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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와 살
현 기 영
□ 이 글에 나오는 일화들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다.
불복산 (不伏山 )
조선팔도 유명 산악들 중에 오직 지리산만이 이성계의 등극을 반대하였다 해서 불복산이란 말이 생겼다. 국토의 허리가 동강난 채 남북에 서로 적대적 인 정권이 수립되던 1948년, 그때의 불복산은 한라산이었다.
남쪽 정권은 권력구조에 철두철미* 아메리카 영문법이 관철되어 영어에 능숙한 친미가 득세하자 친일 부역자들이 발 빠르게 친미로 전향했다. 민족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었다. 친일경찰이 중용되고 군부에서도 군사영어 학교 출신들이 민족주의세력을 몰아내고 있었다.
당시 미 대통령은 트루맨*이었다. 신생 정권은 트루맨을 문자 그대로 ˙진인(眞人)’이라고 번역하여, 새 국가를 열어주는 진인의 현신*인 것처럼 널리 선전했다. 진인이란 언젠가 때가 오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새 국가를 창업 한다는 비기(秘記)* 속의 인물이다. 그러나 비기 속의 진인은 해도(海島)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여 창업한다고 했다. 물론 그 섬 젊은이들은 비기를 믿어서 봉기한 것도 아니고 승리를 낙관해서 봉기한 것도 아니었다. 4·3 이전에 3·1이 있었다. 5만 군중이 운집하여, 외세 없는 진정한 독립을 고창한* 3·1 대
집회, 그 평화로운 시위현장에서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6명이 희생된 이후 거의 일 년 동안 육지부에서 들어온 서북청년단(서청)*과 경찰응원대의 야만적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도처에 살인·고문·약탈·겁간*이 횡행하여, 쫓기는 젊은이들이 더 이상 숨을 데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절망적 저항의 몸짓에 대한 권력의 응징은 인간의 상상, 인간의 감각을 완전히 무시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초토*작전에 반대한 연대장 김익렬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박진경을 앉혔다. 경찰 총수 조병옥, 9연대 연대장 박진경은 새 국가 건설을 위해서라면 30만 전 도민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천명하였다. 그것은 미국이 결재한 목소리였다. 미국이 그 섬을 ‘레드 아일 랜드’ (Red Island) 라고 낙인찍자, 즉각 ‘붉은 섬’이라고 번역되었던 것이다. 붉은 섬. 군사작전지도에 해안선을 따라 둘러진 섬 일주도로의 4km 이상 지역, 한라산과 그 밑 중산간지대는 온통 붉은색으로 칠해졌고, 붉은색은 곧 피와 불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저항의 근거지였던 중산간지대의 130개 부락들이 붉은 화염 속에 회진되고* 부수한 양민들의 선혈*이 산야를 붉게 물들였다.
백살일비(百殺―匪)
게릴라는 이삼백 명에 불과했다. 백살일비, 양민 백을 죽이면 그중에 게릴라 한 명이 끼여 있을 것이고 양민 이삼만을 죽이면 이삼백의 게릴라는 완전히 소탕될 것이다. 그리하여 수만의 양민이 희생된 것이다.
송아지
병수는 그때 여덟 살이었다. 무럭무럭 한창 자라기에 바쁜 나이인지라,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초토의 그 무서운 재앙불이 마을에 덮치기 석 달 전이었다.
일흔둘 나이였지만 늘 정정해 보이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몸져눕고 말았다. 밥을 못 먹어 미음죽을 먹다가 나중에는 미음도 마다하고 숭늉만 찾았다. 미음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갈아 자리를. 지켰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도리질*이었다.
“성가시게 그럴 것 없다. 내 몸은 내가 잘 아느니라. 이젠 다 살았다. 밥 다 먹고 숭늉을 마실 차례인 거지. 배불러 숟갈을 놓았는데, 또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법이여.”
그렇게 미음을 끊고 숭늉만 마신 지 닷새 만에 할머니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병수가 최초로 만난 죽음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서럽게 울었지만 병수는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술프기는커녕, 오히려 극중인물이라도 된 듯이 신이 나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두건과 상복을 입은 모습을 동네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장례는 즐거운 잔치나 다름없었다. 사흘 밤낮으로 집 안팎이 사람들로 북적대고 병수도 덩달아 그 속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장례를 치른 이튿날, 잠 설쳐 멍해진 정신으로 학교에 다녀온 병수는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전에 하던 버릇대로 무심중*에 할머니를 불렀다. “아이고, 내 새끼 왔구나. 어서 들거라. 오죽 배고프겠냐” 하면서 반색하고* 내닫던 할머니. 그러나 집 안에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정적, 마당 하나 가득 북적대던 문상객들이 떠오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할머니의 영원한 부재가 그제야 가슴 저리게 실감으로 와 닿았다.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젠 밥 다 먹고 숭늉을 마실 차례인 거지”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한 생애의 자연스런 결말로서의 죽음. 아쉽고 슬프기는 하지만, 지는 해를 붙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석 달 후 병수가 목격한 죽음은 그러한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임에 의한 끔찍한 죽음이었다.
