사상 최고 화려하고 가장 멋있고 가장 근사한 절 기원정사. 그것도 부처님이 사셨던 기원정사를 설계에서부터 감리감독. 자재구입 일체 총 도감을 사리불이 했습니다. 그런 사람입니다. 지혜가 보통 출중한 이가 아닙니다. 그런 정도 뛰어났기 때문에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지혜 제일”입니다. 부처님도 인정 했지만... 그런데도 모르겠다 이겁니다. “부처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것을 도대체 내가 알 길이 없다.”
爲是究竟法 爲是所行道 佛口所生子 合掌瞻仰待 願出微妙音
위시구경법 위시소행도 불구소생자 합장첨앙대 원출묘음왕
時爲如實說(시위여실설)
爲是究竟法이닛가 이것이 구경법입니까?
爲是所行道닛가? 소행도가 됩니까? 행할 바의 도입니까?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佛口所生子는 合掌瞻仰待하니, 佛口所生子 = 참 좋은 말이지요?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난 제자. 이것은 번역 하는데 부처님 설법 듣고 태어난 사람.
부처님의 설법 듣고 태어난 사람. 그것이 佛口所生子로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났다. 그것이 설법 듣고 제자가 되었으니까요. 표현이 아주 근사하지요?
佛口所生子. 부처님 입으로부터 태어난 저는 합장하고 瞻仰해서 기다립니다.
願出微妙音하사, 원컨대 미묘한 음성을 내시사
時爲如實說하소서. 우리들을 위해서 如實히 說해주소서.
32. 諸天龍神衆 其數如恒沙 求佛諸菩薩 大數有八萬
제천룡신중 기수여항사 구불제보살 대수유팔만
又諸萬億國 轉輪聖王至 合掌以敬心 欲聞具足道
우제만억국 전륜성왕지 합장이경심 욕문구족도
諸天龍神衆이 모든 천용과 귀신 그 무리들의 그 수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습니다.
求佛諸菩薩은 부처를 구하는 여러 보살들은 大數有八萬이며, 8만 보살이라고 그랬지요. 그리고 또 萬億國에서 轉輪聖王도, 각 나라에서 국가 사절단이 다 왔다 이겁니다. 그래서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서 欲聞具足道. 구족한 도. 완전한 도. 완전한 도를 듣고자 합니다.
여기서 具足道 라는 말이 제가 “경전의 완성이다.”
“부처님교설의 완성이다.”이겁니다. 구족한 도를 듣고자 합니다. 부처님완성의 가르침을 듣고 싶어 합니다.
33. 爾時 佛告舍利弗 止止 不須復說 若說是事 一切世間
이시 불고사리불 지지 불수부설 약설시사 일체세간
諸天及人 皆當驚疑(제천급인 개당경의)
그 때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그만둬라, 그만둬라. 더 이상 설명할 것 없다. 만약 이 일을 이야기할진댄, 一切世間의 諸天과 사람들이 마땅히 驚疑하리라. 놀라고 의심할 것이다.” 부처님이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三止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止입니다. 그 다음에 사리불이 누구입니까?
가만있을 수가 없지요. 2청에 들어갑니다. 앞에는 1청이 끝났고 두 번째 청하는 겁니다.
34. 舍利弗 重白佛言 世尊 惟願說之 惟願說之 所以者何
사리불 중백불언 세존 유원설지 유원설지 소이자하
是會無數百千萬億
시회무수백천만억
阿僧祗衆生 曾見諸佛 諸根 猛利 智慧明了 聞佛所說 則能敬信
아승지중생 증견제불 제근 맹리 지혜명료 문불소설 즉능경신
舍利弗이 重白佛言. 거듭 부처님께 말하대, 世尊이시여 惟願說之하소서. 오직 원하옵노니 설하여 주십시오.
惟願說之하소서. 오직 원하옵노니 설해 주십시오. 왜 그런가하니 是會無數百千萬億 阿僧祗衆生이 여기에 모여 있는 무수 백천만억아승지 중생이 일찍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해서 諸根이 猛. 많은 부처님을 친견해서 온갖 6근이 모두 猛입니다. 아주 맹렬하고 영리하고 아주 똑똑하고 지혜가 명료하다는 말입니다.
