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열공 이대원(忠烈公 李大源)과
충장공 정운(忠壯公 鄭運)을 배향한 쌍충사.
이대원(1566~1587)은 자는 호연(浩然)이고 함평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예가
남보다 뛰어나 18세때에 무과에 급제하고 1586년 21세의 젊은 나이로 선전관이
되었으며, 이어 녹도만호에 부임하였다. 이대원 장군은 비록 젊은 나이였으나
왜구가 남해안에 출몰하자 즉시 출동하여 왜적과 싸워 적장을 포로로 잡아
그의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沈岩)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왜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장군이 역전하는 것만 보고있던
심암은 평소 이대원 장군과 정분이 있던 여인에 대한 흑심이 있었던 차에
그 공로마저 탐이 난지라 그를 불러 그 공을 자신에게 돌릴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장군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심암은 며칠 후 전세를
다시 확장하여 쳐들어오는 수많은 왜적과 남은 군사로 싸울 것을 명령
하였는데, 그를 죽을 땅으로 들여 보낸 셈이었다. 출정하기 전 이대원장군은
구원병을 보내줄 것을 약속받고 기다렸으나, 구원병이 끝내 오지 않으니
수많은 적선에 둘러싸여 피어린 싸움을 하다 마침내 적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 항복을 종용하는 적 앞에서 굽힘없이 호령하던 장군은 적선의 돛대에 묶여
처참한 최후를 마쳤다. 이에 앞서 관찰사의 장계로 심암과의 일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심암 대신에 이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였으나, 이때는 이미
이장군이 순국한 다음의 일이었다. 후에 이 억울함을 문중과 이장군의
여인이 상소를 올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충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운(1543~1592)은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 태생으로 본관은 하동, 자는
창진(昌振)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정충보국(貞忠報國)」의 사자
(四字)가 새겨진 가전보검을 들고 국가에 충성할 것을 다짐하였다
하며,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한 뒤 거산찰방, 웅천현감, 제주판관
(居山察訪, 熊川縣監, 濟州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평소 강직한 천성
탓으로 재임 중에 상관들과의 알력과 시기의 대상이 되어 순탄한 성장을
하지못하였으며, 49세 되던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에 임명되었다
. 녹도만호진은 왜적이 침입하는 길목일 뿐 아니라, 임명된 해가 바로
임진왜란 바로 한해 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공의 순절보국은
천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은 만호로 부임한 즉시 군기와 병선을
예의 점검하고 응변의 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당시 상관이었던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아낌과 칭찬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 들어가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해전
(玉浦海戰·唐布海戰·閑山海戰) 등에 참전,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부산포해전에서 쫓겨가는 적을 추격하다가 몰운대(沒雲台)
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 사당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으로 불탄 뒤 숙종 7년(1681) 사우
중건을 추진하였고, 이듬해인 숙종 8년(1682) 임조·서봉영 등 호남유림
연명의 청액소(집의 신명주찬)를 올려 숙종 9년(1683) 쌍충사로 사액
되었다. 영조 11년(1735) 보수하였고 고종 5년(1868) 전국 서원철폐령
으로 훼철되었다. 1922년 고흥향교 선비들의 협력으로 강당을 짓고
1924년 신실까지 지었으나 1942년 일인(日人)들에 의해 다시 폐허화
되었다. 1947년 녹도 쌍충사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어 1957년
신실과 강당을 개축하였다.
쌍충사는 봉암리 해안가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전면으로는 녹동 항구와
소록도가 보이는 지형으로 전면의 자연 경관이 매우 훌륭하다. 이 언덕
위에는 쌍충사만이 있으며 1947년에 중건된 사당과 1957년에 건립된 강당
사각대문,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당의 좌향은 임좌병향이며
건물의 배치는 맨 윗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반의 맞배집 사당(신실)을
배치하였다. 이곳과 2.5m의 지반차를 두고 형성된 아래단의 좌측으로
동향하여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겹처마로 꾸민 팔작지붕의
강당을 배치하였다. 대지 우측 밑으로는 강당과
마주보게 관리사를 배치하였다.
* 규모 - 사당, 강당 등 4동
* 시대 - 숙종 8년(1682), 1947년 후건
쌍충사로 오르는 길
고흥군은 오는 5월 1일 오전 11시40분 도양읍 봉암리
쌍충사 일원에서 (사)녹도진 쌍충사 모충회 주관으로
제428회 이대원· 제423회 정운제독 정신계승
쌍충제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녹동초교와
쌍충사 구간에 해군 군악대, 의장단, 수군 등 시가
행진이 있으며, 오전10시부터 오후5시까지 녹동
신항 여객선부두에서 해군함정 공개행사가 있다.
오전 11시40분에는 쌍충사 경내에서 추모식이
있으며, 추념사 낭독과 헌화 및 분향 등이 있다.
한편 쌍충사는 임란직전의 왜변란과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앞장선 녹도만호 충열공 이대원제독
(손죽도해전 전사)과 충장공 정운제독
(부산포해전 전사)을 모시고 있으며, 1947년 중건된
사당과 1957년 건립된 강당 사각대문, 관리사 등으로
구성되고, 1990년 지방기념물 제128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고향초(故鄕草)
김다인 작사
박시춘 작곡
장세정 노래
남쪽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는데
뽕을 따는 아가씨들 서울로 가네
정든 사람 정든 고향 잊었단 말이냐
기러기가 울고 가는 고요한 밤에
이슬 맞은 들국화가 고이 잠들 때
별을 따는 아가씨들 서울로 가네
정든 산천 정든 땅을 잊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