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하는 나무
집 뒤 커다란 상수리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작은 중정 안 시멘트 바닥을 뒹군다. 마른 이파리가 바람에 밀려 ‘스스스’ 쓸고 지나간다.
오래된 솜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고서도 코끝이 시린 계절이니 마당에서 들리는 소리는 계절을 알리는 소리다. 계절의 끄트머리면서 시작인 소리. 나는 어린네가 되어 온통 상수리나무가 떨어뜨린 낙엽이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소리에 집중한다. 밤이 얼마나 깊어지는지는 생각도 못 하고서 낙엽이 멈출 때까지.
바람이 멈출 때까지.
첫 낙엽을 그렇게 밤이 새도록 괴롭힌 날 이후로 종종 같은 꿈에 불려간다. 여전히 묵직하게 몸을 누르는 솜이불의 무게가 불편하지 않다. 미닫이문 너머에, 차갑게 얼어붙은 마루 너머에, 시멘트로 공구리를 친 작은 마당, 밤이 새도록 마당을 쓸고 있을 상수리나무의 낙엽이 풍기는 구수한 냄새를 추적한다. 오래된 집의 기둥이 된 나무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냄새를 풍기는 것이, 왜인지 가볍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 꿈을 빙자해 자꾸만 어린네를 불러낸다.
드르륵.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가벼운 하품이 하얗게 얼어붙는 소리가 들린다. 미세한 새벽 공기는 소리를 잘게 부숴 멀리 퍼뜨리지 않고 근처로 뚝뚝 떨어뜨리고 만다. 공기가 흡-하고 급격하게 압축됨과 동시에 시커먼 어둠 속에서 빨갛게 작은 점이 타오른다. 동시에 아버지의 오랜 습관이자 취미인 궐련이 타들어 간다.
종종 같은 꿈을 꾸는 때가 있다.
학교생활을 하던 때의 꿈을 꾼다거나, 시험을 보는 꿈을 꾼다거나 혹은 어릴 때 타고 놀았던 나무를 보는 꿈을 꾼다거나.
간밤에 꾼 꿈 역시 같다. 언제 처음 꿈을 꿨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자라오면서 종종. 주기적이진 않아도 잊지 않을 만큼 종종. 그렇게 꿈은 잊히지 않고 찾아왔다.
어째서 그 어린네는 커다란 상수리나무를 두려워 않고, 매번 그 존재를 잊지 않고 불러내는 것일까. 그 집의 마루를 사랑하고, 기둥이 된 어느 나무의 갈라짐을 사랑했을까. 사랑했던 것들이 꿈에 나오게 되면 아주 가끔 궁금해진다. 그것들도 나를 사랑하기에 꿈에서 매번 불러내는 것일까.
그것들이 사랑했던 어린네의 모습을 한 나를 말이다.
아주 어릴 때에도 그 집의 상수리나무는 이미 너무 오래 살아 왔어서 그 덩치가 제법 커지다 못해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늘어진 나뭇가지들이 뒤란 가까이에 위치한 부엌 쪽 지붕을 짖누르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가지들을 쳐 낼 결심을 하였다.
“언제 한번 가지 좀 쳐내야 할까봐.”
어린네였던 나는 아버지의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꿈 얘기를 시작했다.
“이 집에 온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일 밤 꿈에 손도끼가 엄마한테 날라왔어. 엄마는 밤새도록 날아다니는 도끼를 피하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는데도 그 손도끼가 꼭 엄마를 따라서 오더라고. 꿈도 어찌나 생생한지 등골이 서늘하고 꼭 죽을 것 같길래 하루는 네 아빠한테 물어봤지. 혹시 도끼 만든 적 있냐고 했더니 집 뒤란에 그 상수리나무 가지를 베어 가지고 도끼 손을 했다지 뭐냐. 그 뒤로 새벽마다 뒤란 장독에 물 떠놓고 다신 안그러겠다고 기도를 올리고서야 꿈을 안꾸게 되었어. 가지 쳐내는 거 나는 반대야. 어찌됐든. 나는 반대야.”
아빠는 그런 엄마를 못마땅해했다.
“아니, 그럼. 집이 눌리든 무너지든 상관않구 사나?”
엄마는 대답 대신 돌아앉을 뿐이었다. 그리곤 낮게 궁시렁 거렸다.
