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 하나: 목회는 목을 거는 일, 목회에 목을 걸어라
방법 둘 : 개척교회에서는 반드시 일을 벌려야 한다
방법 셋 : 개척교회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방법 넷 : 교인들에게 비전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
방법 다섯: 들어오는 교인이 나가는 교인보다 많게 하라
한명을 위해 전력을 쏟아라
방법 여섯: 개척교회에서는 특히 교인들과 눈높이를 맞춰라
방법 일곱 : 목회자의 리더십: 사람을 믿지 말라
사람을 사랑할 뿐 …
제 2 부 개척교회의 이모저모
<저자소개>
이 상 대 충북 제천 출생, 서울신학대학교(B. A.),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퓰러신학교 목회학박사(D. Min) 과정중 왜그너 교회개척성장연
구원 원장, 현재 서광교회 담임목사
저자 서문
제가 감히 개척교회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막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조그마한 교회의 목사인 주제에 개척교회를 위한… 운운한다는 그 자체가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그너 교회개척성장연구원 원장이라는 감투 때문에 제 실제경험을 토대로 감히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90%가 100명 미만의 미자립교회라는 것을 인식한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개척교회를 실제로 돕는 연구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개척교회의 아픔을 누구에게도 이해받거나, 격려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음을 개척교회를 하면서 실감했기에, 이분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을 작지만 시작했습니다. 좋은 일이기에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큰 장벽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에 몰려든 목회자들의 함성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에서 막 벗어난 풋내기 개척자가 하는 개척교회를 위한 충언이 어쩌면 실제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릭 워렌이 지적한 대로 "건강한 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개척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는 동료 교역자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던져 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개척 7년에 20명이던 지하교회에 후임자로 부임하여 좌절과 고통 속에 헤매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았고, 저를 염려하며 기도해 주시던 분들이 장소, 자원 등이 너무 열악해 힘들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교회였기에 하나님이 개척교회를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제 개척교회 경험을 되살려 몇 가지 추려 보았습니다. 저는 다시 개척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하면 되리라는 확신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90% 이상 되는 개척교회들이 탈바꿈되어질 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제 뇌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나의 흔적더미를 내어 놓습니다.
제 1부 개척교회를 벗어나기 위한 일곱 가지 방법
방법 하나 : 목회는 목을 거는 일, 목회에 목을 걸어라
개척 후 3년 안에 승부가 나야 한다(?)
명성훈 박사는 "개척한 지 3년 동안 성장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문을 닫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누구든지 열심을 내어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기도하고 전도, 심방 등 개척교회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열심이 식어지고 좌절하고 용기를 잃게 됩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보다 더 악화되는 상황입니다.
그분은 이런 한계에 맞닥치는 기간을 3년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척교회가 어느 정도의 기반을 다지는 데 3년이라는 한계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경우를 사례로하여 다른 목사님들도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반드시 돌파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가 1986년인데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라면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허송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아무 열매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열심히 했지만 안되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1988년 10월에 상가를 얻어서 교회를 옮겼습니다.
이사갈 때 출석 교인이 43명이었습니다. 86년과 87년 동안에 열심히 했지만, 2년이 지나가도 별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도 어른 43명이라는 숫자가 기억나는 것을 보면 40명을 벗어나려고 한이 맺힐 정도로 몸부림치던 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신장(腎臟)을 팔아서 교회를 지어라
제가 부임한 지 7년이 지난 1993년 말이 되자 상가교회는 꽉차게 되었습니다. 출석교인이 200명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저기서 성전건축을 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상가건물을 처분해도 3,4억, 그 동안 적립한 돈이 1억이 전부인데, 이 정도로 1평에 700-800만 원 하는 땅을 사서 건축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기에 결국은 땅 144평에 약 480평 교회를 1994년에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16억이나 들여서 말입니다. 출석교인 200명으로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성전건축을 하다 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목회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 바로 성전건축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임경애라는 청년은 자신의 적금통장을 들고왔고, 33살의 젊은 최영철 집사는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하면서의 차익 천만원을 헌금하였고, 다른 교회에 출석하시는 어느 집사님은 자신의 연립주택을 하나님께 드리는 등 어렵게 땅값을 준비하던 차에 1억이 모자랐습니다. 고민하다가 한미은행을 찾아가 소장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담보없이 1억을 대출받을 수 있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건축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들어가는 돈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나올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고민하던 중에 잡지에서 신장을 산다고 하는 기사가 눈에 띄어 전화를 했더니 2천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저는 신장을 팔려고 했습니다. 그 돈이면 당장 어려운 고비는 넘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왜 팔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을 했고, 천오백만원까지 보장을 받게되었는데 이에 관련된 신문기사가 몇칠 계속나더니 아무래도 잡혀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 사람이 구속되지만 않았다면 저는 신장을 팔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나가다가 교회는 위기를 넘겼습니다. 신장을 판다고 하니까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명이 넘어선 사건: 하나님께 꽃 드리기 운동
우리 교회가 1992년 6월, 130명에서 140명 가량이 되었을 때입니다. 1991년 통계를 보니 새신자 가운데 집사들이 전도한 사람은 2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집사가 56명 정도 되는데, 그때는 30명 가량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집사들이 전도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2년 6월 직원회의 때, 집사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11월 셋째 주까지 전도하지 않으면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집사의 자격이 없다고 선포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날까지 전도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말하고는 200명 목표를 위해 필사의 각오로 전도하자고 했습니다. 11월말까지 200명을 돌파하자고 한 것입니다. 당시 프로그램의 이름은 '하나님께 꽃 드리기 운동'이었는데 아이디어를 선거 때 얻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꽃을 달아 주는 점에 착안하여 게시판에 교역자 이름과 직분자들 이름을 적은 표를 붙여 놓고 각각의 이름에 꽃을 다는 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도를 하면 꽃을 달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6월 직원회의 때 발표한 것입니다. 목표 200명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집사들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집사의 수만큼 전도한다면 엄청날 것인데 지금까지 2명밖에 전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집사들이 분발하면 평신도보다 훨씬 전도를 잘합니다. 그래서 집사들에게 전도할 것을 말했고, 저도 전도하지 못하면 사표를 내겠다고 공포한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전도사들 3명이 있었는데 직원회의를 하는 도중에 전도사들을 일어나게 해서 전도하겠는지 물었습니다. 장로님에게도 물었습니다. 전도하지 못하면 그날부터 교회에 나오지말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사들을 전부 일어나게 한 다음에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일어선 채로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앉으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날까지 전도하지 않으면 집사직분에서 떨어지는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는 서약식을 했습니다.
이 발표를 6월 첫째 주에 했는데, 7월이 되어도 꽃이 붙지 않는 것입니다. 적어도 1명 등록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희 교회는 등록을 하려면 적어도 연속으로 2회는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등록교인을 만들어서 교인의 수를 늘리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6월과 7월, 2개월 동안 요동함이 없자 직원회의를 할 때마다, 설교할 때마다 꽃 드리기 운동을 강조했습니다. 8월쯤 되니까 1-2명이 꽃을 붙였습니다. 9월과 10월이 되자 전도에 불이 붙어 이제는 전도 못하는 사람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1월 둘째주가 되자 2명만 제외하고는 다 꽃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인이 약속한 11월 셋째주가 되니까 202명이 나왔습니다. 총동원주일이 아니라 주일 낮예배를 드리는 인원이 이렇게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용서선언'을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200명을 달성하는 것이지 집사직분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200명이 되지 않았다면 직분을 박탈했겠지만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봐드리겠다고 선언했더니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형성된 저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목회했습니다. 교인들과 제가 신뢰가 형성되어 그것을 전제로 일이 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과정을 통해서 볼 때 이 일이 어느 정도 수용될 것이라 생각하고 진행한 것입니다.
