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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알콜중독 체험입니다
나는 어떻게 알콜중독에 걸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나의 과거을 아무리 검토해보아도,왜 내가 알콜중독증에 걸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다.그러나,한가지 명백한 사실은 술을 좋아했으며,꾸준히 술을 먹었고,이제는 술을 끊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그러나,성요한 병원 알콜센터에서 치료하고,AA모임에 다니므로써 1년 6개월동안 단 한잔의 술을 안먹고 있다.이것은 기적과 같은 것 이며,오직,신의 자비와 은총 때문이라고 느끼고 있다.
나의 어린시절중 국민학교까지 술에 대한 어떠한 기억도 없으며,술을 먹었다는 기억은 없다.그러나,나의 국민학교 시절에 남아 있는 기억중 영화을 보기 위해 극장의 담을 뛰어넘어가서 영화을 보곤했으며,극장의 매표서에서 총각,처녀들과 함께 꽁짜로 영화을 보기위하여 같이 들어가자고하여 영화을 보게되었으며,그 영화중에 크레오파트라의 영화의 한장면은 나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당시,나의 모습은 거지아이와 같아서 어떤 아주머니는 일원짜리 동전을 주기도 했다.지금도 간혹 그때의 기억이 나면 "내가 거지가 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나의 조부모는 술을 좋아했다고,이제야 나의 아버지는 이야기한다.사실 나의 아버지는 근면이 성공의 열쇠이며,공부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나의 형제들을 가르쳤다.아버지의 술먹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그분은 성실하셨으며,근면하셨다.그리고,자수성가의 표본이셨다.실제로 홀로 독학으로 대학을 마쳤고,동생들을 대학까지 가르쳤고,집안을 일으킨 7남매의 장남이셨다.
이러한 중산층의 5남매중 4번째 아이인 나는 국민학교시절 상당한 열등생이었다.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학급에서 일어나 국어책을 읽게 되었으며,그 때까지 나는 학교 숙제을 한번도 해갔고 간적이 없다.그때까지 나는 화장실 청소가 나의 임무였으며,왜 내가 반의 말성쟁이가 되어야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6학년때 학교을 옮기게 되었다.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것 이다.그 때,나의 심정은 완전 해방의 느낌을 받았으며,5년동안 다닌 학교에 대한 심한 분노을 느끼고,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사실 마음 속에는 일말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또,열등생이 되지나 않을까,,그런데,당시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학교가 끝나면 남아서 공부하는 과외의 기회을 주게 되었다.그래서,당시에 7~8명의 다른 친구들과 남아서 공부을 하게 되어 나의 학습의 뒤쳐진 것을 배우게되었다.그리고,학교 고전읽기대회에서 나의 최초의 상장을 받게 되었다.이것은 나의 학습에 대한 열의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주었으며,나도 그렇게 멍청이가 아님을 알게해준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새로운 교복과 새로운 청소년의 시작은 나에게 최고의 시절이었다.나는 당시에 열등감도 없어졌으며,이제 서서히 나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으며, 많은 위인전을 읽고 학교공부에 충실히 하였다.그러나,당시의 성적은 상위권에 속하였으나,아주 우수한 성적과는 거리가 있었다.그런데,중 2때 겨울방학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알게된 여학생이 자기는 모일류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라며 나에게 어떤 고등학교을 갈려고 하느냐고 물었다.당시에 입시로 고등학교을 입학하는 관계로 고등학교의 입시경쟁은 치열하였다.나는 상당한 마음의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그 이후 나는 공부에 박차을 가하게 되었고,나의 책상 앞에는 기도하는 꼬마 사무엘슨의 상을 붙쳐놓고 공부에 매진하여,당시 3학년동안 전교 10등이내에 들게 되고,고등학교 입시에서 무난히 합격하여 명문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나의 열등감은 완전히 없어진게 확실하다고 믿게 되었으며,나는 일류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쏘아다니는게 무척 자랑스러웠다.온 세상이 나에게는 불가능이 없어진 것 이다.어느 날 친구들과 겨울산에 가게 되었다.고등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눈에 덮힌 산정위에서 친구가 사온 소주한병을 한잔씩 나누어 먹었다.당시에 그 한잔의 술은 정말 온기을 느끼게했으며,어느 덧 나도 청년이 됨을 깨우치게 하였다.그런데,이 때부터 나의 술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긍적적이 되었다.삼국지의 영웅들과 같이 술과 용기는 함께하는 바늘가는데 실이 따르는 것과 동일한 것 이었다.고 2때 여름방학이 지나고,나는 담배을 피우게 되었다.친구들의 흡연에 따라한 흡연은 나을 더욱 더 학교생활과 공부의 스트레스을 없애주는 것 이었다.사실 당시의 일류고등학교란 허울좋은 명목이며 오직 일류대학 즉 서울대병에 걸린 선생님과 선배와 동문들의 집단인듯했다.당시에 서울대가 아니면 어떤 대학도 대학취급을 안했다. 학교과정도 2학년동안 고 3과정을 모두 끝내고,3학년동안 오직 입시준비에 온통 전쟁을 치르고,서울대 입시에 제외된 학생은 케세라세라 즉 니네들 마음대로해라 식 교육이었다.당시의 학생의 진로문제는 안중에도 없었으며,오직 서울대 합격생 숫자 높히기에 온 정렬을 쏳는 선생님들과 교육계의 정책이었다.