“오래 된 것들한텐 뭐가 씌이고도 남지. 나무가 100년은 족히 더 되보이는데 느이 큰아빠라는 사람은 굳이 집을 여기다 지었어야 됬다니.”
엄마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을 철썩 같이 믿었다.
가령, 밥상에 생선 반찬이 올라오면 올라온 상태로 가시를 발라야 했다. 행여 생선을 뒤집는 일이 생기면 크게 혼이 났다.
바닷일이 주업(主業)인 이 동네에서 생선을 뒤집으면 바다에 나간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생기니 절대 뒤집으면 안된단 미신이기도 했다.
헌데 그것은 아버지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작지만 그래도 배를 가지고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면서도 매사 어떤 것들이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물처럼 작용을 했다. 빈틈인가 싶어 사이로 빠져 나가려면 이내 몸이 들러붙고 마는 거미줄 같았다.
동네 사람들의 주업(主業)은 어업(漁業)이고, 부업은 소농(小農)인 작은 동네에서 우리 집은 참으로 기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의 가장 높은 산 초입에 있었고 커다란 상수리나무 바로 옆에 집을 지어놓은 탓에 엄마는 간혹 기이한 꿈들을 꾸며 터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도 기이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른 꿈을 꾸는 일과 똑같은 꿈을 꾸준히 꾸는 일은 그 비율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었다.
나무에 대한 꿈을 처음 꾸고 나서 엄마에게 꿈 얘기를 털어놨었다.
“나무가 밤새 울었어.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들이 이파리를 부벼대느라 밤새도록 우우우우웅 하는 소리를 냈어. 나는 옆에서 밤새 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어.”
엄마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무가 많이 좋은 가보네.”
나무가 좋은 것 같기도 했다.
“집 오는 큰길에서 보면 나무가 집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 큰 길로 난 부엌 작은 창으로 엄마가 보이는 것도 좋아.”
엄마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후에 엄마는 틈만 나면 아버지에게 나무를 베어내자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끝내 그 나무는 베어내지 못했었다.
작은 중정엔 포도나무도 키웠다.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이 온통 과실수 였던 까닭은 탓은 딱히 먹을 것이 마땅치 않던 곳에 집을 지어놨기 때문이리라. 남들은 적당히도 가지고 있던 땅을 우리 가족만 가지지 못한 탓도 있었다. 우린 먹을 것들을 심을 만한 땅이 없었기에 집을 지은 큰아버지는 집터를 빙 둘러 과실수들을 심었다. 감나무며 밤나무가 있었고, 은행나무도 있었고, 꽤 자란 대추나무도 있었고, 무화과나무도 있었다. 그러니 왠만한 주전부리를 집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 과실수 중에 중정에 자릴 잡은 포도나무에 굉장한 애착을 가졌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시자 방문을 열고 마당의 포도나무를 바라보셨다. 그 집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자기를 사랑하는 존재에 철썩 붙어 버렸다. 할머니의 기운이 쇠할수록 포도나무도 자꾸만 병들어갔다.
매해 포도송이의 양이 줄었다.
엄마는 포도나무도 베어 버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포도나무 역시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손도 대지 못했다. 할머니가 아프시면서 포도나무는 자꾸만 병들어갔다. 한 계절 내내 포도송이들을 달고 있던 나무는 해가 다르게 열매가 줄었고 마지막 해엔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엄마는 자꾸만 할머니가 있는 방 쪽을 바라보았다.
돌이켜 보건데 나무에 대한 꿈은 근 10년 동안은 한 번도 꾼 적이 없었다. 적어도 기억하는 한에서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여전한 어린네가 되어 마당을 ‘스스스’기어다니는 낙엽소리도 들었다. 왜인지 할머니의 포도나무가 떠올랐다. 포도가 열리지 않던 해의 여름이 끝나기 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해 11월. 가을이 끝날 무렵,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마당을 지키고 있던 포도나무를 베어버렸다. 엄마는 포도나무가 사라진 마당을 보며 개운해했다. 잎이 무성했던 포도나무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니었는데 엄마는 마당에 낙엽이 덜 쌓이겠다며 개운해했다. 상수리나무가 나오는 꿈을 꾸고 열흘 쯤 지나 그 마을의 이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주 오래전에 마을을 떠났고, 그 곳엔 더이상 연고(緣故)도 없었기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어린네였던 시절의 마을 아저씨는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늙어 있었다. 낯설고 어색한 감정이 들었다.
