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캠프 수행비서가 선봉캠프에 장문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후 함께 지내온 정든 식구들을 다른 곳에 보내야 했습니다. 당대표 선거 출마를 결심한 후 새로운 수행비서를 채용했습니다. 그가 지난 두 달 간 후보와 함께한 에피소드를 담아 보내왔습니다. 너무나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지면상 이것밖에 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합니다.
#사람
김부겸을 감히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언제나 지금 함께인 사람이나 상황에 몰입하는 사람’입니다. 후보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꼭 휴대전화를 제게 맡기고 갑니다. 한 명을 만나든 두 명을 만나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간담회나 때론 지루할 법도 한 몇 시간짜리 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을 맺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선뜻이었습니다. 이게 무얼 의미 하는지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걸려오는 전화는 한 통도 피하지 않습니다. 후보는 하루에도 수십 명에게 명함을 전하는데, 본인의 번호가 있는 명함을 찾습니다. 때론 모임의 성격상 전화번호가 없고 약력이 빼곡히 적힌 ‘후보명함’을 준비해 드려도, 전화번호 있는 명함을 찾거나 본인이 펜을 꺼내 전화번호를 직접 써드리곤 합니다.
이젠 아예 후보명함과 전번이 적힌 명함을 똑같은 수로 챙겨드립니다. 그러면 후보는 후보명함과 전번이 적힌 개인명함을 함께 건네곤 합니다.
모르는 번호인 전화는 한 번쯤 받지 않을 법한데, 받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일정을 하고 있거나 이동 중인 경우밖엔 없습니다. 저도 종종 전화를 가려받는데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길
제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단연 ‘길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선배들이 이르길 별명이 ‘인간 네비게이션’이라고 하더군요. 서울에서 일정을 할 때도 길을 잘 아는 것이 신기했는데,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원도로 가서는 옆의 산을 보더니 “여기가 어느 산이 아니냐” 묻고, “조금 더 가면 어느 마을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유명한 산도, 알려진 마을도 아닙니다. 전라도에 가서는 “이 길을 지나 조금 지나면 고속도로가 있지 않냐” 묻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지역 곳곳에 난 길에 대한 관심은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이고, 대한민국 곳곳에 난 길에 대한 관심이 곧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라 여겼습니다. 새로난 길이 있으면 그 길에 대해서 묻고, 그 동네의 먹거리에 대해서 묻곤 합니다. 결국 그 지역의 산업과 지역 현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반복되는 일입니다.
시간상 여유가 있을 때면 가끔 어느 길로 가자고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돌아가는 길입니다. 어느 날 부천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그랬습니다. 곧게 뚫린 경인고속도로로 차가 향하고 있었는데, 마곡 쪽으로 가자고 합니다. 한참 가다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쪽 길을 잘 몰라가(몰라서) 좀 (살펴)봐야겠다”
후보가 저에게 ‘부탁’이라고 할만한 일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그것도 길과 관련된 것입니다. 전북 모 지역에서 일정을 하는데 그 날 따라 이상하게 후보가 길을 잘 몰랐습니다. 아마 일정이 혁신도시 쪽과 새로 생긴 산업단지 쪽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밤늦게 숙소로 들어가는데, 후보가 “전북관광지도 하나만 좀 갖다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후보는 숙소 로비에 있다고 생각하고 했던 부탁일 것입니다. 호텔 로비에도 없고,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가도 터미널에 가도 없어서 한 시간 넘게 찾아 헤매다 도청에서 겨우 하나 찾아서 가져다드렸습니다. 쉬러 들어가는 저를 잡고 했던 딱 유일한 부탁이어서 어떻게서든 꼭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냥 놀랍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연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밥을 먹다가 대변인이 “어떻게 길을 그렇게 잘 알고 잘 기억하냐”고 물었습니다. 후보가 대답하기를 “(학생)운동을 했다 아이가. 어디 들어가면 길을 잘 보고, 길보다는 주변 지형지물을 잘 봐야 했다. 도망쳐야 하니까” 한참 감정이입하며 듣다가 “진짜 무서웠을 거 같아요” 했더니, 후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 땐 어려가(어려서) 겁이 있었나 어데”
#밥
가장 힘들었던 일은 후보와 밥 먹는 일입니다. 저는 아무 거나 잘 먹지 않는 반면, 후보는 정말 아무 거나 잘 드십니다. 후보 정도 되면 매번 식사약속이 있다고 오해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수행팀과 급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후보는 늘 가장 가까운 음식점에 갑니다.
제가 미리 근처 맛집을 찾아두는 경우도 있지만 매번 마다하고 그냥 아무데나 갑니다. 음식을 가리는 저에겐 매우, 어쩌면 가장 힘들 일이었습니다. 출연한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진행자는 후보에게 저녁을 뭘 먹을 거냐 물은 일이 있는데, 후보는 답했습니다. “뭘 먹을 건지는 모르겠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먹게 될 것 같다”.