그런데,그런 와중에 담배문제로 선생님에게 체벌을 받고,타락한 학생이란 언어의 폭력을 받게 되었다.참으로 당시에 학교성적도 이렇다할 진척이 안되었으며 즉 성적이 좋지못하고 학교공부에 흥미을 잃어가고 있는 중에 소위 담배을 피우는 꼴초들의 일당에 합류하게 되었다.당시 전교에 약 60명정도가 흡연을 하고 있었다.그래도 일류고등학교여서인지 비율상 다른 학교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숫자였다.그리고,그때 시작된 술을 즐기는 즉 학생복을 읿고 호프집에서 맥주마시기,어쩔땐 색시집에서 아가씨을 끼고 술을 먹게 되었다.나는 술에 약한 편이여서 많이 마시면 토하곤 했다.그러나,아무튼 술을 좋은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대학입시에 실폐,재수 그리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참으로 어리석은 나이다.젊은 혈기에 광화문 골목길과 닭장같은 도서관에서 공부에 매달렸으나,대학입시때가 가까와오면,만사을 포기하게 되고,또 떨어지는 악순환이었다.이 때에 간혹 스트레스을 풀겸 동대문 야구장에 찾아가 소주을 먹고 악을 쓰며 응원하는 재미는 있었다.그리고,야구시합이 끝나면 동대문 시장에서 소주파티을 하며 즐겼다.소위..재수생과 대학생등 사회의 열등감은 극복하기 힘들었다..이러한,악순환은 계속 되었다.군 생활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이등병 시절 꼴통이 병장이 되니까..소위 양반이 되는 식이었다.아무튼,힘든 이등병 적응을 마치고 그런대로 무사히 군을 마쳤다.그러나,나에게 술은 나의 앞니두개을 뿌려뜨리게 되었다.회식을 하는 와중에 술이 부족하여 취사반에 가서 막걸리을 찾다가,고참병자에게 정통으로 얻어터진게 앞니 두개가 부서진 것 이다.얼굴이 통통부어,사단의 병원에 입원하였으며,헌병대에서 사고 경위을 조사하였으나,넘어져 부러졌다고 거짓말을 했다.마져서 부셔졌다고 사실을 이야기 하면 아마도 남한산성의 육군 형무소로 보낼 것 같았다.