聞佛所說하고, 부처님이 설한 바를 들으면 전부 공경하고 믿게 될 것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보통 대중입니까? 전부 내노라하는 사람들만 다 모였습니다.
사리불이 여기서 대중들도 칭찬하지만 자기 자존심도 있으니까 자기에 맞춰서 이렇게까지 표현한 것입니다.
대중들을 이렇게 표현한 것도 경전에서 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자존심을 한껏 드러낸 것이지요.
35. 爾時 舍利弗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法王無上尊
이시 사리불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법왕무상존
惟說願勿慮 是會無量衆 有能敬信者
유설원물려 시회무량중 유능경신자
그 때에 사리불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사대 法王無上尊이시여,
설 하셔서 원컨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설하기만 하고 이해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말라 이겁니다.
是會無量衆이, 이 한량없는 중생들이 전부 다 공경하고 믿게 될 것입니다.
걱정 말고 설하기나 하십시오. ←이 말입니다.
36. 佛 復止 舍利弗 若說是事 一切世間天人阿修羅
불 부지 사리불 약설시사 일체세간천인아수라
皆當驚疑 增上慢比丘 將墜於大坑
개당경의 증상만비구 장추어대갱
부처님이 復止. “그만 둬” “그만 둬” 三止三請이라. 이것이 세 번째 止입니다. 復止하라. 다시 “그만 둬라. 사리불아,” 若說是事면 만약 이 이야기를 한다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들이 皆當驚疑이라. 모두들 마땅히 놀라고 의심하고 또 增上慢比丘. 잘난 체하는 비구. 공부깨나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공부깨나 했다면 아만심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것 떨어져야 되려면 참 어려워요.
增上慢比丘는 將墜於大坑. 큰 구렁텅이에 장차 떨어지게 될 것이다.
37. 爾時 世尊 重說偈言(이시 세존 중설게언)
그 때 세존이 重說偈言. 거듭 게송으로 말하사대,
38. 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諸增上慢者 聞必不敬信
지지불수설 아법묘난자 제증상만자 문필불경신
止止不須說이니, 거듭 “그만두어라,” “그만두라.”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음이니, 我法妙難思라. 나의 법은 미묘해서 생각하기 어려움이라.
諸增上慢者는 여러 증상만 사람들은 聞必不敬信하리라. 듣게 되면 반드시 믿고 공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또 사리불도 내친김에 그 다음 3번째 청합니다. 3청이지요.
39. 爾時 舍利弗 重白佛言 世尊 惟願說之 惟願說之 今此會中 如我等比
이시 사리불 중백불언 세존 유원설지 유원설지 금차회중 여아등비
百千萬億 世世 已曾從佛受化 如此人等 必能敬信 長夜安隱 多所饒益
백천만억 세세 이증종불수화 여차인등 필능경신 장야안은 다소요익
爾時에 舍利弗이 重白佛言하대, 그 때 사리불이 거듭해서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惟願說之하소서. 오직 원하옵노니 설하옵소서.
오직 원하옵노니 설하옵소서. 지금 이 會中에 如我等比. 저와 같은 무리들이 (比=이럴 때는 무리 비자입니다.) 백천만억은, (사리불이 아주 출중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전부 내 같은 무리들이다 이 말입니다.) 세세생생에 已曾從佛受化라. 일찍이 부처님으로부터 교화를 받아왔습니다.
如此人等은 이와 같은 사람들은 必能敬信하고, 능히 경신하고
長夜安隱하야 긴 밤 편안해서 多所饒益하리다. 아주 많이 요익한 바가 될 것입니다. 여기 긴 밤이라고 長夜安隱이라면, 긴 밤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꼭 밤에만 편안하고 낮에는 불안한 것이 아니라, 길고 긴 우리 인생사를 밤에다가 많이 비유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사는 험하고 참 어려움 많고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 인생사에서 아주 편안해서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제발 좀 설해주십시오.” ←이렇게 하고 또 게송으로 이중으로 또 말하지요.
40. 爾時(이시)에 舍利弗(사리불)이 欲 重宣此義(욕 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오니
無上兩足尊 願說第一法 我爲佛長子 惟垂分別說
무상양족존 원설제일법 아위불장자 유수분별설
是會無量衆 能敬信此法(시회무량중 능경신차법)
無上兩足尊이시어 원컨대 제일 법을 설하소서.
