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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포라는 지명과 석포성당 탄생의 유래 |
<석포란?>
석포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옛날에는 경남 동래군 용주면 석포리이고 용주골이라 불리었다. 용주골이라 함은 지금의 용당 신선대에서 동명불원과 동국제강 앞(현 남구 운전면허시험장)까지를 용같이 생겼다하여 용주골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바닷물이 지금의 시립박물관 앞까지 올라 왔으며 그 당시 우리 성당이 있는 쪽을 돌이 많은 포구(浦口)라 하여 돌개(石浦)라 하였으며 그 후 농부들이 간척지를 개간하여 현재의 마을을 이루었다.
1960년대 초에 돌개 마을(현재 대연4동 동사무소 인근) 위쪽으로 360호의 난민주택이 건립되어 주택지가 형성되었으며 오늘날의 대연동과 남구 일대가 주택가로 발전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9월에 문현동과 대연동을 잇는 고개(대연고개)가 절하되고 범일동과 해운대간의 포장도로가 신설되면서부터이다.
<석포성당 탄생>
지금의 석포성당 자리는 대연성당 초대 주임신부이셨던 이탈리아의 범덕예(프란치스코) 신부님(1961. 4 대연성당 부임, 2007. 8. 15 이탈리아 바르보짜 요양소에서 선종)께서 성당터를 조성하여 이루어졌다.
1983년 12월 성당 가건물(현재 대강당) 준공, 1984년 1월 사제관(지금의 성전터) 준공에 이어서 대연성당과 동항성당 관할구역 일부에서 분리되어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지 2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인 1984년 2월 7일 천주교 석포성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 김두완 아우구스티노(현 부산평화방송 사장) 신부님께서 부임하셨고 한국의 순교성인이신 현석문(가롤로) 성인을 주보로 모시게 되었으며 1985년 봄에 석포성당 건립준비위원회가 발족되어 당시 사목회장을 역임하던 박우춘(다미아노) 초대 본당회장님께서 위원장을 맡으셨고 사목위원들이 준비위원직을 맡았다.
성전건축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대부분 김두완(아우구스티노) 신부님과 당시 건축을 담당하신 김정길(파우스티노) 형제님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성전공사는 1985년 10월 건축허가를 득하여 동년 10월에 착공식을 갖고 4년 1개월에 걸쳐 공사를 진행하여 1989년 11월에 준공하였고 성전 축성식은 1990년 5월 2일 당시 교구장이셨던 고 이갑수(가브리엘) 주교님을 모시고 기념미사와 함께 축하식을 개최한 이후로 30년의 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