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Phnom Penh Post 2011-4-5 (번역) 크메르의 세계
FEMC : 캄보디아 고-사본 보존계획 20년만에 완수
20-year labour to preserve Khmer history
기사작성 : Roth Meas
사본 보존 전문가들이 야자 이파리에 쓰여진 1,000묶음에 달하는 전통 필사본(manuscripts, 寫本)을 주의깊고 수고스럽게 다루면서, 일일이 사진을 찍어 미래의 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그것을 온라인 상의 보고로 옮겨왔다.
(사진: PHA LINA) 한 연구자가 라타니아 야자 이파리에 적힌 사본 묶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본들은 이제 디지탈화되어, 다른 학자들도 온라인 상에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캄보디아 사본출판 기금'(Fonds pour l’Edition des Manuscripts du Cambodge: FEMC, 영문 명칭은 'Fund for Manuscript Publication in Cambodia') 소속 연구자들은 지난 20년간 여러 사찰들에서 라타니아(latania) 야자수 이파리에 필사된 불교 경전들을 추적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FEMC의 사업책임자인 렝 꼭 안(Leng Kok An) 씨는, 지난 수백년 동안 라타니아 야자잎에 쓰여진 사본을 사람들이 '뜨랑'(trang)이라 불러왔다고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원나라) 사신이었던 주달관(周達觀, Zhou Daguan 혹은 Chi Takwan: 1266-1346)은 1296년 캄보디아를 방문한 후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란 책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당시 캄보디아인들은 나무 잎사귀를 필기용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야자잎 사본들은 자야와르만 7세(Jayavarman VII: 1181-1215 재위) 때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다." |
렝 꼭 안 씨에 따르면, 라티나 야자나무는 전통적으로 끄라쩨(Kratie) 지방에서 자라났는데, 주민들이 그것을 잘라 불교의 승려들에게 판매하곤 했다.
먼저 야자 이파리를 3일간 건조시키면, 얇고 부드러운 종이처럼 변한다. 이후 여기에 야자유를 첨가한 숯으로 만든 잉크를 이용하여 빨리어(Pali) 문자를 기록했다. 어떤 이들은 쓰여진 글자가 황금빛으로 보이도록 잉크 제조과정에 꿀을 섞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많은 사본들은 파고다(pagoda, 사찰)와 박물관, 혹은 도서관에 보관됐다. 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실됐다. 현재 남아 있는 사본들은 대부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들이다. 렝 꼭 안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부 사본들을 스투파(stupa, 불탑) 안에서 찾아내기도 했고, 일부는 불교 파고다의 건물 벽속에서, 그리고 어떤 경우엔 주방(요사채)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본들은 바닥에 어질러진 상태로 놓여 먼지에 덮여 있었다. 많은 꾸러미들에서 일부 페이지들은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 따라서 나는 그것들을 단순히 보존처리만 한 게 아니라, 각각의 페이지들을 순서대로 맞춰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입력해서 원래 발견된 파고다나 도서관 서가에 보관하기 전에, 각 페이지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
(사진: PHA LINA) 복원된 사본 묶음들은 현재 캄보디아 각지에 산재한 파고다들에서 유리로 제작된 보관함 속에 들어 있다.
지난 20년 동안, 연구자들은 1,000곳 이상의 사찰들과 승원을 방문하여 사본들을 찾아냈다. 이들이 주로 방문했던 지역은 껀달(Kandal, 칸달), 껌뽕 짬(Kampong Cham, 캄퐁 참), 시엠립(Siem Reap, 시엠리업) 지방이었다.
