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산행
일시 : 1986. 12 . 27 ~ 29 (2박 3일)
곳 :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 일대
누가 : 이무일, 김종문, 장령, 김경희, 박성원, 문옥련, 한효숙, 류영애
( 위성언, 정대철 - 비회원 )
․ 주왕산과 달기 약소에 얽힌 전설
남한의 3대 기산<奇山>의 하나로 변화 무쌍한 암석미를 자랑하는 주왕산은 그 독특하게 솟구친 남성미 만점의 암봉과 기이하게 패인 숱한 동굴에는 비록 신빙성은 없다 하더라도 중국 진나라의 주왕<周王>이 당시 각자의 장군에게 밀려나서 고려 땅으로 패주하여 주왕산에서 3년간 살다가 고려의 마<馬>장군 군사에게 발각되어 주왕산에서 최후를 고했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주왕산의 전설을 낳은 진의 주왕과는 비록 다른 인물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읽는 또 다른 주왕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은<殷>의 주왕<紂王>이다. 그리고 이 은의 주왕은 그가 총애하던 애비 달기와는 결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주왕산의 북서쪽 들목에서 솟아나는 약수탕의 이름이 바로 달기라는 사실을 우연으로만 돌리기에는 주왕과 달기의 인연이 너무나 끈적하게 맺어 있다. 일설에는 닭이 쫀 자리에서 약수가 솟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약수속의 탄산가스가 닭울음 같은 꼬르륵 소리를 낸다하여 달기 약수라고 불리어졌다고도 한다.
․ 주왕산과 달기약수의 산세.
이중환의 <택리지>에 주왕산을 주빙산이라고 기록하며 "들이 골짜기 동네를 이루고 있는데다 샘과 폭포가 있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한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탐방객의 눈을 놀라게 하는 것이 주왕산의 양기라면 마음을 놀라게 하는 것이야말로 주왕산의 약수가 뿜어내는 그 음기일 것이다. 대전사 쪽을 찾는 관광객이 양기에 끌린 여성 취향을 지녔다면, 청송 달기 약수탕에 몰려드는 주객들은 대개가 그 여성적인 깊이에 몸담고 쉬려는 남성취향의 탐방 객이 많다. 톡 쏘는 맛이 유리 탄산 황산 이온 망간 등의 주성분이 내는 찝찔한 맛이 여전히 달기의 음기인 듯하지만 주왕산은 대전사 일대에 죽순처럼 솟은 여러 깃봉들이 뿜어내는 양기와 분지골 일대의 은밀한 계곡 속의 약수탕에서 솟아나니 음기가 음양의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주왕산 하면 울창한 송림 사이로 비쳐 나온 기봉과 괴암이 풍기는 양성적 이미지를 우선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주왕산 계곡의 깊이도 그 양기에 필적할 만하다.
산행일기
첫째날
09시 : 김천역 광장에 집합. 7명의 대원이 25분에 도착하여 27분발 대구 완행열차에 올랐다. 좌석은 거의 차 있어 뒤로 향하다보니 춥고 기름냄새가 유독히 낡은 칸에 몸을 싣고 고향을 떠나는 시원 섭섭함과 모든 것을 잊고 베낭과 함께 훨훨 대자연의 만남으로 마음을 설레었다.
11시 : 동대구 도착. 구미에서 탄다던 대원이 미리 와 있어 8명의 대원은 성큼성큼 동부 정류장에 도착하니 2명의 대원이 기다려 총 10명의 대원이 되었다. 같이 여행을 한다는 동지 의식 속에서 서로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며 입가에 미소로서 안전, 기쁨, 등을 기원하며 가락국수를 위장을 즐겁게 했다.
11시 50분 : 청송행 직행 버스 출발. 줄지어 오르는 우리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버스머리가 어디에 부딪혔는지 찌그러져 있어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일단 차에 오르자 좌석은 길게 늘어져 있는 70년대 비포장의 신작로 길을 다니는 차와 꼭 같았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시내를 빠져 하양 영천을 향해 달렸다. 우리는 반창고 이리저리 붙여 놓은 윗지붕이 흔들려 내려 앉을 것 같아 우리의 목숨이 온전한지 서로가 의심스러운 눈을 주고받았다. "내장이 뒤섞였는가?" "10년묶은 찌꺼기가 내려간다." 등등
15시 : 청송 시외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덜컹거리는 길, 폐차장에 가야할 버스의 여운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정류장에 도착하니 15시 35분. 약수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15시 50분 : 약수터에 도착해서 민박집을 찾아 나섰다. 해수욕장처럼 한 철을 넘겨서 한산하기만한 상가 거리를 지났다. 하탕에서 물을 조금씩 마시니 그 물맛은 아!! 톡 쏘는 철분 맛이 너무 찝찔했다. 국립공원치고는 주왕산 만큼이나 유숙할 만한 여관 시설이 개발 안 된 곳도 드물께다. 하숙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여관 시설의 민박집이 몇 군데 있었다.
16시 20분 : 중탕 위에 하숙 민박집이 몇 군데 있었다. 청송을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길 위에 흰눈이 쌓인 것을 보면서 '역시 산간지방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눈 위를 걸어 민박 집으로 올라갔다. 아줌마는 장작더미로 불을 지퍼서 방을 뜨겁게 했다. 활활타는 불꽃을 보면서 짐을 풀고 저녁식사 준비에 들어가 쇠고기 국에 푸짐한 저녁 만찬이 되었다.
