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의 황태자'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쑥스럽고 낯선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근사한 집에서 살아본 적도,
자랑할 만한 것도 내세울 만한 경력도 없는 내가 '황태자'라니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나는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얼마나 높은 곳이었는지
나는 집에 가려면 매번 웃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나는 그 곳이 좋았다.
동네 아이들과 마음껏 산과 개울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겨울이면 내리막길을 따라 신나게 눈썰매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들게 오르던 우리 집 덕분에
축구선수가 되는 오르막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포기하지 않고 내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내가 축구를 하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송종국! 너 축구부에 들어와라!"
우리 학교 축구부였던 박진섭 형의 제안이었다.
그 시절 나는 한창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공놀이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학교의 특활 시간에도 축구를 하고 싶어서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가 바로 축구를 향한
오르막길의 첫걸음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축구화를 신었을 때의 그 감격이란,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마치 축구화에 날개라도 달린 것 마냥 나는 그날
온종일 하늘을 붕붕 떠 다녔다.
축구화를 신고,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내 머리 속에서 이미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유명한 데이비드 베컴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축구 선수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온 후 축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한 게 아니었다.
"야, 송 땜방, 얼른 일어나!"
나는 말 그대로 땜방이었다.
부상 선수가 생겨야만 불리워 지는 내 이름,
축구장에서 아주 가끔 내 이름이 불리면 나는
두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정해진 포지션도 없이 빈곳만 메워야 하는 땜방, 스위퍼,
중앙수비, 오른쪽 윙백에다 플레이 메이커까지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였다.
마치 이집 저집 넘나들며 셋방살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처음 가졌던 축구선수에 대한 커다란 기대와 꿈은
차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 경기가 끝나면
수많은 기자단이 운동장으로 몰려들었다.
플래시가 번쩍이고 운동장은 삽시간에 인터뷰 장이 되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 나와
숙소로 걸어갔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쓸쓸히 걸어가는 동안,
'앞으로 축구를 계속해야 하나?'
'나는 원래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가끔 친구들이
"종국아, 너는 언제 경기에 나와? 너 축구 선수 맞아?"
하고 농담처럼 이야기할 때면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청소년대표였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나는 알아주는 기자도 관객도 없는
무명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기회는 왔다.
화려한 플레이도, 눈에 띄는 실력발휘도 없었지만
94년 배재고시절, 대통령배 고교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력 덕분에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감독의 주목을 받아
올림픽 대표선수로도 선발되었다.
오랜만에 대표선수로서
멋진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전날 연습경기에서 혼신을 다해 그라운드를 달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한발자국도 뛰지 못하고,
'휘청'하고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내 무릎을 파고들었다.
어릴 적부터 약했던 무릎은 축구를 하는 내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축구를 향해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었고,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고 했던가?
휴식과 꾸준한 치료로 재작년 말부터
무릎 통증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고,
나의 가능성을 믿어준 감독님 덕분에
월드컵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지난해 2월,아랍 에미리트 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자체 연습경기를 하고 있는데, 히딩크 감독님께서
내게 호통을 치시며 다가 오셨다.
"Do not play gallery game
(그 따위 보여주기 위한 플레이는 하지 마라)!"
감독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내 플레이에 대해서 심하게 꾸짖으셨다.
그 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전날 심하게 야단을 맞은 나는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님께서 급하게 나를 부르시더니
"종국아, 이번 경기에 한 번 나가 볼래?" 하고 물으셨다.
부상선수를 대신해서 내가 뛰게 된 것이었다.
태극마크를 달던 순간!
내 온몸은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휩싸였다.
나는 어제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러나 전반 24분, 우리 팀은 아랍에미리트의 주마에게
첫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렇게 질 수는 없다!'
나는 한 순간도 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몸을 부딪혀 가며 상대선수를 피해 볼을 몰아갔다.
그 때마다 상대선수도 필사적으로 따라 붙었다.
종료 시간이 임박해 오자, 선수들은 점점 더 급박하고
빠른 스피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치열한 대결이었다.
전반 종료 1분을 남기고 있는 시간, 짧은 틈이 있었고,
나는 거의 각도가 없어 보이는 골문을 향해
강슛을 날려버렸다.
"골인!!!"
관중들은 천둥같은 함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동점골이었다.
목이 메이고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운동장에서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외롭게 뛰던 시간이 떠올랐다.
'땜방인 내가 골을 넣다니... .'
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늘 지켜주시던 하나님께
두손을 모아 기도 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 날 저녁, 감독님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말을 해 주었다.
"종국아, 전지 훈련에서
나는 너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네게 기대를 했고,
결국 너는 해냈구나!"
처음 대표팀에 뽑히고,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기가 죽어있는 나를
감독님은 멀리서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무명시절,
땜방 역할을 하면서 익혀 두었던 다양한 플레이가
히딩크 감독님의 관심을 끌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나를 알아주셨다
나는 주전선수의 부상이 있어야
그라운드에 나가는 후보선수였다.
내가 필요할 때 선배들은 나를 향하여
“어이, 땜방!”이라 부르곤 했다.
아무도 내 이름, 송종국을 불러 주지 않았고 땜방이라 불렀지만
하나님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드높여 주셨다.
나의 땜방시절이
하나님의 은혜와 훈련이었다.
주전선수의 부상에 따라 경기에 투입되었기에
일정한 포지션없이 그 때마다 여러 위치를 소화해내야만 했다.
자기 포지션이 없다는 것은 주전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이 한국대표팀을 맡고서
나의 입장은 완전히 바뀌었다
땜방선수가 아닌,
멀티플레이어(만능선수)로!
히딩크 감독님이 원하는 선수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만능선수였기에
나의 오랜 땜방시절이 끝나고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다.
나의 오랜 땜방시절은
이 때를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다.
또한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매일 그 언덕을 오르내리기 위해
숨을 헐떡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지난 날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어릴 적부터 나를 훈련시키셨다.
나는 중요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이 축구를 향한 오르막 길의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르막 길의 한 지점이고,
나는 그 곳을 향해 힘껏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힘들 때 마다 나와 함께 걸어 주셨던 그 분,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을 때에도
나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돌이켜 보면,
고난인 줄로 알았던 일들이
하나님의 훈련이었고,
초라함의 시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긴 터널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셨다.
그리고 은밀히...나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고 계셨다.
여러분,
자신이 초라하다고 주눅들지 마세요.
초라한 오늘은
영광의 내일을 위한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카페 게시글
세미나 및 간증
고난이 유익 했다 ㅡ송종국 축구선수 간증
성문지기
추천 0
조회 20
02.10.29 21:5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