교인들은 편안하게 신앙 생활하고 싶은데 목사님이 하는 일에 마지못해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목사님이 자신들을 강력하게 몰아붙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만들어 가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마냥 풀어 주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들이 구속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적거리며 따라가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 따라가다 보면 힘도나고 그런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교단 활동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경우, 저는 기본적인 모임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정치적인면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성이 농후한 사람입니다. 정치감각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가면 금방 물이 들 것 같습니다. 목회가 좌절을 안겨 주고, 교인들이 잘 모이지 않고, 개척교회 상황이 자꾸 압박을 가하면, 정치적인 모임에 가서 관심을 돌려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신을 더욱더 목회에 투자하는 편이 좋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생 교회정치는 안할려고 합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정치라는 영역에 들어가서 정치판이라는 데가 목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목사님들이 교회정치, 교단정치에 개입하셔서 일은 잘 하시는데 실제로 목회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목회에 전적으로 관심을 갖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목회와 정치가 단순히 상반된다고는 보지 않지만,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가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목회는 목을 거는 일
목회는 목을 거는 것입니다. 1995년 3월에 황성주 박사님(사랑의 클리닉 원장)에게 종합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데, 건강진단은 ABCDEF순서대로 나갑니다. 그런데 제 점수가 G가 나왔습니다. 건강상태가 최악이라는 말입니다. 황성주 박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죽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최소한 3개월 동안 산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말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쉴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숨돌릴 틈없이 이어지는 행사가 6월 중순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당의 어느 목사님은 스스로 고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교회가 부흥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이유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부부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을 끊었다는 자신의 결단의 표현인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목회는 목을 걸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 결심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금식을 잘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만, 위급한 상황이 되니까 금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래서 저도 금식할 계획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결국 그분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 고향인 제천의 어느 장로교회는 장년들이 150명 가량, 주일학교 학생들이 3천명이 됩니다. 학생들의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그 학생들을 1,500명까지 세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서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목사님은 부축을 받고 올라오셨고, 이분이 설교를 하다가 피를 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네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동냥해 들으니 이분이 심한 페결핵을 앓고 계셨는데 설교를 할 수 없는 지경이랍니다. 그런데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후임자가 올 때까지 강단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설교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의견이 나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목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를 하면 강단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라는 것은 "목을 걸고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목을 걸고 목회합니다.
방법 둘: 개척교회에서는 반드시 일을 벌려야 한다
개척교회의 시작
제가 몸담고 있는 서광교회는 제가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전임 목사님이 개척하신 지 6년 정도 된 교회였는데 아주 어려웠습니다. 전체 교인이 23명 정도였는데 제가 교육전도사로 있던 대광교회에 담임으로 제 전임자가 가시는 바람에 제가 서광교회 후임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1986년 2월 17일에 이곳에 왔습니다. 대조동 46-37번지에 있는 지상 3층의 옛날 건물로 지하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안의 계단으로 들어가면 교회가 있고, 강대상이 있고, 강대상 뒤를 판자로 막아 방을 하나 만든 곳이 사택입니다. 한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평소에 내가 목회하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제가 처음 교회가 있는 지하로 내려갈 때에는 도둑 소굴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캄캄하고 환경정리도 안된 엉망인 곳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지쳐 있고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엉터리였습니다. 개척 6년이 지났는데 성도가 20명이랍니다. 교회성장학 이론에 따르면 가정교회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끼리끼리 혈맹공동체 비슷하게 뭉쳐서 외부사람에게 반발하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6년 동안 같이 살았으니까 혈맹관계나 다름없이 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6년 동안 20명이 모이면서 그중 14명이 집사직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 가정이 남아 있는데, 처음에 제가 그들을 만났을 때 교회를 끌고 나가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험도 없었고 무슨 얘기를 해도 어렵기만 했습니다. 고집불통인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갖고 있던 교만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 5년 안에 대교회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공부를 잘했고, 총학생장 출신이고, 행정을 좋아하고, 설교에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로 봤을 때 목회를 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목회를 했습니다. 처음에 침울한 교회 분위기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고, 게시판도 멋있게, 벽도 2개월에 한 번씩 변화를 주어 칠하고, 교회가 있다는 걸 표시하려고 자전거를 구입하여 동네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오히려 교인이 줄어들어서 15명이 남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좌절했는지 상상이 갑니까? 별짓을 다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목회가 안될까?'하는 고민에 휩싸여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를 쉽게 생각하고 단순히 머리로만 문제를 풀어 가려고 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87년부터는 기도하기로 다짐하고, 옛날 학교 때의 버릇대로 다시 제일 늦게까지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나를 괴롭힌(?)분이 있었는데 수색 장로교회 오필홍 권사님입니다. 그분은 연세 많은 할머니였는데 타교회 분이면서도 우리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 교회에 오시면 가지 않는 분입니다. 제가 그분 때문에 잠을 못자고 고생을 했지만 그 덕분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우신 분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
교회성장에 대해서 제 개인적인 견해는 "교회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안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안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교회다." 그 교회는 병든 교회라는 얘기입니다. 그 말씀에 저는 오래 전부터 공감하는 바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으면 성장을 해야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병들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교회는 성장이 안될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나쁘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일 뿐이지 교회는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가 올바르면 교회는 무조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병이 안들었는데 성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장이 느린 대부분의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고 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이 목사에게 달렸다는 것도 당연한 말입니다. 절대적이고 거의 100%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주위환경이나 교인들이나 교단관계 등의 영향이 있지만 제일 많은 부분을 목사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정, 즉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감동은 주는 일이 10% 정도입니다.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생각이나 이론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을 하시지만 그러나 이 교회가 제 교회입니까? 실패하면 하나님이 실패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저의 개척교회 목회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입니다.
개척교회를 벗어나는목회
개척교회는 특별히 표어를 잘 선정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몇 년째 '신바람 나는 교회, 즐거운 교회, 할 수 있는 교회'등 이런 표어를 사용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 등록한 교인 중 몇 명은 '즐거운 교회'라는 표어 때문에 등록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의 표어는 '내 짐을 져라', '전도배가운동', '총력전도'등이었습니다. 이런 표어들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데 방해거리가 된다고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수준도 향상되었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기 때문에 부담을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별히 도시목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편안하게 접촉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목회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척교회는 사람들 관계에서 시작되고 사람들 관계에서 끝이 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 방법은 개척교회를 벗어나 빠른 성장을 가져오는 목회의 좋은 방법입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여건상 주눅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있나, 있다고 해도 모여 주기를 하나, 도대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싸여서 자기도 모르게 주눅든 사고방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안됩니다.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목회자와 그대로 머물러 있는 목회자의 차이는 여기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나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자꾸 일을 하다 보면 잘되는 경우보다 안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지만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교회가 성장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여건은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 안된다 해도, 또 일하고, 또 일을 해야 합니다. 그치지 않고 뭔가 자꾸 해보려는 열심에 교인들이 감동받게 됩니다. 주저앉으려는 마음은 개척교회 목회자의 적입니다. 뭔가 해 보려고 해도 잘 안되니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가장 두려운 적입니다. 이 적을 이겨 내면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일에 가까이 다가섭니다.
