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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5/28 09:35
조회수 : 409
알프스 등반기(5)
그 이름도 유명한, 그 대단한 체르맛트에 도착했다. 너무 기대를 해서인가, 알라스카의 탈키트나, 파타고니아의 칼라파테처럼 그림 같은 동네는 아니더라도 샤모니나 꿀르마이어 같은 깨끗한 산악도시를 기대했었는데, 조용한 산악 휴양지 보다는 외국인들로 시끌벅적한 한낱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 보다 물가가 더 비싸고, 별로 좋지않은 인심, 기대보다 못한 풍경, 그리고 살고 있는 땅덩어리 덕에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나라라는 이
유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스위스. 그 때문인지 스위스라는 이 거대한 산 동네가 영 정이 들지 않고 어색한 자리에 있는 손님처럼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이미 많은 일정을 샤모니에서 소비했기 때문에 남은 일정을 최대한 빨리 마터호른 등반을 마치고 알프스 3대 북벽중 가장 어렵다는 아이거 등반을 위해 투자 하기로 했다. 그래서 체르맛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등반준비를 해 훼른리 산장으로 올라가 비박 후 그다음날 이른 새벽에 등반을 감행하였다.
설벽을 모두 끝내고 3피치나 갔을까? 서양애들이 먹는 길쭉하게 생긴 불면 날라 갈 것 같은 찰기가 없는 날라미 쌀처럼 바위들이 머리위로 오버행을 이루며
언제라도 떨어져 내릴것 같이 위태롭게 붙어있다. 공사판의 쌓아논 자갈들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듯 작은 자갈이 아닌 몸통 만한 바위들이 머리를 거꾸로 하고 나와 상건이를 쏘아 보고 있다. 투우에서 황소가 전진하기 위해 발을 몇번씩 구르며 워밍업을 하듯이 작은 돌가루들을 후두둑 후두둑하고 떨어 뜨리면서....
아니나 다를까 상건이와 내가 서있는 곳으로 엄청나게 큰 바위덩어리가 바로 우리 머리위로 떨어진다. 통째 맞았다면 무사하지 못했겠지만 약 5m 정도 머리위의 암벽에 부딪히며 깨져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데 그 파편조각이 떨어지며 상건이의 윗입술을 정확히 2등분으로 갈라 버린다. 피가 엄청나게 흘러나온다. 다급히 훼른리에 있던 미애에게 무전으로 조난을 알리고 구조대를 불렀다.
얼마 안있어 구조대원 한명이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우리와 함께 하켄에 자기 확보를 하고, 현재의 확보물을 더 튼튼히 보강한다. 무전으로 뭐라 말을 계속하더니 상건이가 먼저 헬기로 구조된다. 상건이를 훼른리 산장에 내려준뒤 다시 돌아와 2피치 밑에 있던 현조와 승현이를 구조해 간다. 다시 상훈이와 경준이,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 마지막으로 우리 세명을 한꺼번에 엮어서 달고 날아오른다.
줄에 메달려 허공으로 몸이 붕 뜬다.
참담하다.
아, 이렇게 구조가 되는구나! 등반도중 구조를 당한다는걸 용납치 않았었다. 심한 자격지심이 들며 운명이니 징크스니 별 생각이 다 든다.
멀어지는 마터호른을 보며 헬기 구조되는 등반가로서의 내 초라한 모습과 죽지 않고 모두 무사히 내려간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교차한다. 그 와중에 우리가 올라온 루트가 정확한지 등반선을 그려보며 우리가 얼마만큼 올라 왔었는가를 가늠한다. 흥분됐던 마음이 점점 진정되며 우리가 올라갔어야 될 등반루트를 재빨리 확인해 본다. 다시 오지도 않을건데...
악몽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구조대는 우리를 훼른리 산장앞에 내려주고 바로 상건이를 헬기에 태워 체르맛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비습의 병원으로 후송했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스위스 구조대의 활약을 보고 부정적인 스위스의 이미지기 바뀌는 순간이다.
현조에게 아이거 등반을 포기하고 상건이의 부상정도를 봐 그때, 이후의 일을 결정하자고 말하고 체르맛의 야영장으로 걸어 내려왔다. 모두들 야영장에 도착해 힘없이 텐트앞에 주저앉아 앞으로의 일을 논의한다.