18시 : 저녁 식사를 마치고 3팀으로 나뉘어져 방의 풍경이 장관이 되었다. 노장의 바둑팀, 중년의 동양화팀, 청년의 서양화팀으로 시끄럽게 모두 열심히 자기 일에 열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단체 게임으로 들어가 007빵, 발바닥게임, 바보게임 등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내일의 일정과 소담스런 대화가 오갔다.
23시 : 취침
둘째날
5시 : 기상이다. 참치찌개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겼다. 산 속의 아침이라 공기가 너무 맑았고 마치 신선이 된 기분으로 하늘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7시 30분 : 출~발~! 민박집을 나서면서 아직 어둠이 덜 가신 산골의 골짜기 길을 향해 대원은 발길을 옮겼다. 추위에 무장한 대원은 흰눈으로 달기 마을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이제까지 평탄하던 주변이 일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주왕산의 산세로 제법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9시 : 노루 용추 폭포를 지나 줄기만 남은 앙상한 고추밭과 담배밭이 간간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청송 8경의 하나인 달기 폭포가 100미터 전방까지 울리고 있었다. 폭포 상부는 얼어있고 낙차가 서너 길은 너끈히 넘을 듯하다. 암벽사이로 길과 폭포가 뚫려 있어 달기골의 속살이 옥문을 향해 열어 보여 주는 듯했다. 얼글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을 뒤로 한 채 옥문을 들어서서 너구동 마을이다. 지도를 펴서 길을 짐작하고 산행에 나섰다..
9시 45분 : 여기서 여러 계곡의 갈림길이 나왔다. 판단 미스로 계곡을 잘못 들었다. 보이지 않는 눈길을 헤매는 우리 대원들은 저마다 여러 의견과 불안을 가진 채 위로만 향했다. 2시간 정도 헤맨 끝에 알 수 없는 능선 위에 올라섰다.
12시 15분 : 대원들의 표정들이 지치고 눈에 미끄러져 험악했지만, 쵸콜렛 한쪽으로 표정을 밝게 한 후 산세를 살펴 능선길을 향해 나섰다. 불안감으로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간간이 묘소가 나타나 바쁜 중에서도 삶의 허무에 빠져가면서 걸음은 자꾸만 앞을 향했다. 아! 드디어 반가운 꼬리표가 나타나 마음의 안도감과 함께 주위의 설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13시 30분 : 두 고개 지점이다. 대원들은 사진을 한 장 찍고 내원동을 향해 내려왔다. 계곡은 온통 푸르는 소나무다. 역시 한국의 나무는 소나무가 으뜸이라는 감탄의 소리가 마음에서 울려 나왔다. 또한 청송의 절개 높은 선비들의 푸른 소나무의 정기를 받아 꿋꿋이 유배 생활을 지내온 것이 실감이 났다.
14시 : 나무로 엮어 만든 무너져 가는 안가 한 채를 보였다. 살고 있는 흔적은 있는데 주인은 없었다. 일단 라면을 끓이자는 대원들의 의견을 따라 다 젖은 발을 동동거리며 국물로 허기를 채우고 내원동을 향했다.
16시 : 20여호의 내원동 마을을 지나면서 폐허가 된 초등 학교 분교를 보며 산골의 인구 감소 현상 역력히 나타났다. 드디어 제 3폭포의 장관이 남겨진 채 윗 상단은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대피소를 거쳐 차가 다닐 만큼 좋은 길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주왕산은 평범한 듯이 보였다. 울창한 송림이 덮인 계곡사이로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 제1폭포를 지나면서 주왕산이 하늘을 찌를 듯한 양기는 유감없이 드러나 있었다. 동굴같이 새긴 석굴 사이로 빠져 나오자 주왕산의 양기는 병풍암 학소대 급수대 시루봉이라는 절경으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기봉들이 어우러진 자연 조각품들에 눈이 팔려 목이 뻐근할 정도로 위만 쳐다보다가 어느새 자하교를 빠져나와 대전사를 향했다. 대전사 주차장 입구 민박집의 함석 지붕에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느끼면서 영덕행 버스에 올랐다.
16시 30분 : 버스에 오른 대원은 각자 매무새를 다듬고 눈을 감은 채 생각? 잠? 에 빠져 들었다.
18시 40분 : 영덕에 내려 백암 온천행 직행버스를 오르자 밖은 어두움에 잠겨있어 대원들은 고개를 위로 기대인 채 각자 인생 무상에 잠겼다.
19시 40분 : 온천에 도착한 대원들은 몸을 웅크린 채 백암 호텔 사우나 대중탕에 들어서 각자의 시간에 들었다.
21시 : 말끔한 모습들의 얼굴에 윤이 나며 피로를 씻는 듯했다. 한층 발걸음이 가벼워지면서 방을 구하러 나섰다.
21시 30분 : 어려운 고생 끝에 초등 학교 밑에 있는 민박집에 들어서 식사 준비를 했다.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서두르다가 밥이 설익는 등 야단이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니 잠이 와서 눈이 뜨여지질 않았다.
23시 : 하루를 반성하며 걸은 길을 머리 속에 그리면서 소담스런 대화가 오갔다.
24시 40분 : 각자 꿈나라로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