어둑새벽,* 아직 새벽 단잠에 취한 마을을 포위한 토벌군들은 마을 외곽부터 차례차례 줄불을 놓고 총을 난사하면서 주민들을 마을 한 가운데 삼거리로 몰아붙였다. 아버지는 지붕 귀퉁이에 달라붙은 불을 잡으려고 허둥지둥 지붕으로 올라갔다가 그 즉시 총 맞아 굴러 떨어지고, 어머니는 총 개머리판에 등짝 찍혀 곤두박질치며 집 밖으로 끌려 나갔다. 병수는 그 경황 중에도 불붙은 외양간에서 울부짖는 어미 소와 어린 송아지를 고삐 풀어 내보내주고 나서 급히 어머니를 뒤쫓아갔다. 마을은 불바다로 변하고 화광*이 충천하여 하늘의 구름까지 핏빛으로 물들여놓고 있었다. 이 골목 저 골목 달아나던 사람들과 마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잠자다 미처 빠져낙오지 못한 사람들, 가축들이 불에 타 죽는 비명소리가 처절했다. 그 아수라*의 불길 속에서 쇠바가지 모자에 흰 띠 두른 저승차사*들이 미친 듯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젊은이 스무 명 가량이 희생물로 점 찍혔다. 여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병수 어머니도 그중에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해가 떠오르자 그들은 마을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 뒤를 얼마쯤 사이 두고 병수가 주춤주춤 따라갔다. 어머니는 그 행렬의 맨 뒤에 있었다. 어머니가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그래도 따라갔다. 이번엔 토벌군이 총대를 휘두루며 따라오지 말라고 위협했다. 두려움에 오금*이 오그라 붙는 듯했으나 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복받치는 울음을 참느라고 자꾸만 딸꾹질이 일어났다. 마침내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고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병수를 향해 마구 돌멩이를 집어 던졌다. 병수는 우뚝 멈춰 섰다. 어머니가 던진 돌멩이 중 하나가 바로 앞에 떨어져 발밑으로 굴러왔다. 병수는 그 돌을 집어 손에 꼬옥 쥐었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다른 사람들과 분간 안 되게 녹아들 즈음에, 행렬은 냇가 절벽 위에 닿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일제사격의 총성. 뜨거운 쇠붙이의 급류가 벌거승이 생명, 인간의 멀쩡한 육체를 향해 일시에 밀려가 그들을 휩쓸고 절벽 밑으로 떨어뜨렸다.
설촌(設村)* 6백 년의 해묵은 마을이 그렇게 잠깐 사이에 파괴되어버렸다. 삼대 중 중간의 젊은 세대가 완전히 박멸되어 늙고 어린자들만이 남았다. 병수도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친척 노인들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와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불타버린 집터의 텃밭에 가매장해주었다. 이제 생존자들은 토벌군의 명령에 따라 해변부락으로 소개*해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돌연 송아지가 나타났다. 불타는 외양간에서 풀어준 송아지. 어미 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송아지도 병수처럼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 총 맞아 죽었을 것이다. 병수는 반가워서 와락 송아지 머리를 감싸 안고 볼을 비벼댔다. 눈물이 핑 돌았다. 피난 길에 송아지를 함께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숙어른은, 해변엔 먹일 풀이 없어 데려가도 굶어 죽는다고 말렸다. 병수는 할 수 없이 송아지와 이별하고 당숙어른을 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문득 되돌아보니 송아지가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후여후여, 쫓아도 자꾸만 따라왔다. 달려가서 머리를 콩콩 쥐어박아도 잠시 멈칫했다간 또 따라왔다. 할 수 없이 돌멩이를 집어 마구 던졌다.
“어서 돌아가. 어서! 해변엔 먹을 것 없어 굶어 죽는단 말야!”
돌멩이가 날아오자 송아지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음메, 송아지의 처량한 울음소리. 병수는 복받치는 울음을 억누르고 주머니 속의 어머니가 던진 돌멩이를 꼬옥 쥐어보았다.
먼 데 불은 아름답다
고려 목종 때 그 심에 마지막 화산 폭발이 있었다. 두 이레 열나흘 동안 하늘과 땅이 맞붙어 천동 치고 지동 치는 천지개벽의 그 무서운 재앙불 속에 섬사람들이 두려움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고 있을 때, 먼 바다에서 본 그 섬은 보랏빛 상서로운* 구름에 횝싸여 매우 아름답게 보이더라고, 어느 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1948년 11월 그 섬의 중산간지대 130여 개의 부락들이 불탈 때, 천지간*에 가득 찬 화염의 그 붉은 빛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해상 봉쇄 임무를 띠고 바다에 떠 있던 미 군함의 장교·수병들은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증언해주기 바란다. 장엄하게 아름다웠는가? 불가사의하게* 아름다웠는가? 웅혼하게* 아름다웠는가, 처절하게 아름다웠는가?
재앙불
화산불에 죽은 자는 별반* 없었으나 초토화의 불길에 죽은 자는 수만이었다. 하늘이 내린 불보다 인간이 저지른 불이 더 무서웠다.
아버지와 아들
원동마을의 주막거리에 마을 주민 남녀 육십여 명이 전홧줄로 뒷짐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노인과 아이들만이 거기에서 제외되어 집 안에 머물러 있었다.
드디어 주막집 지붕 위로 기관총이 올라갔다. 기름 잘 먹인 기관총이 서릿발같이 눈부신 반사광을 뿜어대자 사람들의 얼굴이 일시에 하얗게 바래졌다. 모두들 두려움에 목구멍 이 꽉 막혀 비명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 청년이 먼저 막힌 목구멍을 뚫고 혼신의 절규를 질렀다.
“아버니임! 아버니임!”
기관총을 건 주막집 바로 뒤 그의 집에는 병든 아버지가 누워 있었다.
“아버니임! 불효자 영식이가 먼저 갑니다. 대를 잇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장가갈 날 받아놓고 잔茨날 쓰려고 산디쌀* 열 섬 추수한 것도 다 버리고 그냥 갑니다. 아버니임!”
그 피맺힌 절규에 촉발되어 주막거리는 일시에 저주와 원한의 울부짖음이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하게 솟구쳐 올랐다. 다음 순간, 장교의 오른손이 냉혹한 기계동작으로 번쩍 올라가고, 그러자 지붕 위의 기계가 잔인한 희열에 들떠 바드드드 총알을 내뱉기 시작했다.
구조
이것은 누구의 범죄인가. 기관총인가, 기관총 사수*인가,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인가, 무선전화로 처단명령을 내린 대대장인가, 그 위의 연대장인가, 그 옆의 그림자 같은 미 군사고문인가. 그 위 또 그 위, 마침내 삼각형의 꼭짓점은 누구인가? 트루맨은 진인이었나?