우리들은 부처님의 장자가 되어서, 여기는 아예 長子라고 이렇게 스스로 이야기를 합니다.
惟垂分別說하소서. 오직 분별해서 설하는 것을 드리우소서.
是會無量한 대중들이 能敬信此法하리다. 능히 이 법을 공경하고 믿겠습니다.
41. 佛已曾世世 敎化如是等 皆一心合掌 欲聽受佛語
불이증세세 교화여시등 개일심합장 욕청수불어
佛已曾世世에 부처님이 이미 일찍이 世世에 이와 같은 이들을 교화 했을새.
一心으로 合掌하여 欲聽受佛語호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聽受. 듣고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我等千二百 及餘求佛者, 願爲此衆故 惟垂分別說
아등천이백 급여구불자, 원위차중고 유수분별설
是等聞此法 則生大歡喜(시등문차법 즉생대환희)
我等千二百과 우리들이 1200명과, 그러니까 늘 따라다니는 금강경에 나오는 상수대중이 1200명이지요.
及餘求佛者, 그 나머지 부처를 구하는 사람들을 願爲此衆故,
원컨대 이 대중들을 위하는 까닭으로 惟垂分別說하소서.
오직 분별해서 설하는 것을 드리우소서. 是等聞此法하시며, 이런 이들이 이 법을 들으면 크게 환희를 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三止三請이 끝났습니다.
앞에 까지는 간략하게 開三顯一. 3승을 약간 언급하고 1승을, “불 지혜”가 1승이거든요. 그것을 드러내고, 그것이 서론 비슷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 널리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는 廣開三顯一이 됩니다.
廣開顯이라고 하는데, 널리 앞에서 설명한 것 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제2강 유인물에 보면 三止三請章. 또 十如是章. 第一止 第二止 第三止 第一請 第二請 第三請이 사이사이에 다 들어 있다는 내용입니다.
42. 爾時 世尊 告 舍利弗 汝已慇懃三請 豈得不說
이시 세존 고 사리불 여이은근삼청 기득불설
汝今諦聽 善思念之 吾當爲汝 分別解說
여금제청 선사념지 오당위여 분별해설
그 때에 세존이 사리불에게 告하사대, “그대가 이미 은근하게 세 번이나 청하니 어찌 설하지 아니하리오.” (이제 부처님 마음이 열린 것이지요.) 그대는 지금 자세히 들어서 잘 생각하라. 내가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분별해서 해설하겠다.
43. 說此語時 會中 有 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五千人等 卽從座起
설차어시 회중 유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 오천인등 즉종좌기
禮佛而退 所以者何 此輩 罪根 深重 及 增上慢 未得 謂得 未證 謂證
예불이퇴 소이자하 차배 죄근 심중 급 증상만 미득 위득 미증 위증
有 如此失 是以不住 世尊 默然 而不制止
유 여차실 시이부주 세존 묵연 이불제지
이 말을 설할 때에 會中에 有, 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가 5000명이 있었는데 卽從座起하야 곧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예불하고 물러가니,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가? 이 무리들은 罪根이 深重하고, 죄의 뿌리가 너무 깊고 무거워 그리고 增上慢이다. 공부깨나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잘 난 체하는 사람들입니다. 未得 謂得이라. 얻지 못하고는 얻었다고 하고, 증득하지 못하고는 증득했다고 해서, 자기는 그렇게 여기는 겁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절대 자기가 나는 부족한데 부족한 줄 알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기 공부에 도취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녀 때 시집 안 간다는 것, 절대 거짓말 아닙니다. 나중에 다 그것을 번복 하지만, 그때 기분은 최소한도 그러니까 그것은 진실이라고요. 마찬 가지로 증상만도 있잖아요. 이 가운데 저부터, 우리 스님들이 제일 많은데, 자기 생각에는 틀림없는 겁니다. 그것도 이해 해줘야 됩니다.
그 사람은 착각하고 있으니까 착각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죄악시 합니까? 그것은 죄악시 못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未得을 謂得하고 未證을 謂證해서 有如此失이라. 이와 같은 손실이 있을 새.
