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꾸스코(Cuzco)의 꼬리칸차와 사크사이우아만
꾸스코는 해발고도 3.360m 안데스 산맥위에 자리 잡은 옛날 잉카의 수도다.
꾸스코란 페루 원주민 말인 케추아(Quechua)어로 “배꼽”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하며
태양신을 숭배한 잉카제국에서 그들의 우주관에 지구의 중심이라는 뜻이라 한다.
< 비행기에서 본 꾸스코의 시내전경과 공항 활주로 >
전설에 의하면 태양신이 자신의 아들과 딸을 티티카카호수에 내려 보내며
황금지팡이가 꽂히는 곳에 정착하라고 계시하였는데 그들이 지팡이를 박고
도시를 건설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꾸스코는 세계에서 가장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잉카문명의 중심부이며
인구 약 26만명의 도시로 잉카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안데스 분지에
자리 잡은 세계적인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13세기 초에 건설되여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제국은
1533년 피사로에 의해 정복되기까지 광활한 영토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면서 번영하였었다.
당시 문화의 절정기를 맞이하였던 꾸스코는 스페인의 정복자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말살 당하였지만 잉카의 화려했던 제국의 석축문화는 곳곳에
축대나 시 외곽의 성곽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 꾸스코 공항과 아르마스 광장의 대성당 >
<파차쿠테크(Pachacutq)왕의 동상>
파차쿠테크는 잉카의 9대 왕으로 어릴 적 이름은 유판키(Yupanki)였고 뜻은
잉카 언어인 퀘차어로 명예롭게(With Honor)란 뜻이라고 한다.
파차쿠테크란 이름은 황제에 즉위하고 난 뒤에 대지를 흔드는 사람(he who shakes)이라는
의미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잉카 제국의 8대 황제 뷔라고차(Viracocha)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가 첫째아들인 우르고를 제치고 왕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당시 잉카는 쿠스코 주변의 조그만 영토만을 지배하는 작은 약소국이었는데
주변의 다른 국가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의 위협을 받는 처지었었다.
그때 즈음해서 창카족의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되어 아버지 뷔라코차왕과 형 우르고는
겁을 먹고 맞서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을 쳤고 둘째 아들인 유판키가 용감하게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 승리를 기점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형을 제치고 제 9대 잉카왕에 등극하게 되고
왕위에 오른 그는 지금의 에콰도르에서 칠레에 이르기까지 잉카제국의 가장 번성시킨
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꼬리간차 앞의 잉카인들의 모습>
태양을 모시던 신전은 스페인 식 교회가 들어섰고
왕이 머물렀던 궁전은 수도원이 대신해 자리 잡게 되면서
황금에만 눈이 어두운 스페인의 무자비한 정복자들은
참혹하게 꾸스코를 농락하고 집 밟았다.
스페인의 역사를 보면 다양한 문화가 복합 되여 별 거부감 없이
모두 수용하는 민족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유독 꾸스코에서만 잉카의
모든 문명과 문화를 파괴하고 철저히 유린하고 단절 식혔음은
나름대로의 역사의 연속성을 무시한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사가들의 기록에서 아무런 문화적 소양이 없는
일부 몰지각한 군인과 성직자들이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 무차별적인 약탈과 파괴를
식민초기 저질러졌다고 시인을 하면서 합리화하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허기야 실제로 피사로는 왕실에 제출하는 정복허가서에 서명도 대리인을 식혀서
하는 문맹인 이였다고 하니 식민지 개척당시 정복자들은 왕실의 정식군대가 아닌
힘 좀 쓴다고 하는 건달이나 깡패가 일확천금에 편승해
남미로 몰려오지 안했나 여겨지기도 한다.
< 꾸스코 레스토랑에서의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악사들과
전통 의상을 입고 차를 날으는 여인 >
잉카인들은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반영하듯 꾸스코는 도시 전체가 퓨마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머리부분에는 삭크사이우아만 유적지가 자리하고 있단다.
산토도밍고 성당 (꼬리칸차 (Qorikancha)-태양의 신전)
< 꼬리칸차의 정문 간판 >
현재 산토도밍고 성당(Iglesia de Santo Domingo)이 있는 이곳은 잉카제국 시대에는
꼬리칸차라고 불리던 태양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 신전은 정교하게 쌓여진 훌륭한 석벽과 벽에 금띠가 둘러져 있어
숨이 멈출 정도로 화려했다고 하는데 스페인 침략자들은 황금으로 장식된 보물들을
원형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본국으로 수탈해 갔다고 한다.
더구나 무지막지하게 태양신전의 상부를 부수고 그 토대위에
스페인 식 성당을 건립했다고 하니 이렇게 잔인하고 무자비한 약탈의 유린이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갈 정도다.
그러나 1950년 5월 21일 진도 8.4의 대지진이 꾸스코에 일어나
산토도밍고 성당은 무참하게 붕괴되고 시내는 초토화 되였지만
신전의 토대인 석조만은 하나도 뒤틀리지 않고 잉카석조의 정교함을 나타내는
증거로 지금껏 전해오고 있단다.
< 잉카시대의 보물과 통 돌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신전내부 >
< 성당안의 유물과 화려한 천정 >
꼬리 칸차(Qorikancha)란 잉카 제국시대의 궁전의 이름으로
“Qori”는 황금을 "Kancha'는 있는곳을 나타내는 것이란다.