개척교회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우리 전도사님, 혹은 우리 목사님은 참으로 따르고 신뢰할 만한 분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실력 있고, 능력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으면 교인들이 목회자와 함께 개척교회 목회에 동역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인들이 느끼는 것만큼 외부에서 우리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벤트 회사에서 행사를 기획할 때 커다랗게 만들어서 분위기를 띄우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하는데 '이벤트 목회'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교회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한다는 말들을 하는데, 저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도 서점에 가서 경영학에 관련된 책을 보기도 합니다.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면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개척교회 탈피방법은 일을 믿음으로 저질러 버리는 것입니다.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 너무 신중하게 일하려고 하면 변화가 없으므로 교회가 정지하는 느낌을 주고 침체에 빠져듭니다. 교회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고, 현재 부딪힌 어려운 상황이 믿음의 시험대라는 의식으로,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입니다. 일을 과감하게 저질러 버리는 믿음의 용기가 없이는 개척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새롭게 나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고, 가능성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20명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회자들에게
20명 정도의 교인이라면 아주 작은 교회일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에 이런 교회가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20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20명 정도 모이는 교회라도 그 상황이 다릅니다. 여기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척해서 20명이 된 경우와 몇 년이 되었는데도 20명에 머물고 있는 경우입니다.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20명이 된 사람에게는 우선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부흥이 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년에 20명을 만들었다고 하면 성공입니다. 그리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비전이 보이고 자신감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20명 모이는 교회가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이 사람들이 제일 어려운 상황입니다. 개척교회 사람들보다 정체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활력소를 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사람에게는 교회장소를 옮기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 외적 조건으로 교회이름을 바꾼다든가하여 일을 저지르라는 것입니다. 정체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황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이 교회장소를 옮기는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님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일을 벌리는 교회
건강한 사람이 성장하듯이 건강한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일을 벌리면 되는데 자꾸만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생각하고, 교인 수만 헤아리면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때이고 시도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도하지 않고 머무르면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척교회의 3-4년은 금방 지나갑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일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성장이라는 건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뿌리가 박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무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터무니없는 건 안되지만, 일은 저질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3년마다 한 번씩은 꼭 변화를 주어야 됩니다. 2-3년 만에 한 번씩 말입니다. 2-3년 만에 한 번씩 변화를 준다는 것은 기존의 틀, 안정되어 간다 싶은 틀을 확 깨트려 버리고 교인들로 하여금 다시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갈 기회와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존립의 원리는 '일을 믿음으로 시작하고 벌리라'입니다. 그분들이 일을 벌리지 않는 것은 안되리라고 미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안될 것 같으니까 아예 한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서 '내 일이 아니니까'하고 벌려 버리면 되기도 하고, 어쨌든 안되기도 하겠지만, 대충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라는 계획은 세워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인간적인 숫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플러스 알파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만, 플러스 알파는 그분이 하시는 겁니다.
열심 있는 목회
아파트나 상가는 교회나 목회자를 알릴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위치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근처에서 목회하시는 은광교회 목사님을 굉장히 의식했는데 그분은 목회경력이 오래되신 분이고 저는 햇병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그분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많이 하면서 노력했고 또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에서 특색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매월 둘째 주에 선교예배를 드렸고, 셋째 주는 평신도를 불러서 간증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다른 교회의 교인들에게 부탁해서 강단에서 간증하도록 시켰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목회자들보다 평신도들이 순수한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주로 평신도들을 많이 세워서 간증집회를 열었습니다.
또한 저는 우리 교인들이 교회에 대한 자부심과 저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인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속한 교회에 대한 자부심, 자기가 섬기는 목회자에 대한 자랑스러움 없이는 교회가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데 상승작용을 합니다.
목사가 조금만 생각하면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뭔가 일을 저질러 보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해 보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저절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도 저질러 보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일을 하려고 할 때 두려움이 앞서면 먼저 기도해서 그 두려움을 없애고, 어쨌든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짓고 해야 합니다. 일을 해 보려는 가운데서 아이디어도 생기고, 도움을 줄 사람들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먼저 도움을 주어야 일을 할 텐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평생 일할 수 없습니다. 일을 먼저 저질러야 돈도 생기고, 그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생기고, 사람들도 그 일을 중심으로 해서 모이는 법입니다. 단지 믿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내가 하는 이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일을 먼저 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먼저 모인 다음에 일할 생각을 하면 개척교회는 영원히 개척교회로 있을 뿐입니다.
계속적으로 성장되어 가는 교회
교회를 지은 다음에는 성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지어서 들어오니까 저를 알고 있던 동네사람들은 제가 성공할 줄 알았다는 등, 살아 남은 교회가 서광교회밖에 없다는 등 합니다. 그리고 대전에 지교회를 세우고 중국에 단독으로 선교사도 파송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장을 하니까 지역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주부교실, 주차장 오픈, 본당과 2층 오픈 등입니다. 저는 동사무소에서 사용한다고 하면 아무때나 교회 본당을 빌려 줍니다. 그리고 동장 추천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역 노인분들 효도관광과 노인정에 가서 식사를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 1996년 8월경에 왜그너 교회개척성장연구원도 세웠습니다. 조그만 수양관도 경기도 파주에 계약을 하고 중도금을 치렀습니다. 성도들의 영·혼·육의 쉼터로 사용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회개척성장연구원도 작년에 처음으로 세미나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130명이 모였는데, 최고로 많이 모이는 교회가 80명이 모이는 교회였고, 평균 5-6년이 되었는데 20명에서 30명 정도였습니다. 아주 좌절되어 있던 사람들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회 세미나에서는 276명이 왔습니다. 훨씬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교인이 천명이 넘어섰습니다. 자그마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계속해서 기쁨으로 모든 일을 추진해 나가려 합니다.
방법 셋: 개척교회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성장
1987년에 우리 교회의 성도가 15명에서 3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선 기도를 시작했고 그런 이유로 스스로의 부족한 모습을 잘 알게 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시도했고, 교수님들이 오셔서 담임 목회자를 돕도록 좋은 말씀을 통해 교인들을 지도해 주신 것도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5명에서 30명으로 성도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기존성도인 15명만큼은 튼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1987년에 15-20명 되는 교인으로 제일 먼저 시도한 일은 그들을 제자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 신학교 3학년 때 제가 직접 만든 제자훈련에 관한 교재를 다시 사용하기로 하고 타자를 쳐서 편집했습니다. 당시 우리 교인들 14명이 거의 다 집사였는데 제 생각에는 잡사(?)라고 해야 할 만큼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 훈련을 하면서 원칙을 정했습니다. 제가 목회를 평생 할 텐데 몇 가지 목회원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한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집사가 잡사가 되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개척한 목회자라면 막 밀고 나가겠지만 그럴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그들을 완곡하게 설득하고 달래서 제자훈련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 공부를 하는 동안 2번 결석하면 퇴학입니다. 1회 결석과 지각은 용납해 주는 대신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고, 또 점수제도를 도입해서 80점 이하는 졸업을 안시킵니다. 80점 이상은 졸업, 70점 이상은 수료, 70점 이하는 준수료로 구분했습니다. 100점을 기준으로 하고 출결상황, 숙제검사가 20점, 성경을 한 번 읽어야 20점, 기도를 100시간 해야 20점, 20점은 성도간의 교제를 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전도점수가 20점입니다. 그때 15명 정도로 시작했는데, 퇴학당하는 사람이 60%, 남는 사람이 40%인데, 그중에서도 제자훈련과정을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10% 정도입니다.
