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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이클 올러워캔디
환상적인 신체조건, 매우 빠른 성장세로 1픽의 영광을 차지했다. 하지만 특유의 불성실함으로 발전을 이뤄내지 못하며 최악의 1픽중 하나로 꼽혔으나, 이후 콰미, 베넷등등 후배들의 분발로 꽤나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그래도 최전성기엔 12득점 9리바운드 2블락을 기록하는등 9시즌을 NBA에서 보냈다. 은퇴후 뚜렷하게 근황이 알려지진않았다. 런던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정도.
2. 마이크 비비
밀레니엄 킹스의 야전사령관, 단 한번도 올스타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외일만큼, 훌륭한 기량을 보여줬던 선수다.
2013년부터 고교에서 코칭을 시작해 2014년부터 감독으로 활동했다. 2019년 성추행 혐의로 고교감독직에서 해임되었으나, 이후 경찰은 그를 기소할만한 증거를 찾지못했다고한다. 이후 코칭은 하지않는 듯하고, 21년 BIG3 무대에 얼굴을 비췄다.
3. 라프 러프렌츠
시대를 약~간 앞서갔던, 3점과 블락에 능했던 센터. 데뷔시즌 12경기만을 소화한채 ACL, 무릎부상을 입었고. 이후 커리어동안 루키시즌의 (13.8점)을 넘게 기록한 시즌은 단 한시즌이었다. 2020년 Decorah 고교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4. 앤트완 제이미슨
드래프트 당일 빈스카터와 트레이드되며 바보같은 트레이드로 생각을 하기도 쉽지만, 제이미슨도 결코 띄엄띄엄한 선수는 아니었다. 세번째 시즌 24.9득점을 뽑아내는등 훌륭한 기량으로 올해의 식스맨, 2번의 올스타, 통산 2만득점을 기록했다. 현재 워싱턴의 인사담당으로 프런트에 근무중이다.
5. 빈스 카터
90, 00, 10, 20. 4 디케이드를 뛴 유일한 선수. NBA 역대 최고의 덩커. 6성슈가. 샥스. 많은 것으로 기억할 수 있는 빈스카터는 2020년부터 ESPN에 합류하였다.
6. 로버트 트레일러
130KG이 넘는 거대한 체격을 자랑했던 '트랙터' 로버트 트레일러는 댈러스에서 뽑혔으나, 노비츠키+팻 개러티와 트레이드되었다. 2005년 대동맥 수술을 받았고 이후론 NBA경력을 이어갈수 없었다. 이후로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지속했다. 2011년 아내와 통화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7. 제이슨 윌리엄스
데뷔와 동시에 입이 벌어질 화려한 패스로 코트를 수놓으며 '화이트 초콜릿'의 명성을 떨쳤다. 조금씩 화려함을 줄여가며 안정감을 끌어올려 마이애미에서 우승도 경험했다. 화려한 외모, 플레이스타일과 NBA에서 성공한 모습과는 다르게, 은퇴 이후론 가족적인 소박한 삶을 보내고있다. 샤킬오닐과 꽤 친한사이로 오닐은 그의 지프를 보고 튜닝샵에 자신에게 맞는 지프를 의뢰하기도 했다.
8. 래리 휴즈
클블 르브론의 사이드킥 찾기 공모전 최종선택 래리휴즈. 이 공모전의 결과는 르브론의 GM화를 앞당기는 결과를 불러온다.
2014년부터 농구캠프를 운영,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아카데미를 운영중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알 해링턴과 함께 대마초 사업을 하고있다. 테이텀의 아버지와 고교~대학 동료로 제이슨 테이텀의 대부이기도하다.
9. 덕 노비츠키
한팀에서 21년, 통산득점 6위, 유럽인 최초의 (택배)MVP, 파이널 MVP,, 3점슛 챔피언, 8인의 180클럽 멤버중 하나, 사기더웨이.
대단한 커리어를 보낸 노비츠키는 22년 매버릭스에 영구결번 되었다. 자선 테니스 대회에 참가하는등 은퇴한 삶을 즐기고 있는듯.