일단 나와 미애는 지금 간단한 짐만챙겨 상건이가 입원해 있는 비습의 병원으로 먼저 내려가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짐을 챙겨 내일 비습의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미애가 짐을 챙기러 텐트 안으로 들어 가려는데,
" 어? 종국형 텐트안에 누가 있어요"
"................!"
" 상건형? 상건형이 텐트안에 있어요"
"뭐?"
모두들 놀라서 텐트앞으로 가보니 상건이가 텐트안에서 자고 있다.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있어야 될 놈이 어떻게 지금 텐트안에 있을수가.....? 상건이를 불러 깨워본다.
"상건아!", "예...."
대답을 하고 텐트 밖으로 기어 나오는데 그러쟎아도 덩치가 큰놈이 머리는 부시시하고 얼굴은 팅팅 부어서 기어 나오는게 정말 한마리의 곰탱이 같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벌써 야영장으로 돌아와 우리가 훼른리에서 걸어 내려오는 동안 기다리다 텐트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치료는 어떻게 했냐? "
"그냥 꼬매고 주사맞고 열흘정도 있다가 실밥 풀면 된다고 가라 글데요... 나도 걱정돼서 병원에 더 있고 싶었는데 이건 아픈거 취급도 안해요. 더 있으면 쪽팔려서 왔어요"
정말 다행이다. 천만다행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현조에게 아까 말했던 아이거 북벽 등반의 포기결정을 너무 빨리 내린걸 후회하며 모른척하고,
"자, 빨리 여기서 뜨자, 아이거 해야지?" 하니 모두들
"예"
오히려 잘됐다. 이렇게 안전하게 빨리 하산할수 있어서. 팀의 전력에 손상이 가지 않으면서 마터호른도 등반해보고 덕분에 헬기도 타보고 날릴뻔한 보험도 써먹어 보고...
"상건이는 아이거 때는 빠져라. 상처 도지면 흉터남아 장가 못가니깐...밑에서 치료 받으면서 우리 등반지원이나 해라."
"형, 나도 할수 있어요. 괜찮아요", '진짜 곰이다'
웃으면서 마터호른을 뒤로하고 미련없이 떠난다.
마터호른에 대한 많은 보고서를 보며 '설마 나에게....!' 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상건이의 부상정도가 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심각한 상항 이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예고없이 떨어지는 낙석을 어떻게 알고 피해간단 말인가. 내가 낙석을 피하는게 아니라 낙석이 피해가기를 바란다면, 재수가 있는 사람은 오르고 재수 없는 사람은 못오른다면 과연 그 봉우리가 알프스 3대 북벽이라는 미명하에 죽음을 무릎쓰고 올라야될 가치가 있는 봉우리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또 오르고 못 오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재수가 없다는 것의 피해정도가 최하 중상에서 사망, 혹은 그 팀이 전원 몰살될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말하련다.- 앞으로 마터호른 북벽은 우리의 등반대상지에서 지워버리자. 마터호른 등반을 위한 심적부담과 노력, 훈련과 정열을 다른 더 높고 어려운 새로운 벽으로 쏟아 붓자 - 라고.....
작성일 : 2002/06/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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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등반기(6)-아이거 북벽①
8월 7일
아이거 북벽등반을 위해 그린델 발트에 도착했다. 일단 가장 저렴한 숙소인 호스텔을 찾아 자리를 펴고 들어간다. 원래 1박을 예정했으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모두들 피로도 덜 풀린것 같고 내친김에 1박을 더하며 휴식과 더불어 아이거 등반에 필요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알프스 거벽의 특성이 거리가 긴 만큼 단숨에 오를수 없으므로, 길을 잃지 않을려면 루트 파인딩이 필요하고, 등반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며, 변수가 많은(날씨로 인한) 알파인 등반에서 자연에 노출된 상태로 최소한의 시간(이제껏 가장 빠른 등반이 아이거 북벽 8시간, 마터호른 6시간)을 소모해야 된다는 건 그에 대한 대비로서 대상지에 대한 사전지식(정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원정을 준비할때, 너무나도 귀에 익은 알프스, 우리집 뒷산 만큼이나 이무롭고 친근한 이름. 그러나 막상 등반에 관한 여러 보고서나 등반기, 어프로치 방법등 알프스 북벽에 관한 자료를 모으려 보니 유익한 정보로서 활용할만한 자료들이 그 이름만큼 많지 않았다. 나름대로 볼 만한 것은 1990년도 진주경상대 알프스등반 보고서였다. 등반의 모험성 때문에 어차피 많은 자료를 원하지도 않았었지만 히말라야처럼 다양하며 제대로 된 보고서가 없음을 느낀다.