제대후,대학에 들어갔다.그리고,질펀하게 술을 먹게 되었다.몇몇의 친구들과 미아리,신촌등지의 술집을 전세 내여 술을 먹게되었다.학교의 장학금은 모땅 술로 퍼먹게 되었다.2학년이 되니까.이게 아니다.소위 공부을 해야겠다고 고시공부을 시작했다.말이 고시공부이지,이건 완전히 사람 죽이는 것이다. 도서관과 닭장속에서 법학책과 씨름하는 것은 정말 아니올시다이다.간혹 술을 먹고 쌓인 스트레스을 풀고,때때론 만화책과 무협지가 법률책으로 부터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었다.아마 그때 나는 신림동의 고시촌에서,그리고,닭장에서,말이 고시공부지 이현세 만화책(지옥의 외인구단)과 무협지가 고시생의 교양서적이 되어버렸다.정말 아이러니칼하다.고시에 매달리면서 쌓인 공부의 스트레스을 술과 무협지로 풀었으니 당연히 성과무..죽도 밥도 않되었다.대학을 졸업후 공부을 계속할 까 망설이다.새로운 모색이 떠오랐다.미국 유학을 가는 것 이다.그 때부터 영어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졸업과 함께 일년동안 직장을 찾는데 소비하고,결국은 취직에 실폐하고,부모가 소개해준 회사에 입사하여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그리고 결혼도 했다.처음에는 술에 대하여 일반 회사의 인식을 알지 못했다.그런데,연말 망년회에 룸살롱에서 상사와 술을 먹고 놀았다.그것은 참으로 얌전하기 그지 없었다.사실 대학때에 질펀하게 놀던 생각이 잠시 머리에 스쳐지나갔지만,그저 그랬다.회사생활 한두해을 보내다 보니 사회생활이 이렇구나하면서 서서히 나의 성질이 나오기 시작했다.스트래스가 쌓이면 술을 찾게 되었고,회사동료와 술을 먹는 기회가 많아졌다.간혹,나이트클럽에도 가고,룸살롱도 가고,그러나,아직은 본격적으로 술에 빠지진 않았다.나에게 앞날이 있으며,아직 나만의 성공하고픈 열망이 있었다.그래서,영어을 계속 공부했으며,일요일에는 도서관에도 찾아서 갔다.
그런 어느날 한 친구가 왔다.그러면서,미국에 유학을 가자고 했다.당시에 30대초로써 좋다고 서로 의기투합하여 유학원에 60만원을 주고 유학수속을 받았다.마누라에게 완전히 한번의 협의도 없이 단독으로 생각하고 혼자 결정했다.당시 몇개월동안 미국에서 어학코스을 받았다. 미국에서 영어성적이 신통치 않아서,결국 대학원 입학을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나의 마누라와 이견이 나오기 시작했다.결혼 3년후이다.그리고 유학의 내면 속에는 미국에 이민가고픈 욕망이 있었다.정말,한국을 떠나 미국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그 이후에 부부싸움을 하면 노골적으로 나의 화을 아내에게 표시했으며,어느때인가 부턴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8년전,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이때부터 술이 늘기 시작했다.자주 술자리가 좋았으며,상사가 바뀌어 술을 잘먹는 상사가 나의 상전이 되었다.술을 좋아했기에 나도 덩달아 마시기 시작했다.부서가 구매부서(물건 구입)인지라 접대을 받는 기회가 많았으며,봄철에 한번,휴가 때한번 추석때,연말때와 구정때는 반드시 선물과 접대가 이루어졌다.그리고,이제 슬슬 술먹고 싶으면,이 업체 저업체에 전화하여 회식의 기회도 잡았다.그러던중 새로온 동료가 생겼는데 이 친구는 완전 술 꾼이였다.하루에 소주한병내지 두병을 먹고 자는 그런 사람이었다.지금보니까..소위 알콜중독자인 것이다.그런데,당시에 나는 알콜중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완전 쑥맥이었다.그래서,그렇게 술을 잘먹는 친구가 있으니 경탄이 나오게 되었다.간혹 같이 술을 먹는 기회도 있었다.그러다가,결국 사고을 낸 쪽은 나였다.별로 술도 못먹는 주재에 술주정이 심하고,결국 년말 망녀회을 끝내고,백화점에서 릭스틱을 슬쩍 호주머니에 넣고,그게,또 점원이 내놓아라하는데도 술기운에 끝까지 호주머니에 안넣었다고 우기고,그래서 경찰이오고,경찰서에서 립스틱 5만원 상당의 절도죄로 전과기록을 가지게 되었다.기소유예처분,,,참으로 어저구니 없는 일 이다.그러나,한번전과은 평생기록이다.
그리고,어느날 남의 자동차휴크를 맨주먹으로친 후 운전자에게 턱뼈가 금가게 얻어떠지고,진단 6주의 보상금을 받아먹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와 생맥주집에서 싸움등 계속적으로 술로 인한 횡폐가 늘어갔다.그리고,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었다.