그래서 是以不住어늘. 이 사람들이 머물지 아니 하거늘, 世尊이 默然하사 묵묵히 而不制止라. “야, 이 사람들아 듣고 가” 하지 않고 나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이것을 “五千退席章”이라고 합니다. 5000명이 자리에서 물러갔다. 이것은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불교 역사상 가장 엄청난 사건. 여기서 공부 하시다가 개인적으로 무슨 큰 급한 볼일이 있어서 중간에 나가도 저는 기분이 나쁜데,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아니고, 5명도 아니고, 5000명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야말로 머리가 쫙 뽑히듯이 자리가 텅 비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이라도 기분 안 나쁘겠습니까? 그것은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왜 그러냐? 우리가 열반 이야기를 해서 열반 다 증득했어요. 번뇌 다 없어요. 조용히 아주 잘 살아요. 우리는 편안해요. 그런데 거기에 보살행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중생을 위하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고요. 그러니까 대승이 소승을 비난하는 것이 바로 그 겁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그 마음을 대승에서는 비난하는 겁니다. 저건 지만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정없이 “저것은 부 불법외도”라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지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을 “불법에 붙어서 먹고 사는 외도다.” 옛날에는 “이”가 많았습니다. 이가 사람 몸에 붙어서 먹고 삽니다. 대승에서는 그렇게 취급해 버렸다고요.
부처님이 길에서 태어나서 길에서 교화하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뭐냐 이 겁니다. 전부 남을 배려하는 일이지, 자기를 위해서 그랬겠느냐? 부처님의 본정신은 그것인데 지 혼자 편안하게 가만히 그냥 그야말로 목 움츠려 가지고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다가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 겁니다. 그것은 “외도 다.” 이 겁니다. 사정없이 그렇게 외도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여기 이것이 사실 여부를 막론하고, 5000명이 부처님의 법을 안 듣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고 하는 이 사건은 어느 경전에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경전에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자존심에 치명타를 준 것입니다.
안 그러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못 나서 나갔지만, 그래도 5000명이 나갔다는 이것은 부처님의 체면에 먹칠을 한 것입니다. 법문할 때 중간에 나가면 사실 기분 나쁘다고요. 자존심이 상당히 자존심 상합니다. ‘법문이 잘못 되고’ ‘네 법문이 시원치 않다’는 뜻으로 비춰지거든요.
그러니까 법문할 때 예의상 딱 시간 마칠 때까지 앉아 듣는 것이 도리입니다. 신도들도 그렇게 가르쳐야 됩니다.
어디 가서 그 보다 더 좋은 시간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런 공부하는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선순위를 잘못 정해서 그래요.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을 제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될 줄로 그렇게 착각하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제일 가치 있고, 제일 우선순위 1번에 둬야할 것이 공부하는 것이거든요. 아까도 보니까 저 밑에서 나 한테 인사만 하고 가 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바쁜 일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 분석해보면 아주 기분 나쁜 소리입니다.
왜냐? 우선순위를 자기 개인 사 적인 일을 우선순위 1번에 두고,
공부하는 것을 5번이나 6번에 둔 것입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지 하루 24시간은 누구나 똑 같은 것인데, 누구는 뭐 개인일이 없나요? 부처님은 일이 없어서 출가 했나요? 왕자라고 하는 막중한 중책이 있었지만, 그것이 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왕자의 직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앞으로 왕위를 계승해야할 그런 중요한 일임에도 그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순위 1번으로 수행하고 중생제도 하는 것으로 딱 설정한 것이 아닙니까? 전부 그것입니다. 그래 저는 신도들이 혹 “아이고, 시간이 없어서 못 왔다.”
“내가 그렇게 우선순위에서 뒤에 있단 말이냐?” 이래버리지요.
내가 우선순위에서 저 뒤쪽에 10번 이후에 있으니까 딴 일다 하고, 제일 심심하고 할 일 없으면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고, 그래 가지고 무슨 소득이 있냐고, 신도들에게 그래버립니다.
여기 참 5000 비구. 역사에 부처님도 체면 안서는 일이고, 이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 없고요. 그래서 여기서 시사 하는바가 많지요.