“마을에 좀 와줘야 할 것 같아. 너희 식구 살던 집 나무 있지? 커다란 상수리나무 말이야. 그 나무가 쓰러질 것 같기도 하고, 그 터를 정리한다고 땅주인이 베어버리려는데 자꾸 사고가 나서.”
이장님의 말은 앞뒤도 맞지 않는 이상한 말이었다.
“굿을 했더니 네가 필요하데. 거. 네가 제물(祭物) 같은게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왜 그런거 있잖아. 사람들도 늙어서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는 거 말이야. 무당 말이 그런거 같다데. 널 보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와줘야 할 것 같아.”
통화가 길진 않았지만, 전화를 건 목적이 뚜렷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평일은 어렵고, 아무래도 주말로,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내로 방문하겠다 답하는 것으로 통화를 끝냈다.
통화를 끝내고 나니 왜인지 마음이 다급해져서 그 주의 약속 된 일들을 모두 정리했다.
‘나무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부른다.’
마지막 인사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 주에 나는 20년 만에 다시 옛 집터를 찾았다. 집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집터였던 곳은 넓은 공터가 되었고, 그 공터에 무당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얼굴들이 낯익고, 또 낯설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기도 했고, 전혀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는 척을 해댔다. 내 손을 끌어 잡았고, 더러는 내 얼굴을 쓰다듬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 할머님들이었지만 썩 내키지 않는 손길이었다. 내가 살던 때에 이들은 내게 썩 친절하지 않았었다.
나를 부른 것이 온전히 나무인지, 혹은 마을 사람들이 갖고 있던 어떤 부채감의 해소를 위해서인지 헷갈렸다.
내가 도착하자 무당은 무언갈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기도를 올리기도 했고, 조금 떨어진 발치에선 아저씨들이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는 정도였다. 멍하니 서 있다가 나도 무언갈 하려 했으나 해야 할 일이 무언지 딱히 알지 못했다. 나는 가만 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늙어버린 것처럼. 내가 그때보다 나이가 먹은 것 처럼. 나무 역시 그 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음을 보여줬다. 가지가 늘어지기 시작하면서 나무 전체가 휘어지기 시작했는지 거의 누운 듯이 보였다.
집터였던 곳은 황량하게 비워지고, 비워진 곳에 기어이 쓰러지고만 커다란 나무가 슬펐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별해야 하는 것은 나무 뿐만 아니었다. 나도 이곳, 이 터에서 이별을 해야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봤었기에 어린 마음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여러 이별이 있었지만 가장 슬픈 이별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열두 살의 나는 죽는다는 것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죽는 것, 어떤 존재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어떤 것들을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빠가 목 놓아 울었을 때, 어렴풋이 죽음이 가져오는 것 중 하나가 이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누군가는 사랑은 둘이 하고, 이별은 혼자 하기에 더 힘든 거라고 말했다. 사랑을 둘이 했으니 이별도 둘이 하는 게 맞다. 아빠가 그렇게 슬퍼한 이유는 앞으로 많은 날 들을 오래도록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할머니와 한 첫 번째 이별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었고, 그 후로도 숱하게 많은 이별을 해야 했다. 포도나무를 자르며 이별했고, 그 집을 떠나며 이별했고, 아마도 내가 눈치채지 못한 수많은 순간, 순간 이별했을 것이다.
오래된 나무를 쓰다듬었다. 예전에 사랑했던 나무가 떠올랐다. 그리고 첫 이별을 준비해야 함을 깨달았다.
별안간에 헤어진 상현이 떠올랐다.