수뇌의 명령은 층층시하* 수족*에 이르기까지 기계적으로 관철되었다. 그들의 기계적 사고에는 인간이 부재하였고 소름 끼치게 단순명료했다. 중산간지대가 게릴라의 인적·물적 토대가 되므로 물자뿐만 아니라 인명도 깡그리 파괴해야 한다, 그것이었다. 백살일비가 그것이었다.
쇠의 냉혹한 기계.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움직이는 기계. 버튼을 누르는 자들은 제 손에 전혀 피가 묻지 않는다. 그들에게 수많은 죽음은 피비린내 안 나는 통계숫자일 뿐이었다.
젊음이 유죄
그들 앞에서 인간의 호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아무리 무죄·결백을 주장해도 막무가내였다. 다른 죄는 없고 오직 젊다는 것만이 죄였다. 17세 이상 40세 이하 젊은이로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우연에 속한 일이었다. 스무 살짜리도 키 작은 핑계 대어 열여섯 살이라고 줄여 말하고 처녀들은 아이 때 입던 검정 동강치마*를 입고 허리 굽혀 다녔다.
참새는 어떻게 우는가
피의자: 정말입 니다. 나리님, 저는 남로당*에도 민애청*에도 가입한 적이 없습니다.
서 청: 그럼, 네가 사상이 건전하다는 걸 무엇으로 증명할 테야? 「반공멸비 가」 부를 줄 알아? “역적의 남로당을…….” 하는 거 말이야.
피의자: 예.
서 청: 그럼, 불러봐.
피의자: (노래를 부르는데 음정이 엉망이다.)
역적의 남로당을 잡으러 가자
역적의 폭도를 잡으러 가자
역적의 민애청을 잡으러 가자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가자
서 청: (벌컥 화를 내며) 아, 이 간나이새끼, 노래하는 것 좀 봐. 이게 신성 한 「반공멸비가」를 짓뭉개 똥으로 만들고 있네!
피의자: 아이고, 아닙니다. 전 음치입니다. 노래 못 부르는 음치입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쇼.
서 청: 거짓말 마. 너는 고의적으로 신성한 「반공멸비가」를 똥으로 만들고 비웃었어.
가해자들에겐, 참새가 짹짹 운다고 해도 거짓말이고, 찍찍 운다고 해도 거짓말이고, 찍짹 운다고 해도 거짓말이었다.
매카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트루맨이었고, 그 나라 국회의원 중에 훗날 용공 조작의 대명사가 된 매카시*가 있었다.
하루는 토끼가 죽을 둥 살 둥 뛰어가다가 노루를 만났다. 노루가 물었다.
“너 어딜 그렇게 도망가니?”
“매카시가 쫓아온단 말이야. 매카시는 다람쥐를 쫓고 있거든.”
“그런데, 너는 다람쥐가 아니잖아. 몸집도 훨씬 크고.”
“그건 그래, 난 토끼야. 그렇지만 내가 다람쥐가 아니라는 것을 도저히 입증해 보일 도리가 없어. 그래서 도망가는 거야.”
“아이고, 그럼 나도 다람쥐로 보겠네. 큰일 났다.”
그래서 노루도 토끼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주도로에서 가까운 도평리는 소개작전에서 제외되었다가 느닷없이 당한 곳이었다. 그 마을이 부서지던 날, 먼저 민간인 복장에 카빈총*으로 무장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붉은 기를 앞세우고 나타나 마을 청년들을 국민학교 교실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온 인민해방군이다. 이 마을 청년들은 왜 입산하지 않는가? 우리는 당신들을 응징하러 내려왔다. 벌을 받을 텐가, 아니면 우리에게 협조할 텐가? 왜 대답이 없나? 그럼 좋다. 이제 곧 우리는 외도지서를 습격하러 간다. 협조할 사람은 따라오라. 조금도 위험한 일이 아니니 두려워할 건 없다. 우리가 외도지서를 습격하고 난 뒤 마을에서 거둔 식량을 산으로 운반해주기만 하면 된다.”
교실바닥에 꿇어앉은 청년들은 어찌할 바 몰라 고개만 더욱 숙일 뿐이었다. 그들이 쓰는 말씨가 아무래도 수상했다. 섬고장 사람들이 아닌 게 분명 했다. 토벌군 중에 입산한 자들이 있다는 소문인데 혹시 그들인가? 아니면 산군으로 위장한 토벌대인가? 좌우 양단 간에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무서운 곤경*이었다. 그때 별안간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를 집어 던지며 소리 질렀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총성이 울리고 그 청년은 쓰러졌다.
그러면 그들은 산군이었나?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라고 소리친 사람을 죽였으니.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외도지서를 습격하러 가는 산군이 아니라, 외도지서에서 올라온 경찰토벌대였다. 산군으로 가장하면 산에 협조하는 자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위장전술을 쓴 것인데, 그것이 그만 들통 나고 만 것이다. 위장전술이 실패했건 말았건 간에 얼마 죽이라는 그날의 할당량이 있어서 무고한 청 년 60명이 희생당했다. 매카시 무리들 앞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보일 수 없었다.
□ 130여 개의 중산간 부락들이 초토화되자, 그 지역 양민들은 해변으로 소개된 사람들과 산으로 피한 사람들로 양분되었다. 이제 섬 땅에는 해변과 산, 적대적인 두 세력만이 존재할 뿐 중간지대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해변 주민들과 소개민들은 민보단* 조직 안에 묶여졌고, 일주도로 변을 따라 산의 습격 에 대비한 축성작업에 동원되었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
이른바 자수운동이란 것이 축성작업 직후에 나왔다.