增上慢 이라고 하는 것. 공부 했다고 하는 것. 알고도 ‘갈까 말까, 갈까 말까 내가 거기 가서 공부 한다고 앉아 있으면 그것참 내 체면이 좀 그런데,’ 이래 가지고 아니 오는 사람들 많이 있어요. 제가 알아요. 그것이 增上慢입니다. 뻔히 알면서, 또 여기 오는 것 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도 아니합니다. 엇잡히 헛 보내는 시간인데도 체면 구긴다고 안 오는 겁니다.
그거 무슨 알량한 체면이 가지고,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데...
“五千退席章” 아, 이것 참 대단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불교 역사에 최고 큰 사건입니다. 불상사지요. 불상사...
세존은 그런 모습을 보고 默擯對治(묵빈대치)했다. 묵연히 입을 制止했다.
우리가 흔히 묵빈대치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안 오시면 그것은 5000 비구 비구니에 속하니까 알아서하세요. 하하하하하하
44. 爾時 佛告舍利弗 我今此衆 無復枝葉 純有貞實 舍利弗
이시 불고사리불 아금차중 무부지엽 순유정실 사리불
如是增上慢人 退亦佳矣 汝今善聽 當爲汝說
여시증상만인 퇴역가의 여금선청 당위여설
그 때에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고하사대, 我今此衆은 나의 지금 여기 남아있는 대중은 無復枝葉하고, 더 이상 가지와 잎은 다 없어져 떨어져 나가고,
純有貞實하니라. 純貞實만 있다. 貞實. 이것을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까?
純有貞實하니라. 둘째부인. 셋째부인. 하하하하하 넷째부인이 ㅎㅎㅎㅎㅎㅎ 다 떨어져 나가고, 貞實만 있다.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이해하면 간단합니다. 하하하하하하 이것이 그런 것입니다. 둘째 셋째 넷째 되려면 스스로 아예 나가든지요. 남아있으면 다 貞實입니다. 거 어째 정실부인하고 글자가 같네요.
“貞實婦人” ←이렇게 씁니다.
사리불아, 이와 같은 增上慢人은 退亦佳矣니라.
가도 좋다. 그런 사람은 가도 좋다. 엇잡히 앉아있어 봤자 내 말이 그 사람들 귀에 안 들어간다 이 겁니다.
마음을 비우고 한번 들어볼 생각으로 들어 봐야지, 그동안 열반을 증득했다. 아라한과를 얻었다. 알량한 그것을 가지고 더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에이 더 무슨 소리 있겠나? 부처님 여태 70평생 할 이야기 다 해놓고 뭐 또 무슨 소리가 있겠나? 할 소리 다 했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기사 어지간하지요. 70평생 말씀하셨으니까요.
汝今善聽하라. 그대들은 잘 들어라.
當爲汝說하리라.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말하겠다.
45. 舍利弗 言 唯然世尊 願樂欲聞
사리불 언 유연세존 원요욕문
사리불이 말하대, 唯然世尊이시여 願樂欲聞하오이다.
이제부터는 五佛章. 다섯 부처님장이 나옵니다.
첫째는 諸佛章이라고 합니다. 제불이라는 말이 나오겠지요.
46. 佛告舍利弗 如是妙法 諸佛如來 時乃說之 如 優曇鉢華 時一現耳
불고사리불 여시묘법 제불여래 시내설지 여 우담발화 시일현이
부처님이 사리불에게 고하사대, 이와 같은 미묘한 법은. 이와 같이 아름답고 미묘한 도리는, 이 妙法. 妙法이라는 말이 참 다 이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妙法은, 현상은 緣起로 되어있다. 고로 空한 것이다. ←이것도 묘법에 들어갑니다.
사람은 욕심 많고 탐욕 많고 못난 중생인 것 같지만 실상은 부처다. ←이것도 묘법입니다.
인간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부처입니다.
