諫逐客書 / 李斯(간축객서 / 이사)
秦宗室大臣皆言秦王曰 諸侯人來事秦者 只爲其主游間秦耳 請一切逐客 李斯議亦在逐中 斯乃上書曰 臣聞吏議逐客竊以爲過矣
“진나라 왕족과 대신들이 모두 진왕에게 말하였다. ‘제후의 나라에서 와서 진나라를 섬기는 자들은 대체로 자기 나라의 군주를 위하여 유세하여 진나라의 군주와 신하 사이를 이간시킬 뿐입니다. 청컨대 빈객들을 모두 내쫓으십시오.’ 이사 또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내쫓을 인물의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사는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이 듣건대, 관리들이 객을 내쫓을 것을 의논한다 하오니, 저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여깁니다.“
昔穆公求士 西取由余于戎 東得百里奚于宛 迎蹇叔于宋 來丕豹 公孫支于晉 此五子者不産于秦 而穆公用之 幷國二十 遂霸西戎
“옛날 목공은 선비를 구하여 서에서는 유여를 융에서 취하고 동에서는 백리해를 완에서 얻었으며, 건숙을 송에서 맞이하고 비표와 공손지를 진에서 오게 했으니. 이 다섯 사람은 진에서 나지 않았으나 목공이 이들을 써 스무 나라를 병합함으로써 마침내 서융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孝公用商鞅之法 移風易俗 民以殷盛 國以富强 百姓樂用 諸侯親服 獲楚魏之師 擧地千里 至今治强
“효공은 상앙의 법을 써서 풍속을 바꾸어 백성들을 잘 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케 하여 백성들이 쓰임을 좋아하고 제후들을 가까이 하고 복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초, 위의 군사를 사로잡고 땅을 천리나 넓히어 지금까지도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강성하게 하였습니다.”
惠王用張儀之計 拔三川之地 西幷巴蜀 北收上郡 南取漢中 包九夷 制鄢郢 東據成皐之險 割膏腴之壤 遂散六國之從 使之西面事秦 功施到今
“혜왕은 장의의 꾀를 써 삼천의 땅을 빼앗고 서로는 파촉을 병합했으며, 북으로는 상군을 거두어들이고, 남쪽으로는 한중을 취하였으며 아홉 오랑캐를 아우르고 언과 영을 눌렀으며 동으로는 성고의 험한 땅을 의지하고 기름진 땅을 떼어내게 하여 마침내 6국의 합종책을 흩어지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서쪽을 항해 진나라를 섬기게 하여 공이 지금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昭王 得範雎 廢穰侯 逐華陽 强公室杜私門 蠶食諸侯 使秦成帝業 此四君者 皆以客之功由此觀之 客何負于秦哉 向使四君 卻客而不內 疏士而不用 是 使國無富利之實 而秦無强大之名也
“소왕은 범저를 얻어 양후, 위염을 폐하고 화양군 후융을 내쫗아 공실을 강하게 하고 사문을 막았으며, 제후들을 점점 쳐들어가 진으로 하여금 황제의 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 네 임금은 모두 객들의 공에 의지하였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객들이 진나라에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만약 네 임금이 객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고 인재를 멀리하고 쓰지 않았더라면 이는 나라로 하여금 부강해지고 이로워지는 실상이 없었을 것이요, 진나라로 하여금 강대하다는 이름을 없게 하였을 것입니다.”
今陛下致昆山之玉 有隨和之寶 垂明月之珠 服太阿之劍 乘纖離之馬 建翠鳳之旗 樹靈鼉之鼓 此數寶者 秦不生一焉 而陛下說之 何也
“지금 폐하께서는 곤산의 옥을 가져오시고 수후의 구슬과 화씨의 보배를 갖고 계시며 명월의 구슬을 드리우고 태아의 칼을 차시며, 섬리의 말을 타시고 취봉의 깃발을 세우시며, 신령스러운 악어 가죽으로 만든 북을 달아놓고 계십니다. 이 여러 가지 보물은 진나라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 그것들을 좋아하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必秦國之所生然后可 則是 夜光之璧 不飾朝廷 犀象之器 不爲玩好 鄭衛之女 不充后宮而駿馬駃騠 不實外廐 江南金錫 不爲用 西蜀丹靑 不爲釆 所以飾后宮 充下陳 娛心意 說耳目者 必出于秦 然后可 則是 宛珠之簪 傅璣之珥 阿縞之衣 錦繡之飾 不進于前 而隨俗雅化 佳冶窈窕 趙女 不立于側也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는 것이어야 한다면 아광주가 조정에 꾸며지지 못할 것이요, 외뿔소의 뿔과 코끼리 이빨로 만든 그릇을 즐겨보지 못할 것이며, 정과 위의 미녀들이 후궁에 채워지지 못할 것이요, 훌륭한 말들이 마구간에 매어지지 못할 것이며, 강남의 금과 주석이 쓰여지지 못하고 서촉의 단청이 채색으로 쓰이지 못할 것입니다. 후궁을 꾸미고 하진을 채워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고 눈과 귀를 기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진나라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면 이는 완땅에서 나는 구슬 비녀와 모난 구슬로 만든 귀고리와 아땅에서 나는 흰 비단옷과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장식이 앞에 나오지 못할 것이며, 풍속을 따라 우아하게 변하여 곱게 꾸민 얌전한 조 지방의 미녀가 곁에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夫擊甕叩缶 彈箏搏髀而歌呼嗚嗚 快耳目者 眞秦之聲也 鄭衛桑間韶虞武象者 異國之樂也今 棄棄擊甕叩缶而就鄭衛 退彈箏而取韶虞 若是者 何也
“물독을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며 쟁을 타고 넓적다리를 치면서 노래하고 소리질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참으로 진나라의 노래이며 정,위의 상간과 소우와 상무는 다른 나라의 음악입니다. 지금 물독을 치고 질장구를 두드리는 것을 버리고 정, 위의 음악으로 나아가며, 쟁을 타는 것을 물리치고 소우를 취하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快意當前 適觀而已矣 今取人則不然 不問可否 不論曲直 非秦者去 爲客者逐 然則是所重者 在乎色樂珠玉 而所輕者 在乎民人也 此非所以跨海內 制諸侯之術也
“당장에 기분이 좋고 보기에 알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인재를 취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 가와 부를 묻지 않고 굽은 것과 곧은 것을 논하지 않고, 진나라 사람이 아닌 이는 물리치며 객이 된 이는 내쫓으니, 그렇다면 이 중히 여기는 것은 색과 음악과 주옥에 있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들에 있는 것이니, 이는 천하를 차지하고 제후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臣聞地廣者粟多 國大者人衆 兵强者士勇 是以 泰山不讓士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王者不卻衆庶 故能明其德
