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5일(음력 5월 5일)은 14년 동안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집에서 못난 남편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온 안사람의 41번째 생일이었다. 해서 무슨 특별한 선물을 해야될 것 같아서 고심하던 차에 교원공제회 교원나라에서 휴대폰 이벤트를 한다기에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신청하여 선물을 했는데, 운 좋게도 백두산 여행에 당첨되는 행운을 잡았다.
백두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민족 혼이 살아 숨쉬는 영산! 교원나라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한 순간 무조건 '가자'라고 결정하였을 때의 그 벅찬 희열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안사람 덕에 당첨되었으니 같이 가자고, 같이 가기로 하였지만, 안사람의 오른쪽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안사람은 물론 나까지도 못 갈 뻔하였으나, 안사람은 철심 두 개 박아 부러진 뼈 조각을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고 통증으로 끙끙거리면서도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느냐며, 혼자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면서 등을 떠밀다 시피 권하여 염치없게도 병원 침상에 안사람을 뉘어놓고 중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병간호를 부탁한 후 혼자만의 백두산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북경 공항에 8월 10일 15시 경 도착하여 연길행 비행기를 두 시간 가까이 기다릴 때는 지루하고 답답하여 여행을 시작한 것이 은근히 후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연길에 도착하고 묵을 호텔에 들어서자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일 있을 백두산행이 무척이나 기다려지기 시작하였다.
내 일생에 있어 역사적인 날인 8월 11일 현지 시각으로 04시 20분에 모닝콜을 받고 룸메이트인 대전 대덕대학의 김대규 교수와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단한 짐을 꾸려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연길 출신의 가이드가 "오늘 같은 날씨면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는 확율이 80%가 넘는다."라고 하자 버스에 동승한 모든 선생님들은 천둥이 치는 것 같은 큰 박수로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정오가 거의 되어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였으나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버스 안에서 경험 많은 가이드는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는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뭉개버리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온천욕을 먼저 하고, 웅장한 자태의 장백 폭포를 룸메이트인 김교수와 사진을 찍으며 감상한 후, 비가 거의 그치자 16시 경 천지를 왕래하는 짚을 타고 드디어 천지로 향했다.
구불구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산길을 20여분간 타고 오르니 나무라고는 하나 없는 탁 트인 구릉에 도착하여 정상을 바라보니 흰 구름에 가려서 도무지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곳까지 와서 겨우 20여분 정도만 정상에 머물 수 있다는 것도 아쉬웠지만, 구름에 가려 천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상으로 옮기는 발길이 더 무거웠다.
겨우 100여 미터 정도만 올라가면 백두산 정상이며 천지가 보이는 바로 그곳이었지만 숨이 턱에 차고 발이 무거워 꽤나 힘들었다.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져 노랑색 비옷을 입고, 비에 젖지 않게 카메라를 비옷 속에 감추고, 그렇게나 보고 싶어했던 그 천지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처음 한동안은 그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이내 신의 축복인 듯 구름이 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바로 그 자리에 검푸른 색의 천지가 언듯언듯 보이더니 어느 한 순간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보이기도 하여 천지를 보러 그곳까지 올라온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그칠 줄을 몰랐다.
아! 백두산 천지!
처음 몇 분 동안은 구름에 가리워져 다시는 천지를 못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그 무엇인가가 머리를 한 대 후려친듯, 필름에 천지를 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 사진이 필요하면 전문가가 잘 찍어 놓은 사진을 몇 장 사면 되지. 하지만 이 기쁨, 이 환희는 언제 다시 느낄 수 있는 거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셔터 누르기를 중단하고 우리 동포들이 살고있는 북한 쪽의 하늘과 북한 쪽의 백두산과 천지를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기원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 저를 이곳까지 불러주신 것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곳에 올 때까지는 백두산 관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이곳 정상에 올라보니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와 아니 여기에 있는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7천만 동포들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통일을 저도 이곳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그 옛날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그들이 누렸던 영화를 머지 않아 통일된 조국이 다시 재현하기를 기원합니다."
그 벅찬 환희와 감동, 그리고 통일의 염원을 뒤로한 채 천지를 내려오기는 정말 싫었지만, 짚차를 기다리고 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민족의 통일과 무궁한 번영을 계시라도 하듯이 찬란하고 커다란 무지개가 우리를 감싸 안 듯이 드리워져 있어 가슴 뭉클한 감회에 다시 젖어들었다. 하느님이 기도를 들으신 것일까?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조금 전에 보았던 그 찬란한 무지개와 조국의 통일과 발전...이런 생각들로 가슴 벅차올라 불끈 솟는 기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하였다. '언젠가 멀지 않은 장래에 부득이하게 동행하지 못했던 안사람과 아들과 함께 다시 돌아와 오늘의 이 감격과 환희를 함께 하리라.'고...
그 후에 보았던 만리장성과 용경협, 천안문과 자금성, 그리고 이화원 등도 잊지 못할 명승이요 고적이었지만, 백두산 천지에서의 그 가슴 벅차오름을 따를 수는 없었다.
끝으로, 중국 여행 6일 동안 룸메이트로서 같이 식사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우정을 나누었던 대덕대학의 김교수에게 안부 전하며, 우리의 안전한 여행을 위하여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신 교원나라 관계자 여러분과 여행사 직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