“비록 협박에 못 이겨 조 이삭 하나 간장 한 종지, 짚신 한 켤레, 돈 한 푼일지라도 산에 바친 사람은 이 기회에 자수하라. 지서에 와서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모두 용서해줄 것이고 다음부터 절대 오라 가라, 말이 없을 것이다. 부디 이 기회를 놓쳐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순경들이 이 마을 저 마을 돌며 이렇게 선전했고 이장, 민보단 간부들도 나서서 아무 의심 말고 자수하라고 설득했다. 그것이 이른바 자수운동이었다. 조천면에서는 3백 명 가량이 이에 응하여 임시 함덕국민학교에 수용되었다. 그 학교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 군인들이 심문을 했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식사도 한 끼니에 주먹밥 두 덩 이씩 나오고 심문할 때는 피우라고 담배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삼 일째 날이었다. 한 장교가 나타나서 여덟 명의 청년을 호명해 앞으로 불러 세우고는 모두 들으라고 일장* 연설을 토했다.
“이제 여러분들은 모두 석방이다. 그런데 여기 앞에 서 있는 청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자들은 산에서 연락원 활동을 하는 등 중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우리는 약속대로 이 청년들도 용서해주기로 했다. (박수소리) 그런데 한 가지 여러분 모두에게 협조 구할 일이 있다. 석방에 앞서 죄를 뉘우치는 뜻에서 나라를 위해 한 번 좋은 일을 해보지 않겠는가? 강요하지는 않는다. 우리 연대가 오늘 한라산에 토벌 나가는데, 여러분도 참가했으면 한다. 조금도 위험한 일이 아니니 두려워할 건 없다. 우리가 적의 아지트*를 발견하면 그 식량을 해변으로 운반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 대한민국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니, 그 기념으로 한번 충성해 보이라.”
아무 영문 모른 채 여러 달 생명의 위협 속에 간신히 연명해온 그들인지라 장교의 연설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폭도 토벌에 참가하여 폭도 누명을 벗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와아, 함성을 지르며 앞 다퉈달려가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기어올랐다. 잠깐 사이에 트럭 다섯 대가 꽉 차버렸다. 한 대당 50명씩 모두 150명이었다. 청년 세 명이 뒤늦게 달려갔다가 한 사병의 발길에 채여 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그 세 청년은 오히려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자수운동에 속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중산간에 비해 해변 부락들이 피해가 다소 덜한 편이긴 하지만, 그러나 조천면 일대의 해변 부락들의 희생은 실로 막심한* 것이었다. 이름난 활동가들을 배출했다고 사정없이 까부수어버린 것인데 그중에 북촌리는 단 이틀 새에 양민 5백여 명이 학살되어 인간생태계가 완전 뒤바뀐 무남촌*이 되어버렸다.
아버지와 아들
한 청년이 눈을 부릅뜨고 죽은 아버지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아버지, 제발 눈을 감으세요. 아버지 원수를 기어이 갚고 말 테니, 어서 눈을 감으세요.”
□ 양민 학살에 분노한 산군들이 여기저기 토벌대 주둔지에 대해 잇따라 야간습격을 감행했는데 그러나 결과는 양민에 대한 무서운 보복으로 나타났다. 토벌대 전사자 1명에 양민 10명꼴로 처단했던 것이다. 양민들은 죽음의 인질로 그들의 수중에 잡혀 있었다.
1 대 11
어느 국민학교에 주둔한 토벌대가 한밤중 산군의 습격을 받고 교전했는데* 쌍방 간에 각각 1명씩의 인명피해가 났다. 날이 밝자 마을사람들이 관객으로 강제 동원된 가운데 10명의 양민이 처단되고 전사한 산군의 시체와 함께 한 구덩이에 처넣어졌다.
그때 한 노인이 앞으로 나와서 장교에게 정중히 탄원했다. 방금 죽은 마을 사람들은 폭도가 아니므로 죽은 폭도와 따로 묻게 해주십사고.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자의 애절한 호소였다. 폭도 누명 쓰고 죽으면 그 가족에 해가 끼칠까 걱정스러워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말은 야수의 자존심을 건드릴 뿐이었다.
“폭도가 아니라니? 그럼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단 말야? 폭도를 두둔하는 걸 보니, 이 영감태기도 한통속쓰이야.”
야수는 당장 그 선량한 노인을 덮쳐 잡아먹어버렸다. 그래서 그 마을에선 양민 희생자가 1 대 11로 한 명 더 많았다.
한통속
함덕리는 군 주둔지였다. 마을 청년들에게 피바람이 한 차례 거쳐간 후에도 주민들은 날마다 터지는 총소리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타처에서 잡혀온 젊은이들이 마을 앞 바닷가 백사장에서 날마다 처형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마을 아이 여섯 명이 산에서 잡혀 왔다. 열일곱, 열여덟 살밖에 안 되는 소년들이었다. 그들이 처형장인 백사장으로 끌려갈 때, 그 마을 유지인 수염 허연 두 노인이 앞으로 나아가 눈물로 애원했다.
“부디 이 아이들을 살려주십시오. 아무 분수 모르는 철부지 어린 것 아닙니까. 우리 마을에 벌써 청년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남자 씨가 귀하게 되었습니다. 제발 덕분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시기만 하면 우리가 책임지고 착실한 대한민국 백성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눈물은 그들의 양심을 건드린 게 아니라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여섯 소년을 처형하고 돌아오던 살인자들은 길에서 울고 있는 두 노인을 다시 만나자 자존심이 팍 상했다.
“이 늙다리들이! 뭐 빨갱이를 살려달라고? 네놈들도 한통속이야.”
그들은 즉시 두 노인을 백사장으로 끌고 가 총살한 다음, 아직 더운 주검인 여섯 아이들과 함께 한 구덩이, 한통속에 처넣었다. 총살 당하기 직전 그중 한 노인이 탄식했다.
“인간 백정놈들! 백성을 다 죽여놓고 백성 없는 나라를 세우려는 거냐!”
