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勝瀑 좌우벽에 새 루트 뚫었다 - 월간산 89년 8월호 게재
- 청악산우회서 2개 코스 개척... 직벽에 오버행 가미 -
글: 원종민 청악산우회 회원/사진 김일현, 이상선 기자
청악산우회(회장 장기활)는 7월 16, 17일 제헌절 연휴에 설악산 대승폭 좌벽과 우벽에 각각 하나씩 새로운 루트를 뚫었다. 시원한 대승폭 줄기를 옆에 두고 더위를 식히며 수직에 오버행이 가미된 루트를 완성한 후 청악 A, 청악 B로 각각 이름을 붙었다. 청악산우회의 '남량등반'을 겸한 대승폭 좌우벽 개척 등반기를 싣는다. (편집자 注)
작년 2월 대승빙폭을 두 차례 등반하면서 우리의 눈길은 폭포의 좌우에 험상궂게 버티고 있는 벽에 쏠렸다. 비록 길이는 100여m로서 짧지만 전체가 직벽과 오버행이고 작은 크랙들이 수없이 뻗어 있었다. 그 당시 개척등반의 뜻을 표시하거나 모으지는 않았지만 회원 각자는 모두 마음속에 대승 좌우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올해 들어 하계등반의 대상지를 의논하던 중 대승폭 좌우벽의 개척등반 계획이 자연스럽게 거론되었다. 사실 청악은 80년대에 들어 암벽 루트를 개척한 경험이 없었고, 대상지 또한 직벽과 오버행이기에 계획과 준비에 신중을 기했다. 정찰은 7월 1, 2일의 주말을 이용하기로 하고 중요 장비인 80m 자일을 추가로 확보, 7월 1일 밤 대승폭으로 향했다.
7월 2일, 우리는 트랜시버로 교신하며 대승폭 좌우벽에 각각 한 팀씩 붙어 루트를 살폈다. 좌벽의 폭포에 근접한 곳은 대개 오버행이어서 상당 부분이 인공루트가 될 것 같아 왼쪽으로 훨씬 더 치우친 부분을 택하기로 했다. 80m 자일을 폭포 위 소나무에 걸고 하강하며 살폈다. 짧게 등반도 해보았다. 암질은 설악산 대부분인 그렇듯이 거칠다. 그러나 80도쯤 센 경사지만 홀드, 스텐드 등이 양호했다. 다만 중간 지점에 약간 오버행을 이루고 있어, 이곳에는 몇 개의 확보물을 설치해야 할 것 같았다. 좌벽 하단부는 인수의 '오아시스'만한 숲이 있고 그 왼쪽은 슬랩등반이 가능한 페이스다. 좌벽은 루트 개척 가능, 우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벽의 경우, 상단부는 역시 적당한 홀드와 밴드를 보이고 있어 등반이 가능했다. 중단부는 수직, 아니면 오버행이어서 부분적으로 인공등반이 필요해 보였다.
우벽 중단부에서 하단부 쪽으로는 박힌 지 오래된 하켄이 보였다. 누군가 이미 부분적이나마 등반을 시도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우벽 하단부는 매우 매끄러웠지만 디딤이 풍부하여 등반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우벽 역시 비교적 자연스런 루트의 개척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 7월초의 정찰에서 우리는 좌벽 중단부의 가장 어려워 보이는 지점에 볼트 3개를 설치 후 철수, 이어 7월 16, 17일 연휴를 이용해 본격적인 개척등반에 들어갔다.
우벽서 선등자 한번 추락
7월 15일 토요일 밤 10시, 지난번 정찰 때의 인원보다 훨씬 더 많은 20명이 제기동 미도파백화점 앞에 모였다. 날씨는 잔뜩 흐려 있어 모두들 비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다. 역시 출발하자마자 엄청난 소나기가 내린다. 식량담당인 필자는 등반보다도 빗속에서 해야할 20여명 분량의 취사가 더 걱정된다.
일요일인 16일에는 대승 좌벽길을 마무리하여 개통식을 하고, 우벽길은 볼트를 설치하기로 계획했다. 제헌절인 17일에는 우벽길을 마무리하고 개통하여 좌우벽 2개의 코스를 만들 예정인 것이다. 새벽 3시가 넘어 장수대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어둠 속에서 대승폭 상단에 정한 캠프로 향했다.
아침식사를 육개장으로 즐기고 조편성를 했다. 정찰 때와 같이 좌벽에는 이합승, 홍문기, 우벽에는 김운회, 김석근, 다른 회원은 사진촬영, 기록, 개척조 지원, 취사, 심부름 등을 맡았다.
합승과 문기 두 회원이 좌벽의 상단에서 하강한다. 우벽 하단으로 내려간 운회, 석근 두 회원은 등반하며 확보물을 설치하기로 했다. 대승골의 벽과 벽 사이로 해머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좌벽의 상단부에 국산볼트를 2개 설치하고, 중단부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볼트를 한 개 더 설치했다. 2피치의 빌레이 지점에는 굵은 향나무가 좋은 확보물이기에 인공물을 설치하지 않았다. '살모사숲'을 걸어 내려와 숲의 끝에서 나무에 자일을 걸고 하강하며 1피치에 앵글하켄 2개를 설치했다. 나는 탕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두사람과 합류하여 캠프에서 미리 준비해 간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했다. 탕 바로 옆에 1피치 스타트 지점의 확보물로 나이프하켄 3개를 설치했지만 양호하지 못해 살레와 볼트를 추가로 설치했다. 좌벽 코스의 확보물 설치는 이로써 완료했다.