우리나라 현대 등산사에서 10년의 세월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다. 너무 많은 발전과 변화 때문에 세계 등산사 20년에 맞먹는다고 나 할까. 과연 10년전 것이 도움이 될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며, 그 10년전 자료를 보며 이미 반세기도 전에 초등정된 3대 북벽의 루트를 오르기 위해 등반정보들을 모으고, 종합하며, 분석하고 좋은 날씨를 계산해 등반날짜를 잡고,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 상황들을 생각해 대책을 세우며 이렇게 고민하는 가운데 한편으론,
가장 발달된 현대식 장비(가벼운 무게, 작아진 부피, 합쳐진 기능들과 내구성, 사용의 간편성)와 여러 기능성 섬유와 소재로 만든 질기고 튼튼하며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의류, 기타 편리한 발명품등 - 이런 비약적으로 발전된 등산장비들과 많은 등반경험(경제의 성장과 교통의 발달로 인한 세계곳곳의 원정경험들), 풍부한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느껴야할 정신적 부담이라는 것은 아이거 북벽 등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등반중 행할수 밖에 없는 노동의 고통을 더 걱정해야 어울리지 않는가? 적어도 초등루트에선...... 그러나 순간 찾아드는 두려움을 느낄때 사자가 토끼를 잡을때도 최선을 다하듯, 어떤 등반이든지 어려움의 경중을 떠나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등반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자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자' 라는 다짐을 한다. 최신식 하드웨어와 10년전 소프트웨어의 아이러니를 느끼며....
초등당시나 6,70년대 등반했던 만큼의 불편함과 고통이 따르지는 않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알프스의 이 3대 북벽은 똑같은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왜?
애써 이유를 생각해 본다.
평균경사 60도 이상, 수직고도 1000m가 넘는 벽은 지금도 결코 쉽지 않으며 짧은 벽이 아니다. 이런 큰 벽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같은 자연조건을 가지고 그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성일 : 2002/06/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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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등반기(6)-아이거 북벽②
그랑드 죠라스에서는 대원 전원이 한팀이 되어 순서대로 등반을 했다. 선등의 부담없이 순서대로 자기 맡은 일만하며 쭉 따라 올라 갈수 있었으나 인원이 많은 관계로 자일워크와 후등자 안배 때문에 속도가 느린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마터호른에서는 낙석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빠른 등반을 요해 팀을 2조로 나누어 운행을 했다. 경준이와 상훈이, 내가 A조였고 현조와 상건이, 승현이가 B조였다. A조가 1시간 간격을 두고 먼저 출발했으나 등반을 하다보니 서로 다른 조인 나와 상건이가 톱과 후등자로서 결국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낙석이 떨어졌는데 위에 있던 상훈이와 경준이가 먼저 보고 낙석을 외쳐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몸을 빨리 피할 수 있어서 큰 부상으로부터 모면할 수 있었으나 낙석의 위험을 실제 당해보니 이제는 등반중 낙석의 걱정이 제일 크다.
그래서 아이거에서는 더 빠른 등반을 위해 아예 2명씩 3조로 나누기로 했다. 그랑드 죠라스등반시 여러명이 같이 등반하면서 필요없는 시간을 줄일수 있다면 우리도 단둘이 파트너로 등반했을때 북벽등반도 하룻만에 가능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안전과 여러 이유로 망설이고 있을때 현조가 팀을 2명씩 나누어 등반하자고 건의를 한다. 그렇게 하기로 흔쾌히 결정을 내리고 각 조를 나눈다.
서로의 기량들이 비슷하기 때문에 경험많은 선배와 후배를 묶어 상건이와 상훈이가 A조, 현조와 승현이가 B조, 경준이와 내가 C조로 나누었다. 이제부터는 각자 살기다. 그래서 저마다 그 조의 조장을 대장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현조 대장, 진상건 대장 그 대장들의 대장이니까 나는 총대장, 총대장 밑에 하나밖에 없는 대원이니까 경준이는 자연히 대장으로 승격돼 함 대장이 되었다.