10. 폴 피어스
나를 거른 팀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던 당찬 신인. 칼빵 맞고 82시즌을 소화한 철인,(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고) 녹색피가 흐르는 남자. 파이널 1차전 화장실이 급했던거 아닐까싶기도한 남자. 은퇴이후 ESPN에서 방송일을 하기도 했으나 인스타 라이브에서 선정적인 방송을 한 후 해고되었다. 22년 암호화폐 이더리움 맥스 관련 소송의 피고로 지목되기도.
11. 본지 웰스
새크라멘토 소속, 플레이오프 무대 스퍼스를 상대로 23.2득점에 1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찰스 바클리의 재림소리까지 들었던 웰스는 킹스의 5년 3850만 달러의 계약을 뿌리치고 FA로 나왔으나, 다음시즌 그가 휴스턴에서 받은 연봉은 2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정작 휴스턴에서는 부상으로 딱 돈 값만 한 것이 아이러니. 10시즌을 뛰고 해외에서 2시즌 더 선수생활을 한 뒤 은퇴하였다. 현재 르모인 대학의 감독으로 있다.
12. 마이클 둘리악
유타 대학의 레전드로, 백업 센터로 10시즌을 보냈다. 05-06 오닐과 모닝의 백업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은퇴후 대학으로 돌아가 물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유타지역의 파크시티 고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13. 키언 클락
수비형 빅맨으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던 클락은 토론토에서 애틀란타를 상대로 12블락을 기록하며 현 토론토 기록보유자이기도 하다. 선수시절부터 코트밖 이슈가 끊이지 않았던 클락은 마리화나소지, 공무집행, 무기소지등 여러 혐의로 재판과 깜빵을 오갔으며, NBA 경력동안 매일 술을 먹었다고한다. 2013년 8년형을 선고받았으나 4년을 살고 출소했다. 그래도 나이를 먹으며 갱생했는지 출소후 별다른 사고소식은 없고, 거주하는 일리노이주 댄빌의 여러 커뮤니티에서 동기부여 강사로 나서고있다.
14. 마이클 디커슨
애리조나 대학에서 비비, 테리와 함께 우승을 차지했던 슈터 디커슨은 2년차 18.2득점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달리는가 싶었으나, 햄스트링과 사타구니에 심각한 부상을 입으며 5시즌만에 은퇴를 결정지었다. 스페인에서 한시즌을 더 뛴 뒤 선수생활을 청산했다. 전 NBA선수 데이비드 웨슬리의 사촌이며, 힌두교 신자라고 한다.
15. 맷 하프링
풋볼선수집에서 태어난 하프링은 출신답게 힘이 좋았다. 말론&스탁턴 시대 직후의 유타를 이끌었으나, 크고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후배들에 의해 조금씩 밀려났다. 현재 스튜디오 분석가로 NBA TV에 합류했다. 아내가 의사로, 금슬이 좋아 5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16. 브라이스 드류
대학시절 기가막힌 역전 3점을 성공시키며 업셋을 기록한 드류는 6년간 NBA에서 활동한후 해외무대로 옮겨가 05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은퇴후 빠르게 코칭 커리어를 시작해 현재 그랜드캐년 대학의 감독으로 재직중이다.
아내가 댄서 출신으로 호크스의 치어리딩을 하기도 했었다.
17. 라도슬라브 '라쇼' 네스트로비치
특출난 기량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체격의 정통센터로 스퍼스에서 주전으로 나서 우승을 한차례 차지했다.
2014년부터 슬로베니아 농구연맹 사무총장직을 수행중이다. 그리고 루카 돈치치의 대부이다.
18. Mirsad Türkcan 미르사드 투르칸?
NBA에 들어온 최초의 터키선수로, 로케츠에서 드래프트 되었지만 직장폐쇄로 데뷔가 늦어졌고, 99년 닉스에서 데뷔하여 2시즌만을 뛴 후 NBA에서 여정을 마쳤다. 11년 터키컵 결승에서 전방십자인대 파열부상을 입어 12년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05년 미스 세르비아 출신과 결혼했으나 12년 이혼했고, 15년 다시 미모의 여성과 결혼했다. 현재 축구선수들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고한다.
19. 팻 개러티
커리어 .398의 3점슛. 3점슛 대회에 두번 참가했을만큼, 3점슛은 괜찮았던 스테레치 빅맨이었다. 이 무기로 10년간 NBA에서 뛸 수 있었다. 현재는 디트로이트의 보조 GM을 맡고있다.
