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사철 먹는 음식이고 특히 초겨울 김장에서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멸치의 진면목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3월에 드러납니다. 특히 남도의 바다에서 잡히는 봄 멸치가 제격인데요, 고향이 남쪽인 사람들은 봄만 되면 생멸치 생각이 간절해진다고 합니다. 툭툭 으깨어 쌈장과 함께 쌈을 싸먹는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면 가을 전어 맛은 저리 가라고 하겠습니까. 요즘은 수송 수단과 냉장 기술이 좋아져서 서울 같은 내륙에서도 봄의 생멸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성질이 급하다’고 하여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바로 죽어버린다는 멸치를 회로도 먹을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글ㅣ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멸치는 맛도 맛이지만, 영양 가치가 대단히 뛰어납니다. 단백질과 지방 같은 영양뿐만 아니라 철분, 칼슘, 인 같은 무기질도 아주 많이 들어 있습니다. 봄에 봄동배추에 생멸치를 갈아 만든 양념장을 얹어 겉절이를 만들어 먹으면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소를 보충하면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또 경상도 남부 지역에서는 생멸치로 찌개를 끓이기도 합니다.
멸치는 등 푸른 생선에 속합니다. 심장 질환에 좋고 동맥경화와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성분이 많다는 뜻입니다. 또 DHA와 같은 불포화지방산 성분은 어린이의 두뇌 발육에 이롭다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항암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 니아신(비타민 B군의 일종)이 풍부합니다. 심장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조절하는 이로운 성분으로 유명합니다. 타우린은 해물에 많은데, 오징어와 문어를 말리면 하얗게 보이는 가루가 바로 타우린입니다.
멸치는 오래 전부터 우리 선조의 소중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헌에 등장합니다. 최초의 어류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어보’에는 멸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멸치는 ‘멸’ 또는 ‘몃’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사투리로 ‘멜치’ ‘메루치’ ‘며루치’ ‘멜’ 등이 두루 쓰입니다.
멸치는 주로 연안에 가까운 대륙붕에 살기 때문에 조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부터 우리 식탁에 자주 올랐습니다. 서해 남부에서 동해 남부에 걸치는 지역에 두루 풍부하게 서식했습니다. 멸치를 잡는 법은 예나 지금이나 그물을 주로 이용하는데, 그 노동량이 엄청나고 힘들어서 지금도 구전되는 어민의 노동요 가운데 상당수는 멸치 잡는 노래라고 합니다.
멸치는 봄과 가을에 두 번 산란하고 수명은 2년 내외라고 합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생멸치를 볼 수 있는 것은 봄, 가을인데 주로 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비늘이 덜 벗겨지고 머리가 온전히 붙어 있으며, 색이 파랗게 생동감이 도는 것이 좋은 생멸치입니다. 잠깐 시장에 나오는 듯하다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생멸치 맛을 보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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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자주 오르는 멸치 | | |
멸치는 한국과 일본, 남중국,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많이 잡힙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멸치를 다양하게 이용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멸치는 한국에서 그 최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셈입니다. 한국에서 멸치의 이용법이 가장 진보했다고 합니다. 특히 잡은 멸치를 곧바로 삶아서 말린 후 조미료나 식 재료로 쓰는 법은 보존성이 뛰어나고 맛도 좋아서 식도락에 꼭 필요합니다. 영양 가치도 생멸치에 전혀 떨어지지 않아 더욱 소중한 방법입니다. 말린 멸치는 크기에 따라 사용법이 다른데, 작은 것은 주로 볶아 먹고 큰 것은 국물을 내는 데 주로 쓰입니다. 국물을 내는 멸치가 더 비쌉니다. 세계 슬로푸드 대회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죽방멸치는 이중 최고로 치며, ‘금값’이라고 할 만큼 비쌉니다. 조류를 이용하여 잡는 죽방멸치는 멸치를 잡는 가장 과학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워낙 소량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구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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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심을 끄는 죽방멸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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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는 제철이 지나면 젓갈이 되어 우리를 만납니다. 제주도 인근에서 잡은 멸치로 담근 ‘꽃멸치젓’이 요즘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삭아서 원형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내륙의 젓갈과는 달리, 이 지역의 멸치젓은 붉은 속살이 보인다고 하여 ‘꽃멸치젓’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그냥 ‘멜젓’이라고 하는데, 제주 특산 돼지고기를 찍어먹으면 더 맛이 좋습니다. 멸치젓은 한 해의 김장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겨울이면 좋은 멸치젓을 사려는 우리 어머니들의 눈길이 바빠지곤 했습니다. 김장철에 멸치젓을 달이는 구수한 냄새가 집집마다 피어 올랐습니다. 서양에서도 멸치는 아주 인기 있는 해물입니다. 정어리처럼 큰 것은 날 것으로 요리하기도 하고, 튀겨서 먹기도 합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스페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매우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했습니다. 굵은 소금을 쳐서 젓갈을 담그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며, 세계적인 인기 품목인 오일에 절인 멸치도 많이 쓰입니다. 우리가 보통 앤초비라고 영어로 부르는 이 멸치는 그냥 먹기도 하고, 다지거나 볶아서 요리의 양념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양념쌈장처럼, 다져서 삶은 야채에 버무려 먹기도 하며 올리브와 함께 볶은 파스타 소스도 인기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