처음부터 졸업과 수료를 구별하고 어려움을 참고 끝까지 인내해서 과정을 마치는 사람에게는 제자훈련 졸업예배를 성대하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 공부한 사람들의 졸업식 사진이 목회실에 다 있습니다. 시작은 많았지만 중간에 도중하차한 사람이 많아서 사실상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성경공부를 말할 때 교인들의 성경지식을 쌓는다든가, 교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데, 저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목회자로서의 제 자신을 성도들에게 알리는 통로로 사용했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시간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몇 명 안되는 개척교회의 프로그램
사실 개척교회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우선 저는 부흥회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중 4년 동안 한 번도 부흥회를 하지 않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하려면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없어서 부흥회를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해야 합니다. 부흥회가 참으로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예를 들어, 산에 기도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산에 갈 사람은 언제 어디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3명만 나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산에 기도하러 가자고 광고했기 때문에 3명이 모인 것 아닙니까? 이 3명이라도 가면 이 사람들은 친해집니다. 그런데 '10명 중에서 3명만 모일 텐데…'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아예 어떤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친해질 기회는 1명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득이라도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목회서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백지에다 컴퓨터로 입력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는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반응이 대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그것을 자신에게 특별한 말씀으로 주신 것이라고 문이나 TV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그것을 가지고 기도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8년 동안 임신하지 못하던 성도가 임신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을 가지고 펑펑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적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다보니 계속 아이디어가 개발되어집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좋은데 우리 교회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일을 주십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써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다른 일을 주십니다. 하지 않으니까 일이 없는 것이지 일은 많습니다.
40명 정도의 개척교회 프로그램 진행
40명이 되면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20명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에 의하면 40명만 되어도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합니다. 보통 40명이라고 하면 남전도회 5-6명, 청년회 5-6명 그리고 여전도회가 약 30명 정도로 구성될 것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2명이 하는 것이지, 여러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전도회도 2명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전도회도 20명만 넘으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룹만 되어도 찬양대회가 가능하고 프로그램 진행이 이루어집니다. 요즘은 그런 말을 잘하지 않습니다만 예전에는 선배 목사님들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가 43명이었을 때 상가로 이사를 갔습니다. 40명일 때 1억 3,430만원짜리 세금까지 1억 5,000만 원짜리를 구입한 것입니다. 당시 이 돈이면 지금 약 10억 정도 됩니다. 큰돈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 무모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못산다고 해도 교회가 내 것인 것과 남의 소유에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작은 상가라도 하나 잡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도하면 자산이 늘어나게 됩니다. 40명일 때 이러한 일을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선 뭔가 1차 시도를 하십시오. 도저히 살 형편이 되지 않으면 공간이라고 넓혀서 이사를 가십시오. 그런데 교인들은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도 미성아파트 상가 2층에 있으면서도 1992년 말에 교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바로 지하를 월세로 얻었습니다. 학생들과 주일학생들을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가 늘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차를 한 대 더 샀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가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모습을 교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80-100명 교인에 이르는 길
사실 40명에서 60명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80명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80명만 되면 1년 예산이 8,000만원이 됩니다. 이렇게 예산이 세워지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립한 교회로서 선교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립교회로서 당당하게 일을 찾아가는 것이 교회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80명이 되었을 때 '나눔 그리고 감사의 축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당당히 자립교회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혼자서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다 진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80명 정도 모였을 때 18개 교회에 선교를 했습니다. 저는 이 정도의 규모만 되어도 원래 교회로서의 모습을 다 갖추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저는 북한교회를 돕기 위한 적금을 따로 들었고, 선교를 했으며, 우리 교회에서 개척해 나갈 교회를 위한 헌금을 따로 모았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지교회를 위한 자금을 모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80명만 되면 자립교회로 보고 프로그램이 다양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100명이 넘어서는 단계부터는 목회자의 능력대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라
같은 프로그램을 두 번 해서는 안됩니다. 같은 것이라도 타이틀도 계속 다른 것으로 바꾸고 방법도 조금씩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의 행사가 끝나면 허전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쉬운데 그때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후속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일하는 교회, 신바람 나게 일하는 교회, 이것이 제가 꿈꾸는 교회상입니다.
방법 넷 : 교인들에게 비전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1년 동안 개척교회에서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인들이 줄었다는 사실은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닌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저는 개척교회 상황을 고려한 목회 방법과 전략이 부재했다는 것을 반성하고 싶습니다. 대책없는 열심만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계획이 없다는 것인데 미래를 바라보며 꿈꾸는 청사진, 즉 마스터 플랜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조건 열심히 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건방지고 철없던 생각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좋은 훈련을 시키셨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척교회의 홍보전략
1987년 당시 우리 교회의 1년 예산이 700만원이었는데, 저는 교회의 본질과 존재목적이 영혼을 모으는 일이고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우리 그리스도인인데, 선교하지 않으려는 교회는 차라리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교회가 선교하는 것은 주님의 당연한 뜻이라고 교인들을 설득했습니다. 교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선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런것은 우리와 전혀 관계없다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한달에 만원씩 한 교회를 돕자고 설득하고, 결국 제 의견대로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보 1면에 '선교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썼더니 교인들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작아도 선교하는 교회라는 의식에 보람되고 기분좋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교하는 교회를 두 교회로 늘려서 각각 만원씩 후원하고 기관에서 한 교회를 돕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기관이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유·초등부, 학생회, 청년회, 남전도회, 여전도회 등 5개 기관에서 한 교회를 돕는 것입니다. 돈 많이 드는 후원이 아니라 작은 돈이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우리의 정성 어린 마음을 보내자고 강조했습니다. 그 때 '월간목회'가 3,000원일 때인데 각 기관에서 한권씩을 한 교회에 보내도록 했습니다. 저도 3,000원이 없어서 중단한 적이 있는데, 개척교회에서는 3,000원도 귀하게 쓰여지므로 그것을 보내 주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선교후원하는 교회가 갑자기 많아져서 무려 7교회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장학금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홍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부흥회를 열어 저녁집회에 날마다 다른 목사님들을 모셔서 설교를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속성으로 부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교회이지만 밖에서 볼 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교회라는 느낌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결국 개척교회가 살아 남는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이전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상가로 이사 가기 전의 과정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1988년 10월, 상가로 이전할 때 43명이었으니, 1987년 5월은 출석교인이 30명쯤이었습니다. 1987년 8월에 환상을 봤는데,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후에 어떤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속한 성결교단에는 "직선거리 500미터 안에는 교회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단인 모 교회가 개척한 지 1년도 채 안되어 2층 건물을 2억 3,000만 원에 사서 우리 교회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 교회보다 역사도 오래되었는데 교인도 적을 뿐 아니라 전셋돈 200만 원도 못 올려 주어 끙끙 앓으니 비교가 되어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며칠 후에는 도저히 여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좌절에 빠졌기 때문에 뭔가 변화가 없으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변화를 주기 위해 이전하려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교인들과 함께 계속 목회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해 보려는 의지를 이미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있기보다는 변화를 시도하고자 믿음을 발휘한 것입니다. 변화를 향한 간절한 믿음, 이것이 결국 일을 해내고야마는 것입니다. 상처를 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지내고 있는데, 1988년 5월 말쯤 새벽기도를 끝내고 강대상 뒤에 마련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조선일보를 보다가 광고를 보게되었는데 '미성아파트 상가 분양' 옆에, '교회, 학원, 유치원 임대'라는 광고가 개재되어있었습니다. 가격을 알아보니 나누어 임대하는데 3층은 학원, 2층 84평을 교회건물로 임대하면 1억 3,440만원에 준다는 것입니다. 평당 160만원인 셈입니다. 그래 무조건 전화를 걸어 그 다음날 계약하자고 했더니 계약금으로 3천만원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신미섭이라는 여자 청년이 있는데 이대를 졸업하고 국민투자신탁에 들어간지 얼마 안됐을 때인데, 그 친구가 은행에 있으니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에 전화를 해서 돈이 필요하다했더니 500만원은 빌려드릴 수 있다하여 송금을 부탁했습니다. 은행에 가보니 100만원은 현금으로, 나머지는 수표로 입금되어 100만원만 찾아가지고 계약을 하러 분양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가보니 제가 구두계약만 하고 시간 내에 나타나지 않자 다른 계약자들이 줄을 서서 흥정을 하고 있었기에 가격이 많이 올라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일 먼저 계약하기로 한 사람이니까 나와 계약해야 한다고 우기고 우겨 결국은 일주일 후에 2,500만원을 주기로 하고 가계약을 맺고 나왔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새벽기도 끝나는 대로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뜻은 좋지만 도와 줄 만한 여건이 못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고 어렵게 어렵게 은행 마감 5분전에 장모님이 3,000만원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 주셔서 그것으로 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그후 중도금 5,000만원은 한 분이 3,000만원, 한 분이 2,000만원을 융자해 주셨는데, 자기 땅을 담보해서 돈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한 성도가 5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셨습니다. 돈 구하러 다닐 때의 서러움은 정말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서러움을 무지무지 당했습니다. 아는 분들을 찾아갔는데 99%가 다 안된다고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기 그지 없는 우리 교인들이 건축헌금으로 1,950만원 헌금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척이나 어려운 가운데 분이 넘치게 했습니다.