개밥을 주는 밥 그릇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눈 밝은 사람이 보니까 고려청자입니다. 이 것입니다. 개밥그릇이 고려청자인줄 보는 그것이 지혜입니다. 고려청자가 실상이거든요. 사람은 부처가 실상입니다. 실다운 모습이라고요. 그런데 못난 중생이라고 자꾸 밀어붙이는 겁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지요. 이 법화경은 그 인간의 실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간혹 “모든 현상은 空이다.” “모든 현상은 연기다.” 이런 말도 조금씩 나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그것이 중요한 테마가 아니거든요. 공이니 연기니 중도니 하는 것은 여기서 크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사람의 실상은 부처입니다. 개밥그릇이지만 안목 있는 사람이 보면 고려청자입니다.
옛날에 “연성지벽”이라고 해서 城하고 바꿀만한 구슬이 있었는데, 그 구슬을 그냥 왕에게 바치니까 겉은 보니까 돌이거든요. 왕을 속였다고 다리 하나 잘랐지요.
시대가 흘러서 대통령 바뀌듯이 왕이 바뀌었어요.
이 구슬을 또 바쳤어요. 아무리 봐도 돌이거든요.
그러니까 다리 하나 또 잘랐어요. 그 다음에 문왕인가? 그 사람이 왕이 되었는데 기산 밑에서 통곡을 하니까 그 소리가 얼마나 슬펐던지, 심금을 울렸던지 밤에 잠자고 있는 왕의 귀에까지 들린 겁니다. 도대체 그 슬픔이 그냥 가슴을 파고드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가 봐라. 무슨 연유로 저 사람이 저렇게 우는가?”
그래 그 사람을 불러오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개인이 갖기는 어렵고 나라에 보물로 쓸만한 훌륭한 구슬인데 이것을 몰라줘서 제가 통곡을 합니다.”
그래서 옥 감정을 정말 잘 하는 명의를 불러서 감정을 해 보니까 정말 이것은 어마어마한 훌륭한 구슬인 것입니다. 아무나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나는 겁니다.
겉에는 돌인데 안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구슬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만한 땅을 상으로 그 사람에게 줬잖아요.
구슬은 조각 잘 하는 사람이 조각을 해서 모신 그런 역사가 있잖습니까? 그것이 소위 “화씨지벽” 그 사람이 화씨거든요. 화씨지벽이니 연성지벽이니 하는 유명한 고사를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법화경에서 우리에게 깨우쳐주고자 하는 것은, “못난 중생이지만 아니다.
실상은 부처다.” “인간의 실상은 부처다.” 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妙法입니다.
諸佛如來는 時乃說之하시니 이에 설 하시니, 如 優曇鉢華時一開니라.
우리나라는 우담바라 도처에 피어 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쌓이고 쌓인 것이 우담바라인데, 무슨 우담바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참.
優曇鉢華時一開. 우담바라가 한 번 핀 것과 같은 것이다. 성인이 한 번 나타난다.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분이 이 세상에 오실 때 그때 우담바라가 핀다.
전설의 꽃입니다. 우담바라 크기는 얼마나 한지 압니까?
이 건물 보다 훨씬 더 커요. 현미경으로 봐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물잠자리 알입니다. 學名이 공교롭게도 우담바라입니다.
학명을 이용해서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야단법석 사기 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길게 하면 안 되니까 이쯤 해놓지요.
47. 舍利弗 汝等 當信佛之所說 言不虛妄
사리불 여등 당신불지소설 언불허망
사리불아,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님이 설한 바를 믿을지니 言不虛妄이니라. 말이 허망하지 않느니라.
48. 舍利弗 諸佛 隨宜說法 意趣難解
사리불 제불 수의설법 의취난해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의 隨宜說法은, 부처님이 편리함을 따라서 설법 하는 것. 앞에서 수의설법이야기 했지요?
意趣難解니라. 그대로 나왔지 않습니까?
49. 所以者何 我以無數方便 種種因緣 譬喩言辭 演說諸法
소이자하 아이무수방편 종종인연 비유언사 연설제법
是法 非 思量分別之所能解 唯有諸佛 乃能知之
시법 비 사량분별지소능해 유유제불 내능지지
所以者何오. 나는 無數方便과 種種因緣과 譬喩言辭로서 演說諸法하니 모든 법의 존재의 실상을 연설하니, 是法은, 이 법은, 제법실상이지요?
