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빨라, 난 참 이상해. 숨도 안 맥히고~ 이래 이래 팔을 빨리 휘저으믄 다리도 빨라
지미, 다리가 빨라지믄 팔은 더 빨라지미, 땅이 뒤로 막 지나가미.... 난 참 빨라~”
- 2005년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강혜정씨의 대사
미련스럽게 Half 13번과 Full 2번을 연走하고 나서야 저 말을 깨닫게 되다니...
‘여러분요! 난 참 멍청하더래요!’ (아~ 참, 난 강원도가 아니지? ^^ )
흔히들 동호회 없이 홀로 달린다하여 칭하는... ... 이름하야, 독립군!!
그렇다. 난 철저한 독립군이다. 몇몇 동호회에서 가입 제의가 있었지만 적당한 핑계로 사양을 해 왔다. 그렇다고 내가 실력이 하 월등한것도 아니다. 대회기록실을 뒤질때 앞에서 찾는거 보다 뒤에서 찾는게 훨씬 빠를정도다.
오롯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야만 하는 마라톤!
누구의 방해도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솔직히 더 큰 이유를 드러내자면 구순한 성격탓에 사람들 어울림을 좋아하다 보니 제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더 쏠릴까 싶어서이다. 말하자면 달리기 보다 뒷~모임에 더 충실할 것이 뻔하다는 이유가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인터넷과 잡지등의 마라교과서(?)를 보고 호흡법, 자세, 훈련법을 혼자서 깨닫는다는건 달걀로 바위치기만큼 힘이 든다. 허나, 난 끝까지 믿고 싶은게 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는 아주 특별한 달걀일 것 이란걸...^^
4년간 하프를 10여차례 완주했지만, 오매불망 변치않는 춘향이 맘처럼, 변함없는 나의 기록^^; ... 혼자 익힌 주법을 이래저래 바꿔도 보고, 대회때 달림이들에게 살짝 지적받은점을 고쳐도 보려 했지만, 내것을 만든다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별로 갖고 싶지 않은 부상만 찾아올뿐...
그러다 2005년 첫 풀 도전을 얼마 앞두고 종합검진을 했었는데, 그때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폐활량 테스트와 근육양 테스트에서 내가 여성 평균치에도 못미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금도 “정말 마라톤 하시는거 맞습니까?”라는 의사선생님의 야릇한 비소가 잊혀지지가 않는다.
가진자들은 없는자들의 고통을 잘 모른다. 조금의 노력(못가진 내가 보기엔^^;)으로도 금새 멋진 마라토너로 거듭나는 네들은 시간이 넘쳐나서 훈련을 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달리지 못하는 고통을 알 턱이 없다. 그래! 난 너무 가지지 못했다. 달리기에 맞는 폐나 근육을... 어쩌면 마라톤이랑 궁합이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포기가 아니라 오기가 생긴다.
오색찬란 단풍색으로 물든 예쁜 가을날, 첫풀을 4시간 46분에 완주를 하고, ‘아~ 나두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은 게염으로 이어져 을유년이 가기전 한번 더 풀냄새를 맡고싶은 욕심을 키워냈다. 그래서 12월 초 풀코스에 한번더 도전했다가 ‘역시 없는자는 안되는구나!’라는 절망을 뼈져리게 맛봐야했다.
5시간 2분, 그것도 여성주자 13명중 뒤에서 일등을 한 것이다. 그날 피니쉬 라인을 얼마 앞두고 온몸이 무너지고 두주먹이 가슴앞에서 교차되며 들어오는 나에게 고수 한분이 충고를 주셨다. ‘오르막이나 힘이 부칠때는 팔치기를 힘차게 하면 힘이 생길거라고... 그리고 힘들어도 두팔은 11자를 유지하라고...’
초연한 자세로 다시 돌아와 마음을 다스리며, 3월 서울동아를 목표로 full베기(^^)의 무기를 바꾸기로 했다. 무조건 LSD 등 달리기 거리만 늘일것이 아니라, 비록 가진건 별로 없지만, 있는것이라도 최대기량으로 만들고저 나에게 부족한 근력 보강훈련에 시간을 투자했다.
거기에다, ‘팔치기’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며, 실천으로 옮겨 동마 전 마지막 하프대회(3/1)에서 나의 하프 신기록을 달성함과 더불어 자신감도 커져갔다.
2월의 달릭 마일리지의 키는 짧달막했지만, 상체, 하체에 제법 힘있게 느껴지는 근육의 든든함으로 3월 12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작년에 이어 찬바람이 칼을 들고 설쳐댈거라곤 하지만, 달리고파 들끓는 가슴속 마라열을 식히기엔 택도 없다. 오들오들 떨면 떨수록 달리고픈 마음은 곰비임비 더해져 갔다.
드디어 출발총성이 터지고, 매트위에 출발도장을 찍으며, 흘러가는 강물에 휩싸이듯 순순히 달림이들 흐름에 흡수되어 5km까지 느긋하게 이어갔다. 간밤에 노루잠을 자서인지, 시골촌놈이 어지러운 빌딩숲에 쌓여 어리둥절 하듯, 지금 달리고있는 pace가 빠른건지, 느린건지조차 모를정도로 머릿속이 텅빈 듯 하다.