우리 알프스 원정대는 그동안 문제가 돼왔던 비대한 몸체를 함 대장, 이 대장, 진 대장 3명의 대장과 문 총대장, 그리고 2명의 부대장들로 구조조정을 완료하여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고 다시금 투지를 불태운다.
융프라우호로 가기위해 아이거의 거대한 벽 속으로 굴을 파 기차가 다닐수 있도록 갱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 갱도의 아래쪽 시작 부위가 아이거글래쳐 역이고 갱도가 끝나는 지점이 아이스미어 역이다. 아이스미어 역을 지나면 융프라우호에 도착한다. 우리의 야영장은 글래쳐 역에서 약 5분 거리의 아래쪽에 있는 클라이네 샤이덱 역사 바로 위의 언덕이다. 연일 염소들이 방울소리를 울리며 텐트주위를 왔다 갔다 한다.
원래 아이거 북벽의 등반은 T-설계부터 하는데 우리는 많은 인원때문에, 그리고 안전한 등반을 위해 아이스 미어와 글래쳐 역 갱도중간에 있는 아이거 봔트역의 북벽쪽으로 뚫린 창을 통해 등반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거 봔트역까지 기차표를 구입할려고 하니 갱도 중간에서는 내릴수 없다고 한다. 최소한 아이스 미어까지는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타 보고서에 나와있지 않은 사항이다. 그전 팀들은 분명 표를 구했다 라고 표기가 돼있는데 왜 올해는 안 판다는 것인가. 혹시 아이거봔트의 밖으로 통하는 갱도입구를 막아 버린 것은 아닐까. 봔트역까지 갔는데 만약 그렇다면 다시 아이거 글래쳐의 갱도 시작지점까지 걸어 내려와 T설계부터 등반하는수 밖에 없다... 만약 글래쳐역의 갱도시작지점 입구철문이 닫혀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문다.
8월11일
미애가 융프라우호까지 구경도 할겸 표 검사는 어느 구간에서 하며, 비박을 위해 아이거 봔트역은 어떻게 생겼고 화장실에는 물이 나오는지 등을 알기위해 혼자 정찰을 다녀왔다. 아이거 봔트는 아주 넓어서 비박하기가 좋고 화장실에서 물도 나오니까 국도 끓여 먹을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표 검사는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아이거글래쳐 구간에서만 한번 검사하고 그 다음부터는 안한다는 것이다. 내려올때도 마찬가지. 그래서 클라이네 샤이덱에서는 아이거 봔트까지 표를팔지 않기 때문에 돈 절약을 위해 아이스미어보다 아이거글래쳐까지만 표를 끊기로 했다.
8월12일
드디어 아이거 북벽등반을 위해 그동안 갈고 닦았던 아이젠과 피켈, 비장한 마음을 저마다의 배낭에 담아 가지고 클라이네 샤이덱역에서 출발전 맥주한잔으로 다시한번 전의를 불태우며, 미애의 "형들, 조심히 다녀오세요" 걱정의 말을 뒤로하고 융프라우호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을 한다.
작성일 : 2002/06/22 09:14
조회수 : 406
알프스 등반기(6)-아이거 북벽③
배낭을 가지고 기차를 타려는데 짐을 따로 실으라고 한다. 벌써부터 계획이 틀어진다. 우리는 최대한 얼굴이 팔리면 안된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5분 거리밖에 안되는 글래쳐 역까지 표를 끊었기 때문이다.
글래쳐 역에 도착전 역시 역무원이 표를 검사한다. 글래쳐 역을 지나 아이거 봔트에 도착, 약 5분간 기차에서 내려 아이거 봔트의 창문으로 밖을 전망할수 있는 시간을 준다.