또 일불승. 그러니까 “諸法”이라고 해서 모든 것. 다른 것을 생각할 것 없습니다. 가지 다 쳐 버리고 사람이라고 하는 곳으로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그래야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다른 것 나무가 어떠니 물이 어떠니 하늘이 어떠니 그런 것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크게 우리에게 문제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문제시 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문제. 그래서 제법이니 뭐니 하는 것도 전부 사람에다 초점을 맞춰서 이해하면 제일 소득이 있습니다.
是法은 非 思量分別之所能解요. 사량 분별이 능히 알바가 아니고,
唯有諸佛이라사, 오직 제불이라사 乃能知之니라. 이에 능히 안다. 그랬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정말 부처님은 오로지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 뿐이고,
보살이라는 말도 크게 통용이 아니 되어서 석가모니가 과거에 행했던 그런 행적만이 보살이라고 인정 했어요. 어느 누구에게도 보살이라는 말이 통용이 아니 되었습니다. 오직 석가모니전신. 과거 생에 보살행을 닦았던 그 얘기만이 보살이라고 해당이 되었습니다. 보살도 석가모니전신에게만 해당이 되었는데, 부처가 어찌 감히 사람들에게 통용 되겠습니까? 통용이 아니 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상황에서 여기서 “너도 부처다.”
“너도 부처다.” 하고 (전부 나중에 수기가 다 나오지만,) 그런 이야기가 납득이 될 리가 없습니다. 지금 남방 불교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방 불교는 석가모니부처님 한 분만 인정하지 그 외에 경전 상에 나타난 부처님 한 분도 인정하지 않거든요. 또 그런 이야기도 없고요.
50. 所以者何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소이자하 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 세존이 唯以一大事因緣故로 出現於世하시니라. 一大事因緣이라고 하는 것이 척 나왔습니다.
오직 일대사인연으로서 이 세상에 출현했다. 이것 한 번 파자해서 새겨 봅시다.
一. 오직 하나 뿐이다 이겁니다. 大事. 가장 큰 일이다. 因緣. 인연이다.
一大事因緣. 하나뿐이면서 큰 일 인연이다. ←이것도 결국은 우리 인생 최고의 과제다. ←이렇게도 표현 할 수가 있는데 이것도 결국은 因과 緣으로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큰일도 因과 緣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말이 붙은 겁니다. 그냥 “一大事”라고 해도 좋습니다.
一大事인데 경전이니까 因緣이라고 하는 것을 붙여가지고서 결국은 인연의 도리로서 큰 일이 성취되어가는 것이지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因緣이라고 하는 그 원리를 벗어나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一大事因緣”이라는 말을 쓰는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큰 일. 큰 일이 因과 緣으로 된 것이라는 말인데, 이것을 우리가 쉽게 “一大事因緣” “一大事因緣” 그래요. 이것은 그야말로 제일 우리의 관심사이고, 그것은 결국은 “부처님의 지혜”이고, 결국은 우리가 그 부처님의 지혜를 開 · 示 · 悟 · 入. 부처님이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는 거기에 들어가서 나의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최대의 과제입니다.
최대의 과제... 그것은 인연의 문제로 결국은 되어 있기 때문에
“一大事因緣” “一大事”라고만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라고 붙입니다.
51. 舍利弗 云何名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사리불 운하명 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사리불아, 어떤 것이 이름이 제불세존이 오직 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했느냐?
52. 諸佛世尊 欲令衆生 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제불세존 욕령중생 개불지견 사득청정고 출현어세
諸佛世尊이 欲令衆生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開佛知見.
知見. = 지혜. 같은 것입니다. 부처의 지견을 열어주고, 그래서
使得淸淨이라. 그들로 하여금 청정하게 한다. 빛나게 한다. 드러나게 한다. 이 뜻입니다. 청정은 때 묻은 것을 닦아서 깨끗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일대사인연을 말하자면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줘서 그것이 드러나게 빛나게 한다. 부처님이 그것을 위해서 세상에 출현했다.
欲示衆生 佛之知見故 出現於世
욕시중생 불지지견고 출현어세
欲示衆生으로 佛之知見故로 出現於世라.
중생에게 불 지견을 보여 주고자해서 欲示. 보여 주고자해서 세상에 출현했다.
欲令衆生 悟佛知見故 出現於世
욕령중생 오불지견고 출현어세
欲令衆生으로 悟佛知見故로 出現於世라.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했다.