#고_문새미_소방관
일상에서 후보의 미담은 끝이 없습니다. 제가 가장 아쉽고 죄송한 대목은 그런 순간들을 충분히 포착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후보의 홍보를 고민하던 담당팀에 저는 후보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브이로그’를 적극 제안한 일도 있습니다. 후보는 일상이 미담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최근에 겨우 담아낸 것이 광복절 ‘대전현충원’에서였습니다. 현충원에서 기념탑 참배를 하고, 차례로 묘소를 돌다가 소방관 묘소에 갔을 때였습니다. 소방관 묘소 중간에 꽃이 놓였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땡볕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의례가 마치자마자 얼른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갑자기 후보가 꽃을 들었습니다.(진작 알았다면 꽃이라도 같이 들었을 텐데, 순간의 일이라 이미 꽃을 들고 몇 걸음 옮긴 후보를 봤습니다.)
그때 저는 꽃 대신 카메라를 들었고, 후보의 말이 들렸는데 그 첫마디가 “이거 새미한테 갖다주자”였습니다. 아는 사람인가 했습니다. 알고 보니 후보가 장관 재임 시절에 소방교육생이던 한 분이 고속도로 사고에 지원 나갔다가 순직 하셨는데, 현직소방관이 아니라 교육생 신분이어서 아무런 예우를 받지 못하게 될 처지였나 봅니다. 소방관이 꿈이던 그 젊은이의 부모님은 그걸 안타까워 하셨고, 그 사실을 안 후보가 충분한 예우를 갖춰 소방관 복을 입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좁은자리
가끔 후보와 다툼?을 벌였습니다. 후보와 제가 차량에 탑승할 때입니다. 저는 후보 앞자리에 타는데, 충분히 자리가 있는 거 같은데 후보가 뒤로 더 당겨 편하게 앉으라고 합니다.
그럴 때면 이런 대화가 반복됩니다.
“뒤로 좀 더 땡기라” “괜찮습니다” “개안킨 뭐가 개안노. 보이까 니 무릅이 앞에 닿네”
신입사원이 뒤에 대리나 과장이 타도 당연히 그러할 터, 저는 자리를 최대한 앞으로 당겨 앉았습니다. 그런데 한 두 번 하시고 말 줄 알았는데, 자주 저의 자리를 넓게 하라고 챙깁니다.
그러길 반복하면서 조금씩 제 공간은 넓어져 가고 후보의 자리는 좁아졌습니다. 최근에 후보 자리에 짐을 찾느라 타보고는 뒤늦게 엄청 좁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저는 당겨 앉고.. 또 요 며칠 논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르침
후보는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습니다. 그래서 질책도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질책 아닌 질책을 들은 몇 번을 지금 돌이켜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련 있습니다.
어느 날 만찬장에 후보가 들어가고, 저를 포함한 수행팀 두 명은 저녁을 먹으러 한 냉면집에 들어갔습니다. 비빔냉면 2인분과 만두를 주문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두가 나왔습니다. 만두를 나눠먹고 있는데 한참만에 종업원이 카트를 끌고 음식을 끌고 왔습니다. “물냉 2그릇이죠?”, “아니오. 비냉입니다” “아, 옆테이블인 거 같네요” 라며 다른 테이블로 갔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앞서 온 물냉 두 그릇이 저희 것으로 알고 가져온 것인데, 실수를 했던 거 같습니다.
기다려도 음식은 나오지 않는데, 마침 그날따라 후보가 일찍 만찬장에서 나왔습니다. 결국 식사를 못하고 나가면서, 만두만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만찬을 일찍 마치고 나와서 짐작을 했는지 후보가 묻습니다. “너거 저녁 못 먹었제?” 그러고는 후보는 다음 일정 시간이 남았다면서 다음 일정이 예정된 건물에서 식당에 같이 가주셨습니다. 식사를 가서는 저녁을 못 먹은 사연을 후보에게 말했습니다. 짧은 사연을 다 들은 후보가 말했습니다.
“배고프갰네. 근데 너거 알제? 그거 값은 제대로 치르고 나왔제?”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그거 계산 안 하고 나오면 서빙하는 이모들이 다 물어야 된다. 계산하고 나와야 된대이 “후보의 첫 질책?이었습니다.