사람들이 일제히 내리고 우리도 같이 따라 내린다. 우리는 모아둔 배낭을 메려고 짐칸으로 건너간다. 6명이 떼로 몰려가니 당연히 역무원에게 발각. 여기는 내리는 곳이 아닌데 왜 여기서 내리냐고 묻는다.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고 무조건 화장실로만 도망친다. 당황한 여자 역무원은 "쟈스트 모먼트"를 연발하며 표를 보자고 한다. 글래쳐 역을 지났으므로 무임승차인데 이걸 어쩌나, 하는수 없이 글래쳐 까지 끊은 표를 보여줬다. 우리 표를 본 역무원은 한심하단 눈빛으로 우리를 보더니 글래쳐 역은 이미 지나쳤고 여기는 아이거 봔트라고 설명을 한 후 다시 열차를 타라고 한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든지 아니면 융프라우호까지 무임승차로 가려 했는지로 생각한 것 같다.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그 기차에 탄 역무원들은 다 모인다. 다른 승객들은 이미 기차에 모두 타서 창 밖으로 우리를 호기심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고 기차는 우리 때문에 출발을 못하고 있다.
다른 남자 역무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난리다. 이게 웬 국제망신이냐. 안되는 영어로 "좋다(OK), 융프라우호까지 돈을 주겠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거 북벽등반을 하러 멀리서 왔다.(일본이라고 할라다 말았다) 여기가 등반의 시작지점이니 여기서 내리게 해달라." 한번만 봐달라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온갖 애처로운 몸짓과 비굴한 눈빛으로 사정을 한다. 옆의 다른 젊은 여자 승무원이 모두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자기들 끼리 뭔가 수긍의 빛이 보이며 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표정이다. 아마도 그 여자는 우리를 이해 한 것 같다. 아이거 등반을 위해서는 여기서 출발을 해야 되며 이곳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을... 기차는 겨우 출발한다.
일찍 비박을 하기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밥은 미리 해 비닐봉지에 싸왔다. 국만 끓이면 되는데 화장실을 아무리 찾아봐도 수도꼭지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변기통의 물이라도 내려서 사용하려고 물을 내려보니 세제가 섞여 있는 시퍼런 물이 나온다. 미역국을 끓여 밥을 말아 먹으려고 반찬은 조금밖에 안 가져 왔는데 결국 반찬이 모자라 국에 넣을 소금까지 쳐서 겨우 저녁식사를 마쳤다. 미애는 분명 화장실에 물이 나온다고 했는데 여기가 아이거 봔트역이 아닌가(?)...
원래 새벽 2시에 일어나 일찍 등반을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그랑드 죠라스나 마터호른에서는 훤 할때 등반하면서도 길을 못찾고 헤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도 어두워서 길을 못찾고 고생만 하다가 일찍 출발한 보람도 없이 날이 밝아 버릴 것만 같다. 계획을 변경하여 조금이라도 훤할 때 갱도입구도 확인할 겸 선발조가 나가 자일 3동만큼 만이라도 루트 메이킹 작업을 해놔야 될 것 같다. 그런데 갱도를 따라 걸어가다가 기차가 오면 꼼짝없이 대형사고니까 기차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상건이에게 막차가 몇시냐고 물어봤다. 7시가 막차란다.
"7시 막차가 확실하냐?"
"예, 확실해요. 왜요?" 이유를 설명하자
"몰라요"
"왜몰라? 아까는 확실하다 그랬잖아?"
"몰라요, 정말 몰라요" 무조건 모른다고 한다. '이런, 때려 죽일 놈 에라 모르겠다 7시 막차가 맞겠지. 7시까지 기다렸다가 로프 작업하러 나가자' 그런데 7시가 돼도 기차는 안온다. 에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7시 5분에 갱도를 따라 출발한다.
갱도를 걸어가며 기차가 오면 어디로 피해야 하나 온통 그 생각 뿐이다.
작성일 : 2002/10/22 15:16
조회수 : 161
알프스 등반기(7)
아이거 봔트에서 갱도를 따라 밑으로 약 200m정도(정확한 거리는 잘 모르겠다) 내려가니 영어로된 간판이 보인다. 그쪽으로 나있는 조그만 문을 여니 아이거 북벽의 사면으로 나온다. 밑으로 클라이네 샤이덱 역과 알프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 빨리 서두르자 곧 어두워 진다"
저곳 어디가 대충 힘든 크랙 같은데... 일단 가져간 자일 3동만큼을 깔고 그 이후로의 길을 확인 한 다음 아이거 봔트역으로 다시 철수한다.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장비를 챙기고 북벽에 붙어 어제 픽스 지점까지 쥬마로 차근차근 전원 오르고 나니 날이 훤히 밝는다.
