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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의 부산역)...가운데 우측에 제법 씩씩한척 걸어가는 아이가 혹시 태준이는 아닐까? ㅋㅋㅋ
내 나이가 인생을 논할만큼 오래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고약하게 세상을
살아왔고, 남들은 일부러라도 피해서 가고싶은 고생길을, 스스로 벌어서 하는 사람인지라,
별의별 고생과, 잠 못드는 번민의 밤을 수없이 지새웠었다.
고생을 많이한 사람을 그 순위대로 일렬로 줄을 세운다면, 글쎄, 모르긴 해도, 제법 높은 순위안에 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생 많이 한것이 무슨 인생의 훈장이 되겠는가만.. 소진이아빠도 만만치는 않을것이다. 이제 겨우 나이 열살짜리 초등학교 3학년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역에, 그것도 꼭두새벽에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처럼 떨어졌으니... 그 감회가 어떠했을지는
안보고, 안들어도 짐작이 될것이다.
한편, 어린 동생의 급작스런 가출로 우리 집안은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애들에게 무섭게만 굴어서 이런일이 생겼다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태준이가 마치
금방 죽어서 오기라도 할것처럼 대성통곡을 하셨고, 나는 괜히 큰 죄를 지은사람마냥 어쩔줄을 몰라했다. 어이가 없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동생이 가출한 그 날로부터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다시역으로 내달렸다. 부산행 열차를 올라타는 모습을 본 목격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부산행 열차에서 태준이가 " 형아!~" 하며
뛰어 내릴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6~70년대는 사람들이 너나할거 없이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나이어린 여자나 남자 아이들이
돈을 벌겠다며 곧잘 서울이나 부산으로 무작정 상경을 하던 시절이었다.
( 여자애들은 여차하면 인신매매하는 치들에게 넘어가서 운 좋으면 어느집 식모살이에 그나마도 운없으면 다방이나 술집,
그도 않좋으면 바로 사창가로 팔려가곤 했었다. 그나마 남자애들은 구두닦이나, 신문팔이, 껌팔이로 전락해서 고생길로 접어들곤 했던 시절이다.)
그중에는 태준이처럼 집에서 말썽을 피워놓고 그 뒷감당이 자신없어 무작정 도망을 치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나중에 본인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태준이는 얼떨결에 아버지의 보물같은 애마(자전거)를
망가뜨려 놓고 도저히 아버지의 꾸중과 공중부양의 아픈 기억이 두려워서 무작정 도주를 결심했고, 그래도 제딴엔 서울로 도망가면 작은누이가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 밤에 다시역 한쪽 귀퉁이에 숨어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역무원 몰래
열차에 타긴 탔는데, 아침에 내려보니 부산역이었던것이다.
지금에야 다 지난일이고, 해프닝이었기에 웃으며 말을 할수 있지만, 그땐 꽤 큰 사건이었고,
부모님도, 나도 별의별 상상과 염려로 몇밤을 보냈던것 같다.
그날도 난 어김없이 잠을 제대로 못이룬 부스스한 얼굴로, 부산에서 도착할 새벽 첫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부산발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요새야 KTX 같은 좋은 교통수단이 있어서 늦어도 서너시간이면 되겠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이나 부산같은 먼곳을 다니려면 기본적으로 8~10시간쯤은 그 딱딱하고 비좁은 객실에서 엉덩이가 뭉개지도록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내리도록, 보고싶은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날도 야속한 기차는
빠~앙... 소리만 내지르고는 그 우람한 엉덩이를 세차게 흔들더니 그냥 떠나버리는것이 아닌가? 10월이었던가? 유난히도 차가운 새벽 가을바람이 내 콧등을 할퀴고는, 그예 내 두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 동생아! 도대체 너는 어디에 있는거냐? 하나님, 제발 우리 태준이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만약에 그렇게 해주시면, 앞으로는 동생에게 잘할게요.. 말안들어도 때리지도 않을거고, 귀챦게 따라다녀도 이젠 잘해줄께요.. 만약에 제 소원을 들어주시면,
앞으로 제가 하나님 잘 믿을께요... "
ㅋㅋ... 그랬다. 그땐 제법 진지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더랬다.
내 기도를 그분이 들으셨을까?
기차가 지나가고 난, 약간 어둑한, 철길 저쪽에 눈에 익은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준이었다. 나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뛰어갔다. 역시, 동생이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된 그 개구장이 녀석의 몰골이란.....
어쨌든, 모든일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 이후로도, 이 개구장이의 악행(?)은 끊이지 않았지만,
그에 따르는 아버지의 처벌은 많이 부드러워졌던것 같다.
이후에 녀석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얼떨결에 부산행 열차를 타고서 가는 도중에 사연을 알길없는 몇몇 아줌마들에게 약간의 재물(?)과 빵을 얻어먹고 간신히 부산역에 도착은 했는데
그만 역무원에게 체포되어 무임승차의 죄에 대한 단죄를 아주 호되게 받고 겨우 되돌아 오는 열차를 탈수가 있었단다. 그 이후로 부산역에는 이상한 소문이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다나 어쨌다나...?? 그 넓은 부산역 사무실바닥이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난, 한 소년에 의해, 보석처럼,
유리처럼 빛이 났더라는 믿을수없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나.. 물론,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지금은 광주의 유력한 중소기업의 상무이사로, 아주 점잖은 모습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울동생, 태준이는 그야말로 아무도 말릴수없는 지상 최고의 말썽쟁이 였습니다.
누가 울 동생좀... 말려줘요~~
---자전거와 꼬마악동의 부산 유람기 끝. ---
첫댓글 넘 재미나고 기대돼네요
카폐지기님 글 참 잘쓰시네요
누구 신랑인지 큭큭
글구 내가 알기로는 그 악동=태준
20년 넘게 산 동서도 못 말려다나 어쩐다나
큭큭
그러게 말이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