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06. 3. 24. 21:43
북중관계의 발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Ⅰ.북중관계의 발전에 대한 우려
북중관계의 빠른 발전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작년 10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하여 양국 사이의 친선우호관계를 과시하였고,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였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금년 1월 10일에서 18일 사이에는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이례적으로 광저우, 주하이, 선전 등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적 지역을 방문하였다, 이를 계기로 북한이 새로운 개혁개방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며 중국이 이를 적극 후원하고 있다는 추측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최근 북중 사이의 경제협력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측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그런데 북중관계, 특히 양자간 경제협력의 발전을 바라보는 남측의 시각은 매우 복잡하다. 북한 지도부들의 개혁개방에 대한 이해와 전략적 결단의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것은 환영하나 중국의 북한경제에 대한 영향력 증가는 우려하는 모순된 심리가 표출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북중관계를 이해하려는 시각은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한 논란을 계기로 계속 증가하였다. 북중관계의 발전이 최근 한미동맹관계의 변화와 결합되면서 한반도에서 새로운 대립구도를 형성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북중관계의 발전이 미국의 동북아정책이나 한반도정책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북중관계의 발전이 미국에 대항하는, 혹은 한미동맹에 대항하는 새로운 동맹관계의 구축으로 나갈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북중관계의 미래 모습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추세에 대한 잘못된 대응은 위와 같은 우려를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Ⅱ.동맹에서 실리적 협력관계로
북중의 경제협력은 정치관계의 회복을 배경으로 하여 진행된 것이고 북중관계의 정치적 성격은 경제협력의 의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북중 경제협력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관계 회복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거와 같은 동맹관계로 회귀하는 것인지 아니면 변화된 국제질서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협력관계를 추구하는 것인지, 후자라면 새롭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는 1992년 남한과 중국의 수교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오랜 냉각기를 거친 이후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하면서 양자의 정치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김정일은 2000년 5월, 2001년 1월, 2004년 4월, 그리고 2006년 1월 네 차례 중국을 방문하였다.
중국에서는 2001년 9월 장쩌민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2003년 10월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그리고 2005년 10월에는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평양을 방문하였다. 이처럼 빈번한 정상외교는 표면적으로 북한과 중국이 전통적인 친선우호관계를 완전히 회복하였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양자의 관계가 과거의 동맹관계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도 양국 사이에는 과거와 같은 이념적 동질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양국 사이의 이념적 거리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모델을 따른다면 양자의 이념적 동질성이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중국에서는 물론이고 북한에서 어떤 이념적 목표보다는 실리적이고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양자관계는 이념적 동질성,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기초로 하는 동맹관계보다는 훨씬 상대적인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양자관계의 발전을 국제사회의 국가 사이의 정상적 관계 모델로 전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양자의 정치적 협력에는 지정학적 요인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붕괴 등 한반도 정세의 급변이 정치・경제적 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는 중국의 우려를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 일본, 한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중국밖에 없다.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해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정치・군사적 차원에서는 이들 국가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기는 힘들 것이다.
즉 북한의 안정적 변화를 추구하는 데 이해를 같이 하게 만든 지정학적 요인이 북・중으로 하여금 정치관계를 회복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양국의 협력관계는 양국이 국경선을 공유하고 있는 동시에 미국, 일본 등의 경쟁세력으로부터 오는 압력에 대응하여야 하는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념적 갈등과 남한과 중국의 수교에 따른 정치적 갈등이 이러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압도하였다.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양자는 냉정한 시각에서 상대방을 바라봄에 따라 전술적이고 실리적 이익을 매개로 하는 협력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은 지정학적 이해를 같이 하게 만들었던 외부 요인의 변화에 따라서는 성격이 달라지거나 다른 쌍무적 관계 혹은 다자협력과 배타적이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과거의 전략적 협력 혹은 동맹관계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Ⅲ.경제협력의 촉진 요인
그런데 최근 북중의 경제협력이 빠르게 진전되면서 북중관계의 새로운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이 경우에는 동맹관계로의 회귀 가능성보다는 북한경제가 중국경제에 종속될 가능성이 우려의 주된 초점이 되고 있다. 이는 나아가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까지 이어지고 있다.사실 북중의 경제협력의 발전은 정치적 협력관계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된 것이다.
