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천안함을 격침시켜 우리의 아들들을 산화시켰고 국제적인 전문가들이 확실한 북한의 행위로 입증하였는데도 사과는 고사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철부지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전쟁도발 행위를 세습하는지 무차별 연평도 포격으로 민간인이 피살되는 막대한 피해의 현장이 보도 되었다. 이를 본 나의 심사는 괴롭고 풀리지 않은 응어리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얼마 전 동기들과 6∙25전쟁을 상기 시키는 임진각을 돌아보고 온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관광버스를 타고 번잡한 서울 도심을 벗어나 시원하게 뚫린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에 닿았다. 그곳은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산가족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비록 북한 땅은 밟을 수 없지만 임진강 너머 고향땅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평화의 종이 있는 밑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너머에는 기름진 논이 펼쳐 있었다. 종각 왼쪽 자유의 다리 끝에도 더 이상 갈수 없도록 쳐져 있는 철조망엔 노랑, 빨간 천 조각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망향의 한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이 북에 있는 혈육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천 조각에는 실향민들의 애잔한 마음도 함께 매달려 있는 듯 슬프게 느껴졌다.
철조망 저 멀리 도라산역까지 연결되는 경의선 교각이 보였다. 임진각 뒤쪽 통일공원에는 투르만 대통령의 동상이 있어 가까이 갔다. 우리 조국을 전쟁위기에서 구하기 위하여 많은 미군을 참전케 한 고마운 대통령이 아닌가. 인자해 보였다. 유엔군 참전비 앞에서 우리 일행은 잠시 묵념을 올렸다. 나는 문득 6·25 때, 학도병에 자원입대 한 후, 소식을 모르는 형이 생각나 가슴이 아렸다. 그동안 어머님은 눈물의 세월을 보내다가 영원히 형을 가슴에 묻으셨다. 6·25전쟁은 분명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인 것을 우리는 몸소 겪었기에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사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망배단 주위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과 담소를 나누는데 이북 5도 사투리가 다 들렸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그리워하는 슬픈 사연들을 서로 주고받고 있었을 것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과거 참전 용사들 같은데 군복차림에 부착된 훈장을 가리키면서 목청을 높였다. 전쟁터에서 겪었던 사연을 회상하는 듯했다.
도라산역으로 가는 도로 주변에는 지뢰밭으로 위험 표시가 되어 있어 우리는 말없이 그곳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검문소에서 헌병이 밝은 표정으로 검문을 하고 친절히 안내해 주어 긴장이 풀렸다. 철도 운행이 중단된 지 52년만인 2002년 2월 20일에 망배열차가 다시 운행되었다. 700여명의 이산가족을 태우고 임진강을 건너던 역사적인 날에 미국 부시대통령이 방문하여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바로 그곳, 도란산역에 우리는 도착했다. 도라산역은 경의선과 평부선의 철도역으로 경의선의 최북단 역이다. 우뚝 선 이정표에는 평양 205km라고 적혀있다. 대합실 구조는 훌륭했다. 그러나 이국땅도 아닌 동족이 함께 이용할 역인데 입국수속을 밟는 곳과 남북한 이산가족 면회소가 마련되어 있고 북으로 가는 행선지와 시간표, 요금표시가 없다는 것이 몹시 유감스러웠다.
도라산은 경순왕이 신라 천년 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바치고 왕건의 딸인 낙랑공주와 결혼했는데, 공주가 마음이 우울한 경순왕을 위로하고자 그곳에 암자를 지었고, 경순왕은 산마루에 올라 경주 쪽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다는 유례가 있다. 이 역에서 남북한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면회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면회가 이루어지기까지 너무 긴 세월이 흘렀다. 노령의 방문객들이 역사 주변에서 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했다. 그동안 일천만 이산가족들의 흘린 눈물이 얼마인가. 신라 경순왕이 도란산에 뿌린 통한의 눈물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분단 민족의 눈물이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도라산역이 남북한 왕래하는 여객들로 들끓는 날은 언제 올까. 발길을 돌리려는 데 철도 침목에 ‘이 철도가 한국 이산가족들을 연결하기를 바란다’ 고 부시 대통령이 쓴 글씨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혈맹국의 대통령다운 일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북의 통일은 우리 민족 모두의 염원이며 세계인의 관심사인데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서슴지 않고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에도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다. 점점 남북의 긴장은 고조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우리세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상태로 얼마나 집권이 가능할까? 부디 현실을 직시하라! 핵무기를 만들며 호시탐탐 적화통일에 꿈을 버려라! 자멸하기 전에 굶주린 죽어가는 동족의 눈물과 이산가족들의 한이 서린 눈물을 보고 회개하라. 동족의 평화통일의 성업을 위하여 앞장서라. 우리는 이렇게 외치며 도라산을 다녀왔다.
경북문경출신. 2003년 한국문인 수필부문신인상수상. 한국수필가협회이사. 한국장로문인회이사. 경북의사회 부회장. 문경YMCA이사장역임. 현 동산가정의학과의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