일상에 대한 기분 좋은 가르침도 있었습니다. 선거운동 초반 지방 어느 관광호텔에서 잠을 자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를 머물고 후보와 각자 방에서 나와서 엘베를 향해 걷는데 물었습니다. “니는 팁을 얼마나 놓고 나왔노?” “그거 미국에서 하는 거 아니예요? 저는 배운 적이 없어서..” “호텔 정리해주시는 분들이 돈벌이가 얼마 안 된다. 다믄 얼마라도 놔둬라”
어느 지방 일정, 마지막 일정으로 농협한우타운에서 만찬이 잡혀 있어 고기를 맛있게 먹고 나왔습니다. 후보가 늘 그렇듯 나오자마자 물었습니다. “밥 먹었나?”, “네, 오랜만에 소고기 먹었습니다.” 그러자 후보는 “고기 맛있고 좋은데.. 요즘에 지역마다 이거(농협한우매장) 이래 해놓으면 지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어쩌누 ...”
#비서챙기는것
(지방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실 때는 언제 들어가는지 일정이 정해지면 어딘가로 전화를 하십니다. 사모님입니다.)
일정을 마치고 나오시면 빠짐없이 묻습니다. “밥 먹엇나?” “네. 먹었습니다.” 그럼 자주 밥을 거르는 다른 비서에게 묻습니다. “그래 니는 먹었고, 니는?” 많은 의원들을 모셔봤지만, 이렇게 밥을 챙기는 의원도 처음입니다.
#남원시수해봉사
새벽에 출발한 기차에서 가는 내내 일기예보를 보며 걱정하셨습니다. “비가 계속 오면 어쩌나. 봉사활동 제대로 못할 텐데..”
저도 힘쓰는 일엔 일가견이 있는데 후보님을 보고 놀라고야 말았습니다. 너무너무 열심히 하셔서 같이 하던 저도 힘들었습니다. 취재 기자들도 보고 있기만 뭐했던지 오후부터는 팔을 걷고 후보와 함께 수해복구 현장에 참여했습니다.
끝난 후 중앙당 모 총장님이 기자들에게 “오늘 누가 가장 열심히 했습니까”
(기자들 일제히) “김부겸요”
몸은 힘들었지만 웬지 모를 뿌듯함에 가슴이 울렁였습니다
#무등산서석대
광주 일정이 수해로 취소된 후 캠프 대변인이 광주 대의원대회 연설을 연습한 걸 영상에 담자고 제안했습니다.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후보님은 뒤에 무등산 서석대 사진을 걸어두고 몇 시간 동안 연습에 몰입했습니다.
정장을 입고 땀을 비오듯 흘리시며
“1980년 5월 저는 제가 다니던 향린교회에서 광주의 비극을 전해..” 이 연설을 몇 번이나 하셨는지 모릅니다.
끝난 후 모 팀장이 촬영팀에게 “이 녹음파일 제대로 되어 있나 확인해 봐. 이거 날리면 대변인들부터 나까지 다 사표 써야..” 한다고 심각히 얘기하는데 옆에 지나가던 후보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쑥 내밀어.. “야 야 파일 날리면 다시 찍으면 되는데, 와 그라노”
#가장아팠던순간
후보가 술에 조금 취하신 걸 딱 한 번 봤습니다. 그 때 술을 마신 게 TK 모 지역에서 첫 선거를 치르고 낙선한 모모 님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그 분이 술주정처럼 괴로운 심정을 한참 토로했습니다.
“매형이 출마지에서 중국집을 하시는데요. 어느 날 술 취해서 그럽디다. ”니 왜 여 왔는데? 왜 여 와서 동네 사람들한테 내 피곤하게 하노. 앞으로 여(중국집에) 오지마라” 그 말에 상처받아 술집에서 술을 한잔하는데 거기서마저 술집 주인이 민주당 사람인 걸 알고 술집에서 중간에 쫓겨난 일이 있다는 등등의 하소연이었습니다.
후보도 좀 취한 터였는데, 그 말씀만큼은 또박또박했습니다. 제 맘에도 아리게 박힌 그 문장이 떠오릅니다. “OO야, 그걸 이기는 게 정치다. 그걸 버티는 게 정치다. ... 닌 이겨내야 한다. 나는 이미 기성세대라 끝날지 모르겠지만, 니는 앞으로 당당하게 해라. ..”
#1만킬로의법칙
누구든 1만 시간을 반복하면 그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요.
후보님이 다닌 지난 두 달 간 이동거리를 보니 1만킬로입니다. 오늘까지 50여개 매체에 70여건의 인터뷰를 강행했습니다. 하루에 4건이 잡힐 때도 있었습니다. 국내 유명 팟캐스트는 거의 빠짐 없이 녹화에 참여했습니다. 도시락이나 햄버거로 떼우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셨습니다.
간담회 등 소견 자리 마지막 말씀이 늘 제 마음을 짠하게 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느 순간부터 하고 계셨는데,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차마 묻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후보님 대신 제 입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