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바흐를 필두로 하는 독일 음악 전통의 특징은 다성적, 대위적 작법이라 여겨져 왔다. 하지만 독일 음악 전통 내에서도, 바로크와 낭만이라는 음악사 두 시기가 지닌 연관성은 푸가 기법들(주제-응답, 스트레토, 에피소드)과 실잣기(Fortspinnung) 같은 바로크 시대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음악 기법들, 다시 말해 특정 소재의 등장과 재등장이라는 '반복'의 측면에서 더욱 설득력 있게 설명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바흐를 추종하고 그의 음악을 낭만시대의 새로운 음악어법으로 해석해냈던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반복의 양상을 추적해 보고, 이것이 19세기 후반 음악관의 변화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연구의 첫 부분에서는 슈만의 음악에서 ‘반복’이 왜 중요한 이슈가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양한 슈만의 일차문헌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그의 음악에서 등장하는 반복의 양상을 정리하여 특정 요소의 반복이 그의 음악작품에서 얼마나 양식적으로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19세기 중반 '절대음악'과 음악에서의 형식미학의 형성에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규명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브람스, 리스트, 바그너 등의 후기 낭만 작곡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정 요소의 변형된 재현(브람스의 '발전하는 변주', 리스트의 '주제 변형', 바그너의 '유도동기' 등의 개념)이 슈만에게서 나타나는 반복의 양상과 어떠한 연관을 갖는지 조망해 본다. 궁극적으로는, 독일음악의 특성을 다성적, 대위적인 전통에서 찾기 보다는, ‘반복’과 같은 인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작품 구성 원리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바라봄으로써, 슈만의 음악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반복’의 양상이 독일어 문화권의 낭만시대음악을 관통하는 주요한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히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