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노의 아베마리아.hwp
정 야고보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Jacques Chastan).hwp
위령성월과 아베마리아
(구자명 임마꿀라따 / 소설가)
가톨릭 신앙인들에게 11월은 위령의 달입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여 위로하고 그들 영혼과의 통교를 위해 기도하고 묵상하는 계절입니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의 계절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이 위령의 달이 더구나 가슴에 사무칠 것입니다.
나도 11월에 떠나보낸 가족이 셋이나 되고 정다웠던 지인도 몇 분 잃었습니다. 그래서 낙엽이 소리 없이 지는 가로수 길을 걷거나 황금빛 노을 사위는 저물녘 창가에 서면 내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기도와 함께 어떤 선율의 울림을 느낍니다. 망인(亡人)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각기 다른 기도가 떠오르지만 끝에 가서는 늘 같은 선율 속에서 같은 기도로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 기도문은 다름 아닌 성모송이고 선율은 구노의 아베마리아입니다.
성모송을 혼자 있을 때 조용히 읊게 되면 내 귀에 자동적으로 울려오는 음악이 있습니다. 아베마리아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함께 나의 심금을 가장 울리는 것이 구노의 곡입니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아베마리아는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 가사가 애절하여 더더욱 많은 사랑을 받아온 곡입니다. ‘아베마리아 / 아름다운 처녀여 / 방황하는 이 내 마음…….’ 하고 시작하는 이 곡은 어찌 보면 연인에게 호소하는 것 같아 어느 정도 세속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보다 승화된 슬픔과 숭고한 사랑의 분위기가 가득한 성가여서 세상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그 곡을 불러내는 듯합니다.
구노가 성모송 전문을 그대로 노래 가사로 만든 이 유명한 성가를 작곡하게 된 계기는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 성가 대장이었던 구노는 사제였던 어릴 적 친구, 앵베르 주교(103위 순교성인,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조선교구 초대주교,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순교)의 순교 소식을 듣고 성모상 앞에 엎드려 목 놓아 울다가 영감을 받고 이 곡을 지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닌 앵베르 주교와 구노는 둘 다 음악 영재로서 선의의 경쟁을 하던 사이였는데, 성장하여서도 음악의 길을 계속 간 구노와 달리 앵베르는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사제로서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1836년 조선에 온 그는 3년만인 기해박해 때 성 모방, 성 샤스땅 신부와 함께 순교했습니다. 구노가 친구 앵베르를 비롯한 조선의 순교자들을 기리며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 제 1 번의 아름다운 선율에 자신의 멜로디를 그려 넣어 탄생시킨 불후의 명곡이 ‘구노의 아베마리아’인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쓸쓸한 계절, 낙명귀천(落名歸天)하는 영혼들에게 위령기도를 많이 바치렵니다. 그리고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많이 들으면서 스스로도 위로를 받으렵니다.
(연중 제32주일 / 2009.11.8 대구 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