“신이 듣자옵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인민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군사가 용감하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 큼을 이루고 하해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 깊음을 이루고 왕자는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그 덕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是以地無四方 民無異國 四時充美 鬼神降福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
“이 때문에 땅은 사방 어디를 막론하고 백성들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사철에 아름다운 물건을 채우고 귀신이 복을 내리는 것이니, 이것이 오제와 삼왕이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 卻賓客以業諸侯 使天下之士 退而不敢西向 裹足不入秦 此所謂藉寇兵 而齎盜糧者也
“지금 이제 왕께서는 마침내 백성들을 버려 적국의 자산이 되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 다른 제후들의 업을 이루게 하고, 천하의 선비들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 감히 서쪽을 향하지 못하게 하여 발을 싸매고 진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니, 이는 이른바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夫物不産于秦 可寶者多 士不産于秦 而願忠者衆 今逐客以資敵國 損民以益讎 內自虛而外樹怨于諸侯 求國無危 不可得也
“무릇 물건이 진나라에서 나지 않더라도 보물로 여길 만한 것이 많고, 선비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더라도 충성하기를 원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객을 내쫓아 적국에 보탬이 되게 하고 백성을 버려 원수의 나라에 이익이 되게 한다면, 안으로는 스스로 비게 하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망을 심는 것이니, 나라가 위태로움이 없기를 바라나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입니다.”
秦王乃除逐客之令復李斯官
“진나라 왕은 즉시 빈객을 내쫓으라는 명령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켰다.”
진나라의 정치가 이사가 축객령을 반대하며 올린 상소문이다.
BC 237년에 진(秦)의 치수(治水)사업을 맡고 있던 정국(鄭國)이 한(韓)에서 파견한 첩자임이 밝혀져, 진왕은 종실과 대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진에 재직하고 있는 모든 외국 국적의 관리들을 추방하도록 명을 내렸다. 이사도 초(楚)의 사람으로서 추방되는 입장에 처하게 되고, 함양(咸陽)을 떠나며 진왕에게 간언하기 위해 쓴 서신이 《간축객서》이다.
이사는 먼저 목공(穆公) 이하 4대에 걸친 진왕들이 임용했던 외국인 관리들이 모두 진의 발전에 막대한 공헌을 했으며, 만일 이 현명한 신하들을 쓰지 않았다면 진이 강대한 명성과 내실 있는 부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거론했다. 이어 진왕의 현실생활을 예로 들어 진왕의 주변에 있는 보물이나 준마․미인․음악 등은 모두 동방의 제후국들이 바친 것인데, 진왕이 자국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거절한 경우가 없는 반면, 중요한 인재 등용의 문제에서는 경솔한 태도로 외국 국적의 관료를 배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재를 등용할 때에는 오직 그의 재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도리를 반복해서 설명하고 동방 육국(六國)의 인재를 이용하여 진을 부강하게 하는 것이 바른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외국 국적의 관리들을 추방하는 것은 진을 고립시켜 위험한 경지에 빠뜨릴 것임을 강조했다.
문장에 대비와 대구, 겉치레식 나열 등의 수사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변화가 많고 기세가 거침이 없다. 허사(虛詞)의 운용도 교묘하여 작품의 문체를 더했다. 변려(騈儷)의 풍을 지향하여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진대의 가장 우수한 논설문이라 할 수 있다
진나라 선대의 명군들께서는 모두 동방 육국 출신의 재상들을 기용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했습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들을 배척했다면 진나라가 지금처럼 강대해질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나라가 현재 즐거이 누리는 여러 보물들과 말, 기녀, 음악 등은 거의 모두가 외국에서 온 것들입니다. 진왕께서는 이렇듯 외국의 산물들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며 기꺼이 가져다 쓰시면서 사람을 쓸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고, 옳고 그름과 곧고 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진나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쫓으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나라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보물이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니, 이래서는 천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황하가 작은 지류의 물줄기들도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에 큰 강이 되었듯이, 왕은 여러 무리들을 버리지 않으므로 덕을 밝힙니다. 지금 외국 출신 신하들을 쫓아내는 것은 외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진나라의 산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보물이 많듯이, 진나라 출신이 아니더라도 진에 충성하는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기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적을 돕게 될 것이니 나라를 위태롭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