지서에 붙잡혀갔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나게 된 어느 마을 늙은 이장이 같이 잡혀간 마을 사람들이 못 나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함께 내보내달라고 탄원했다가 역시 한통속이라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 사실이 그러했다. 한 마을의 모든 주민은 한통속이었고, 섬땅의 모든 마을 또한 한통속이었다. 그 땅은 각성바지* 핏줄이 가로세로 촘촘히 그물처럼 얽힌 혈연공동체였다. 그런데 그 질긴 혈연의 그물을 섬 밖에서 들어온 침략자들이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 무서운 학살극이 그렇게 만들었다. 상부상조로 똘똘 뭉쳐왔던 천 년 공동체에 기상천외의 분열현상이 일어났으니, 살아남은 청년들은 죽창·철창 부대가 되어 토벌대를 따라나서야 했고, 노인과 아녀자들은 산에 있는 아들, 남편, 조카, 시숙*을 원수 삼아 죽창 들고 성을 지켜야 했고,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 친구가 친구를, 친척 이 친척을, 후배가 선배를 고발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누군가 한 사람을 고발하지 않고는 제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합장묘
중산간 부락들이 소각될 때 해변으로 소개 내리지 않고 달아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한라산 깊숙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마을 근처 야산 혹은 냇골창의 자연동굴에 숨어 있었다. 그 굴들은 대개 병목처럼 입구가 좁고 풀숲으로 가려져 있어서 그 마을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토벌대의 길잡이가 되어 굴을 손가락질한 것이 바로 그 마을 출신이었다. 불탄 마을의 검은 재까지 하얀 눈으로 덮어버린 겨울의 산야, 그 지하 여기저기에 하루 한 끼 좁쌀미음으로 허기를 달래며, 기운이 빠질세라 말도 않고 숨도 작게 쉬던 그 사람들. 동면하는* 생물처럼 그저 잠자는 것이 먹는 것이던 그 사람들. 그들이 토벌대가 굴 입구에서 피워대는 유독한 약품 연기에 서로 얼크러져 질식사했을 때, 그 굴은 그대로 그들의 합장묘7ㅏ 되었다.
이이제이
그것은 미국이 사용한 용병술(用兵術)*이지만 영어가 아니다. EEJ가 아니라 以夷制夷이다. 오랑캐를 시켜서 오랑캐를 제압하라, 동족을 시켜서 동족을 제압하라. 육지 백성을 시켜 섬 백성을 제압하고 섬 백성을 시켜 섬 백성을 제압하라.
산군이 잡히면 그의 출신 마을 사람들을 관객으로 모아놓고 그 앞에서 처형했다. 차마 바라보기조차 두려워 고개 숙이는 그들에게, 너의 대장을 물어뜯어라, 죽을 때 박수쳐라, 심지어 돌로 쳐 죽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산군들은 총 대신 죽창·철창으로 잔인하게 처형되는 수가 많았다. 총은 창을 든 민간인의 뒤통수에 겨눠져 있었다.
여성동맹에서 활동한 한 처녀가 살기 위해 전향했다. 그러나 전향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써 보여주어야 했다. 그녀 앞에 산에서 잡혀온 한 아주머니가 세워졌다. 그 아주머니는 바로 이웃집 여자로 평소에 제사 때마다 돌담 너머로 떡을 나눠 먹던 사이였다. 순경이 뒤에서 철창을 주면서 찌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처녀는 창을 거부하고 결연히 죽음을 택했다.
유혈
피는 몸속에서 흘러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게 피부 밑에서 흘러야한다. 피는 햇빛을 보아서는 안 된다. 몸 밖에 나온 피만큼 부정한* 것은 없다. 그래서 유혈은 금기요, 죄악이다.
한 병사가 있었다. 그저 평범한 젊은이였다. 오직 상부의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길 따름이었다.
어느 날 그는 총살조에 끼여 피의자들을 처형장으로 몰고 갔다. 그런데 도중에 한 청년이 결박당한 채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코가 깨져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그 병사는 얼른 달려가 그 청년을 일으켜 세우고 자기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아주고 콧구멍까지 막아주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 그는 그 청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사람이 사람을 먹는 그 냉혹한 가해구조 속에서 개인으로서는 털끝만 한 양심의 표현도 어려웠다. 그 구조의 말단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악질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가해자로 내몰려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길 뿐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하지만, 도대체 개인으로서는 자의적인 사고와 행동의 여지가 없었다. 곧 죽게 될 사람의 코피나 닦아주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상관*의 눈치를 봐서 몰래 한 명쯤 도망시키거나, 한 명쯤 달아나는 것을 모른 체 눈감아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건수에 따라 대략 얼마만큼의 인명을 사살하라는 할당량이 위에서 정해져 내려왔다. 자수운동에 속아 함덕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3백여 명 중 그 절반인 150명이 처형되었는데 그 숫자가 그날의 할당량이었다. 그래서 트럭 다섯 대에 정해진 할당량이 다 채워졌을 때, 그 병사는 뒤늦게 달려온 세 명의 청년을 발로 걷어참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었다. 그 정도가 말단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자비였다.
자비
총검·철창·죽창으로 찌르지 않고 총살시켜주는 것도 자비였다.
한 장교가 있었다. 그 역시 성격이 모난 데 없이 평범한 젊은이였다. 오직 상부의 명령에 따라 총살을 집행할 따름이었다.
하루는 집단처형 직후, 차를 타고 돌아가려는데 부하가 달려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고 보고했다. 떼주검 속에서 홀로 살아 있는 그 여인은 얼굴 반쪽이 없어진 것처럼 피투성이였으나, 확인 결과 한쪽 귀만 찢겨졌을 뿍 전신*이 멀쩡했다. 확인사살까지 세 발의 총알이 모두 그녀의 생명을 비켜 간 것이었다. 그 장교는 즉시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기적이다. 한 번 죽인 사람을 두 번 죽일 수는 없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이 여자를 살려줘라.”
말살된 기적
가만히 시체더미 속에 엎드려 있었더라면 살았을 텐데, 그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일제사격 직후 벌떡 일어나 소리치고 말았다.
“아이고, 나 살아졌수다!”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자수한 것이다.
기적적인 생존까지 자수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적을 용납하지 않고 또 한 번 총을 쏘아 그 여자를 죽음으로 되돌려 보냈다.