말로만 듣던 아이거 북벽, 너무나 쉽다. 그러나 노 자일로 갈 배짱은 준비를 못했기 때문에 어차피 자일을 사용하여 피치를 끊으며 확보를 서로 주고 받으며 올라간다. 그런데 중간 확보물의 간격이 너무 멀어 만의 하나, 실수가 있을 시 크게 추락을 하게 생겼다. 이것이 알파인 거벽의 특징, 어렵지는 않지만 위험하다. 요세미테와 트랑고, 쎄레또레의 벽들을 비교해 본다. 또한 8,000m급 봉우리의 벽 등반도...
벽 등반의 가장 어려운 마지막 목표로 로체 남벽이나 마칼루 서벽, 낭가 파르밧 루팔 대장벽을 꿈 꾸었으나 K2의 남남동릉을 다녀와서 깨닫게 되었다. 8,000m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술을 펼칠 수 있는 단단한 벽도 없고 정상까지 닿아 있는 그만큼 큰 벽도 없기 때문이다. 하켄을 박으면 돌이 부스러 진다. 하켄을 겹쳐 박는 다거나 아주 조그만 확보물들은 설치가 되지 않는다. 단지 티타늄으로 만든 가볍고 긴 나이프형 하켄이 최고였다. 하켄을 박을 때 돌이 부서지더라도 게속 박아 넣어 깊게 고정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2설원을 지나니 고전 루트라 황당할 정도의, 거의 벽 전체를 횡단하는 듯한 신들의 트레버스가 나온다. 상건이와 상훈이가 계속 선두에서 나아가고 현조가 바로 뒤를 따라 가며 꼼꼼히 챙긴다. 경준이는 총대장을 호위하며 승현이와 함께 부지런히 따라간다. 정상 좀 못 미쳐 비박을 하고 다음날 일찍 정상등정후 하산하기로 했다. 클라이네 샤이덱 역이 보이고 염소들의 방울소리가 바로 옆에 있는 양 크게 들린다. 고소를 먹어서 일까, 여기서 베이스에 있는 미애를 전원이 크게 부르면 들릴 것 같다. 하나, 둘, 셋 "미애야" 아무 대답이 없다. 상건이는 아무리 불러봤자 소용 없는데 내가 자꾸 구령을 하고 미애를 부르자고 하니까 할수 없이 했다고 한다. 나는 진짜로 들릴 줄 알고 하자고 한건데... 만약 등반중 중대한 상황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전체를 움직였었더라면하는, 실소가 머금어진다. 고소 때문인가.....(?)
오전 7시 아이거 북벽의 정상에 섰다. 푸른 하늘 맑은 새벽 아침. 보통 정상 등정후 하산을 걱정해야 하는 등반들과 달리 너무 상쾌하다.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급사면의 벽에서 평지의 흰눈을 밟으며 끝났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에, 날씨 또한 화창하기 이를데 없다. 어떤 나쁜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작성일 : 2002/10/22 15:26
조회수 : 241
돌로미테 등반을 위해 이태리의 볼자노로 왔다. 그러나 3대 북벽을 마치며 우리의(아니 나의) 등반열정은 식어버렸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정을 핑계대고
"등반은 상황을 봐서 하기로 하자, 이번에는 돌로미테의 자료수집에 의미를 두고 다음에 오자"고 전부를 꼬신다. 어쩌겠는가...젤 선배가 그럴듯하게 이렇게 하자고 말하는데 거기에 대꾸를 하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 수월하게 모두를 설득시켜 나는 어떻게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재밌게 놀지 궁리한다. 혹시 이제야 이글을 읽은 후배들이 나에게 원망을 할지 모르지만...
볼자노 역에 도착하여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역 앞의 광장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주위에는 술취한 주정뱅이와 깡패같은 놈들이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저희들끼리 떠들고 있다. 황소만한 덩치에 문신에다 술, 나는 잔뜩 겁을 먹고 후배들에게 혹시 시비 걸지 말고 조심하라고 거듭 말한다. 저녁을 먹고 짐을 전부 모아 발 밑에다 두고 잠을 청한다.
