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맥이 쭉 빠졌다.
손에는 기다란 작대기를 잡고 있지만 내려칠 엄두를 낼수 없었다.
오전내내 배추밭에서 무거운 질통을 짊어지고 배추 포기마다 비료를 주고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힘든 일 끝에 배도 고프고 밥을 허겁지겁 먹었는지, 많이 먹었는지 밥을 먹고나서 졸음이 왔다.
밥먹은 자리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집사람이 조심스레 나를 깨웠다.
현관 앞에 뱀이 있는데 독사인거 같다는 거다.
졸린 눈으로 일어나 장화를 찾아 신었다. 아무래도 독사라면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뱀은 확실히 독사였다. 살모사.ㅡ.ㅡ;; 이놈이 우리 집 강아지 집앞(현관에서 불과 4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거다.
강아지하고의 거리는 불과 50센치정도. 물론 강아지와 독사 사이에는 독사가 통과할 수 없는 철망이 설치돼 있긴 하다.
작대기를 가지고 주변을 툭툭 쳐봐도 꿈쩍도 안한다. 크기가 1미터는 안되는 것 같고 굵기는 어른 엄지손가락 두개정도
되는 듯하다.
마당(보도블럭를 깔아 놓았다)에 고추를 말리기 위해 나무 파레트를 깔고 그 위에 고추망을 깔고 고추를 널어 말리고 있는데
이 놈이 파레트 밑으로 들어갔다가 현관 앞까지 진출한 모양이다.
도저히 혼자서는 이 독사를 물리칠(?) 수 없을 것같아 동네 형들에게 급하게 전화를 했는데 오늘따라 전화를 받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있어도 금방 올수 있는 거리에 있지를 못하다. 결국 혼자 해결하기로 했다.
절대 죽일 수는 없으므로(죽이려하다 보면 아무래도 독사와 결투를 해야하고 그러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예측할 수 없어서)
산채로 잡는 방법을 생각키로 했다. 쫓아내는 건 언제 이 놈이 다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확실한 방법이 안될 것 같았다.
집사람이 매미채로 잡잔다.
양파망을 가지고 약간 굵은 철사를 두겹으로 꽈서 양마망에 끼우고 긴 장대에 연결을 했다.
그런대로 쓸만할 것 같았다.
오른 손에는 매미채를 잡고, 왼손에는 작대를 잡고 뱀에게 다시 갔는데 이 놈이 창밑에 쌓아논 콘테이너 박스 뒤로 숨어
버렸다. 다시 매미채를 왼손에 잡고 박스틈에 매미채를 틈이 없게 대고 작대기를 벽과 콘테이너 박스 사이로 집어넣어
뱀을 끌어냈다.
머리털은 쭈빗쭈빗서고, 긴장이 되서 이는 악다물고, 무서우니 꽁무니는 잔뜩 뒤로 빼고는 열심히 작대기질을 해 독사를
끌어냈는데 이 놈이 매미채 안으로 잘 들어가길 않고 발버둥이다. 나도 덩달아 맘이 급해지며 작대기질이 빨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어찌어찌 매미채 안으로 독사를 집어 넣었다.
가만히, 조심스럽게 들고는 음식물을 모아두는 빨간 고무통(300리터짜리)으로 가서 뱀을 쏟아내고는 언른 뚜껑을 닫아
버렸다. 다시 열어보고싶은 맘도 안생겼다.
독사를 잡았는데도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떡방아를 찧고, 여전히 이는 꽉 악다물고 있다. 몸도 떨리고...
아내가 격려해 줬다. 조금 안도가 되는 느낌이었다.
잡았으니 됐다 싶으면서도 자꾸 마음이 불안하다. 고무통 안에 뱀이 금방이라도 뛰쳐 나올 것만 같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배추밭으로 다시 갔다. 못다한 추비를 마저하기 위해서다.
질통을 짊어지고 포기사이를 꾹꾹 찔러 비료를 주면서도 계속 머리속엔 뱀생각뿐이다.
왜 나는 뱀을 그렇게 무서워하는 걸까?
사실 아까 잡은 뱀에게서 살의나 살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긴 내가 도인이 아닌담에야 뱀에게서 그걸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뱀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뱀하면 "독사"를 떠올리고, 그건 바로 죽음과도 연결되기 때문일거다.
시골사람 중엔 뱀에 물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고, 죽지는 않았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우를 종종 보고, 또 밭이다 논이다 다니다 보면 사실 어렵지 않게 볼수 있는 게 뱀이기도 하기 때문에 겁도 내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독이 있어 물리면 죽을 수 있다는 정도의 공포감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내게는 아마도 관념적 공포가 있는 듯하다.
그건 경험에 의한 거라기 보다는 교육되어졌거나 어려서 뱀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무의식에 박힐 정도로 공포감을 가졌거나
아니면 종교적으로 뱀은 사악한 동물이라는 관념이 머리속에 박혔거나 한게 아닌가 싶다.
어찌됐든간에 이 계절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뱀을 쉽게 볼수 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며 뱀들이 산으로 올라갈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여름에 비해 길바닥에 차에 깔려 죽은 뱀의 사체가 많이 보이는 시기도 바로 이 때다.
제발 우리집 주변에 뱀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첫댓글 네 모습이 어떠했을 지는 눈에 선하다. 그래도 대단하다. 뱀을 잡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