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치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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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치매센터 안호영 前부센터장
치매는 환자 본인과 돌보는 이에게 굉장히 어렵고, 어찌 보면 보람이 없는 질환이다. 감염병이나 골절은 잘 치료하면 ‘완치’되고, 여러 암도 치료 후 정상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 완치를 바랄 수 없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도 잘 관리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치매는 아무리 열심히 관리하고 보살펴도 뇌기능의 악화를 완전히 멈추게 할 수 없다. 거기다 망상이나 공격적인 행동까지 동반되면, 환자는 힘들게 돌보고 있는 가족이나 요양보호사를 공격할 수도 있다. 치매가 이렇게 기운 빠지는 병이다 보니 초기부터 적극적인 관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적절히 관리하면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시련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치매, 관리하면 원만한 생활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치매의 주된 증상은 인지기능의 저하이다.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길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헤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환자 본인과 돌보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동반될 수 있는 정신행동증상이다(정신행동증상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 ‘치매대백과’의 ‘치매, 어떤 병인가요?’ 참조). 대부분의 환자들이 정신행동증상을 경험하게 되지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정신행동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줄일 수 있고, 이미 나타났다 하더라도 적절하게 대응하면 힘을 덜 들이고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어느 날, 70대 후반의 남자가 자녀들과 함께 병원에 내원하였다. 환자는 수 년 전 치매로 진단을 받았고, 최근 야구 방망이로 부인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베란다 유리창을 부순 적도 있었다. 환자는 언제나 집에 있는 부인이 사실은 TV에 나오는 남자 연예인들을 만나고 다닌다고 믿고 있었다. 의학용어로 ‘질투망상’을 보이고 있었다. 가족들의 설득에도 환자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병원에 억지로 데리고 온 가족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런 아버지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많이 지친 상태였다. 장시간 설득한 끝에 환자와 가족들은 입원에 동의했고 바로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1주일 만에 환자는 본래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곧 퇴원하여 다시 원만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약물치료, 인지재활요법 등 꾸준한 관심과 노력 필요
유명 대학에서 연구를 하며 평생을 지내온 70대 후반의 여자가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환자는 진료 시작부터 본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나중에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집에 쓰레기를 잔뜩 모아두었고, 기이한 행동으로 고소까지 당한 상황이라고 했다. 설득 후 치매 검사를 진행했으며 결과는 초기 치매로 나왔다. 이후 환자에게 검사 결과에 대해 숨김없이 자세히 설명하고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아들에게는 기이한 행동보다는 치매 관리에 초점을 맞춰 어머니를 대하도록 했다. 기이한 행동을 줄이기 위한 약물치료도 시작했다. 약물치료로 기이한 행동이 줄어들었고, 자녀들은 어머니가 치매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환자는 열정적으로 인지재활요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나 환자는 아직도 열정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아주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 덕분에 기억력도 잘 유지하고 있다.
밤에 돌아다니는 문제로 80대 후반의 여자가 아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왔다. 환자는 거동문제로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밤에 돌아다니는 문제로 다른 환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돌아다니지 못하게 막을 경우에는 요양보호사들을 공격하기도 했다. 과도한 낮잠이 불면증의 원인인 경우가 많아 요양원에서도 낮에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고는 있으나,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이에 대한 조치로 잠을 유도하는 약을 처방하고, 환자가 아끼는 물건들이나 사진들을 주변에 배치해 낮 시간에 관심을 끌도록 하였다. 2주 정도 지나고부터 공격적인 행동은 거의 없어졌고 밤에 자주 깨기는 하나 돌아다니지는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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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나 이렇게 극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절한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보다 많은 환자들이 ‘예쁜 치매’상태를 유지하며 말년을 비교적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신행동증상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중앙치매센터 홈페이지 ‘정보’ – ‘자료실’ - ‘영상’ 페이지의 ‘치매조호교육영상’을 참조하면 된다(하단 바로가기 참조).
안호영중앙치매센터 前부센터장, 現 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안호영 중앙치매센터 前부센터장은 2006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대학원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수련 후 중앙치매센터 및 분당서울대병원을 거쳐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및 이천시 치매안심센터 협력의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