그후 이런 저런일을 해보았으나 신통하게 풀리지 않았다.어느 날 부터 낮에도 술을 먹게 되었다.보통 점심때 술 한두잔을 먹는 습관은 아주 자연스런 한국적 습관으로 잘못알고 있었다.즉,낮에 술 먹는 것은 어쪘거나 알콜중독의 증상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다가,4년전 노동자로 현장에 취직을 했다.현장일을 알게 되면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고,당시에 놀고 있느니 얼마라도 돈을 벌겠다고 취업한게 용접과 사상일 이다.철쟁이와 신나,페인트일등 3D업종의 일이어도 잔업과 철야와 특근등을 하면 당시 150만원정도을 받았다.참으로 놀랠 일이...내가 회사 사무원으로 있을 때,즉 ,관리부 대리 월급보다 많이 받았다.아무튼,저녁에 일이 끝나기 무섭게 입속에 소주을 처넣게 되었다.그 때는 어렴풋이 알콜중독이 아닌가 민가민가 했다.그러나,신나와 페인트통으로 스프레이을 한번씩하게 되면,머리가 팅하고,철가루로 뒤범벅이 된 코꾸멍과 허파을 위하여,그리고,허리의 통증을 없애는 데는 소주가 만병통치약이 되었다.그러다가 나의 39살 생일 파티을 완전히 술로 하게 되었고,나는 완전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고 음주운전 사고을 내고 도망을 가는 어쩌구니 없는 사고을 내게 되었다.
그날 오후 3시경,음주운전중에 도저히 공돌이 생활로 차을 몰형편이 안되니,에잇 사고을 내어 면허취소 되면 자동차을 처분해버리고 안타고 다니는게 좋다는 괴상한 열등의식이 생겼다.그래서 엣셀에타을 밝고 힘차게 달렸다.그리고 전방 앞차의 10미터 전방에서 아니 내가 무엇하고 있지 겁이 나서 급브레이크을 눌렸다.그러나 소용이 없었다.,앞차의 뒤범버을 받아 버린 것 이다.그럼 바로 나와서 잘못했다고,해결은 생각안 하고 그곳을 벗어나 도주해버린 것 이다.그뒤 경찰이 잠자는 나의집 큰 방에 있는 나을 연행해 가서,조사받았다.그리고,보상금을 주고 합의서을 받고 면허취소 되었다.음주에 도주,특가법위반...참으로 지극지극한 일은 그 이후 재판에서 나는 끝까지 음주을 않했다고 우긴 사실이다.즉 세상이 무너지듯 음주을 부인했다.
그리고 .IMF시대에 접어들자 마자,그 노동자의 2년 생활도 끝이 났다.회사가 부도가 난 것 이다.사실 이러한 노동일은 오직 생활을 위해 돈을 벌는 목적과 술을 먹는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당시의 동료들은 대부분 술을 잘먹는 꾼들 이었다.특히 용접을 하는 동료들은 매일 술을 먹는다고 보면 된다.지금도 가끔 전화해서 술을 끊었다고 하면,어떻게 끊었냐고 물어보며서,술 끊는 데는 완전히 포기했다고들 말한다.나는 우리나라의 노동자중에서 3D업종에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오래 그곳에서 일하지 말기 바란다. 즉,페인트,철일,그리고 도금등 일하고(대부분의 산업재해중 물질중독과 약물중독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되어 버린다) 그리고 술 먹고 그런다음 알콜중독자로 몰락해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고,몸과 정신이 망가져 40대후반이나 50대초반에 죽기때문이다.
IMF시대에 육개월은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다가 공공근로,그런다음 완전히 술독에 빠지게 되었다. 아침부터 술을 먹고,낮에 바람쇄러 쉬 돌아다니다가,옛 동창들 만나서,또 한잔..이제는 아에 술을 달고 다니다 시피하게 되었다.저녁에 집에 오면 반드시 소주 한병내지 두병을 사가지고 가방에 몰래 감쳐가지고 집에 와서 잠자기 전에 마신다.그러다가 이제 완전히 술을 끊고 사는 것 자체을 포기하게 되었다.
어느날,부부싸움을 대판하게 되었다.다음날 하도 이상하여 정신신경과에 가서 면담하고 설문지 쓰고 약을 일주일 분을 타가지고 왔다.술을 일주일만 끊어보란 정신과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하루만에 약과 소주한병을 같이 마셨다.그리고,정신신경과 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집안의 어린아이들은 내가 술을 감추고 있는 지을 검사하고 술찾기 술래을 하기 시작했다.아내는 내가 술만 사오면 빼았어 버렸다.그리고,내가 밤늦게 오는 날이면,늘 불안에 떨게 되었다.혹시 밖에서 사고을 치고 있지는 않는가 늘 불안했다.그리고,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 했다.
