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의 가치발견과 원형회복을 위하여
(모악산 정상을 주민들에게 되돌려주자!!)
전주시민회 대표 신 형 우
들어가는말
‘모악춘경’이란 이름으로 ‘변산반도의 여름바다’, ‘내장산의 가을 단풍’, ‘백암산의 설경’ 과 더불어 호남4경의 하나로 불리는 아름다운 모악산.
호남의 거찰이며 미륵신앙의 본산인 금산사를 비롯한 대원사, 귀신사, 전국최대의 민족종교의 요람(40여개의 신흥종교)인 원평의 용화교계열 사찰들, 증산교성지, 여처자교의 본주성지, 대순진리회 성역지, 보화교 본부 등의 종교. 역사. 문화유산을 지닌 모악산.
백제유민들이 진표 율사를 중심으로 일으켰던 미륵신앙운동과 견훤의 후백제, 정여립의 개혁운동, 구한말의 동학혁명운동, 강증산의 해월상생과 만민평등 운동 등 지난한 호남의 역사 속에서 민중 신앙의 발상지이자 민중저항운동의 본거지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모악산.
모악산은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호남정맥으로 이어져 오다 오봉산을 지나 마지막에 우뚝 솟은 산이다.
주봉의 높이가 793.5m인 모악산은 평지 돌출형 산으로 호남평야와 만경평야를 굽어보며 크기에 비해 풍부한 수량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물줄기를 대주는 젖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어머니 산이라 부를 정도로 호남의 민중들과 친숙한 산이다. ( 송광사가 자리한 소양의 종남산은 아버지 산, 금산사, 대원사가 자리한 모악산은 어머니 산이라 불려왔다.)
사람들의 경제활동이 도심위주로 변화되고 그로인해 포화된 도시는 급속한 환경악화를 불러옴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산을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산의 필요성도 생활의 충전소로기능변화를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된 산의 기능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게 되고 ‘이윤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 간다’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난개발은 극심한 환경파괴를 불러왔다.
우리의 어머니산인 모악산도 예외는 아니다.
휴일이면 상학 쪽에 위치한 동시주차능력 1000대의 주차장은 물론 도로까지 차량들로 빼곡하며 이와 같은 상황은 중인리 와 금산사 쪽도 마찬가지다.
연인원 백만 명을 상회하는 사람들이 찾는 모악산을 두고 김제시 와 완주군은 개발계획을 세웠고(1996년 모악랜드 조성사업, 1997년 모악산 관광지 조성 사업 등등) 무분별한 개발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임으로 인해 극심한 환경파괴를 불러오고 급기야 여름 집중호우 시 산사태를 동반한 계곡의 파괴를 불러왔으며 피해복구의 명분은 더더욱 산을 파괴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되었다.
더욱이 군사독재시절, 생계에 급급한 조건 속에서 주위 환경을 돌아보지 못하던 시절에 주민들의 무관심속에 모악산 꼭대기에 자리한 송신시설물은 모악산 환경파괴의 전형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미 모악산은 남한의 100대 명산에 속해있으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산행을 위해 전북도를 찾고 있다.
산행 인들의 모임들인 수많은 카페들에 들어있는 모악산 산행기들을 보면 모악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정상을 차지한 송신탑의 흉물스러움에 대한 실망감들이 녹아있다.
방송 통신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고지대의 거대한 송신시설이 불필요한 상황에서조차 모악산의 송신시설이 그대로 존치하도록 방관한다는 것은 환경을 살리고 모악산을 재발견 하자는 취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모악산 정상의 송신시설에 대한 이전 필요성에 대해 함구한 채 ‘모악산은 도민의 영산이요, 문화 역사적인 유산이다.’라는 구호는 허위이며 모악산의 가치를 친환경적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고자하는 많은 시도들도 결국에는 환경파괴를 오도하기위한 허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모악산 송신탑 이전촉구 운동의 과정과 현재
모악산에 송신시설이 처음 설치된 것은 1976년 한국방송공사가 전국 도 단위 지방방송과 난시청 해소를 위한 방송망 확장사업을 추진하면서 송신시설 적격지로 모악산 정상을 선정하고부터이다.
당시는 암흑의 군사정권인 3공화국이었고 개발논리가 사회정의로 통하던 시절이라 한국방송공사 측의 선정만으로 산의 실질소유주였던 금산사측은 모악산 정상을 20년동안 무상 제공키로 계약하였다.
(1977년 4월 19일 금산사와 한국방송공사 전주방송국이 작성한 임대계약서에는 모악산 정상부지 300평을 방송국 종합송신소 부지로 1996년 4월 18일까지 20년간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작성되어있다.)
또 한국방송공사가 계속 부지를 사용하고자 할 때는 금산사와 합의해서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으나 계약 해지 때에는 쌍방의 완전한 합의로만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한국방송공사측이 모든 주도권을 가지게끔 작성되어있다.
(계약을 전후하여 전북도와 김제시가 금산사에 보낸 공문에는 ‘임대계약 체결 시 임대기간은 국유재산법을 준용할 것’ 과 '임대 지상시설물은 계약기간 종료 후 원칙적으로 귀 사찰에 귀속하거나 자진 철거하는 조건으로 할 것‘ 이란 공문을 보냈으나 계약서에는 반영시키지도 못했음.)
그리하여 1978년 10월 11일 한국방송공사가 연건평 100평 규모의 모악산 송신소를 완공해 지금까지 모악산 정상을 점령하고 있다.
