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 삶과 문화]"겉"보다는 "속"이 그만인 제주음식
[제주인 삶과 문화] 1. 향토요리 연구 40년 김지순씨
인간이 살아가면서 없어서는 안될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의식주. 옷가지와 먹을거리, 거주공간을 일컫는 이 말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인간이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요소다. 그 가운데서도 먹을거리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여서 그 중요성이 더해진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생활문화를 창출해 왔다. 초가와 갈옷 등은 제주의 환경 속에 배태된 주생활과 의생활이며, 제주의 음식도 조상들의 삶 속에서 창출된 유다른 문화다.
제주 음식의 특징은 한마디로 자연식이고 영양식이다. 제주의 밭과 바다에서 생산한 곡물과 푸성귀, 해산물을 재료로 한 제주의 음식은 조상들이 계절별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써 싱싱한 게 장점이다.
주식인 밥은 본토에서 쌀을 주재료로 하는 것과 달리 좁쌀과 쌀보리, 팥 등을 넣고 지은 잡곡이 위주였고, 반찬과 국거리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음식을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들기보다는 한 두 가지 재료면 그만이다. 토장(직접 담근 된장) 하나면 음식의 맛을 낼 수 있었다. 된장을 물에 후후 풀어 푸성귀를 썰어놓으면 국이 됐고, 된장으로 푸성귀와 해산물을 무쳐 먹었다. 각종 푸성귀의 쌈 맛을 내는 기본 반찬인 동시에 돼지고기의 비린내를 없애는 조미료이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의 음식이 겉보기에는 초라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속은 그만이었다. 몸국·갈치호박국·우럭콩조림·동지짐치 등 구황음식을 제외해도 200여 가지나 된다.
조리법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예전의 평가와는 달리 지금은 제주의 음식이 자연식과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다. 세월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기획/연재>>제주인 삶과 문화
[제주인 삶과 문화]향토요리 연구 40년 김지순씨
[제주인 삶과 문화] 1. "겉"보다는 "속"이 그만인 제주음식
◀ 제주 향토요리 전문가 김지순씨. 학원수업시간에 짬을 내 사진 촬영에 임해 준 그녀는 "제주도 음식을 준비 못해 미안하다"며 쑥스러워 했다.<부현일 기자>
평생을 제주 음식문화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김지순씨(67)는 ‘만능 조리사’로 통한다.
한식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조리법을 선보여 제주의 식생활 개선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정부차원의 혼분식 장려운동, 토끼요리 보급과 식생활 개선을 위해 도내 처음으로 요리강습을 실시하는 등 제주 음식문화 발전과 함께 했던 산증인이다.
김씨가 주목받는 것은 전문 조리사로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치부됐던 제주의 음식을 문화적 차원으로 한 단계 높여 평생을 향토음식 보존과 개발에 걸기 때문이다.
제주의 음식에 대한 연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씨처럼 우리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만들어 먹었던 음식과 조리법을 조사, 연구하고 이를 복원하고, 전파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씨가 제주의 향토음식에 관심을 가진 것은 40여 년 전. 제주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존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활 속에서 현실화 된 것이다.
“대학 입학해서 처음 서울 생활을 할 때였어요. 당시 애경유지 부사장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에서는 애호박전을 해먹고, 여름철에도 돼지고기를 갖고 편육을 해서 먹는 등 여간한 공을 들이는 게 아니에요. 당시 제주에서는 탈이 날까봐 여름철에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꺼렸었는데 충격적이었죠. 방학 때 외할아버지 제사가 있었는데 서울 서 사고 온 애호박을 전을 부쳐 제상에 올렸던 적도 있어요”
서울 생활을 하던 그는 결혼 후에 제주에 내려와서 살았다. 70년대 초 정부 차원에서 혼분식 장려할 때 우리나라 음식의 대가인 왕준련 선생과 함께 제주도내를 돌면서 식생활 개선운동의 선봉 역할을 했다.
“석유곤로를 직접 들고 읍·면 지역으로 식생활 개선 운동을 다닐 때였어요. 낮에는 주로 일을 해야하니까 전깃불을 켜고 저녁에 음식 만드는 것을 배워줬어요. 혼분식 보다 반찬 만드는 거나 배워달라던 그때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음식 만드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요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녀는 식생활 운동을 제주의 향토음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73년 제주산업정보대(당시 제주전문대) 강사로 시작해 폐과 할 때까지 10년 정도 학교생활을 했고, 다시 조리과가 생기면서 복직해 올 초 정년 퇴임을 했다. 폐과 후 10년 기간에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LA 지부장을 맡아 한국음식 문화의 해외 전파에도 열을 올렸다. 그녀는 정년 후에도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도내 처음으로 85년도에 요리학원을 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방학 때면 학생들에게 제주 음식을 조사해오라고 숙제를 내주곤 했지요. 학생들이 조사한 내용을 갖고 재조사를 하면서 옛 조상들이 했던 방식대로 음식을 만들어보곤 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식사 때마다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찬장의 그릇 정리에 정성을 다하던 모습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는 그녀는 “어머니께서 자근자근 들려주던 제주의 음식에 대한 얘기는 저의 큰 자산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조사, 연구 결과물을 갖고 제주음식 문화의 지침서랄 수 있는 「제주도음식」(98년·대원사)과 「제주도 음식문화」(2001·제주문화 간)도 발간했다. 제주의 음식은 계절을 타기 때문에 음식을 복원하는데도 시간이 걸렸지만, 이를 촬영하고 책을 정리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금은 사시사철 음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제주의 옛 음식은 계절마다 싱싱한 재료를 이용하는 게 특징이지요. 제주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들었다고 해서 제주의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조상들이 해왔던 방식대로의 원형을 보존하고,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개선해 나가야 제주의 음식문화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뿌리가 없는 제주의 향토음식이란 생각할 수도 없죠”
그녀는 제주의 음식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제주의 음식이 제 맛을 잃지 않는 선에서 조리법을 다양화하고 이를 되살리는 방법이 강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충대충 눈대중과 짐작 대신 음식을 그램(g)화해 제주 음식의 표준화하는 것도 급히 서둘러야 할 과제란다.
“요리를 깊이 있게 알면 알수록 향토음식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다”는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제주의 향토음식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드는 일이다. 둘째 아들 양용진씨(37)와 며느리 조수경씨가 그녀의 대를 잇고 있어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한 지역의 문화의 특징을 규정할 때 음식문화를 빼놓곤 얘기가 안 된다. 제주 고유의 전통 음식을 보존하고 이를 개발하고 세계화할 때 제주음식 문화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제주음식에 대한 행정당국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