나는 그와 사랑을 했고, 이별했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 이별하는 중이다. 그의 꿈은 천체물리학자였다. 상현은 그것이 한때의 꿈이라고 했다. 그는 꿈과 이별했고, 이별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나에게 이별하는 법을 제대로 알려줬더라면 이렇게 오래도록 이별하는 일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도 이렇게 오래도록 이별하는 것이 어쩌면 좋은, 제대로 된 이별하는 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상현은 아주 가끔은 그림을 보러 다니고, 가끔은 별을 보러 다녔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별들을 보고 있을 때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그 옆에 누워 파도 소리까지 듣노라면 그것들은 도통 내가 그곳을 벗어나질 못하게 만들곤 했다. 상현에게 별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잠시 슬퍼하다가 고요한 적막이 좋지 않냐고 했다. 고요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별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적막 속에 있다가, 별이 내는 소리를 듣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면 그는 그것이 그렇게 슬프다고 했다. 나는 왜인지 그의 말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너무도 멀리 있고,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상현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 이별을 해야 하는 지금을 잘 이해해 주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잘 위로해 주리라는 생각도 해봤다. 상현이 곁에 없는게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그 옛날의 내 흔적이 있던, 그 터가 있던 곳에 나무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무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 주위에 솟아있는 기다란 장대들과 알록달록한 오색기(五色旗)가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가 엉키어 마치 삐그덕 거리는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내 귀엔 마치 옛날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나?’라고 묻는 것 같았다. ‘아무렴. 다 기억이 나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기억을 잊거나, 잊지 않는 것에 대한 선택권이 나한테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알아서 의식의 한 구석에 잘 정리되고 숨겨져 있다가 이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건 의식 위에 남겨져 있구나.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을 누군가에게 다시 듣게 되었을 땐 내겐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깊숙이. 그 어딘가로 가버렸구나. 그래서 지금, 저 바람에 못 이기듯 삐그덕 거리는 나무의 말은 내가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스무고개 놀이쯤으로 생각해야겠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아마도 이같은 질문을 했을 거다. 나무가 궁금해할 것 같은 것은, 나 역시 궁금한 것이었다. 내가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 내 손과 발이 아직 다 자라지 못해서 걸음마저 엉성하기 짝이 없었을 때. 내 작은 손가락이 거칠디 거친 나무줄기를 만졌을 때를 기억하는지.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그때. 나무는 어땠는지. 알 수 없는 마음들만 늘어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처음을 기억할 수 있는지 확인받고 싶은 건 왜일까. 이미 오래전 일이라고. 나는 이미 다 자라버린 뒤고 내 손은 예전의 그 작고 여린 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때 난 어땠어?’
스스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다른 존재가 애정을 담아 기억해주고 있다는 건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그때의 넌 작고 볼품 없었지. 콧구멍도 작고, 콩알 같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는게 강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강아지는 너무하지 않나?’
해가 지기 시작하니 곳곳에 불이 피어올랐다.
‘넌 여전히 크고 웅장한데, 어째서 떠나려는거지? 왜 마지막이라고 하는거야.’
나는 여전히 나무를 붙잡고 싶었다. 아마 인간만 이별을 격렬하게 무서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채워졌다가 비워지는 순간을 견뎌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욕심 많은 존재라 그럴 것이다. 나무가 있던 자리도 그가 사라지고 나면 그 터는 허전해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런 의식을 통해서 적당한 합의가 이뤄지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한다. 오래도록 있다가도 언젠간 사라져야 할 때가 오고, 그때가 오면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서로를 도닥이면서 이별하는 일 말이다.
‘내가 처음 이곳을 떠날 때 어땠는지 묻고 싶어.’
나는 어리석다. 나무가 슬펐길 기대라도 하듯이 물었다.
‘슬펐지. 콩알같이 작고 반짝이는 두 눈이 더는 나를 찾지 않아서 슬펐지. 나를 사랑하다가도 사랑하지 않는 네가 그리울 때면 몹시 슬펐지. 내가 슬프면 이 땅이 슬펐고, 때때로 그 슬픔은 안 좋은 기운을 남기곤 했어. 그건 조금 후회하는 일이야. 그래서 너를 부르게 됐어. 이 터에 뭐가 더 남으면 곤란해지니까.’
나무는 다시 우-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무에 잠시 기대어 있는 중에도 사람들은 연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만 컴컴한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왜인지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우리 둘의 이별이 이렇게나 노골적이게 드러나야만 했나 싶고. 이별은 둘이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구경하는지 모르겠네.’
마음은 이상하게도 여러 가지 갈래가 생기고 만다. 머리로 생각하는 일들이 온전히 마음으로도 하나가 된다면 고민할 일이 당연히 없겠지만 사람은 그러하질 못한다. 나 역시 사람이고, 내 이별은 오로지 둘 만의 이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만다.