얼마나 잤을까...현조의 "도둑이야" 라는 소리에 잠을 깬다. 믿기지 않지만 우리의 짐을 도둑 맞은 것이다. 정신을 수슾하고 잃어버린 것들을 확인해 보니 캠코더와 돈, 등반장비등 꽤 많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어둑어둑한 공원을 수색하며 공원 여기저기 흩어져 자고 있는 이태리의 부랑자들을 보니 전부 죽여 버리고 싶다. 어젯밤과는 반대로 어떤 놈이든 시비만 걸어라. 다 박살을 내줄 테니까. 마피아가 와도 소용없다.
트레 치메를 향해 올라가는데 승현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멍청한(?) 승현이는 돌로미테에서는 꼭 선등을 서리라 굳게 다짐을 한 모양이다. 정색을 하며 결의에 찬 표정으로
"형, 여기서는 제가 꼭 톱을 설께요." 하고 컨디션 조절에 정성을 쏟는다.
"승현이가 뭔가를 보여줄려고 한다. 이번에는 잘 해보자"라고 부추키며, 속으로는 "이놈아, 놀다가 집에 갈거야, 등반 장비도 안 챙겨 왔는데..."
돌로미테를 빠져나와 남은 기간 로마와 파리를 여행하며 웃지못할 애피소드들이 많다. 물론 3대 북벽을 등반중에도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기는 했지만...
경준이와 함께 로마 거리를 구경하며 돌아 다니다 한국 여자 2명을 꼬셔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경준이 놈이 자꾸 늑장을 피운다. 혼자 가고 싶지만 어제 그 자리에 경준이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상 함께 가야한다. 그런데 경준이 이놈이 평소에는 잘 씻지도 않는 놈이 하필 아침에 세수한다고 난리다. 평소 일찍 일어나는 놈이 오늘따라 늦잠까지 자고....그녀는 저번에 여행중에도 누군가와 약속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오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하루를 버렸다는...그래서 이번에는 정확한 시간에 안나오면 그냥 가겠다는...애타는 내 마음을 이놈은 아는지 모르는지...재촉하여 겨우 숙소를 빠져나와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정확히 약속시간 정각이다.
아무리 찾아도 그녀는 없다. 정각까지 안오니 가버린 모양이다. 내가 엊저녁 오늘의 설레는 마음에 잠 못자고 설계한 핑크빛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버린 것이다. 경준이 이놈...원정대를 위해 여지껏 잘 했던 공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날 심한 실망감에 꼴도 보기싫은 경준이 놈을 내팽겨 치고 혼자서 할 일없이 로마 시내를 어슬렁 거린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인사를 건넨다. 아, 작년 K2 등반때 혼자 훈자까지 배낭여행을 왔던 아가씨였다. 1년이 지난후 또 다시 집 떠나와 이 머나먼 유럽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이번에는 친구와 같이 왔는데 친구가 더 예쁘다. 그날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서로의 일정 때문에 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로마에서 파리로 이동중 괜찮다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현조와 상훈이가 쏘세지를 포도주로 삶아서 간식으로 먹자고 로마 역 구석에서 끓이고 있다. 할수없이 늦지 않게 끓여 가지고 오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차 플렛폼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기차 출발시간이 다 되도 오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빨리 데려 오라고 경준이를 보냈는데 기차가 다 떠나도록 데릴러 간 놈조차 안온다. 할수없이 이번 기차는 놓치고 다음 기차를 타자 결정하고 멍 하니 떠나는 기차를 쳐다 보고있는데 현조와 상훈이가 그 기차에 타고 있는게 아닌가. 이 자식들, 우리가 기차에 탄줄 알고 헐레벌떡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기차에 올라 타버린 것이다. 다시 파리에서 전원이 모이기까지 하루 일정을 까먹어 버렸다. 울화통이 치민다. 그깟 쏘세지 하나 먹을려고 남은 일정 3일중 하루를...
어찌됐든 우여곡절 끝에 우리 알프스 원정대는 무사히 목적한 바를 마치고 산악 선후배님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였습니다. 이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유재선 단장님과 신현이 부회장님, 그리고 이성원 대장님, 박상수 대장님, 임형칠 전무이사님, 알프스 까지 응원와 주신 유재선 단장님외에 주형탁 선배님과 박영수 선배님, 이현길 광주연맹 이사님, 소병현 선배님, 서은호 사무국장님께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밖에도 너무나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우리 알프스 원정대는 정말 의미있고 알찬 원정을 성공리에 마칠수 있었습니다.
등반기간중 유명을 달리하신 미애 할머님의 명복을 빌며 등반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