하지만 FEMC 연구팀이 사본을 발견한 사찰들은 100곳이 채 되지 않았다. 사본들이 각 파고다들마다 보관된 것이 아니어서, 각각의 복원 작업은 현지에서 진행됐고, 때로는 며달 씩이나 수고스러운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때로는 홍수나 안전상의 이유로 인해, 주사팀이 지방 마을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했다.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기의 파괴나 약탈을 당하지 않은 채 완벽한 상태로 발견된 행운의 서고는 껌뽕 짬 도에 위치한 '왓 품 트머이 세레이 몽꼴'(Wat Phum Thmei Serey Monkgol) 단 1곳 뿐이었다. 연구팀이 발견한 사본은 총 50,000장이며, 2,500묶음 1,2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크메르어로 쓰여진 200권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는 모든 콜렉션이 필름으로 제작되었고, 디지털화되어 CD에 담겼다. 원본은 유리상자에 담겨 발견된 사찰 승려들의 관리로 남았다. FEMC가 작업한 사본 중 1,000매 가량은 웹사이트인 'khmermanuscripts.org'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이 웹사이트는 프랑스어, 영어, 크메르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역자해설)
고-사본 보존 및 연구의 의미
티벳과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 인도문화권에서, 문자로 된 기록물들은 대부분 야자수 이파리와 같은 재질에 쓰여진 사본들로 남아있다. 하지만 야자수에 쓰여진 사본들은 종이 책과는 달라서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거나 소실이 되는 등 보관연한이 길지 않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새롭게 필사를 해야만 후대로 전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사본들은 대부분 30~100년 간격으로 무수히 필사되면서 후대로 전해져온 것들로서, 아주 오래된 사본을 직접 입수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캄보디아의 경우 뿐만 아니라, 인도나 티벳 등지에서도 100~200년 안쪽에 제작된 사본들이 주종을 이루는 편이다. 따라서 무수한 필사 작업을 통한 전승과정에서, 사경을 하는 필사자의 실수로 인해 오탈자가 발생하기도 하며, 때때로 내용 자체가 약간씩 변하기도 한다. 게다가 보관 상의 실수로 인해 사본 일부가 소실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사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고도의 문헌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최초의 원본이 지녔을 형태를 복원하는 것, 즉 '문헌의 비판적 교정'(text-critique)을 일차적인 임무로 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작업을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지식이 요구된다. 특히 현대의 사본 연구자들은 상당히 다양한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우선 다양한 언어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가령 불교 경전의 경우, 유사한 내용의 문헌이 여러 지역에서 여러 종류의 언어로 번역된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이 경우 사본에서 어떤 자구나 페이지 전체가 유실되었을 때 대조를 통해 복원이 가능하다. 가령 인도의 산스끄리뜨어로 쓰여진 초기불교 경전 내용을 복원할 경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북방불교의 한문 경전이나 티벳어 경전과 대조하거나, 남방 상좌부의 빨리어 경전을 동시에 대조해서 일정 부분 원형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본 연구자들은 산스끄리뜨어, 빨리어, 티벳어, 고전 한문 등 가능한 한 다양한 고전어를 익혀야만 한다.
또한 근, 현대의 선행 연구자들이 발견한 내용을 참조해야 하므로, 고전 문헌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언어권인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로 된 논문이나 저서들도 필요로 할 경우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국가들은 근대 제국주의 시대에 수많은 원전들을 매입, 약탈, 절도, 증여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나라로 이전해갔고(심지어는 원래 그 문헌들을 산출한 국가보다도 더 많이 보유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연구방법을 발전시키고 우수한 학자들도 많이 배출했다.
고전 문헌학은 인문학적 기초연구에 있어서 '꽃'이라 부를만하다. 가령 누군가가 어떤 불교의 경전이나 기독교의 <성경>을 읽고 해설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전문가가 나타나 "당신은 어떤 언어로 쓰여진 어느 시기의 원전을 근거로 공부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매우 원초적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동일한 언어로 작성된 동일한 문헌의 사본이라 할지라도, 전승계보가 갈라지면서 내용이 변형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러한 경우 가능한 한 사료 자체의 양적 보유가 필수적이다. 즉, 최초의 원본에서 갈라지며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각기 다른 전승계통의 사본들이 다양하게 존재할수록, 대조작업을 통해 더욱 정밀한 고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실된 부분의 경우에도, 다-언어를 대조하는 것보다 동일 언어의 다양한 사본 대조를 통하는 것이 보다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사본의 보존이야말로 고전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크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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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문적인 학식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겠습니다.
엄청난 대역사네요.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캄보디아 주재 '프랑스 문화원'이 상당한 후원을 했고,
프랑스에서 많은 노하우도 제공햇겟죠.
근데 기본적으로 빨리어 불교경전 사본들은 이미 기본적인 텍스트 교정작업과
그 번역까지 20세기 중반에 다 끝나 있는 상태라서, 특별히 새로운 무언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빨리어라는 언어가, 원래 자체적인 문자가 없는 언어입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인도에서 사용하는 데와나가리 문자를 이용해서 기록했고,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크메르)는
각기 자국 문자를 이용해서 빨리어 경전을 기록했는데,
그 점에서.. 아마 고대 크메르어 연구에는
꼭 필요한 사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