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장 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였다. 여간 지략과 재주가 뛰어난 것이 아니여서 대다수의 영토를 점령하였으며 ('배수진' 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된 전투가 유명하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한 건국 초기의 정국의 패권장악에 불안감을 느낀 여태후의 음모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토사구팽'이란 고사가 재현된 것으로 유명하다).
한고조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의심이 많아졌고, 여러 장수와 왕들을 모은 연회 자리에서 한신에게 이런 물음을 한다.
"나는 몇 명의 군사를 부릴 수 있겠는가?"
"한 10만이나 20만 정도의 군사는 부리실 수 있을듯 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몇명의 군사를 부릴수 있는가?"
"10만이든 100만이든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순간 연회 분위기는 싸해졌고 한고조 유방은 기분이 묘해져서 묻는다.
"나보다 더 많은 군사를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왜 내 밑의 장수이고 제후인가?"
한신이 답한다.
"저는 수십만, 수백만의 군사를 다룰 줄 알지만 황제께서는 저 같은 수백의 장수를 다루고 수천의 인재를 쓰실 줄 아십니다. 그리하여 제가 장수이고 그대는 황제인 것입니다.
실로 우문현답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주인공은 한고조 유방이지만 남은 것은 한신의 말이다.
모쪼록
달리는 것은 '말'에게 맡길 일이고 나는 것은 '새'에게 맡길 일이다.
위정자란 자고로 만기친람 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자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힘을 주어 격려 하는것이 그 역할이 아닌가 한다'만기친람'과 '해납백천'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사전적 의미는 '임금이 모든 정사를 돌본다'는 뜻이다. 이 말이 새롭게 대두된 것은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에 의해서였다. 심 최고위원은 지난 9일 향후 예상되는 개각(改閣)과 관련 "이번에 내각이 교체되면 대통령께서는 제발 '만기친람'하시는 그런 모습은 좀 버리고 책임총리제, 책임 장관제를 제대로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쓴소리였다.
만기친람의 가장 큰 폐해는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도 상당 부분 일이나 업무 등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몸을 사리는 관료들에 기인한다. 제왕적 군주(君主)시절에나 가능했을 '만기친람'이 빚어낸 산물이다.
한 가지 예를 보자. 박 대통령은 최근 세월호 참사로 전면 중단된 수학여행을 이르면 6월부터 재개하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위축된 서민경기(景氣)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 중 하나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식으로, 세월호 사고가 나자 부랴부랴 전국 초중고의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중단했던 교육부로선 매우 곤혹스러울 터다.
하지만 교육부는 아마도 틀림없이 이를 번복하고 시행에 나설 것이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며 일하는 입장에서 '만기친람 군주의 명(命)'을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관료들은 몸을 사리며 성과 위주의 보고만 하게 되고 이런 분위기에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안이해질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정권의 현주소가 이렇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해납백천(海納百川)이다. '바다는 모든 하천을 받아들인다' 혹은 '수백 가지의 하천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의 유래는 약 2300년 전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은 일곱개의 큰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전국시대(戰國時代)였으나 능력 있는 인재들은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며 요직을 차지했다. 이들을 가리켜 객경(客卿)이라 불렀다. 그 중 최강국이던 진(秦)의 귀족들은 객경들이 출신국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며 진왕인 정(政·후에 시황제)에게 객경 추방론을 건의했다.
이에 맞서 책략가였던 이사(李斯)가 주장한 것이 그 유명한 '해납백천의 논리'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거부하지 않아 커졌고, 강과 바다는 잔물결을 가리지 않아 깊어졌다"는 내용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는 모든 인재를 받아들여 활용한 해납백천의 정신이 그 밑바탕이 됐다. 중국을 재건한 마오쩌둥(毛澤東)도 집무실에 이 '해납백천'을 걸어놓고 항시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해납백천의 기본 정신은 '포용'이다. 박근혜 정부가 현재의 난국(難局)을 슬기롭게 풀어 나가려면 스스로가 하천이 되지 말고 바다가 되어야 한다. 향후 개각이나 국가 개조에도 해납백천은 꼭 필요하다. 다소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여와 야를 가릴 때가 아니다. 그야말로 능력 있는 인재들을 중용( 重用)해 미래 청사진을 짜야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 그것은 6·4 지방선거를 통해 제주도지사에 당선되는 사람도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또한 이런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오염된 강물이다. 오염된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당신은 마땅히 바다가 되어야 한다." 바로 '해납백천'과 상통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