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 여섯 명이란 말이지. 그래, 좋다 그래도 간다"
소수를 위해서도 약속을 지킨다는 걸 보여주고, 신뢰를 잃지 말자는 선생님들의 기특한 의견 일치로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지만 선생님 세 분과 예진이, 도합 열 명이 기꺼운 마음으로
해운대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이동철 권사님께서 삶아다 주신 계란을 까먹으며,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가는 두 시간은
색다른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차 여행은 참 오랜만이네요.
한 십 여 년은 되었지 싶습니다. 짐을 줄이려고 음료수와 과자를 마구 풀어 먹이고 ^^
해운대 역에 도착해 기념 사진 한 방 찰칵! 이때까진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해운대 바다를 향해 걸어 가면서부터 불길한 징조가, 쏟아지는 땀과 함께 스멀스멀 번지더니
바다를 눈 앞에 둔 순간 정말 헉! 소리가 나왔습니다.
서늘한 바람을 따라 파란 바다물결 위로 흰 갈매기가 그림처럼 나는
상상 속의 해운대는 끈질긴 더위에 지쳐 여름 휴가를 떠났는지
갈매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텅 빈 해변에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만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니다. 그 와중에 해수욕하는 사람도 있긴 했습니다. 아이들이요?
해변으로 나가려던 선희샘과 민주샘 태희, 찬혁이가 혀를 내두르며 도망치듯 돌아오는 것을 보더니
그늘에서 그대로 붙박이장이 되더군요.
지난 여름 더위가 촛불 시위차 부산으로 총집합 했다는 뉴스 혹시 떴습니까?
여기가 도대체 9월의 한국이 맞는 건가요?
혹시 지각변동이 일어나 사하라 사막과 부산이 교체된 건 아닌가요?
전 정신과 육체가 분열되어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진기한 사건을 눈 앞에서 체험했습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 용감하게 바다는 포기하고
국제시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을 찾아 걸었습니다.
그 짧은 거리가 어찌 그리 먼지요.
장대비를 맞은 듯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민망하기까지 했습니다.
겨우 도착한 지하철을 타는 순간 전 천국은 이런 곳이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이곳에 초막 셋을 짓자던 변화산의 베드로가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코 내리고 싶지 않던 지하철을 뒤로 하고 또 땀을 길벗 삼아 국제 시장을 찾아 걸었습니다.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어. 부산에 다시는 안 와!"
유민이가 억울함을 토로하는 순간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저도 진심으로 찬성 한 표 던졌습니다.
유민아 그런데 너 지하철역에서 살고 싶다고 한 거 진심이니?
참, 우리 아이들 지하철 처음 타 보는 애들이 몇 명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 ^^;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애들 땜에 이리저리 헤메다 애들 의견을 존중해 겨우 골라 간 파스타 전문점
파스타 한줄기 포크로 둘둘 말아 씹으면서 바글대는 손님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뭘 보고 이렇게 많이 이 가게를 찾아오는 걸까?
정말 의문이 들 정도로 파스타ㅡ는 맛이 - 없었습니다. ㅠㅠ
저만이 아니라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니 제가 까다로운거 아니냐는 의문부호는 달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윤민주 샘과 김선희 샘에게 물어보시면 확실한 증언을 해주실 겁니다.
파스타 껌벅 죽는 우리 채린이가 맛없다고 반 이상 남겼으면 얘기 끝난거죠 뭐 --;
창 밖으론 대찬 소나기가 쫙쫙 쏟아지고 아, 날. 잘. 못. 잡.았.다.
맛집 검색하고 들어 올 걸 늦은 후회로 탄식하며, 씹어 삼키는 파스타는 정말 눈물 났습니다.
투명한 비닐 우산 몇 개 사서 둘씩 짝지어 쓰고서 국제 시장을 배회 했습니다.
이번엔 땀과 빗물이 범벅이 되어 저를 민망하게 했지요.
그래도 부산 오뎅은 정말 끝내주게 맛있었습니다.
배가 불러 비빔 당면을 먹지 못 한게 좀 아쉽긴 했지만
뭐 딱히 살건 없고 부산오뎅 두 봉지 사가지고
터덜터덜 부산 타워를 찾아 다시 힘겨운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와중에도 주일 날 부산 오뎅 넣어서 떡볶이 해달라는 귀엽고 깜직한 유민이와 선화.
그래 교회만 나와라 그깟 떡볶이 몇 번은 못해 주랴. 고개 까닥 거리며 빠져나온 시장 어귀
갈 길을 몰라 사람들 붙잡고 물어물어 타워를 찾아갑니다.
딱히 꼭 가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 그래도 이유 불문하고 걸어 갑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렇게 많이 걸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늘 부모님들 차 타고 다니고 잘 발달된 대중 교통에 익숙한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걸어봤겠습니까?
지쳐서 한 숨을 내 쉬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부산 근대 박물관 ! 저 곳에 쉼이 있으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바로 저 곳이리 싶어
표정 구겨지는 아이들을 끌고 당당하게 들어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 휘몰아치는 시원한 바람과 친절하게 맞아주는 박물관 직원들.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방명록에 사인하고 앉을 곳을 찾다보니 눈에 뜨이는 영상실.