1992년 이후 양자의 교역은 계속 축소되었고 중국은 북한에 대한 원유와 식량 원조라는 최소한의, 그렇지만 북한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협력관계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99년에는 3.7억 달러로 최저치를 기록한 총 무역액은 2000년에는 4.9억 달러로 증가하고 2001년 7.4억 달러, 2003년 10.2억 달러, 2004년 12.9억 달러, 2005년 15.9억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북한의 대중무역의존도는 1999년 25%에서 2005년 40%를 넘는 수준(남북교역 포함)으로 증가하였다.최근에는 중국의 대북투자 증가가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
중국의 대북투자는 2003년 100만 달러에서 2004년에는 5천만 달러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여기에는 대안친선유리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와 평양자전거 합영공장의 건설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최근에는 2005년에는 무산철광의 50년 채굴권을 인수한 것이나 나진항의 운영을 위한 합영공사의 설립 등이 주목을 끌었다.남측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정치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동북4성’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 사이의 경제협력의 진전을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고려한 것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북중경제협력의 진전에는 정치적 요인 못지않게 경제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중경제협력의 증가는 2003년부터 중국경제가 고도성장에 접어들면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
이 시기 중국에서는 원자재 부족문제가 심각하게 출현하였고 에너지, 철광석 등 자원 확보가 중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전략적 의제로 등장하였다. 이 시기 북중 교역의 증가에는 북한 원자재의 대중수출이 주된 동력이었다. 무산철강의 채굴권 인수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원자재 확보를 위해서 북한만이 아니라 수단, 콩고 등 상황이 더욱 불안정한 국가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적극적 태도에는 정치적 동기를 배제할 수 없으나 이 역시 북한만을 겨냥한 전략은 아니고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은 줄곧 미국, 일본 등 주요 서방국가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이들과의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경쟁적 측면이 증가함에 따라 주변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증가하였다.
그런데 중국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냉전시기와 같이 정치・군사적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새로운 시기에 안정적이지 않다고 판단을 하였고 경제협력을 주변국가들과 관계증진의 주요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도모하는 SCO(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인도, 미얀마 등과의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위 “이웃을 안정시키고, 이웃을 부유하게 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낸다(安隣, 睦隣, 富隣)”는 방침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물론 동기가 무엇인가와 관계없이 중국의 북한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증가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비중으로 보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절대적 규모는 아직 종속을 우려할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 증가는 정상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협력이 제약을 받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만약 북한의 일본, 미국, 남한과의 경제협력이 적극적으로 추진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Ⅳ.북중관계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영향
북중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협력의 증진이 동맹관계로 회귀하거나 종속관계로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중관계의 발전은 잠재적으로 한반도 정세에 변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우선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북미 사이의 대결구도가 장기화될 경우에 북중관계의 비대칭적 발전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북중관계의 발전은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능동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정책이 기본적으로 권력교체를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추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북중관계의 발전이 남북경협을 포함한 동북아 협력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는데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계속될 경우 양
자가 불균형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한반도에서 남북협력의 진전과 새로운 평화체제의 형성에 새로운 장애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미동맹관계의 재편이 미국의 의도를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에는 북중관계가 점차 한미동맹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강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냉전시기처럼 정치, 군사적으로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대립구도가 출현할 가능성은 낮지만 여러 수준에서 경쟁구도가 나타나고 협력의 수준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중일관계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중국의 일본에 대한 강경한 정책에서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친미・반중적 경향에 대한 경고적 의미도 담겨 있다. 신뢰의 저하는 국부적 문제를 전략적 갈등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다만 위의 두 가지의 불안요인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북중 사이에 경제협력이 발전된다면 북한이 개혁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남북경협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북중경제협력의 진전은 한반도경제와 동북아경제의 통합을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오히려 관건은 한미동맹의 재조정을 어떻게 동북아평화체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가이다.
특히 북중협력의 진전을 한미동맹관계 발전의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한미관계의 건강한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미동맹의 재조정 과정에 이러한 요인에 대한 고민이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미국의 세계전략의 관철이라는 측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전략적 유연성에서 한미 FTA에 이르는 사안은 전술적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전반부의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를 구조적으로 결정지을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기본 원칙과 장기 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것이 시급하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