상현과 헤어질 때도 이랬던가? 모든 헤어진 것들의 처음과 마지막이 이상하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상현과 처음 만난 일도. 그와 마지막 이별을 하던 일도 나는 자꾸만 다른 상황들이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떠올리는 기억이라곤 그와 해변에서 쏟아지는 별을 구경한 일. 그 밤에 바닷가의 파도 소리가 너무나 듣기 좋아서 밤새도록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일들뿐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나무 주위를 밝힌 불빛은 더욱 환해진다. 불빛들이 있어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 밤의 일들을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어린 내가 깨어있던 밤에, 마당에 낙엽을 굴려 밤새도록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밤을 기억해?’
‘기억하지.’
나무가 대답했다.
‘그 밤은 아주 오랜만에 외로운 밤이었고, 왜인지 어린 네가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어. 이파리 하나를 떨구어 그 집 작은 마당에 밤새도록 굴려버렸지. 꿈에서 너를 부를 때면 그날로 부르곤 했으니까.’
기억한다는 그 말이 몹시 안심되었다. 자라면서 종종 같은 꿈을 꿔왔으니까. 그 꿈을 꾸고 나면 나는 그립고, 외로웠다. 그리움은 이상한 감정이었다. 언제나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음에도 손에 잡고 싶어지는 감정과 이뤄지지 않는단 걸 확실히 다시금 깨달을 때마다 무능감이 온 몸을 지배했다. 패배감이었지만 그 무엇엔가 확실하게 진 적이 없다는 걸 생각해내면 역시 이상했다. 자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당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해가 뜨기 전엔 끝이 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로 마지막인 거였다.
‘나는. 네가 이 자리에서 떠나면 나는 이제 돌아올 곳이 영영 없어지면 어떻게 해? 나는 이제 어디로 돌아와야 해?’
혼잡한 곳에서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마냥 불안감과 조급함이 밀려들었다.
‘돌아오지마. 나아가면 되는 거야. 그러다 힘들면 그냥 멈춰서 잠시 쉬어. 왔던 길을 돌아오는데 이제 시간이 더 걸리게 됐잖아. 그러니 돌아오는 건 이제 그만하고 나아가. 그러다 네가 누군가의 돌아올 곳이 되었다가 아주 잘 이별하는 순간을 맞으면 되는거야.’
서운함에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눈물이 나니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다. 이별은 슬프고, 서운하고,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어지는 게 아니고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한 이별이다.
얕게 북소리가 울렸다. 둥둥 거리는 북소리에 가슴이 같이 울렸다.
나무는 이제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나무를 밀어내고 있었다.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하고, 나무껍질들이 힘없이 바스라지고 있었다. 손끝에서 부서져 내리는 그것들을 막지 못해 자지러지게 울어 재꼈다.
“하지마요. 제발. 제발 멈춰봐요. 그만 하라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나무 주위에 있던 그 누구 하나도 그들이 하던 일들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그리운게 많았다. 아직 미처 보낼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자꾸만 끝을 향해 가는 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나서는 나무가 야속했다.
분명 보내겠노라 말하며 시작한 이별이었는데도 눈앞에 닥친 상황이 전혀 덤덤하거나 아름답지가 않았다. 싫었다.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이별할 수 없다.
‘그만 울도록 하렴. 우린 이미 오래전에, 이별을 한 번 겪어봤잖니. 네가 우리를 떠나기 전에. 그 오래전에 우린 이미 이별을 겪었고, 그때 우린 이미 슬픔을 겪어봤으니 지금은 울지 않고, 온전하게 이별하자.’
얼굴이 눈물과 먼지로 범벅이 된 채 무슨 말인지 이해해보려 애를 써봤다. ‘우리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지만 미래를 보는 사람에겐 그렇지가 않아. 평범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미래를 보고,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게 된단다. 우주에서의 시간과 지구에서의 시간이 다른 것처럼. 우리 각자의 시간이 다른 것처럼. 그래서 이미 일어난 일, 일어날 일을 바라봤으면서도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남아있게 되는 거지.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명의 다른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게 되잖니. 그래. 우린 이미 이별했고, 이별의 순간을 겪었어. 이건 이미 우리가 보낸 시간이란다.’
나는 애써 어린 날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밤새 나무가 우는 것을 지켜보던 꿈이었다. 어린 나도 밤새도록 서럽게 울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이별을 미리 감지하는 감각을 갖고 태어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리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별을 미리 겪고, 이별의 때가 되었을 때 다시 이별을 되풀이하게 되는거다. 경험했던 이별에 대해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그런 큰 슬픔을 겪으면서도 대부분의 이별에서 살아남는 건지 모르겠다. 나무의 이별도 언젠가 겪어봤을 이별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혹은 꿈 어딘가에서, 혹은 날마다 바라보던 어느 화창한 봄날에.