새벽기도/철야기도
저는 새벽예배 설교를 7분 정도 합니다. 새벽기도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새벽기도회에 오는 사람들은 개교회에서 주로 중진들입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저희 교인들보다는 외부 교인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는 새벽기도 설교는 일련의 강해설교를 했습니다. 저도 그분들의 수준에 맞는 설교하려고 했습니다. 교회를 짓고 이사올 때도 그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굉장히 아쉬워하기도 하고 같이 일할 수 없겠는가 묻기도 했습니다. 또 헌금들도 많이 주셨습니다.
1990년 이후에 우리 교회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철야기도가 활성화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매주 철야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에서는 사람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매주 철야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멤버가 생기고 함께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2년에 우리 교회에서 '예수꾼 운동'을 했습니다. 예수에 미친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원서 가입도 받았습니다. '예수꾼 가입 70명 운동'을 했는데 50명 남짓 받고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철야기도에 100% 참석한다는 조건하에 말입니다. 예수꾼 70명만 있으면 다른 교인들은 이들에 의해서 양성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열심 멤버들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방법 다섯 : 들어오는 교인이 나가는 교인보다 많게하라
: 한명을 위해 전력을 쏟아라
한 명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목회
10명으로 시작한 개척교회는 10명이 그대로 있으면서 1명, 2명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나 가정사정 등으로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그렇다면 나가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나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들어오는 사람들을 정착시켜야 할 텐데 새신자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1987년까지는 이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를 찾아 소개해 주어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해 주었는데 1988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교인이 이사 가면 바로 심방을 갑니다. 한 명 교인의 소중함을 깨달은 목회자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 교인들에게도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지는 목회자의 열심은 기존교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개척교회의 좋은 동역자들
대개 개척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므로 담임 목회자 혼자서 목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전도사를 모실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교육전도사 2-3명은 항상 두고 팀목회를 했는데 제가 전도사 시절에 개척했을 당시부터 그래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적어도 전도사 3명은 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사례금을 조금밖에 드릴 수 없었지만, 지금 나를 도와 주면 나중에 내가 여러분을 도와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나를 열심히 도와 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 주변에는 저와 함께 동역해 주는 분들이 많았는데 한결같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수원 성가교회의 양민식 목사, 대전 서광교회의 김민호 목사, 태안 원북교회의 마형갑 전도사와 특별히 만 5년 동안을 제게 큰 힘을 주고 의지할 수 있었던 화곡교회 조범식 목사, 어려운 개척교회 전도사 시절 작은 사례비도 마다않고 운전까지 도맡아 해주던 황철중 전도사 등 정말 생각만 해도 고마운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새 교인의 등록
새신자가 오면 평신도나 전도사들이 그들에게 먼저 접근해서 등록하도록 권면하는 방법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에게 부담 주지 말고 대신 인사는 공손히 하라고 했습니다. 또 안내위원도 고정인원을 두었습니다. 식당에 가면 흔히 느끼는 것이지만 음식이 아무리 뛰어나게 맛있다 해도 종업원이 친절하지 않으면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내위원도 인상 좋고 친절한 사람을 고정멤버로 둔 것입니다. 그 대신 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3번만 나오면 무조건 달려들어 다른 말 하지 말고 담임목사님께 인사 한 번 하고 가시라고 권하도록 교육을 시켰습니다. 제게 데리고 온 사람은 그때부터는 제 책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먼저 직분을 묻고 언제 직분을 받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 등 몇 가지를 물어서 체크하면 어떤 사람은 집사가 아닌 '잡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저희 교회는 집사 되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집사님이 집사로 오시기를 원하면 그렇게 해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자신이 집사자격이 없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새로 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아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긍정하고 새신자로 등록을 합니다. 간혹 본인이 집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집사로 등록을 시키지만 1년 동안의 한시적으로 임명하고 협동집사로 직분을 감당하게 하면서 그 동안에 제자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
지금도 우리 교회가 작지만 그래도 이만큼 성장한 것은 교인들의 의식구조 저변에 깔린 우리 교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교회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 성장에서 필수적 요소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교인들이 사람들을 전도하고 교회로 데려와야 성도가 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사람을 인도하거나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교인들이 교회와 목사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고, 목사를 그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야 합니다. 프라이드가 없는 교회는 성장하기 힘듭니다.
교인들이 1,000명 가량 되는 우리 교회는 집사님이 50여분 있습니다. 50명이면 소수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집사가 굉장히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직분입니다. 우리 교회의 또 하나 장점은 목사인 제가 나이가 많은 세대라고 해야 할 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젊다는 말도 됩니다. 그리고 실상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성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됩니다. 또 한가지는 다른 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력을 우리 교회에서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만큼 그러한 사람들까지도 적재적소에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특징들을 굳이 몇가지로 꼽으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특별히 성령충만합니다. 또 우리 교회는 교인층이 젊습니다. 예배가 역동성이 있습니다.
기존교인과 새로운 교인과의 갈등 해결
40명에서 80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교인들과 아파트에 사는 교인들 이 잘 어울리지 않아서 교인들끼리 분리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목회의 한 방법으로 처음 나오기 시작한 고학력 교인들을 기존교인들보다 특별관리를 했습니다. 특히 새로 온 교인들과 함께 새신자 성경공부를 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까지 나오는 기존교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배운 것을 뽐내거나 있는 것을 자랑하면 이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즉 돌봄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기존교인들이 새로 들어온 교인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교인들이 기존교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만큼 되기까지 이들의 십자가가 있었음을 시간이 날 때마다 말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분들이 기존교인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고 크게 마찰이 일지 않았습니다. 목회자가 미리 갈등을 예상하고 예방차원에서 잘 가르치면 갈등이 발생해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가라앉기도 합니다.