20. 로션 맥로드
3시즌을 뛰고 큰 부상을 입어 빠르게 선수생활을 마쳤다. 곧 코칭커리어를 시작해 2016년까지 지도자로써 시간을 보냈고, 이후에는 부동산 중개인, 트레이너, 사업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 부상으로 인한 은퇴가 겹치며 우울증을 8년간 앓았으며, 아내가 버팀목이 되어줬다고.
21. 리키 데이비스
연속 트리플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자기편 림에다 슛을 던졌던 선수. 그것만으로 기억하기에는 꽤나 훌륭한 기량을 보여준 선수이다. 괜찮은 득점력과 패싱능력으로 보스턴 시절엔 유력한 식스맨상 후보까지도 올랐었다. 09-10 까지 12시즌을 보낸후 은퇴했다. 2018년 BIG3의 득점왕을 차지했다. CBD매장을 오픈했으며, 코로나 시국동안 FEED YOUR CITY 라는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많은 도시에 식료품을 제공하는 활동도 하였다.
22. 브라이언 스키너
13시즌의 커리어 동안 수집한 유니폼만 10개. 저니맨이었지만 신뢰할만한 선수였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두 딸, 에이버리와 메디슨은 모두 배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23. 타이런 루
선수로 루는 하위권의 스타팅, 플옵팀의 백업 정도의 선수로 11시즌을 뛰었다. 쓰리핏 레이커스의 일원으로 2개의 반지를 챙겼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버슨을 상징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11년부터 코칭 커리어를 시작해 14년 클리블랜드에서 처음 감독직을 수행한 해 우승을 차지했다. 팬들에게 큰 인정은 받지 못하지만 결과적으론 현재까지 1번의 우승, 3번의 파이널 진출, 클리퍼스 최초의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이끌었다.
24. 펠리페 로페즈
르브론 이전의 르브론, 도미니카 조던, 대학 데뷔 이전 스포츠 일러스트의 표지를 장식한 로페즈는 고교시절 역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선수중 하나였다. 하지만 피어나는 속도가 빨랐지, 고점까지 높지는 못했고 짧게 NBA선수 생활을 한 뒤 11년까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9년엔 그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더 도미니칸 드림'이 나오기도 했다.
25. 알 해링턴
고졸로 리그에 입성, 4년차부터 성장가도에 올랐다. 인디애나는 당시 해링턴, 오닐, 벤더라는 고졸 빅맨진을 구축해 동부의 강호로 떠오르기도 했다. 괜찮은 공격력을 보여주며 16년간 여러팀에서 뛰었고 2014년을 끝으로 NBA에서 모습을 감췄다. 2017년 트릴로지의 멤버로 BIG3무대에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로팀 '케이프타운 타이거스'의 보조코치로 선임되었다. 대마초 사업에 상당히 진심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있다.
26. 샘 제이콥슨
대학시절엔 팀을 파이널 4에 올리는등 활약했지만, NBA에서 그의 시간은 세 시즌간 68경기에 불과했다. 은퇴이후 농구클리닉을 여는등의 활동을 해오다, 최근 주택 모기지관련 사기로 기소되어 혐의를 인정했다.
27. 블라디미르 스테파니아
조지아 최초의 NBA선수로, 무릎 부상으로 인해 2004년 28살의 나이로 프로에서 은퇴하였다. 이후 학위를 취득하고 사업가로 활동중이다.
28. 코리 벤저민
마이클 조던의 두번째 은퇴이후 들어온 슈팅가드. 호기롭게 마이클 조던 이길수 있다고 떠벌리다가 조던에게 참교육 (11:0, 11:3, 11:9등 스코어는 여럿 말이 나오지만 여튼 조던이 이김)을 당했다. 자신감만큼의 실력은 없었고 4시즌만에 NBA경력은 끝이 났다.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 07-08시즌 대구 오리온스에서 뛸 예정이었으나 십자인대 파열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한채 선수생활을 마쳐야했다. 21년 미국 청소년 대회에서 한국계 선수를 폭행한 선수의 아버지이자 부추긴 아내의 남편, 그 역시 가정 폭력 혐의로 두차례 체포된 경력이 있다.