欲令衆生 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욕령중생 입불지견도고 출현어세
欲令衆生으로 入佛知見道故로 出現於世라.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 도에 들어가게 하게하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했다.
이것을 한 마디로 “開示悟入佛之知見”이라고 하지요.
초파일 날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할 때, 늘 의례히 하는 말이 바로 법화경의 이 구절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왜 왔느냐? 어떻게 해서 왔느냐?
무슨 인연으로 왔느냐? “開示悟入佛之知見”이라.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주고 보여 주고 깨닫게 해주고 들어가게 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을 꼭 밝혀야 됩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할 때는 부처님오신 뜻을 이렇게 확실하게 밝혀서 이해하도록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데서 한 번 더 확고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5000비구가 자리를 뜨니까 비로소 부처님이 그동안 다른 경전에서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못하고,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그런 경지인데, 여기는 중생들에게 뭐라고요?
부처님이 터득하신 그 지견을, 그 지혜를 開 · 示 · 悟 · 入. 해준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중생들에게 불 지견을 개시오입 해주면 끝이잖아요.
더 이상 없잖아요.
그럼 “너도 부처고” “나도 부처고” 다 부처라는 그런 이야기니까 이것은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혁명도 보통, 쿠데타도 보통 큰 쿠데타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대승과 소승의 갈등이 어마어마했던 것입니다.
대승불교운동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지,
새로운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승리를 한 것이지요.
그리고 좀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통했고요. 그래서 북방으로 오니까 더 알아주고요.
중국 같은 데는 이미 도교나 유교등 아주 깊은 철학적인 교설이 있었는데,
그 아함부 경전 가지고는 통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맛이 없는 겁니다.
장자나 노자 같은 것은 얼마나 깊이가 있습니까?
그것을 다 읽은 사람에게 통하려면 대승경전이 아니면 장사가 안 되거든요. 안 된다고요.
대학이나 중용 같은 것이 얼마나 깊이 있는 이야기입니까?
그것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다른 이야기 가지고는 안 통한다고요.
대승경전이라야 그 사람들에게 먹혀들어 갑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쪽에는 아함부 경전이 있지만 크게 눈여겨보지 않고, 바로 대승경전만 좋아하는 겁니다.
대승경전도 신물 나니까 그냥 선불교로 발전해 버리지 않습니까?
바로 선불교로 그냥 한 단계 툭 뛰어서 선불교로 발전해 버렸습니다.
선불교는 사실은 중국이나 한국 쪽으로 와서 비로소 생긴 불교입니다.
看經功德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 普願沈溺諸有情
간경공덕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 보원심익제유정
速往無量光佛刹 十方三世一切佛 諸尊菩薩摩訶薩
속왕무량광불찰 시방삼세일체불 제존보살마하살
摩訶般若波羅蜜
마하반야바라밀 _()()()_
- 3강-1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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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의 청에 법을 설하려고 할 때 5000명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나갔다
-부처님은 말리지 않음
-어는 경전에도 없는 장면
-소승.대승
제불 출현의 일대사 인연
-불지견을 열고 보여주고 깨닫게 하고 들어가게 함
開 示 悟 入 佛之知見
-너도 부처,나도 부처
-지금은 익숙하지만 당시로는 혁명적인 말씀
-三止三請,5000퇴석이 있을 수 밖에 없는 혁명적인 선언
具足道;경전의 완성,부처님 교설의 완성
일승법을 설하시기전에 사리불과 부처님 사이에 3止3請이 있었다.
그리고 일승법을 설하기 직전에 5000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一大事因緣
--인생에서 하나 뿐인,가장 큰 일 인데 인과 연으로 이루어 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佛口所生子,佛長子;사리불이 부처님께 자신을 일컫는 표현
具足道
一大事因緣
;開 示 悟 入 佛知見
고맙습니다. _()()()_
나무 묘법연화경
개시오입.....()
고맙습니다()()()...
_()()()_
一大事因緣(부처님의 지혜)-우리의 최대 관심사-결국은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를 開, 示. 悟. 入해서 나의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최대 과제이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열어주고, 보여주고, 깨닫게 해 주고, 들어가게 해 주기 위해서 임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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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