방법 여섯: 개척교회에서는 특히
교인들과 눈높이를 맞춰라
목회자의 인간관계
어떤 의미에서 목회는 결국 인간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회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호흡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교도 결국 이런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부부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등입니다. 그러니 관계가 제대로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대부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문제되지 않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목회는 사람과의 관계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과 맺어지는 관계는 개척교회에서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목회를 말하면 교인들이 목회자의 삶과 설교에 매료되고, 그분의 삶에 반하고 좋아하고 흡입되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교인들은 목사를 좋아하고 그 주변으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면서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러나 대개 목사님들은 권위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척교회 시에는 권위보다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는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목사의 권위만을 내세우지 않고 소박하게 그들과 함께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교인들 의식 속에 자신들이 목사님과 동일한 수준에 있고 목사님도 우리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일체감이 있으면 목회가 훨씬 편안하게 진행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 교회를 담임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몇 년 동안에 제가 목회자로서 그들에게 심어 준 것은 인간적인 면모이고, 이를 통한 일체감 형성이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끌어들인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 때문에 교인들이 마음을 연 것이 아니라 인간성이 털털하고, 수수해서 그들이 살아 가는 모습을 이해하고 말이 통해서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교인들 가정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도 어렵게 살았지만 우리 교인들이 참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척교회는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들 가까이 가서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개척교회의 시작입니다.
개척교회의 설교
개척교회는 일련의 강해설교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개척교회 상황에 따라서 교인들의 갈증을 채워 주는 제목설교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용기를 주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개척교회는 주된 교인들이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해설교가 맞지 않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삼박자 구원을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개척교회 사람들에게는 원리만을 강조하는 설교 혹은 인본주의로 포장된 지성적인 설교가 아니라 용기를 주는 단순한 메시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께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목사님께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될 수 있으면 쉽게 설교하려고 애썼습니다. 용어선택도 쉬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똑똑하고 베드로는 무식했습니다. 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놀라운 복음의 확장을 이루고 그를 사용하셨다"라고 설교하고, 소득이나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비록 베드로가 배우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엄청나게 역사하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저의 설교의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결국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비전을 강하게 심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설교 중에 예화를 많이 사용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책에 나온 예화는 도움이 안됩니다. 서재에 예화백과사전 등 책이 많이 있지만 우리 사정과 맞지 않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교우가정에서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예화로 삼아 구체적으로 설교했습니다. 제 주변에서 있었던 일도 다 예화의 소재가 됩니다.
철야기도 시간에는 설교주제 4개 정도를 노트에 적어서 강단에 올라갑니다. 철야기도 때에 1시간 동안 설교하는데 교인들은 1시간 내내 웃음바다가 됩니다. 주제에 얽매이거나 딱딱하게 설교하지 않고 즉흥적인 설교를 많이 합니다. 좋게 표현하면 영감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설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주간에 있었던 일을 예화로 듭니다. 그런데 설교할 내용이 많이 떠오릅니다. 1시간 동안 편안하게 이야기하듯이 설교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각을 어떻게 개발시켜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목회감각은 목회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에 의해서 개발되는 것입니다.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관심과 자신의 우수성, 심오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교인들의 관심에 일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이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듣습니다. 들어야 무슨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재미있게 하는 것은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개척교회에서는 죄, 회개 등을 다루는 설교가 성도들에게 잘 이해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들의 심령을 바꾸는 설교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개척교회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면 회개와 죄를 말하는 설교보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설교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죄, 회개 등의 설교가 귀하지 않거나 필요가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수만이 모인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차라리 희망이 담긴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교인들의 삶에 더 큰 변화를 준다고 믿습니다.
주택가와 아파트 지역의 목회
개척교회가 지역 내에서 좋은 인상을 얻는 일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개척교회가 좋은 인상을 주고, 좋은 소문이 나면 당장 교회성장에 가시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적다고 해도 결국 교회성장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교회가 지역내에서 소문이 나쁘면 부정적인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교회는 속해있는 지역과 공간에서 좋은 소문이 나도록 해야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나왔을 때 그들에게 더 치중한 것은 기존교인들과 불협화음이 있을까 하는 염려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지적·경제적 수준 차이 때문에 갈등이 있을까봐 예방차원에서 그렇게 했지만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디에서도 상황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아파트건 주택이건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아파트 주민들보다 주택가의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저희 교회 프로그램은 아파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주택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지 아파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갈등을 예상해서 아파트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힘이 되어 목회자를 도와주고 일꾼으로 봉사하라는 부탁의 차원이었지 그들이 주체가 되어 목회방향을 세운 것은 아닙니다. 일에 있어서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 것이 아니라 한두 명만 세워서 협력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이들은 돕는 차원이었고 주로 주택가 사람들을 초점으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주일학교 각 부서의 성장을 위한 열린 목회
1977년 2월이었는데, 지금은 장로가 되신 제천중앙성결교회 전제운 부장 집사님이 저더러 주일학교 교사를 하도록 권하셨습니다. 신학교를 가겠다고 선언했으니까 주일학교 교사를 맡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한테 맡겨진 아이들은 3학년 여자반 8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부장선생님이 교사들을 모아놓고 "어느 반이든지 제일 먼저 50명을 만들면 상금 만 원과 상장을 주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만 원은 큰돈이었습니다. 만 원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고 재수생인 제가 특별히 공부도 못하고, 할 일도 없어서 교회에서 300미터 가량 떨어진 의림초등학교에 가서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우리반 아이들을 기다렸다가 교회로 데려와서 다윗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 연속 시리즈로 들려 주고 숙제도 조금 돌봐주곤 했습니다. 4월 마지막 주에 통계를 보니까 53명 재적학생 중에 52명이 나왔고 전제운 부장 집사님한테 상금과 상장을 받았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 청년들이 150명인데 교회규모에 비해서 청년들이 많은 편이지만 이 중에는 공부를 잘했다든지 특별한 아이들이 없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데올로기 문제로 나라가 골치아플 적에, 교회도 대학생들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우리 청년들은 특별히 이념적인 문제에 대해서 알 만한 인재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로 인해 별로 어려움 없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최고 장점을 지도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교회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고, 그래서 지금의 리더십은 교회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중·고등부를 거치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활동했던 것이 오늘날 목회하는데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거창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잘 넘길 수 있는 방법은 신앙이 훌륭하든 부족하든 일단 교회 안에서 잘 놀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교회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학생들에게는 최선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 안믿어도 좋으니 교회 와서 놀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학생수련회 3박 4일 기간이 되면 프로그램을 아무것도 안하고 성경공부만 하루에 한 번씩 하도록 일정표를 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2시간 동안 기도회를 합니다. 3박 4일 동안 실컷 놀게 하고 2시간만 때려 잡으면(?) 된다는 계산입니다. 처음부터 강행군을 하면 안잡히니까 실컷 놀게 한 다음 은혜받게 하려고 2시간 동안 기도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은혜라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도록 하는게 아니라 그분이 믿게 하는 것이므로, 그 아이들이 분위기에 젖어 결단할 때까지 나름대로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교회라는 분위기에 동화되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면 교회에서 놀이문화의 공간을 마련해 주어 세상 문화에 빠져드는 것을 막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신앙도 재미있어야 합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고 억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라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도 목숨 건다고 말하는데, 그것도 재미있으니까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보람있고 재미있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눈높이 목회
개척교회 목회는 눈높이 목회, 사람들의 눈을 맞추어 주는 목회입니다. 학생들도 그렇고 주일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하는 눈높이 목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은사님 중에 이소연 교수님이 있는데, 그분이 대학때 다섯 살, 일곱 살, 아홉 살, 열한 살 아이들의 언어를 조사해 오라는 과제물을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떨어져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적어오는 '언어조사'였습니다. 그래야 진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같이 있으면 자기들끼리 쓰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용어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어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사해 보니까 그들이 쓰는 언어가 어른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개척교회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개척교회에서는 그들과 동화되어 사람들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큰 교회와 개척교회는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목회 접근방법도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방법 일곱 : 목회자의 리더십 : 사람을 믿지 말라,