나무는 오래 된 만큼 크고 웅장한 불기둥을 만들어냈다. 일렁거리는 열기는 사람들을 자꾸만 뒷걸음질치게 만들었고, 그들의 얼굴에서 각자가 느끼는 알 수 없는 연대를 피어오르게 했다. 맑은 눈동자에 각인되듯 끓어오르는 불기둥은 가장 깊은 심연에 던져져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여명이 오기 전의 어둠이었다. 불기둥은 해가 뜨기 직전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다. 나무가 남기는 것은 오래전 약속했던 그것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둠일지언정 그것에 삼켜지지 않을 빛 하나는 남겨두는 일을 누군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작은 어린네. 네게 빛이 되어 보겠노라고. 생기를 잃은 마른 나무는 타닥거리며 요란스레 타들어갔고, 나는 그 장단에 맞추어 눈물을 떨구어댔다.
새벽은 잠시일 뿐이다.
동은 터오고 긴 밤이 지나는 중이었다. 무당은 내게 와서 터를 밟으라고 했다. 불길에 흙이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대기하고 있던 크레인이 나무의 뿌리마저 뽑았다. 이제 그 땅엔 무엇도 없다. 뿌리를 뽑아내며 들어 올려진 그 흙더미들을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내 하는 양을 보며 마을 사람들 몇이 여전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무엇을 향해 그토록 빌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곳엔 이제 다른 무엇이 생길지 모른다.
엄마는 오래된 것들엔 무언가 깃들고 만다고 했다. 오래된 것들엔 뭔가 깃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상현과 헤어지던 날이 떠올랐다. 떠올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별이 떠오르고 말았다. 세상 모든 것들은 언젠간 이별을 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둘의 이별은 조금 더 빠르게 와버린 것뿐이라고 했다. 마음이 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니, 마음은 여전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우리 서로를 향하던 에너지가 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마음은 그대로지만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바뀌게 되면 마치 전혀 다른 것을 본다고 느끼듯이 말이다. 가끔 밤하늘을 보게 되면 한 번쯤 내 삶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며 기억해주자고 했었다.
해가 뜬지 오래지만, 달도 여전히 지고 있다. 나는 다시 상현이 생각났다. 오래된 것과의 이별을 치르고 나니 몹시 마음이 허전했다. 헤진 땅을 고르게 밟는 일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뽑힌 나무의 밑동이 흉물스럽게 트럭 짐칸에 실렸다. 나는 어떤 존엄에 대해 생각했다. 저 밑동엔 이제 아무것도 없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저렇게 아무렇게나 뒹굴게 두는 것이 마음에 쓰였다. 저것은 한때 무언가였고, 내겐 여전히 그 무언가다. 저것의 의미가 내겐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떻게 할 건가요?”
“태워버려야지 뭘. 타다남은 밑동을 가지고 뭘 할 수나 있으려고...”
트럭기사는 저것을. 나무의 타다 남은 밑동을 어느 소각장에 버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굳이 그 소각장엘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너무 그러는 거 아니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그렇게 마음을 쏟는 거 안된다고.”
트럭기사는 나를 나무랐지만 나는 조금 더 막무가내였다. 할머니가 늙은 포도나무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나무 밑동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트럭기사는 다 죽어가는 나무 하나 뽑는데 이 사단을 낸 이유를 내게서 찾아낸 것처럼 혀를 끌끌 차더니 동승을 허락해주었다.
소각장으로 가는 중에 트럭기사는 오래 된 옛 음악을 틀어주었다. 무심히 흘려듣다 가사가 문득 가슴에 박히었다.
“떠나는 사람이 뭐가 바쁜지-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남겨진 나만-울고 서 있네-빈자리만 바라보면서-사랑해서 그리워서-나도 몰래-눈물이나...”