이후 모악산 정상에는 한국방송공사를 비롯하여 전주 MBC, 한국통신, 육군통신, 한국이동통신, 경찰통신, 항만통신, 국가보안 통신망 등이 빼곡히 들어앉게 되었다. (국가 권력에 기대어 무상으로 빼앗다시피 하고 들어선 한국방송공사측이 여타 통신사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음.)
90년대 형식적이나마 민주화가 실현되고 시민단체들이 태동하고 환경보존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면서부터 1996년 모악산 정상부지 임대계약 만료를 앞두고 송신소이전 문제가 급부상하게 된다.
모악산을 영산(靈山)으로 여기고 산 정상을 민족적 정기(精氣)의 상징으로 여기던 주민들의 정서와 금산사의 재산권 회복의지가 표면화되고 급기야 1995년 11월 2일 전주 경실련의 주도로 도내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참여한 ‘모악산 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된다.
1996년 ‘모악산 대책위’의 권한을 위임받은 경실련 측은 전파송신시설의 발달로 시설규모를 축소시킬 수 있다며 시설을 축소해 정상에서 벗어난 곳으로 이전하거나 지하벙커 화할 것을 요구하였다. ( 당시 이전후보지로는 기술적 하자가 없는 곳으로 판명된 진안 만덕산도 거론되었었음.)
그러나 한국방송공사를 비롯 시설 사용기관들은 모두 이전 불가입장을 나타냈다.
새로운 환경파괴와 기술적 어려움, 경제적 손실들이 이전불가 이유였다.
대신 한국방송공사측은 송신소 주변 환경보존을 위해 건물 도색, 개수, 주변식수들을 시행하고 정상을 부분적 개방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계약연장기간을 5년으로 하고 계약만료 후 시설이전과 계약기간동안 정상개방, 철책제거, 조경공사, 건물도색 등의 구체적 요구를 내었고 금산사측은 계약연장기간동안 이전계획서제출과 송신소 철거를 위한 비용예치, 임대료 지불들을 덧붙여 의견서를 한국방송공사에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96년11월 1일 당사자인 한국방송공사와 금산가간 5년 후 정상 원상복구를 전제로 재계약합의를 하였다.
한국방송공사는 계약서에서 2001년 12월31일까지 모악산 정상 20미터 아래에 송신소를 신축하고 이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이 기간동안 기존 시설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모악산 정상을 원상복구 하되 송신철탑만은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7년 3월2일에서 2002년 3월2일까지 5년간 모악산 정상을 사용하도록 임대차 계약을 맺었고, 이어 민방 출범과 함께 전주방송이 설립되면서 새로운 송신소를 신축하게 되자 금산사와 한국방송공사가 합의한 부지에 향후 KBS가 이전할 수 있도록 150평중 50평을 남겨두도록 했다.
그러나 그나마의 약속도 KBS측은 지키지 않았고 금산사측은 계약당시의 계약원본을 공개하지 않았고 당시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금산사측이 한국방송공사와의 1996년 계약 시 금산사가 자신들의 실리만을 취하기 위해 자신들을 이용했다면서 서운해 했으며 모악산 정상 되찾기 운동은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후 1998년 광주에서 무등산 정상의 송신탑 이전문제를 놓고 환경단체와 행정기관, 방송3사, 한국통신등이 참여하는 ‘통신시설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되어 이전계획을 추진하고 2001년 ‘디지털방식 TV방송계획’에 따른 추가시설시 송신탑을 정상아래 부분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계약이 만료된 2002년을 전후하여 금산사측과 한국방송공사측은 또다시 계약의 난항을 겪었으며 이미 금산사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침묵 속에 당시 가입단체였던<전주시민회>는 ‘KBS는 2002년 송신소 이전계획을 즉각 이행하라!’ 는 슬로건아래 모악산 송신소이전 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폈고 2004년에 ‘전주KBS측의 변화된 통신환경 아래에서 자신들도 이전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이전약속’과 ‘금산사측의 재계약 불가 입장’을 통보받는데 만족한 채 모악산 송신소 이전은 또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이다.
모악산이 도민들의 자존심이고 우리가 가꾸고 지켜야할 문화 역사적 가치라면 수십 년 동안 모악산 정상을 앗아간 송신시설 이전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당면과제이다.
그동안 모악산 송신시설 이전을 단지 땅 소유주인 금산사와 방송 권력인 한국방송공사간의 이해관계로만 해석해오면서 운동에 임했던 오류를 극복하고 송신시설 이전문제를 모악산에 기대인 도민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갠 채 권력에 기대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했던 한국방송공사 측의 오만함을 응징하는 운동으로 이해하고 임해야할 것이다.
맺음말
모악산의 효용을 높이고 그 가치의 배가를 위해서는 모악산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복원하여야 한다.
모악산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 식물과 생태계를 보존함은 물론 다양한 역사적인 가치를 복원하여 시대의 당위인 지역분권시대에서 전주를 비롯한 지역의 문화적 가치배양은 물론 경제적 자립에 도움을 주어 세계화의 물결속에 고사되는 농도 전북의 새로운 경제마인드인 녹색 환경 관광중심지로서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서는 모악산의 잠재된 역량을 끌어내야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모악산의 흉물로 전락한 꼭대기의 송신탑을 반드시 이전시키고 모악산의 원형을 회복시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