사람을 사랑할 뿐…
적극적인 목회자
저는 성격이 아주 적극적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고 내성적이던 성격이 점점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목회하는 데 내성적인 성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목회가 적극적으로 처리하고 앞에 나서서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적극적인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목회는 외향적이어야 할 수 있고 더구나 개척교회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우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설득(?)해서 교회로 끌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바른 원칙을 지닌 목사의 리더십
목회자에게 있어서 리더십의 문제는 목회를 좌우할 만큼 결정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리더십에서 모순된 상황이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게 리더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원칙을 확고하게 정해서 그대로 지키는 측면도 있고, 어떤 특정한 인간관계에서는 그 원칙이 풀어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더십의 요체중 하나가 용서, 관용 등 봐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관용이라는 건 그냥 봐 주는 게 아니라 잘못해서 마땅히 벌받아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할 상황에서도 그냥 넘어가는, 이를테면 그냥 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냥 넘어가기'에서 포용력이 발생할 수 있고, 리더십이 개발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반된 상황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것도 리더십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개척교회의 재정
개척교회 때부터 우리 교회는 재정집사가 있었습니다. 교회재정은 그분이 맡아서 정리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은 제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일일이 다 챙길 것은 챙기고 알아야 할 것은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고 해도 저의 서명이 없으면 지출할 수 없습니다. 교회행정 과정은 매우 분명하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돈을 청구해서 사용할 경우에는 청구서를 통해서 결재를 올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척교회 당시에도 저는 될 수 있으면 밝고 투명한 행정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청구하는 본인의 서명과 지도교사, 부장, 담임목사의 사인이 있어야만 재정부에서 사인하고 지출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서류들은 개척교회 때 만들어 사용하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돈문제가 투명하지 않고 결재과정이 허술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해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명을 해도 잘 설득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돈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기도생활
저는 하루 종일의 생활이 모두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밥먹는 것도 기도이고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은 모두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합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식사기도를 할 때도 다른 사람들보다 10초라도 더 오래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저와 밥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 꼭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 심방을 가면 운전을 하고 가든 걸어가든 그 사람만을 위해 기도하면서 갑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기도시간이 많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목회습관을 들이고 나니 아주 좋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이적이 나타난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도의 바탕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도 기도에 대해 엄청나게 강조합니다.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혼자 영력을 얻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굉장히 큽니다. 개척교회 목사는 반드시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사실 개척교회 시절에는 한두사람 오는 바로 그 사람들이 천사들입니다. 저를 기도하게끔 하는 천사들 말입니다. 큰교회 목사님들은 월요일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큰 교회를 하는 목사님들의 이야기이고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새벽예배 시간 전에는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2 부 개척교회의 이모저모
어린 시절, 목회에 결정적 영향을 주신 어머니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저는 누나가 두 분이고,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는 믿는 분이 아니었는데 제천고등학교도 짓고, 면사무소도 맡아서 짓는 등 건축업자로 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천중앙성결교회의 개척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저를 살려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셨답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라는 생각을 저를 키우셨고, 그래서 누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뭐든지 저를 우선순위에 두십니다. 기도하실 때도 누나들부터 차례대로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한 기도를 먼저 하셨고, 손님이 오셨을 때도 저부터 먼저 인사를 시켰고, 하여튼 어머니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것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나에 대한 희망은 언제나 목사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넌 목사가 돼야 하기 때문에 행동이나 말을 조심해야 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하시는 등 이런 주문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주 싫어서 반발하곤 했습니다.
저는 운동하는 것은 좋아했고, 공부하는 것은 싫어해서 돌아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때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새벽 1시쯤 들어오니까 어머니가 제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니까 사방이 조용해서 어머니가 기도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 착한 상대'라고 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밖에서 싸우고 돌아왔는데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자 저는 충격을 받고 어머니한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저는 계속 공부를 못했으니까 대학시험을 봤지만 떨어졌습니다. 그리곤 어찌어찌해서 신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군대 갔다 온 다음에 생각이 변해서 목회를 안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어머니를 설득하기를 "신학교 졸업해도 목회지가 없어 방황하는 선배들을 보십시오. 선배들을 보니까 사례비 3,000원 받기도 하고, 쌀 두 말도 받고, 갈 데가 없어서 방황하는 사정을 보십시오. 그대신 취직해서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네가 어리고, 그 어려웠던 시절에 주의 종으로 키우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원했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이제 정말 세상에 낙이 없다"고 하시면서 허탈해 하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여서 생활이 무척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셨습니다.
요즘에 어머니는 하루에 6시간을 기도하십니다. 제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만큼 목회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인간적으로 따지면 어머니의 공로가 90%라고 해야 할 것같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기도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어머니'라는 글을 한 번 쓰고 싶을 정도로 귀한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시는 자세 때문에 무릎에 굳은살이 생길 만큼 기도하시는데 그분 기도 덕분에 제가 살아가고 있는 것같습니다.
신학교 시절에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에 계시는 이정효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이 전도사, 어머님 건강하신가? 어머님께서 건강하고 살아계실 때 일을 자꾸 벌려" 어머니 기도가 엄청난 걸 아시고 돌아가시면 힘을 못쓴다는 생각에 살아계실 때 일을 많이 하도록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다른 분보다 목회를 잘한다면 90%이상이 어머니 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형제들이 모두 효자여서 어머니를 모시려고 하지만 제가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안계시면 허전하고 그분이 계시면 마음이 굉장히 든든함을 느낍니다. 어머님이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시면 저는 빨리 오시라고 전화를 여러번 드릴 정도 입니다. 제게 있어서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와도 같으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겨우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영력이 있습니다.
신앙의 어머니를 둔 것은 굉장히 귀한 일입니다. 앞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하려는 사람들은 어머니 역할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기도의 동지가 참으로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머리로 될 것 같지만 목회는 머리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지리도 못났던 어린 시절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간암 선고를 받자 어머니는 아버지 치료를 위해 서울대학병원으로, 어디로, 이리저리 뛰어다니셨습니다. 제법 잘살던 가정형편도 기울어지고 아버지는 결국 6학년 되던 해에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장남이면서도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너무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하루에 2시간 이상 안마를 하던 것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너무 좋아 그랬던 것입니다.
가세가 많이 기울었고, 아버지도 돌아가셨지만 어머니 덕분에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초등학교때도 특별한 재능도 없었으니까 중학교에서도 별 두드러짐 없이 다녔고, 겨우 입학한 제천고등학교에 가서도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지만 운동부에 있다보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담배를 배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흥회를 갔는데, 그때 강사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여기 온 사람 중에서 한심스럽게 예배 오기 전에 담배를 피운 사람이 있구먼. 그런데 버릇없게도 학생 녀석이 담배를 피우다니…"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퍼뜩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와 담배를 찢어 버린 다음에 그날부터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 일을 참 열심히 했는데, 저는 교회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교회생활을 재미있게 했지만 학교생활을 학교생활대로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고 교회에 오면 거룩한 학생이 되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이상할 정도로 두 셰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
고등학교 2학년 때 가나안농군학교로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김용기 장로님의 강의를 듣고 많은 충격을 받은 후, 교회 철야기도 시간에 간증하는 시간에 어린 제가 나가 목사가 되어 양떼를 돌보는 삶을 살 것을 서원했습니다. 제 간증을 들으신 어머니는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공부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뀐 것은 아닙니다. 기초는 없고, 교회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놀기에도 열심을 다했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소원한 다음에는 매주 화요일마다 철야기도를 했을 정도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신학교 생활
군대제대를 한 다음에 신학교에 다닐 상황도 아니고 다니고 싶지도 않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든지, 다른 공부를 할 생각으로 신학교에 복학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날, 교회 앞에서 나누어 주는 전도지를 받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글귀가 전도지에 쓰여 있었습니다. 늘 보던 전도지인데 그날 그 문구를 보고 다시금 학교로 돌아가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독교교육과 1학년으로 다시 들어가서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큰 그릇으로 쓰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신학교에 공부했습니다.