자비는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
자수운동에 속아 죽은 떼주검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다. 학살자들이 물러간 다음 희생자 가족들이 시체 찾으러 몰려갔을 때, 그 사내는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몸을 떼굴떼굴 굴려 길 가까운 데까지 나와 있었다. 목격자가 여럿이었으므로 자수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부친은 사내를 아는 수의사한테 맡긴 즉시 돈을 싸들고 담당장교를 찾아갔다. 장교는 돈을 받으면서 기분 좋게 한마디 했다.
“이것은 천운*이오. 하늘이 살린 것을 어찌 또 죽일 수 있겠소.”
농업학교 출신의 한 축산 기사*가 있었다. 집안은 제법 부유한 편이었다. 그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부친이 총살조의 선임하사를 만나 돈을 크게 썼다. 돈이 있으면 자식을 결코 길바닥에 눕히지 않는 법이었다.
처형장에서 열두 명의 사내가 여섯 명씩 이열 횡대로 서로 어긋나게 늘어섰는데 그 사내의 위치는 앞줄 맨 오른쪽이었다. 선임하사가 그 사내를 맡아 헛방 쏘기로 되어 있었다.
일제사격의 총성이 울렸다. 과연 총알은 사내의 몸에 와 박히지 않았다. 사내는 약속한 대로 총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런데 다음 순간 뒤에 있던 사람이 쓰러지면서 그의 얼굴 위를 덮쳤다. 얼굴이 가려졌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는 시체 밑에 깔린 채 잔뜩 숨죽였다. 군홧발 소리들이 다가왔다. 죽은 사람의 더운 피가 계속 흘러내려 그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피는 주룩주룩 뺨을 타고 턱 밑으로 흐르면서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끔찍한 가려움증을 일으켰다. 가려움을 참으려고 어금니로 볼살을 피나게 깨물었다.
“다들 확인했나? 이상 없으면 돌아와!”
소대장의 목소리. 이어서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 그때 사내가 더이상 가려움을 못 참고 목을 움찔 움직였는데 그것이 우연히 뒤에 처졌던 한 병사의 눈에 띄고 말았다.
“저기 한 놈이 살아 있는 것 같은데요.”˙
“어디?”
소대장에게 보고할까봐 두려운 선임하사는 얼른 되돌아가 그 사내의 등짝에다 총알 두 방을 먹여버렸다.
시계와 도장
고 서기는 면에서 호적 * 담당이었다. 그날이 마침 딸아기의 돌이어서 아침 밥상에 귀한 쌀밥이 올랐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젖아기들은 경풍*에도 시들고 고뿔*에도 스러지기 쉬워 돌을 넘겨야 부모의 자식으로 여겨 호적에 올랐다. 고 서기는 딸아기의 돌을 축하 하는 뜻에서 그날 당장 호적에 올려주기로 했다. 도장을 챙겨 넣고 씽씽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면사무소로 출근했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저승차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형되기 직전 손목을 전홧줄로 결박하던 순경이 고 서기의 손목시계를 탐냈다.
“곧 죽을 텐데 그 시계 나한테 넘기지그래.”
하면서 순경 이 시계를 풀어내려는 것을 고 서기가 완강히 버텼다.
“나는 줄 수 없다. 썩을 놈! 정 시계가 탐나면 날 죽여놓고 내 시체에서 뻬앗아 가라!”
처형된 이튿날, 아내는 그의 시체에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손목시계와 주머니 속에서 도장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시계는 일생 동안 그녀의 손목에서 살아 있었고, 딸아기를 호적에 올리려던 도장은 영영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그 아기는 나중에 숙부 밑으로 호적에 올랐던 것이다. 그때 처형된 자는 무조건 ‘빨갱이’이므로.
고무신
한 농사꾼 청년이 있었다. 두 손 묶인 채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그는 자신의 죽음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으므로 죽음이 실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 모든 게 꿈속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설마 죽기야 할라구.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허청허청* 걸어갔다. 밑창이 닳은 고무신이라 눈 위에 자꾸 미끄러져서, 나중에는 신발을 벗어 결박당한 두 손에 들었다. 그것을 보고 순경이 낄낄 비웃었다.
“곧 죽게 될 텐데, 왜 신발은 들고 가나?”
그 말이 청년의 몽롱한 정신을 번쩍 깨워주었다. 죽음이 와락 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태연히 가해자를 노려보면서 또렷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저승 가서 신을려고 그런다, 왜.”
□ 그렇게 단 석 달 동안 집중적으로 수만의 무고한 목숨을 도륙낸* 다음에야 피에 멀미를 느꼈던지 가해자들은 선심 쓰듯 선무*·귀순 공작이란 걸 내놓았다. 한라산에 귀순·투항 권고의 삐라*를 뿌리는 정찰기가 뜨고, 해변의 소개민들은 귀순공작에 동원되어 산으로 올려 보내졌다.
한겨울의 눈 속에 숨어 있던 피난민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 하산하기 시작했다. 석 달 이상 굶주림에 시달린 그들은 피골상접*의 반송장이나 다름없었다. 귀순공작이 속임수가 아닌가 의심 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었다. 굶어·죽으나 총 맞아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 한번 밝은 태양 아래 한길을 걸어보고 죽고 싶었다.
먼저 노인과 아녀자들이 내려갔고, 얼마 후 귀순공작이 속임수가 아님이 확인되자 청년들도 삼삼오오 떼 지어 하산하기 시작했다. 중요하게 활동한 사람이 아니면 징역은 갈지언정 죽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산군 지도부도 그들의 귀순을 적극 권했다. 섬땅이 완전히 박살난 상황에서 더 이상의 항쟁은 무의미했다. 어느 면 책임자는 청년들을 내려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라 올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으니, 이제는 내려갈 수밖에 없소. 조국에 애국한다는 것이 도리어 역적이 되고 말았으니, 징역 가더라도 부디 살아서 이 억울함을 후세에 전해주시오.”