나는 한 밤중에 집안 술이 없으니,슬금슬금 나가소 소주을 사서 얼른 한병을 먹고,또한병은 몰래 감춰서 집으로 오곤하였다.이제 간혹 한 밤중에 거리을 돌아다니며,쓰래기통을 차버린다던지,남의 가게 앞 진열장을 발로 걷어차버린는 습관까지 가지게 되었다.얼굴모습은 언제나 찡그린 모습이며.나 자신이 거울속의 나을 바라보면,이상하게 생긴 나를 보게 되었다.언제나 눈알은 씨뻘게 되어 있었다.딸 아이의 눈동자는 하햣고 맑게 빛나는데,아빠의 눈동자는 언제나 충혈되어 있었다.간혹,눈썹이 사르르 떨고 눈곱이 잘 끼었다.
친구을 만나도 이제는 이상하게 되어갔다.나는 최우선이 술이 먼저가 되었다.동문회을 가서도 술이 먼저다.그리고.한번은 동창친구중 판사가 있었는데 같이 술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가슴이 떨리는 어처구니 없는 경험을 했다.이제 친구앞에서도 술을 벌벌 떨며먹다니,하기야 그 친구가 부장판사니 떨린만도 하지만,그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소위 고등학교 동창이며,친구인데,그리고 내가 죄진게 없는데 친구앞에서 떨린다는 것은 옛날군대의 보안대,정보부등과 같은 권위에 눌려서 떠는 듯한 것을 나의 동창생 친구에게 느껴야한다니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완전히 사고을 내고 또한번의 경찰조서을 받았다.무전취식,돈도 없이 술을 레스토랑에서 먹고 머리통 께지고,피흐리며,유치장에서 하루밤을 보내고,다음 날 영장기각으로 나왔다.그리고 ,그 날 나는 완전히 내가 알콜중독자가 되었고,이제는 어찌할 수 가 없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그리고,형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병원 의사가 당신이 알콜중독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입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당시는 나는 다른 길이 없었다.감옥에 가는 대신 병원에 가는 조건으로 영장이 기각되었다고 들었다.할 말이 없었으며,사실 나의 화와 분노는 끝이 없었다.어느 한 순간 나는 한 가족속에 자란 친형과 나와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고 " 아..내가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었구나"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여 두달간을 생활해보기는 42년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긴 병원 생활 이었다.그리고,또한 놀랜게 아...세상에 이런 정신질환 환자들도 있구나였다.입원하자 마자 폐쇠병동인 안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다른 환자들 우울중,조울증,기타 정신질환환자와 같이 생활하면서 너무많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나는 그때까지 나는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인줄만 알았지,,내가 그런 사람과 같은 환자란 사실을 몰랐다.즉 머리아프면,술을 먹었고,술로 인하여 실제 겪어야할 우울이나 기타 괴로움을 술로 잊어버리고,망각해버렸다는 것이다.그래서,나의 정신적 질환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사고나 치면서,지내왔던 것 이다.
일주일 후 그라나다센터의 개방병동으로 가서 알콜교육과 심리치료을 받았다.심리치료라는 것을 이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 되어 있다.난 필사적으로 교육받는데 매달렸다.그리고 노트에 기입하고,일기장에 또쓰고 그리고 모른 것이 있으면 심리치료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다.그리고,AA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AA모임,성요한 병원 지하에 모이는 괴상스런 모임이었다.나는 알콜중독자 박입니다.즉 성만 말하고 익명의 원칙을 지키고,자조자립의 모임,그리고,별 미치 놈들이 다모이는 괴상한 모임쯤으로 알았다.그리고 한달이 지났다.병원내에서 교육과 치료도 치료지만,천주교의 수도회이어서 인지,성당이 있었다.나는 그전에 약간 교회에 일년에 두번 참석하는 그런 사람이었다.약간의 성경지식도 있지만,완전한 믿음이 없었다.기적이 없는데 믿으나마나 이다.즉,나는 크리스찬 중에서 기적을 내눈,그리고, 손으로 확인하는 그런 사람이었다.왜냐면,이십년전 나의 어머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그때 나는 완전히 기적을 바라고 군대의 교회에 다녔다.어머니에게 기적을 주시라고 빌었으나 돌아가셨다.