길게 놓여져 있는 의자마다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드러 눕는 모습을 보고
애들아 그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여긴 박물관인데
지성인으로서의 품위와 도리가 있지 최소한 일어나 앉아 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잖겠니?
하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너무 지쳐 입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도 아이들의 자리 펴고 드러누움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지위와 품격를 고려해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꼴딱꼴닥 그 눈치없는 젊음을 부러워하며 영상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건물이 일제시대 우리 민족수탈에 가장 앞장섰던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이라고 하네요.
미문화원으로 사용되다 방화사건 이후 근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내가 지금 역사의 한 가운데 서있다는 소리? 감격스러워 아이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저의 같은 감동을 아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 ....
스마트폰에 폭풍 몰입하여 빛의 속도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아이들이 제 시야를 가득 채우는 순간
제 착각은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며 울분만 남겨 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이 세상에 발명되지 말았어야 할 물건을 하나 꼽으라 한다면
단언코 스마트폰을 가르킬 것입니다.
울 딸에게 대화 단절을 시킨 원흉이요. 독서와의 결별을 선언하게 하고
공부와의 담을 높이 쌓도록 조정함으로서
제가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든 저 괘씸한 스마트폰을! 말입니다.
화면에서는 6,25 전쟁의 비극적인 눈물과 포성이 작열하는데 울 아이들은 눈도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고2답게 찬혁이와 태희는 관심을 가지고 박물관을 관람하네요.
3층까지 돌아보고 박물관을 나와보니 헐 ~ 부산 타워가 바로 코 옆에 있네요.
생각보다 비싼 표를 끊어서 아이들만 올려 보내고
나무 그늘에 앉아 비둘기들과 하염없이 눈을 맞추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하고
필리핀 아이들을 돕는다는 듣보잡 NGO단체 소속의 재미있는 말투의 젊은이에게
선희샘이 소소한 기부를 해 보내고 집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나누는 참
구경을 마친 아이들이 내려 옵니다.
올라가던 길에 성당 앞에서 만난 뽑기를 반드시 해야 겠다는 녀석들 땜에
다시 뽑기 아저씨를 찾아 가던 중 길을 잘 못 들어 또 한참 헤매고,
행복한 얼굴로 설탕을 녹여 굳힌 조각에 하트를 새겨 뽑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
저도 행복해져 피긋 웃고 나니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헉! 저 길을 다시 돌아 가야 한다고?
저 산을 다시 올라가서 타워의 정문으로 가 내려가야 한답니다.
헉헉 거리며, 뽑기를 하겠다고 우기던 놈들에게 인상 한 번 써주고
비틀 거리며 걷는 그 산길은 어찌 그리 험한지요.
뻥 뚫린 포장도로이건만 제겐 스물 다섯에 가봤던 소백산의 그 좁고 가파른 산길 같이만 느껴집니다.
그때는 젊고 날렵하기나 했지 이 나이에 이 몸을 하고 내가 .......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한다고?
아,이제 십대 아이들과 어울리기엔 내가 너무 나이 들었음이야.
갑작스런 깨달음이 체력저하를 동반하고 불쑥 다가왔습니다.
줄의 꼴찌에 서서 겨우 달랑거리며 쫓아가 지하철을 타는 순간
다시 한 번 흠뻑 젖은 몸에선 쉰내와 땀내가 진동을 해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저어되어 사람이 없는 빈 공간을 찾아 들었습니다.
다행히 빈자리가 나 앉고보니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듯
그 위대하신 스마트폰조차 막지 못한, 잠 삼매경에 빠져든 유민이와 선화가 보입니다.
둘이 기대서 얼마나 달콤하게 자는지 제가 인증샷을 찍어 올려 놨으니 꼭 보시기 바랍니다.
경주 고속 터미널에 도착하니 여섯시가 좀 넘었네요. 그래도 아이들은 나름 즐거웠나 봅니다.
원래 힘들게 고생해야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기억의 한자락에 오래 남지 않습니까.
아이들과 좀 더 친밀해진 듯 해 저도 나름 뿌듯합니다.
그래도 앞으로 어떤 모양이 됐든 여름 여행은 사양하렵니다.
애들아 또 갈까? 기차여행? 이번엔 단풍 구경 갈까나?
첫댓글 사모님 ! 기록하신 글들을 보니 고생도 하시고 애들한데는 잊지못할 큰 추억을 만들어 주셨네요. 우리 애들이 항상 이야기가 우리는 아무데도 안가고 했으니 오늘은 해운대 가자고 해서 초등학교때 해운대 간적이 있었읍니다. 사업을 하다보니 주일날은 문은 닫아도 교회를 가기때문에 아무되도 못갈 형편이였읍니다. 해운대 가셨다니까 옛날 이야기가 나오네요. 그때가서 열압 한빠겠쓰사서 그것 다 먹고 되돌아 왔읍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는 올해갖이 불더위에 다리고 다니면서 맛있는것 사 먹이고 여러군데 구경도 많이 보여주셨네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읍니다. 사모님께서 수고하신것 우리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이루어 주실거예요.
권사님 사랑합니다 ~ 아주 많이요 ~ 그런데 열압이 뭔가요?
새겨 들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계절별로 아이들의 마음을 넓히고 위로하는 하나님 주신 자연과의 어울림이 있으면 좋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