트럭아저씨를 흘깃 쳐다보니 ‘이별의 영동선’이라는 트로트라고 알려 주었다. 오래된 가수의 목소리는 아닌 듯 싶다고 생각하는 중에 요즘에 이 가수가 최고라며 가수의 이름을 알려 주었지만 그이의 목소리만 자꾸 생각했다. 가사에 참으로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후로 와 닿는 가사는 없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적당히 구슬퍼서 위로가 되었기에 적적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소각장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크레인 집게가 나무를 끌어 올렸다. 그 모습은 지나치게 경박스러워 보였다. 그저 나뒹구는 쓰레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밑동이 소각장으로 굴러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자니 다시금 슬퍼졌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어떠한 소멸인지를 깨닫자 수만가지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제 저건 뭣도 아니지. 뭣도 아니고... 그렇게 마음 쓸 것도 없는 일이유.”
트럭아저씨가 떠나지 않고 옆으로 와서 섰다.
“거 한 100년은 묵은 듯이 보이네.”
트럭아저씨를 돌아봤다.
“저것은 끝이 났는데 거, 아가씨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그게 바로 흉물이 되는거고. 귀물이 되는거요. 끊어야 할 땐 끊는게 맞다니께~.”
트럭아저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무 밑동이 소각장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것은 이제 흔적도 없이 타들어 갔다.
그것이 그렇게 사라져갔다.
이별하는 것에서 강자는 먼저 이별을 고하고 떠나는 존재가 아니고 남겨진 존재들이다. 이별이 잘 정리가 될 때까지 그것을 언제고 보듬고, 도닥여야만 한다. 남겨진 존재들은 그래야 산다. 언제까지고 이별만 할 순 없는 일이다. 그래서 또 잘 끊어내야 한다. 남겨진 존재들은 그래야 산다.
긴 이별이 끝난 그 날 밤에 꿈을 꾸었다.
나는 다시금 나약한 어린네가 되었다. 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가벼운 하품이 하얗게 얼어붙는 소리가 들린다. 미세한 새벽 공기는 소리를 잘게 부숴 멀리 퍼뜨리지 않고 근처로 뚝뚝 떨어뜨리고 만다. 공기가 흡-하고 급격하게 압축됨과 동시에 시커먼 어둠 속에서 빨갛게 작은 점이 타오른다. 동시에 아버지의 오랜 습관이자 취미인 궐련이 타들어 간다. 그 새벽에. 어둠 속에서 빨갛게 타오르던 작은 점이 점점 커지더니 곧 커다란 불기둥이 되었다.
‘이 작은 어린네야. 겁도 없이 불기둥으로 들어오면 어쩌잔 거냐.’
나는 울지 않았다. 작은 어린네의 모습을 하고서도 울지 않았다. 불기둥 안에 들어서서 어릴 때 살던 그 집을 보니 나무가 왜 그렇게 이 집 사람들을 사랑한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저리 작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꺄르르 터지던 작은 웃음소리를 엿보는 일들이 그의 긴 시간 중에 짧게 찾아온 유희였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마지막 꿈이다.
네 개의 계절이 지나듯 하나의 연(縺)이 흘러가고 끝이 난다. 나와 함께 끝이 났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아직 가을 어딘가에 머물러 있고, 너는 이미 겨울을 지나 그 고된것들을 모두 끝내버린 것이 조금은 아쉽다. 결국에 울고야 만다. 스러져 가는 하나가 가여워서 운다. 하나의 시절이 밝게 빛나고, 빛을 잃고, 그 사이에 무엇을 잃는지도 모르고 살다 아무 힘 없이 스러져 가는 그것이 가여워서 운다. 나는 여전히 오래 된 이별이 슬퍼서 운다. 울다가 그리우면 다독이고, 다독이며 살다 그리우면 그것이 또 슬퍼서 운다. 이별을 되풀이 하는 건 어쩌면 이별 속에 다른 것들도 간간히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날마다 어린 날들과 이별한다. 경험했던 이별이기에 날마다 이별을 하면서도 그 대부분의 이별에서 살아남는 강자가 된다.
2021. 봄. 종합문예지 "인간과문학" 제33호
2023.여름. 종합문예지 "인간과문학" 제42호 -이 계절에 만난 소설가, [작품론]-노이라이트의 배-이정화
입회 시 예총 사무실에 들고 갔던 문예지는 평론이 같이 있던 올해 여름호였습니다.
편히 감상하셨길 바랍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희도 매년 가을 나무들 가지치기를 하는데,
어느핸가는 생나무를 잘라야 하는 상황이 있었지요.
뿌리 깊은 나무를 옮겨 심지는 못하고 베어내얘하는 상황...
두 그루의 단풍이 몸서리 치게 울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문장 쪼게기가 참으로 좋습니다.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