29. 나즈 모하메드
NCAA무대 켄터키 소속으로 두차례 우승을 경험한 모하메드는 NBA에서도 스퍼스 소속으로 한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5-16 오클라오마시티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정리했다. 무슬림으로, 금식기간에는 10파운드가량이 빠졌었다고 한다.
대학으로 돌아가 2020년 예술과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31 루벤 패터슨
타칭은 되지못한, 자칭 코비스타퍼. 그래도 코트에 터프함을 불어넣는 존재로 JAIL 블레이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10시즌을 뛰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 때문이라 볼 수는 없지만 선수생활 중에도 성폭행시도, 가정폭력, 음주운전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2019년에는 양육비미지급으로 법정에 섰으며, 2021년엔 NBA 건강보험 사취혐의를 가진 선수로 여전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듯.
32 라샤드 루이스
고졸로 리그에 입성하여 레이 알렌의 성실함을 본받아가며 빠른 발전을 이뤄냈다. 시애틀에서 R&R 쌍포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계약을 따내 국내 팬들에게 그의 별명은 연봉조던이 되었다. 거액을 안겨준 올랜도에서의 4년간 평균득점은 매해 꾸준히 하락했다. 기량을 다 잃어버린 12-13시즌 마이애미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까지 뛴 뒤에 은퇴했다. BIG3에 참가하여 우승은 트릴로지에 내줬으나 루이스는 MVP를 차지했다.
36. 저롬 제임스
평범 혹은 그 이하의 백업센터. 당당한 체격은 좋았으나 특유의 불성실함이 문제였다. FA로이드를 풀로 땡겨 펼친 플레이오프 반짝으로 뉴욕은 거액을 안겨줬고 결과는 역시나. 9시즌째인 08-09시즌, 2경기를 소화했고 그게 경력의 마지막이었다. 12년, 15년 해외에서 잠깐 선수생활을 했다. 30cm가 넘는 꽈추를 가지고있다고 알려졌다.
39 래퍼 알스톤
러커파크의 전설 ' Skip To My Lou'. 셰인 베티에이는 그의 별명을 듣고서 다시 악수를 청했을만큼, 길거리농구의 전설이었다. NBA에선 길거리 무브들을 봉인한채 준주전급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현재 농구캠프를 운영 중이다.
41 커티노 모블리
훌륭한 득점력을 보여줬던 선수로 프랜시스와 매우 절친했다. 이른 나이에 심장질환(비후성 심근병증, 93년 사망한 보스턴의 레지 루이스와 같은 병) 으로 은퇴를 결정지었다. BIG3에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21년 코리 머게티의 은퇴이후 팀의 주장을 맡게되었다.
44. 션 막스
뉴질랜드 출신의 농구선수로 11시즌간 230경기 출장, 평균 9.9분을 뛴 평범한 선수였지만 스퍼스에서 우승을 한차례 맛보았고, 11년 은퇴이후 보조코치로써 또다시 스퍼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부터 브루클린네츠의 GM으로 재직중이다.
언드래프티
얼 보이킨스
165cm의 역사상 손꼽는 단신 선수. 상당한 폭팔력으로 2004년 식서스와의 대결에서 연장 팀 21점 중 15득점을 몰아치며 기록을 세우기도했다. (2006년 길제로에 의해 16득점 갱신, 현재 기록은 커리의 17득점) 11-12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여 이듬해 고교에서 감독을 맡아 코칭을 시작, 현재는 UTEP의 보조코치로 재직중이다.
마이크 제임스
2기 배드보이즈 우승팀 멤버이면서 전성기엔 코비와 에이스 쇼다운을 펼쳐 도합 107점을 기록했던 선수였다. (거짓말은 하지않았다) 토론토 시절 플루크 이후엔 다시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백업의 백업가드로 은퇴했다.