여러 날에 걸쳐 투항의 백기를 든 하산민의 행렬이 차디찬 눈비를 맞으며 꼬리 물고 이어졌다. 머릿수건, 이불 홑청*을 찢어 만든 때 묻은 백기.
돌아오라 돌아오라 따뜻한 품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우러러보며
이 땅에 또다시 즐거움을 부르자
대한민국의 ‘따뜻한’ 품 안으로 귀순하던 날, 눈비 맞아 시리고 굶주린 하산민들은 그 따뜻한 밀밥 한술에 맥을 못 추고 축 늘어져버렸다. 그것은 미국산 밀밥이었다. 한 노파는 산에서 얼어 죽은 손주를 생각하며 울먹거렸다.
“아이고, 그 아이가 죽어도 이 밥을 먹고 죽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그늘 속에 있던 미 군사고문단이 잉여농산물* 밀밥과 함께 섬 백성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때였다. 그들은 하산민 수용소에 나타나 상냥하게 웃으면서 레이션* 박스를 던져주고는 마그네숨 불을 펑펑 터뜨리며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카메라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총을 들이대는 줄 알고 기겁하게 놀라 비명을 지르는 촌극*도 일어났다. “자, 사진 잘 나오게 웃어요, 웃어! 기쁜 표정을 지으라구!” 하고 통역관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연습시켰다. 사실이 그러했다. 그 사태에 미국은 직접 총을 쏘지 않고 열심히 카메라만 돌렸던 것이다. 학살 기간 동안에 섬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미군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몸이 얼어 벌벌 떠는 하산민들에게 한 모금씩 마셔 몸을 녹이라고 위스키도 주었는데, 그들이 사라진 즉시 감시 보초들이 위스키는 물론 레이션 박스까지 빼앗아갔다. 그러니 물정 모르는 섬사람들로서는 준 자는 선인이고 빼앗은 자는 악인일 수밖에 없었다. 밀밥, 레이션 박스, 위스키. 그것들을 원조물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생사람 죽을 병 주어놓고 생색내듯 약 주는 식의 원조가 아니었던가.
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보이지 않은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미 군복, 미 군화에 미제 총을 멘 조선 토종은 있어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처한 곳은 음침한 그늘 속이었다. 섬을 해상봉쇄한 군함 속에, 병력 수송의 LST* 속에, 한라산 상공을 나는 경비행기 속에, 그리고 제주읍의 CIC* 사무실 속에 그들은 있었다.
□ 가해구조의 말단에 처해 있던 사람들은 대개 명령에 의해 기계적으로 총을 쏘았을 것이다. 개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 존재한 그들의 눈에는 학살 대상인 민간인들 역시 나름의 영육*을 지닌 개개인으로 파악되지 않고 단지 운수 나쁜 우둔한 무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표정 없고 우둔하게만 보이는 그 무리 속에는 언제나 가해자의 무딘 양심을 일깨워주는 강렬한 개성들이 있었다. 그것이 노인의 죽음일 수도 있고 어린애의 죽음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젊은 그들은 꽃다운 처녀들의 죽음에서 충격을 받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잠들 수 없는 주검들
떼주검은 신원을 알 수 없게 휘발유 뿌려 태워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무서운 광경이 벌어지곤 했다. 쓰러진 채 화염에 휩싸인 그 떼주검 중에서 돌연 몇 구의 시체가 벌떡벌떡 일어나 앉는 것인데, 그렇게 꼿꼿이 앉은 채 불타는 모습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그것은 학살에 대한 강력한 항의, 이렇게 무참히 죽을 수는 없다고 절규하는 것 같았다. 질겁한* 병사들이 그쪽을 향해 총을 마구 쏘아댔지만, 그리고 타는 물질은 오그라들기 마련이라고, 엎어진 시체는 그렇지 않은데, 드러누운 시체는 뱃살이 먼저 불에 타 오그라들면서 등뼈를 잡
아당겨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나중에 군의관이 설명해주었지만, 그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인간의 뱃살은 다른 부위보다 말랑말랑하여 총검의 좋은 표적이 되었다. 그런데 그 부드러운 살에 쇠붙이가 쑤시고 들면 그것을 덥썩 무는 저항의 강한 힘이 느껴졌다. 그때 찌르고 빼는 일련의 동작을 순식간에 해치워야지, 자칫 서툴렀다간 박힌 총검이 꽉 물려 빠지지 않은 수가 있는데, 그때 병사는 귀신한테 발목 잡힌 듯한 두려움에 마구 허둥대곤 했다.
여러 구의 시체가 한꺼번에 파묻힌 흙구덩이, 모래구덩이도 이따금 이상현상이 일어나, 그 무덤을 뚫고 시체가 밖으로 튕겨 나오기도 했다. 몸 전체가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쪽 다리, 한쪽 팔만 한 맺힌 절규처럼 불쑥 솟아날 때도 있었다. 밖으로 튕겨 나온 시체들은 부패가 심하여 무섭게 부풀어 올랐는데, 그런데 그 썩은 몸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래 꿇는 숨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병사들은 나중에, 그것이 배 속에 가득한 가스 끓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최초의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튕겨 나온 시체를 다시 묻고 그 위에 무거운 돌로 눌러놓지만, 과학은 그것이 부패한 시체들이 팽창하여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 해주지만, 충격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으로 시달리다가 산군에 가담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군복 벗고 섬을 떠나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사태가 끝나 부대가 육지부로 이동할 때, 주민들에게 “죄 없는 백성 많이 죽이고 갑니다”
하고 울던 사람들도 있었다.
용기
군인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강해진다. 타인의 생명을 많이 빼앗으면 빼앗을수록 그만큼 그는 더 강해진다. 아마도 지휘관들은 전투경험 없는 그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죽인 것은 맨몸, 빈손의 연약한 인간이었다. 사병들은 사태가 끝나 육지로 돌아갔을 때, 차마 자신의 무용담*을 남한테 들려줄 수 없었다. 그것이 용기가 아니었으므로. 오직 장교들만이 그 숱한 시신 위에서 빠르게 진급했을 따름이다.