성당도 있고 그래서 그냥 다른 사람이 나가니까 나도 같이따라서 매일 아침미사을 보았다.한달 정도 지났는데 빨간 모자을 쓴 천주교의 높은 분이 미사을 보자,병원의 높은 수사들이 모두와 미사에 참여했다.그때 나는 그 사람의 말중 인간은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된다는 말이 세삼 떠올랐다.어머니의 이장할 때의 뼈와 머리까락만 남은 모습이 기억에 스쳐지나갔다.그리고,나는 내방에 돌아와 통곡을 했다. 나는 이제 까지 사람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그게 아니고 땅에 묻히고 사라져감을 알게 되었다.그리고,아까 그 빨간 모자 쓴 사람은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고,나는 땅에 뭍히어 죽어사라질 것 이라는 사실에 슬픔과 눈물이 나왔다.엉엉울었다.....
그후 한달후에 이상한 체험을 하였다.병원의 알콜교육 수사가 갈매기의 꿈의 슬라이드을 보여주었다.그리고,느낌을 물었다.그 당시에 어렴풋이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 꿈은 어떤 신에 대한 이야기을 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그리고,그 신은 바로 빛을 나타낸다.그래..빛이야,,,무색무취의 빛...그래서 나는 빛입니다라고 말을했다.그런데 이상하게 시리 나의 가슴심장으로 부터 그 빛이 새어나와 확퍼졌다.정말 신기하리 만치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빛이란 무엇이가? 나에게 무엇의 위대한 계시가 있었다.나에게 신의 섭리을 전하라고 했다. 경이롭기만하다.그래,신의 섭리다고 나는 확신했다.
그래서,그날 오후 AA모임의 한 협심자에게 나의 이러한 경험을 이야기 하니까."아마도,당신의 마음이 열렸는가 봅니다"고 했다.그분의 말 "마음이 열리다".참으로 적절한 말이었다.나는 그 사건 이후 이해력이 무척 빠르게 되었으며,쉽게 남의 이야기을 이해하게 되었다.소위 AA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적체험인 것 확신하게 되었다.사실 나는 그런 나의 눈의 착각,환각이었을지 모를 그 사건에 나의 모든 것을 매달리게 되었고,지속적으로 AA모임에 참석하였다.
아직도 나에게는 우울증적 증세와 깨으름 즉 뒤로 미루는 습관이 남아 있다.간단하면서도 쉽게 극복하기 힘든 증상 이다. 그러나,이러한 정신적인 문제와 습관적인 문제들은 하나한 극복해 갈 것 이다.
병원을 퇴원하고 서울의 모임에 다니는 어느날 미국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약 6개월이 지날 때 나는 매달을 받았다. 당시에 나는 기적이라고 말했다...미러클...미러클,,,나는 병원의 그 이상한 체험이후 술을 먹고 싶은 충동이 없어 완전히 없어졌다.그러나,우울증이랄까,,아직은 본정신으로 돌아 왔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그런데,어느날 나의 진정한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인 모임에 참여하며,AA Big Book을 몇번이고 읽고,12단계을 하나 하나 이루어갔다.그리고 스폰서가 나의 12단계프로그램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서로 협심해서,12단계 공부을 계속하였다.그리고,AA모임의 역사,초기 멤바들의 활동사항등을 공부하고,AA모임을 더욱더 이해하게 되었다.정말로 신의 은총이 없었다면,AA모임은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초기 합동 설립자인 Bill Wilson과 Doctor Bob의 완전한 봉사가 없었다면 AA의 기적도 없었을 것 이다.그리고 회복된 협심자들의 헌신적 봉사가 없었다면,,오늘의 AA모임도 없었을 것 이다.그리고 한국의 협심자들의 눈물나는 노력에 감사 한다.
그동안 AA모임을 통하여 나는 너다는 진리을 알게 되었고,나의 회복이 신의 은총에 의함을 알게 되었다.AA모임에 다니면서 서베르토 신부(작고)을 알게 되었다.그는 나에게 오직 술을 끊는데에 나의 모든 것을 집중해라고 충고해주었다.내가 당돌하게 Holy Spirit와 AA의 Sprituality가 같읍니까?물어보니까.나에게 대답이 AA에선 오직 술의 문제와 회복에만 집중하라고 하더군요,.그러나,이제 AA의 12 단계을 하나하나 샇아 올라가면서 느끼는게 아 우리의 영적성장이 없이는 술만 끊느다고 생활의 평온함이 이루어지는게 아님을 알았다.
즉,술을 끊는 것은 단지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이제 부터 하나하나 나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노력할 것 이다.
- 俄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