사업을 한다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앤소니 카터
불우한 가정환경(십대어머니 마약복용, 7명의 삼촌 수감...)속에서도 농구공을 놓지않았다. 농구를 통해 대학에 갔고, NBA에 낙방했으나 이듬해 마이애미에서 기회를 얻은 뒤로 무려 14시즌을 뛰었다. 은퇴 이듬해 스퍼스에서 코칭을 시작, 현재는 마이애미의 선수개발담당 코치로 있다.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어린시절 과잉행동증후군(ADHD)을 보였으나 농구를 통해 에너지를 분출해서 나아졌다. 유럽 최고의 포인트가드, 리투아니아의 전설인 야시케비셔스는 NBA에서 족적을 남기지 못한채 유럽으로 돌아갔다. 14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마지막 소속팀 찰기리스에서 코칭커리어를 시작해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부터는 유럽의 명문 클럽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았다.
브래드 밀러
블라디 디박의 뒤를 이어 밀레니엄 킹스의 센터를 차지했던, 패싱에 능했던 센터로 05-06시즌 4.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2위가 벤 월러스의 1.9개에 불과했다. 언드래프티임에도 2차례 올스타, 미대표팀 선정등 14시즌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다.
매년 자선골프대회를 펼친다고한다. 19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5밀 이상을 모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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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는데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제가 열심히 본 세대보다 조금씩 위로가면서 글이 잘 안적어지네요. 그래도 천천히라도 올리겠습니다.
와 정성이 느껴지는 글입니다ㅜㅜ 너무너무 잘 봤습니다 :)
본지 웰스는 저도 크게 될줄 알았는데 ㅠㅠ 정성 글 잘 봤습니다 👍👍
98드래프트는 대박이였군요.
노비츠키, 피어스. 카터..
그와중에 캔디맨 '후배들의 분발로 꽤나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ㅋㅋㅋㅋ
제가 영웅시??하는 선수들이 죄다 98에 모여있네요ㅋㅋ역시 저는 아재..
추억의 선수들 근황을 알게되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본지웰스 레인보우 슛터!!
알 해링턴이 저메인오닐과 있던 인디애나가 정말 매력적이었네요..
카터와 트레영니 같이뛰었군요 ㅎㅎ
제이윌은 요새도 운동하는지 슬림하군요
흥미롭고 재미있는 정성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정말 재밌고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넘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사이드킥 공모 ㅋㅋ 추억의 인물들 때문에 기억소환되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적절한 짤방과 찰진 코멘트!!!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추억 돋네요 ㅎㅎ
으어어
??!!
제닉넴이 2005년산 입니다 ㅎㅎ 라쇼의 행방을 들어서요 ㅎㅎ
17년을 내다본 닉네임 ㄷㄷㄷㄷ
곧 칼럼 게시판으로 이동할 게시물입니다. 추천누르고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브래드 밀러가 언드래프티인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업무시간에 정독했네요 ㅎㅎ 좋은글 잘봤습니다!!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연봉조던......
퇴근길에 집중해서 읽으려고 참다가 이제 봤네요ㅋㅋ 네임드들이 많은 드래프티였군요! 캔디맨은 언젠가 성공할줄 알았는데ㅠ 깨알같은 코멘트들도 넘나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선수들이 많긴 많았네요~
은퇴선수 근황 보고싶은데 계속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빵밀러 잘생긴 얼굴 다 오디갔어.
늦은밤 자기전 정독하느라 잠이 다 깼습니다 ㅎ 잘읽고 갑니다^^
매번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나름 네임드 선수들이 많네요.
98년도 짱짱하네요 이런 이야기는 어찌 다 아시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ㅎㅎㅎ
위키를 베이스로 제가 기억하는거 +구글링+인스타+페이스북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선수가 많네요 확실히 ㅋㅋ
언드랲에 이렇게 좋은 선수가 많은 적이 있었을까요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펠리페 로페즈.... 정말 오랬만에 듣는... 레드스톰의 에이스.. 죠지타운의 아이버슨과 쇼다운도 현지에선 굉장히 조명받고 했었는데 미네가서 폭망했죠.. 고교떄 6성가드로 전미랭킹 1위였었는데...이래저래 아쉬운선수...
와 ... 98 뎁쓰 !!!
대부분이 진짜 꼭 슈퍼스타는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아있는 선수들 !!!! 본인 분야에서 다 한자리 했던 선수들이네요
덕분에 추억도 살고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
1번픽이 망이라서 그렇지 그뒤로 선수층이 상당하네요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관련 영상은 정말 감독적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맷 하프링..진짜 추억의 이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