우벽 팀은 하단의 스타트지점에 살레와 볼트 2개를 설치했다. 하단의 바위질은 매우 단단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야했다. 설치 완료 후 슬랩으로 이루어진 하단을 자유 등반하여 올랐다. 약 5m을 오르다가 왼쪽에서 기존 볼트를 발견하고, 슬링을 교체한 후 러닝빌레이로 이용, 계속 슬랩등반을 했다. 홀드와 스텐스는 양호하지만 폭포의 낙수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져 세심한 주의를 하며 오르고, 중간 중간에 볼트와 앵글 하켄을 설치했다.
좌벽 루트의 개통식은 합승, 문기 그리고 내가 하기로 했다. 먼저 합승이 1피치를 선등하여 오른다. 홀드와 스텐스가 풍부하고 잡풀이 섞여 있어 합승이 가볍게 완료를 한다. 이어서 내가 올랐지만 러닝빌레이용 하켄을 이용하지 않으면 보기와는 달리 조금 까다로운 곳이다. 2피치는 나무숲을 걸어서 통과하는 곳인데 문기가 선등하다가 살모사를 만나 기겁을 했다. (이에 '살모사숲'이라 명명함). 숲이 끝나는 부분에서 좌측의 향나무 쪽으로 트래버스를 해야 하는데, 이곳은 풀이 덮여 있는 록밴드가 있어 쉽게 전진할 수 있었다. 향나무에 슬링을 두르고 내가 선등하는 문기의 빌레이를 보았다. 바로 이 지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것이다.
첫 번째 볼트에 통과시키고 약간 오버행진 곳을 넘으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볼트로 내려온 다음 다시 시도하지만 몸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하고 용일 쓰다 '앙카!' 소리와 함께 추락을 했다. 약 5m 추락하였는데 80Kg을 웃도는 문기의 체중에 볼트의 링이 타원으로 되어버렸다. 문기가 또 한번 시도해 보지만 작은 향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며 다시 추락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또다시 시도하겠다고 하는 것을 내가 말리고 합승이를 스타트시켰다. 합승이는 역시 등반대장다운 고도의 기술과 좋은 완력을 이용하여 발을 손 바로 밑에까지 바짝 끌어올리며 가볍게 올라갔다.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못 올라가고 합승이와 문기의 빌레이에 의존했다. 3피치의 끈에서 국산 볼트 3개가 설치되어 있다.
완전한 직벽... 고도감 대단해
마지막 4피치를 합승이가 계속 선등한다. 약 7m 위에 러닝 빌레이용 볼트가 있고, 20여m 위에 볼트가 마지막으로 있지만 볼트와 볼트 사이의 간격이 너무 먼 듯하다. 상당히 가파른 곳을 좋은 스텐스와 홀드를 이용하여 등반을 완료했다.
전망대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를 해준다. 대승 좌벽의 코스 이름을 '청악 A'라 명명했다. 총 4피치에 길이는 약 120m, 확보물은 하켄이 5개, 볼트가 9개이다.
우벽의 운회씨와 석근이는 어느덧 중단의 오버행띠 밑까지 진출하였다. 1, 2 피치와 3피치 반을 완전 자유 등반으로 개척해 놓았다. 윗부분은 하강하며 확보물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
오후 4시경에 하강을 하여 전원이 전망대에 합류하였다. 오늘 계획된 것을 모두 완료하였다. 내일은 우벽 상단을 마무리하고 개통하면 된다. 내일 출근할 회원들이 상경을 했다. 이제 캠프에는 12명의 회원만 남게 되었다.
7월 17일 제헌절(월요일) 아침. 6시에 기상했다. 콩나물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운회씨와 석근이가 우벽의 개척 조로서 우벽 상단의 소나무에서 하강을 하며 확보물을 설치했다. 우선 상단에 앵글하켄 2개를 설치했다. 오버행띠 바로 위의 작은 테라스에 살레와 볼트 2개를 설치하고, 우측의 오버행 쪽으로 내려가며 볼트를 4개 설치했다. 볼트 설치 작업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살레와 빌레이시트에 앉아 운회씨는 어제에 이어 10개 정도의 볼트를 설치하지만 체력에 변화가 없다. 더욱 숙달된 솜씨로 해머소리를 울린다.
볼트 설치 작업을 완료함으로써 어제 올라가며 개척한 1, 2피치와 오늘 내려가며 개척한 3, 4피치가 만나루트가 완성되었다.
개통식은 1, 2피치를 생략하고, 3, 4피치만 하기로 했다. 운회씨가 선등하고 석근이가 확보를 했다. 오버행의 첫 번째 볼트에서 슬링에 발을 끼고 일어서자 다음 볼트가 간신히 잡힌다. 세 번째 볼트와 네 번째 볼트를 지나고 록밴드를 따라 트래버스 할 때는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우리의 간이 조마조마하다. 완벽한 직벽이기에 고도감이 대단하다. 3피치를 완료하고 4피치는 역시 운회씨의 좋은 솜씨로 마무리했다. 석근이도 부드럽게 등반을 마친다. 두사람이 자랑스럽다.
이 코스의 이름은 '청악 B'로 했다. 총 4피치에 길이가 100여m. 확보물은 볼트가 14개, 하켄이 4개이다. 어제 개척한 '청악 A'보다 난이도는 높지 않고 쉽게 오를 수 있지만, 등반의 선이 아름답고 재미있을 것이다.
하산을 하는 회원들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 있다. 좌우벽에 암벽코스를 더 개척하고 주변의 릿지도 등반하여 대승폭을 청악의 것으로 만들자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