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인식을 바꿔야 무예가 산다.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무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 것인가.
도장의 숫자로만 보면 확실이 대단하다는 말이 나온다. 태권도 도장만
전국에 수천개에 이른다. 택견이나 국궁같은 전통 무예 외에
합기도, 검도, 가라데 등의 일본 계열 무술이나 당랑권, 태극권, 우슈 같은
중국 계열 무술에 기타 창작 무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총 망라하면
그 숫자는 짐작도 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무술에 관한 인식은 그리 높지 않다.
사실은 그 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전혀 무관심하기 때문에, 따라서 거짓말을 해도 그것이 먹혀 들기 때문에
온갖 창작 무예마다 전통 무예로 둔갑을 해 버린 것이 아닌가.
왜 전통 무예라는 간판이 중요했었나. 사실 전통 무예는 무조건 뛰어난 무예이고
그것이 아니면 별볼일 없는 무예라는 논리가 근본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전통무예라는 훈장이 실제
무예의 기법이나 내재된 정신과는 전혀 관계 없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대중의 인식 저변에 깔린 무술의 그릇된 인식을 교묘히 이용한 상업주의가
아니었는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택견이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지만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라고 택견 이전에 무예라는 커다란 범주안에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을 대중의 뇌리에 제대로 전달시켜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무술에 대하여 일반인이 가지는 극단적인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자면 나는
신비주의와 차력(묘기)의 두가지로 본다.
무술의 신비주의는 전통 무예라는 간판이 유행하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무술일수록, 그리고 실전 무예라는 말이 붙을수록 그 무술이
뛰어나고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라고 착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무술은
평화 시대의 무술이고 옛날의 냉병기 시대의 무술은 생사를 걸고 겨루던 것이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쨉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마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것은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가 보는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무술은 언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유기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천년전 무술이 기적적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었다고 하여도
지금과 형태가 똑같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게다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계승한 무예는 눈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굉장히 많은 수의 무술이 존재하는
중국 무술도 스스로는 몇천년의 역사를 말하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대부분의 무술이 명나라 말기나 청나라 초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무술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전시에는 살인 기술이었다가도 평화가 찾아 오면 다시 그것에 맞는 무술이
된다. 또 다시 오랜 전쟁이 지속 되면 기존의 기법들은 또한 그 시대에 맞게
변한다. 기본 원리가 공유되면 무술은 늘 그렇게 변하는 것이다.
또한 무술은 사람에 따라 변한다. 아무리 스승이 제자에게 맨투맨으로
모든 것을 가르쳐도 스승과 제자의 무술이 100% 같은 수는 없는 일,
때로는 스승을 앞선 제자가 있기도 하고 또한 스승보다 못한 제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기본 원리만 공유되면 스승보다 못한 제자의
제자라고 하여도 핵심을 몸으로 체득하였으면 또한 대성할 수 있는 것이
무술 수련의 기본 이치가 아닌가.
즉, 오래된 무술, 다시 말해 전통 무술이라고 하여 점점 더 강력한
무술로 발전만 해 왔을리도 없고, 창작된 무술이라고 하여 후진 무술일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전통 무예라는 말 앞에서 신비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일격필살의 살인기술이 아니면 무술도 아니라는 극단적 논리도 가끔씩
접하곤 하는데 그 전에 그런 살인기술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시대를 타고났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무술은 생명을 죽이는 기술에서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오로지
무술인 시대는 이미 한참 전의 얘기인 것이다.
때로는 일격 필살 환상기에 집착하는 경우 그것이 곧 상승 무공에 이르는
길로 여기기도 한다. 뭔가 보통의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초능력을 얻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어떤 방편으로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에 어떤 공격도 무조건 막아내고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필살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맨손 무예라면 사람의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두손과 두발을 기본으로 몇가지 타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전부이다.
무술의 달인은 가장 단순한 동작을 부단히 반복수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전통 무예를 1년만 배우면 갑자기 공중부양이라도 할 것
같은 환상속에 젖어 있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실전 무예를 배우면 갑자기 강해질 것이라고들 착각하는 건 다반사이다.
스스로 극복해 내야 할 노력의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공중 부양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장난이 아닐 진지한 말투로
"만약 어떤 사람이 한 30년쯤 계속 도만 닦으면 공중에 둥둥 쓸수도 있을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럴수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무술의 신비주의 이면에는 우리가 어린 시절 즐겁게 보았던
무협지들과 무협 영화의 영향을 배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현실의 무술과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무협지의 무술이 뒤섞여 있다.
중국 무술 영화의 경우에는 보통 악당이 주인공의 부모님이나 좌우지간
친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은 어딘가로 피신하여 복수의 칼을 간다.
그때부터 무술을 배우는 데 투로, 즉 태권도로 말하면 품세 같은 것만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고수가 된다는 구조를 너무나 많이 접해 왔다.
당연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모 무술의 경우 나의 스승은 절벽을 걸어서 올라간다느니
나무를 꾸짖으니 말라 죽더라느니 하는 황당한 얘기도 버젓이 하는 경우가
있으니 누구를 탓할까마는 무술에 이런 신비주의를 완전히 벗기는 것이
첫번째이다.
이런 신비주의와는 또 반대의 극단적인 곳에 무술을 무슨 묘기나 부리는
약장수용으로 전락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차력같은 경우 때로는 정말 기공을 잘 닦아야지만이 가능한 것도 있겠으나
어떤 건 요령만 알면 보통 사람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척
하며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열광을 한다.
보통 TV에 이따금씩 등장라는 무술들의 경우도 PD 같은 방송 관계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술의 기본 원리나 기법이 아니다. 공중 도약해서 화려한
발차기 같은 것, 척 보면 아무나 따라하기 어려울 것 같은 서커스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술이 방송에서 무슨 광대짓으로
연출되어 비추어지는 것을 볼때마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광대짓까지는 아니었지만 몇년 전 부르노라는 외국인이 태권도를 배울 적에
괜히 540도 돌려 차기 같은 것이 수련 과정 속에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것도 3개의 발이 모두 살아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체조처럼 회전 점프해서 마지막 발로만 타격하는 차기이다.
어쨋든 외국인이 태권도를, 그것도 어쨋든 보통 사람은 전혀 불가능한
그런 어려운 발차기에 도전함으로써 그런것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무술을 수련하는 과정은 끊임 없는 단순 반복이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 반복의 지루함을 극복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것이 무술 수련의 궁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무예를 수련하다 보면 생각한 것 처럼 너무 안되서 매우 답답해 하면서도
그냥 게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약간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곤 한다.
매우 작은 것이지만 수련자에게 그 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사실 무술의 외형적인 모습이 사람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택견은 물론이거니와 복싱이나 K-1 같은 무술 시합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처음 무술을 배우는 목적 중에도 "폼 나니까" 배우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무술 수련의 참된 의미를 알고, 평생 갈고 닦아야 하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무술의 경쟁 상대가 엉뚱하게도
헬스 클럽이나 스쿼시, 수영 같은 것을 동시에 제공하는 종합스포츠센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1단 따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하다가 그 조차 포기하는 사람도 수두록하고
어찌해서 1단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스포츠 종목을 찾아간다.
대중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마련하여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을
것이냐... 그것은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