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해파랑길 32코스
삼척시 해변을 다녀와서!
삼척 죽서루(三陟竹西樓)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조선전기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보물.
내용
보물 제213호.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
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
(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
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누각에는 이이(李珥)를 비롯한
여러 명사들의 시가 붙여져 있는데,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대액(大額)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건 것이다.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栱包)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 소첨차(小檐遮)를 보의 방향으로 놓고, 이 위에
대접받침을 놓아 초제공에 놓은 첨차를 받치고, 이 첨차는 외이출목
도리(外二出目道里)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柱心包式)의
건축이지만, 각 부재들은 오히려 다포식의 모습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가구(架構)는 7량(七樑)으로 앞뒤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첨차와 소로[小累]로 싸여진 포작식(包作式)의 동자기둥
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고, 이 종량 위에 초각된 판형(板形)과
대공(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특히, 이 누각에서 주목
되는 것은 기단(基壇)과 초석이 없이 두리기둥 밑면을 그렝이질하여
자연암반 위에 직접 세운 것이다.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
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며, 우물마루바닥 밖으로는 계자난간
(鷄子欄干)을 두르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참고문헌
『공도삼척전모(工都三陟全貌)』(金永起, 江原日報社, 1948)
『한국건축양식론』(정인국, 일지사, 1980)
『문화재대관-보물편-』(문화재관리국, 1975)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척항(三陟港)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
개설
삼척항은 어선 및 화물선이 이용하고 있으며, 강원
영동지방의 시멘트 수송과 어업전진기지로 역할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915년 최초의 항만사업으로 길이 91m의 방파제를 축조하였다.
1962∼1966년 사이에 방사제 73m 등을 축조하였으며, 1967∼
1971년 사이에는 122.7m의 방파제 축조와 367m의 물양장 및
진입로 등을 개축하였고, 1972∼1976년 사이에는 129m의 방파
제 구축 및 준설공사를 하였다. 삼척항은 1976년에 무역항으로 지
정되어 1991년 10월에 본격적으로 개항하였으며, 시멘트 공장에
서 생산되는 시멘트 수송 및 연근해 어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
하고 있다. 인근에 선박블럭 제작공장이 위치하고 있어 조선용 기자
재 운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골재취급도 활발하다. 항만시설
은 부두길이가 776m이고 방파제는 880m, 물양장은 1,658m이다.
선박의 접안능력은 7척으로 8천톤급 1척, 5천톤급 3척, 1천톤급 3
척이고, 연간 하역능력은 869만 4,000톤에 달한다.
현황
삼척항을 이용하는 어선은 약 120여척이다. 2009년의 전체
입출항 선박은 2430척이며 총톤수는 327만 1,977톤에 달한다.
그 가운데 외항선은 232척에 48만 6,340톤이고, 내항선은
2,198척에 774만 9,535톤이다. 외항선의 입항 척수는 110척
이고 총톤수는 21만 7,592톤이며, 일본에서 입항한 선박이 102
척에 19만 9,237톤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그 다음은 일본을 제외
한 동아시아에서 입항한 선박이 8척에 1만 8,355톤이다. 외항선의
출항선은 122척이고 총톤수는 26만 8,748톤이며, 일본으로 출항
한 선박이 101척에 23만 6,079톤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일본
을 제외한 동아시아로 출항한 선박이 19척에 3만 208톤, 유럽으로
출항한 선박이 1척에 2,463톤이다. 2009년의 입출항 화물물동량
처리실적은 모두 655만 2,932톤으로 모두 입항 물동량이다. 품목
별 화물은 시멘트가 581만 6,954톤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하고, 그 뒤를 이어 광석 및 생산품 71만 1,223톤, 석유정제품
2만 2,133톤 등이다. 2009년에 연안으로 입출항한 입항 척수는
모두 1,108척이고 입항 톤수는 390만 838톤이다. 출항 척수는
1,090척이고 출항 톤수는 384만 8,697톤이다. 한편 연안 입항
화물은 31만 1,376톤이고 연안 출항화물은 590만 8,616톤이다.
참고문헌
해운항만통계연보』(해운항만청, 1996)
『전국 항만 기본계획』(해운항만청, 1994)
『한국해운항만사(韓國海運港灣史)』(해운항만청, 1980)
국토해양부 해양물류정보시스템(http://spidc.go.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척해수욕장(三陟海水浴場)
환상의 해안선 열차가 서는 바다
길이 1.2㎞, 폭 100m의 백사장이 펼쳐지는 삼척해수욕장은 삼척
시내에서 가깝지만 동해안의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한적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울창한 송림을 끼고 있으며 백사장의 모래가 곱고
수심도 얕아 안전한 해수욕이 가능하며 샤워장 및 각종 편의 시설
도 잘 갖추어진 국민 관광지이다. 해안도로변에는 횟집을 비롯한
식당들이 깔끔하게 들어서 있으며 숙박 시설도 많다.
숙소들은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가 되니 이른 아침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담스러운 여행자라면 잠자리에서 일출을 감상
해보자. 주말에는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환상의 해안선 열차가 서는
곳으로 붉은 가로등이 켜진 백사장의 밤바다 풍경은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매년 여름이면 맨손으로 넙치잡기 대회가 열려 피서객을
즐겁게 해주며 인근 새천년 해안도로
추암해변(湫岩海邊)
동해시 북평동 남부에 있는 추암리 마을 앞에 길이 150m의
백사장을 가진 해변이다. 해안절벽과 동굴, 칼바위, 촛대바위
등의 크고 작은 바위섬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조용하고 수심
이 얕아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합하다. 뛰어난 경승지로 해금강이
라 불려 왔으며 조선 세조때 한명회가 강원도 제찰사로 있으면서
그 경승에 취한 나머지 능파대라 부르기도 했었다. 고려 공민왕
10년에 삼척심씨 시조인 심동로가 관직에서 물러나서 지은 정자
인 지방문화재 "해암정(海岩亭)"이 소재해 있다. 추암에 있는 관
광명소로서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 해안에 절묘하게 걸쳐 있다.
바다에 일부러 꽂아놓은 듯 뾰족하게 솟아 있는 촛대바위는 뛰어
난 경승으로, 이곳의 장관인 해돋이는 사철 어느 때나 기막힌 일출
을 보여준다. 촛대바위 전망은 촛대바위 앞 작은 동산에 올라 직접
내려다 보는것도 좋지만 남쪽 백사장 끝에서 멀리 바라보는 풍광도
그만이다. 작은 동산 앞쪽으로 `해암정" 이라는 조그만 정자가 있는
데,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면 바람 술술 통하는 누마루 형식으로
특히 뒷문을 열어젖히면 갖가지 모양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앞쪽으로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
로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제자를 가르치며 생활할 때 지은 정자로
고려공민왕 10년(1361)에 처음 짓고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광이 다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 지붕집이다. 앞면을 제외한 3면은 모두
4척 정도의 높이까지 벽을 만들고 모두 개방하였다. 이 곳에는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들러 남긴 ‘초합운심경전사
(草合雲深逕轉斜)’라는 글이 남아 있다.
독도아리랑
서유석 노래
저멀리 동해바다 외로운섬
오늘도 거센바람 불어 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잤느냐
금강산 맑은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섬에 닻을내리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 해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2020-08-0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