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와 혜린이가 결혼을 한다니... - 對外經濟貿易大學의 CC
누구나 한 번은 청춘의 좌절을 맛본다. 청우가 그때 그랬는지 모른다. 나에게 찾아왔을 때...어머니는 청우가 이불을 들쓰고 누워있었다고 했다. 추운 겨울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이야기를 했고 짬을 내어 3천$을 들고 북경으로 함께 날아갔다. 청우의 유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이불을 뒤집어 쓸 이유도 없었다. 이 땅에서 갈 대학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을 넓게 그리고 멀리 볼 생각을 안 했을 뿐이다.
사람이란 가르쳐서도 또 설득해서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젊은 청우에게나 이미 늙어버린 나에게나 막 태어난 아기에게나 모두 아집과 그에 따른 응당한 무지가 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잠시 청우에게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는 것뿐이었다.
북경에 계시던 K교수 내외분과 M대학 교수들과 회식자리에 너를 데려갔었다. N대학의 어학원에 자리를 잡아주고 D학의 교수들과 얼굴을 익힌 뒤 돌아올 때 네가 책상위에 맨 먼저 어머니의 사진을 올려놓는 것을 보았었지...
반만년을 교류했고 바다만 건너면 되는 1시간 남짓의 중국이지만 해외는 해외다. 말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황사와 찜통의 더위와 겨울이면 뼈를 찌르는 추위는 결코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또래 학우들이 각양각색이니 어찌 공부에 전념만 할 수 있었겠는가?
짬을 내서 북경에 다녀오면 그 틈을 메우느라 나는 곱절 바빴었지...집안에 이러저러한 일이 생기고 그럴 때 너의 부모님은 자기 집 일처럼 궂은일을 도맡아하셨다. 매한가지로 바쁜데도 말이다. 네 아래 동생 치우는 네 대신 이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그 사이 군대에까지 다녀왔지...
북경에 가면 지질대학에 머물곤했었지... 그러면 너희들이 찾아오고... 그 대학의 백양나무길이 그립구나!
네가 迂餘曲折 끝에 경제를 전공하고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 예쁜 여학생을 소개받았는데 그 친구가 네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다음에 알게 되었었다. 콧날이 오똑하고 하얀 피부에 깊은 눈동자를 가진 이 총명한 아가씨는 사진도 잘 찍고 커피도 잘 끓이고 문학적 소질에 정말 중국어를 잘했었지- 그보다 상냥한 마음씨와 친절한 매너! 才色兼全이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겠지! 부모님이 정말 귀하게 딸을 키웠다는 생각을 거듭 했다. 이 처녀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했다.
어느 눈 내리는 날 나는 마침 북경에 오신 그 어머니를 모시고 너희들과 저녁을 하며 조심스럽게 서로 깊이 사귈 수 있는지 의중을 전달했었다.
아무튼 내가 심양의 랴오닝 대학에서 急就章을 번역하고 있을 때 대학을 졸업한다고 논문을 들고 찾아왔었지...세월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 우리는 古宮을 거닐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穿鑿했었다. 징기스칸의 土城에 세운 對外經濟貿易大學에는 지하철이 생기고 운하의 버드나무가 물길을 쓰다듬던 생각이 스쳐갔었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이제 10년 전의 북경의 모습을 그려보기에는 너무 낯설다.
이제 돌아와서 당분간 생활에 전념하면서 전공을 놓지 않고 갈고 닦으면서 실무를 익힌다면 시작은 어렵겠지만 나날이 번성할 것 아니겠느냐?
어머니는 새 아기의 의견을 존중하시겠다고 하시고 아버지는 청우가 성실하니까 오직 건강했으면 하신다. 저녁나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이 부모님들도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난느 아무 걱정을 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현명하고 이미 자립할 능력이 있으니까... 결혼이란 자신의 주장이 서고 의지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이제 뚜벅뚜벅 너희들의 꿈을 살아가기 바란다. 6월26일 토요일 늦지 않게 나도 식장에 나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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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막의 등불 원문보기 글쓴이: 양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