이내 코끝을 스쳐가는 칼바람 한줌에 정신을 가다듬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하나 살펴본다. 평소 통증이 잦은 오른쪽 오금이 조금 신경은 쓰였지만, 그닥 걱정할만큼은 아닌 듯 하고 몸전체가 점점 가벼워지는 듯 했다.
몸의 허락하(?)에 속도를 조금씩 올리며, 머릿속에 수학공식 외듯 읊어대었다.
1. 발가락에 힘을 빼고 사뿐사뿐히 내딪자!
2. 힘들어도 상체를 숙이지 말자,
3. 팔은 11자로 유지하자!,
4. 힘이들면 팔치기를 쎄게 하자!
속도를 올린 것 때문에 후반에 빨리 지쳐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지만, 회수차에 실리더라도 지금의 춤추듯 찍히는 한발 한발의 춤사위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너무 간절하면 이뤄지는 걸까? 금새 속도가 죽을줄 알았는데 정말 거짓말 같이 내 다리가 견뎌주고 있었다.
4개월간 사내 헬쓰장을 들락날락하며 근력다지기를 한것이 헛수고가 아니란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TV에서만 봤던 새로 단장한 청계천!
얼마나 나에게 집중을 했던지, 아래 살짝 엿보이는 청계천은 반환을 돌고도 한참후에나 시선이 간다. 아름다운 경치 대신 병풍처럼 늘어선 빌딩숲이 조금 삭막하긴 했지만, 한눈팔지않구 달리는데만 신경쓸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20km에서 체크타임을 하니 1시간 53분 언저리다. 네가티브 스플릿하고는 거리가 먼데, 50리길을 상상외로 너무나 잘 달렸기 때문에 후반 레이스가 점점 걱정된다. 이런 걱정을 애써 모른체 하고싶은 마음에 부러 웃음을 그려본다. 그런데, 왜 카메라랑 마주치면 미소가 죽어버리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예쁘게 찍히고 싶어 연습삼아 과속카메라를 쳐다보며 실실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웃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더라!!!^^)
25km!!!(2시간 22분) 얕은 오르 내리막을 내달리면서 올린 속도를 계속 유지하며 사람들을 추월해 가는 내가 이제 무섭기 까지하다. 벌써 특별한 달걀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든다. 빠른박자로 북을 치며 격려해 주는 응원부대, 시선을 사로잡으며 예쁜치마를 입고 달리는 오빠들(?)의 모습에 더 흥이 난다.
32km!!! 이제 10km만 잘 버티면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다시금 내 몸과 대화를 해 본다. 상체도, 팔치기도, 다리마저도 지금 내가 32km를 달렸다고는 생상조차 할수 없을만큼 무겁지가 않다. 이데로라면 풀코스를 4시간 20분안에 완주하겠다는 병술년 첫 해오름 다짐을 벌써 이룰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7km!!! 첫 풀 대회때 34km에서 에너지가 바닥났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3km 늘어 37km에서 갑자기 속도가 뚝 떨어진다. 때맞춰 바람마저 힘을 실어 벌거벗은 내다리에 차갑게 옭아온다. 길가에서 꿀물을 들고 같은 동호회 식구들 이름을 부르는 한 아주머니! 체면이고 뭐고 달려가 구걸하고 싶다.
이런 우울한 생각을 떨쳐버리려, 내몸을 mp3 삼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걸어가도 4시간 20분 안에는 골인하겠다고 자위를 해 본다. 그러나 절대로 걷지않겠다는 출발전 약속을 되새겼다. 정말이지 날아가는 참새 깃털이라두 뽑아 달고싶은 심정이었다.
40km!!! 이미 피니쉬라인을 밟은 선수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엉켜 길섶에서 힘찬 응원을 하고 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나 하나만을 위해 목이터져라 응원하고 있다는 착각이 일 즈음, 잠실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오늘 막판 스퍼트를 할수있을까 걱정을 하며, 내 온몸에 남아있는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시도를 했다.
운동장 입구!!!
이미 Stop watch의 첫머리가 ‘4’라는 숫자가 찍혀있었지만, 더 이상 숫자의 키를 키우지 않기 위해 큰보폭과 힘찬 팔치기로 골인라인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몸은 무거웠지만, 해냈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에선 웃음 이중주가 흐른다. 마지막 매트에 골인도장을 찍고 시계속에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았다. 4시간 5분 50초!~
너무나 감격적인 이 순간에 나를 맞아주는 이는 한사람도 없었지만, 두 눈에 맺히는 뜨거운 감동방울과 나 스스로의 칭찬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기록을 무려 41분을 단축한 나의 동마 나들이!
또 하나의 나의 역사의 장을 채움에 요즘 밥 안 먹어두 배부른듯 하다.^^
글쓴이 : 마라톤아프로 안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