신전의 방에는 꿈의 세계처럼 금과 은으로 된 찬란한 조각상이 벽장안에
가득 장식되여 있었다고 하는데 정복자들은 이 금은보화의 유적들을 운반하기 좋게
고스란히 녹여서 가져갔다고 하니 얼마나 당시의 상항이 처참하게
약탈해 갔던가를 짐작케 한다.
< 쐐기 모양으로 홈을 정교하게 파 끼워 맞춰 지진에 대비한 고도의 석조기술 >
사크사이우아만 (Sacsayhuaman)
꾸스코 동쪽 언덕에 위치한 요새 유적으로 거석을 조밀하게 쌓아 올린 석벽 구조물을 말한다.
길이가 360m에 22회의 지그재그를 그리며
잉카건축의 기본인 3단 (1단.지하의 신. 2단.지상의 신. 3단.천상의 신.)으로 이루어졌는데
잉카의 특이한 석벽 기술로 종이 한 장 들어갈 빈틈없이 정교하게 만들어 졌다.
< 사크사이우아만의 전경과 정교하게 짝 마춘 돌들 >
사크사이우아만의 건축은 9대 황제 피차쿠티 시대에 시작하여 80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하루에 3만 여명이 동원 되여 근교의 것은 물론이고 88Km나 멀리 떨어진
오얀따이담보에서 까지 석재를 운반 해와 완성 식혔다고 한다.
특히 절벽 쪽의 돌은 9m. 5m. 360t 이나 되는 거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오차 없이 조성하였다고 하니 수레바퀴가 없고 철기문화가 없었던 시대에
어떻게 운반하고 축조하였는지 놀라울 뿐이다.
< 어마어마하게 큰돌로 각을 정밀하게 하여 축조한 성벽들 >
종교적 이였는지 요새였는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라는 뜻을 지닌 퓨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사크사이우아만은
꾸스코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정상에는 거대한 해시계 모양을 돌조각으로 땅 위에 그려 놓았는데
당시 중요 농작물이던 감자 옥수수의 파종이나 수확시기를 가늠하기 위한 24절기를
나타내는 연역(태양력) 역할을 했다고 한다.
< 정상에 계절을 가늠하는 해시게 모양을 한 조형물 >
잔디로 깨끗하게 다듬어진 광장에선 지금도 해마다 6월 24일(동짓날)이면
태양의 축제 (Inti Raimi) 가 열리며 잉카의식을 그대로 재현 한단다.
인티 라이미란 원주민어로 Inti 는 태양. Raymi 는 축제라는 뜻인데
1944년 움베르토 비달등의 예술가들이 연극으로 처음 재현한 것이 유래가 되여
이제는 태양신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에 1연중 가장 중요한 제사로 요식을 치룬 단다.
태양의 축제는 길흉과 안녕을 기원하는 최대의 행사로서 그해의 수확된 옥수수로
빚은 술과 “차차”를 황금 병에 담아 태양에 바치는 걸로 시작되는데
그해의 수확은 황제의 은덕과 치적의 공노에 따라 철저히 책임 지여 있어
축제도 직접 주재하고 관할한다고 한다.
꾸스코시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우리나라의 종묘 제례처럼 순수한 잉카인의
혈통을 이어온 후예에서 철저하게 검증하여 황제를 모시게 되고.
영광스럽게 태양신의 아들로 간택된 제사장은 잉카제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7일간의 단식과 몸을 정결히 한후 꾸스코 시장에게 축사와 함께
황제 금지팡이를 하사하고 잉카제국을 선포하면서 축제는 시작되게 된다.
그러면 국기게양대에는 일곱 색깔의 잉카국기가 나부끼고 그날 하루 꾸스코 시민은
잉카 제국의 백성으로 돌아가 옛날의 찬란했던 잉카문화에 파묻히게 된다.
< 삭크사이우아만 정상에서.
뒤로 분지로 된 꾸스코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
의식이 끝나면 높은 언덕의 요새 사크사이우아만에서는
태양의 축제가 오후에 열리게 되는데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황제가 이날을 위해 엄선된 산 제물인 라마의 심장을 투미 (Tumi)로 도려내어
태양신께 바치고 내년농사의 풍년을 기약하면서 축제는 막을 내린단다.
이러한 잉카의 종교적인 예식과 의례는 성대하고 화려하게 거행 되여
일년간의 힘든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춤과 노래 그리고 술을 통해서 풀수 있게 되는데
리우와 오루로 카니발과 더불어 남미 3대 축제의 하나로서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땀보 마차이 (Tambo Machay)
<언제나 일정한 수량을 흘러내는 신비스런 샘터 >
땀보마차이는 “성스러운 샘”이란 뜻의 잉카시대의 목욕 터라고 한다.
이 샘물은 1년 내내 항상 수량이 일정하여
수량의 근원이 될 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이 이 정도의 수량을 공급할 크기에
못 미치고 있어 별도의 수로를 통하여 먼 곳으로부터 공급되리라는 추측에
물의 근원을 조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원을 찾기 위하여 여러 강과 연못에 색소를 풀어 실험한 적도 있었으나
결국 밝혀 내지 못하고 불가사의한 것으로 지금 것 내려오고 있단다.
지금도 원주민들은 이 물로 손과 얼굴을 3번 씻고 한번 마시면 장수 한다고 믿고 있는데
위생적으로 무방비한 상태라 오염방지를 위하여 접근을 금 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