□ 귀순하여 생업에 안돈해* 있던 생존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또 한 번의 수난을 당했다. 일제히 예비검속에 걸려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중 수백 명이 학살당하고 나머지는 입영하여 육지전쟁터에서 또 한 번 죽음과 맞부딪쳐야 했다.
예비검속에 죽은 사람들 중에는 땅에 묻히지 못하고 바다에 가라앉은 수중고혼*들도 있었다. 가해자들은 쾌속정에 예닐곱 명씩 여러 번에 나눠 바다 한가운데로 실어 날랐다. 굴비 엮듯 나란히 한 두름*으로 묶여진 청년들을 한쪽 뱃전에 앉혀놓고, 쾌속으로 배를 몰다가 급커브를 틀어 물속에 빠뜨리는 방법을 썼는데, 실로 경쾌하기 이를데 없는 수상스포츠였다. 그러나 무거운 돌을 달아맸음에도 나중에 물 위로 떠오른 시체들이 있었다.
잠들 수 없는 주검들
전홧줄로 연결된 채 조류*에 따라 표류하던 여섯 구의 시체가 우연히 지나가던 통통배에 발견되었다. 그 배에는 사공인 노인과 열댓 살 난 그의 손녀가 타고 있었는데, 먼 섬에서 작업 중인 마을 잠녀*들을 실어 나르려고 가는 중이었다.
그 소녀가 마침 오줌이 마려워 배 뒤꽁무니의 터진 데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는데, 돌연 바로 눈앞에 여섯 구의 시체들이 열을 지어 물을 가르며 무섭게 배를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소녀가 놀라 비명을 지르고 노인이 급히 달려왔다. 시체들을 연결한 전홧줄이 키*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소녀의 눈에는 그 시체들이 제발 살려달라고, 물속은 추워 살 수 없으니 뭍으로 데려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노인은 삿대*로 키에 걸린 시체들을 떼어내어 뒤로 밀어내버렸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노인은 그 배를 타고 갈치 낚으러 나갔다가 갑자기 몸뚱이가 무섭게 부어올라 급사하고 말았다. 몸이 너무 퉁퉁부어 선실 문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 대참사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시체가 달라붙는 환상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혼되지* 않은 죽음은 산자에게 달라붙는다.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것은 산 자의 의무인데, 4·3의 원혼들은 아직도 진혼되지 않았다. 물론 가족들이 지내는 제사가 있기는 하다. 마을마다 한날한시에 죽은 영혼들이 많아, 그날이 오면 돼지가 여러 마리 죽고 떡방앗간이 불티나고 초저녁부터 한밤중까지 친척집을 돌며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아니라 숫제 명절인 셈이다. 그러나 4·3 원혼은 그것으로 진혼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원혼들은 생존자의 통한*과 결부되어 하나의 힘으로서 존재한다. 사죄하라고, 진정 한 의미의 진혼을 베풀라고 관권*에게 요구한다.
떼주검이 널렸던 밭에서 평생 피 냄새를 맡으며 농사지은 그들, 날만 궂으면 얻어맞은 묵은 상처가 다시 도져 서럽게 술로 달래는 그들, 아직도 순경이 무서워 지서 앞을 피해 가고 군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들, 투표장의 엄숙한 분위기가 두려워 진땀 흘리고, 카메라 앞에 서면 꼭 총살당하는 느낌이 들어 사진을 못 찍는 그들……
그러나 관권은 죽은 자의 원혼과 생존자의 통한을 달래주기는커녕 막무가내로 제압하려고만 든다. 시체가 튕겨 나올까봐 떼주검의 무덤을 무거운 바위로 눌러 제압하고 있는 것이다. 원혼들은 비행장 활주로 밑, 관광도로의 아스팔트 밑에 깔려 있기도 하고, 학살 터였던 아름다운 백사장과 폭포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에 짓밟히기도 한다.
그러나 4·3 원혼은, 수만의 무리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힘이 세다. 창창한 앞날과 모든 가능성을 일순*에 박탈당한 요절*의 원혼들이기에 힘이 세다. 원혼은 달래야지 제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때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학살의 주범들은 병들어 죽거나 퇴역의 노인이 되어 있건만, 그들이 남긴 반인간 사상은 대물림되어 여전히 억압의 도구로써 휘둘러지고 있다. 양민 학살도 범죄지만 학살된 원혼을 억압하는 것도 죽은 시체에 칼질하는 격으로 두벌죽음*시키는 범죄이다.
죽음은 일체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신성한 권능이다. 산 자가 어찌 죽은 자를 모독하고 억압할 수 있는가. 산 자는 끝내 죽은 자를 이기지 못한다. 산 자 역시 죽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의 일생과 모든 가능성을 빼앗은 가해자들은 그 때문에 오히려 승승장구의 일생을 누렸다. 장군도 되고 서장도 되고 총리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한이 없는, 깃털같이 가벼운 죽음을 맞이하는가. 천만에, 아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수만 죽음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 짐을 지지 않고 어찌 저승에서 그 죽음의 임자들을 만날 것인가. 아,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믿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전대미문*이고 미증유*의 대참사이다. 인간이 인간을, 동족이 동족을 그렇게 무참히 파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짐승도 그런 떼죽음은 없다. 가해자들은 ‘사냥’이라고 했다. 그것은 ‘빨갱이 사냥’ 이라고 했다.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때 죽은 자는 모두 빨갱이다. 빨갱이가 아니면 왜 죽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너무도 불가사의하다. 떼주검을 휘발유 뿌려 불태울 때 그 냄새가 돼지 타는 냄새와 흡사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그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자기가 죽인 것이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새삼 확인했는가. 아니다, 아니다. 그들은 그 살 타는 냄새에 코를 싸쥐고 헛구역질하면서 황급히 현장을 떠났던 것이다.
『장작과비평』 77호(1992년 가을); 『마지막 테우리』 (창비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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