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신부가 세례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성소의 요람지
김대건(金大建, 보명 芝植, 1821~1846, 안드레아) 신부가 조부 김택현을 따라 솔뫼에서 이사와 15세 때 마카오로 떠나기 전까지 수년 동안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골배 마을에 이웃한 은이 마을은 김 신부가 서품을 받고 귀국한 뒤 공소를 차린 곳이다. 김 신부의 첫 사목지로서 일찍부터 복음이 뿌려진 은이는 모방(Maubant, 羅伯多祿, 盧, 1803-1839, 베드로) 신부가 사목 활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은이 공소는 1836년 4월, 조선 최초의 선교사 프랑스인 모방 신부가 소년 김대건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한 곳이다. 또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연말까지 약 2개월간 서울 일대에서 교구장 페레올 주교를 보좌하여 활동하다가, 1846년 초부터는 페레올 주교의 배려로 그의 어머니 고(高) 우르술라와 동생 김난식(金蘭植, 프란치스코)이 살고 있는 ‘은이’로 가서 부활 대축일까지 약 4개월 동안 기거하면서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은이’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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