특별히 기도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6시부터 새벽기도가 시작되는데 모든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보통 7시 30분에 내려와서 밥 약간 먹고 강의가 시작하기 바로 전까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밤10시 30분부터 11시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후, 기숙사로 돌아와 새벽 2시까지 공부했습니다. 잠을 4시간 이상 잘 수 없었습니다. 제가 늘 실력이 모자랐으니까 2시까지 공부를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일과를 반복하면서 1년을 지냈습니다. 성경을 많이 보려고 노력했고, 기도 제일 많이 하려고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했고, 하여튼 모든 걸 다하고 싶었던 시절이었고 꿈도 많았습니다. 비록 경제 사정은 엉망이었지만 말입니다. 제천중앙교회에서 보내주는 약간의 선교헌금과 학교에서 받는 장학금으로 생활했는데, 책을 사야 하기 때문에 라면으로 밥을 대신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고마웠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지금 여주 벧엘교회 담임 김명회 목사입니다. 저의 어려운 사정을 아무도 몰랐는데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가끔 저에게 식권을 주면서 밥을 먹게 해주고 헤어질 때면 인사하면서 주머니에 천원, 이천원 넣어주면서 밥 먹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마 그 친구가 없었으면 더 많이 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초의 치유사건
교회를 개척하는 초기에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면서 기도응답을 받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987년 8월 2일, 새벽 자명종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손하나가 나타나서 내 앞에 글씨를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니라"하더니 예레미야 33장 3절이라는 성경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깜짝 일어나 예레미야 33장3절 말씀을 찾아보니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무슨 뜻으로 주신 것일까를 생각하는데, '유정미'라는 청년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유정미 청년은 제가 환상을 보았던 날로부터 정확하게 38일 전에 저에게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청년이 하는 얘기가 열다섯 살 때부터 축농증을 앓고 있었는데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축농증 수술비용으로 70만원을 가져오셨는데 그 돈을 헌금을 하고 기도로 축농증을 고쳐보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저를 찾아왔던 것입니다. 저의 마음에는 헌금을 받고 축농증이 낫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돈을 아버지께 다시 보내드리고 하루에 한 번씩 교회에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리곤 그날부터 아침을 금식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기간 중 38일째에 제가 환상을 본 것이고 39일째 되는 날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대 부속병원 뒷골목에 있는 창신동을 지나면서 사과냄새를 맡게되었다는 것입니다. 함께 기뻐하며 더 기도하자고 격려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40일째 되는 그 다음날 오후 5시에 다시 전화가 왔는데 펑펑 울면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밥냄새를 맡았다고 말하면서 엉엉 우는데, 이 녀석이 "어머 어떡해, 어떡해"하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 왔습니다. 저와 통화하는 도중에 코에서 고름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고 축농증이 완치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 나았고 교회에서는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저녁예배 때 간증하게 했습니다. 그때가 교인 30명쯤 모이던 1987년이었습니다.
개척교회를 기피하는 이유
대부분 사람들이 개척교회에 등록을 기피하는 이유는 우선, 목사의 메시지가 약해서 교인들이 힘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다음에는 교회시설이나 여건이 열악한 것이 그 이유가 됩니다. 또 돈 걱정을 해야 합니다. 즉 개척교회는 헌금에 대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교회를 지어야 하고 건축헌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인들이 물질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척교회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고,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은 헌금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교회성장에 지장을 줄수 있으므로 돈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회방침이 우리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교인들과 함께 시작하는 개척교회
아파트 상가로 이사 가면서 교인들을 이끌 만한 평신도 지도자가 있어야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생각했습니다. 목사가 그들 모두를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평신도 지도자 한 명이 이 일을 맡아서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과 한 가정을 세워서 이런 일을 담당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개척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할 것은 좋은 개척멤버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터 왜그너라는 학자도 개척멤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저도 역시 개척멤버가 좋았다면 훨씬 더 부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목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신앙생활을 할 교인들이 어떤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교인들과 함께 시작하는 개척교회는 축복받은 개척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런 상황을 넘어서려고 좋은 교인들을 훈련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이한 사모 역할(?)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사모의 입장에 대해서 저는 다른 분들과 조금 색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의 절반은 아내의 얼굴에 친숙하지 않고, 실상 교회 내에서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모가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교회에서 불편한 일이 생깁니다. 오히려 열심히 없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를 남편으로 섬기고, 목사에게 잘하는 일이 사모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아내는 남편과 가족에게 잘하면 되고 그것이 곧 하나님 일입니다. 저는 사모들이 나서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모가 나서서 득이 되는 것도 있지만 손해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준비된 개척교회 목회
지금 와서 선택하라면 개척을 시작하던 그 당시처럼 아무 것도 모른 채 현장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다시 목회 한다면 현장훈련 사역을 더 구체적으로 경험한 다음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목회현장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시 개척한다면, 큰 교회에서 부목사를 하지 않고 100명에서 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 협동사역을 하다가 개척할 것입니다. 큰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작은 교회에 가면 전혀 맞지 않습니다. 너무 작아도 힘드니까 100명 가량 되는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개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작은 교회, 개척교회의 특성을 잘 알고 거기에 알맞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서 목회하는 것은 우리가 작은 교회, 개척교회를 벗어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무때고 일이 생기면 찾아가 의논할 수 있는 선생님 말입니다. 또 성경을 주기적으로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치유사역과 교회성장
우리 교회는 1992년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로 매 성령강림절에는 성령집회를 합니다. 원래 성서적으로 보면 맥추절이 성령강림 주일인데 우리 실정에는 맥추절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그 점에 착안하여 맥추절 행사를 작게하고 성령강림절을 크게 했고, 그것을 시발로 해서 성령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강대상도 다 치우고 2시간 동안 부흥회를 합니다. 뜨거움과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예배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는 때입니다. 병든자가 직접 고침을 받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성령집회를 하면 보통 때보다 예배인원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이 시점에서 성령집회와 더불어 치유사역이 목회방향을 정하고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치유사역에 치중했고 설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치유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기도도 많이 했지만 치유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달했던 때입니다. 저는 치유사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치유사역을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즉 1,000명이 낫기를 기도했지만 1명만 나았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치유를 향한 열심과 함께 믿음과 기도와 시도를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낫지 않으면 소문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면 소문이 납니다. 저는 치유사역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치유사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치유는 교회의 본래 모습이나 교회의 본래 사역에서 결코 멀리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치유야말로 교회가 진정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ACTS)에 진학하여 치유 선교학과를 지원했는데 그 과에는 주로 의사, 간호사, 약사들인데 저는 목사 신분으로 갔습니다. 당시 학과장인 이명수 박사님이 목사들이 이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치유가 무엇인지 윤곽을 잡았고, 계속해서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과정을 하는 동안 치유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친구 목사들을 만나면 치유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목사가 교회 내에서 치유에 관심을 갖고 선포하면 영적 권위가 세워진다는 말을 합니다. 이제는 일반 교인들이 목사보다 못배운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목회자가 진정으로 가져야 할 것이 결국 영적 권위인데, 그러기 위해서 목사는 치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많이 권면합니다.
목사님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교회 내에서 치유사역을 하신다면 교회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