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기록된 원성왕의 즉위과정에 관한 설화.
선덕왕 때 이찬 김주원이 상재(上宰)가 되고 김경신은 각간으로서 차재(次宰)에 있었는데, 꿈에 복두(幞頭, 귀인이 쓰는 모자)를 벗고 흰 갓을 쓰고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 우물로 들어갔다. 해몽을 해보니 복두를 벗은 것은 실직할 징조요, 가야금을 든 것은 칼(형구)을 쓸 징조이며,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라 했다. 이에 매우 근심하여 두문불출했는데 이때 아찬 여삼(餘三)이 와서 해몽하기를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거할 사람이 없음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왕관)을 쓸 징조요, 가야금을 든 것은 12손이 대를 이을 징조요, 우물에 들어간 것은 대궐로 들어갈 상서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덕왕이 죽자 국인(國人)이 김주원을 왕으로 삼아 장차 왕궁에 맞아들이려 하였다. 그 집이 알천(閼川) 북쪽에 있었는데 폭우로 냇물이 불어 건너오지 못하자 김경신이 먼저 궁에 들어가 즉위하니 김주원의 무리가 모두 와서 새 왕에게 절하여 경하했다고 한다.
이 설화에서는 원성왕의 즉위를 꿈을 인용해 신비화하고 있는데, 이를 검토해보면 원성왕의 즉위가 정상적인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선덕왕 이후 제1의 왕위 계승권자는 무열왕 직계손인 김주원으로서 귀족회의의 추대를 받았으나, 김경신이 비상수단으로서 정변을 일으켜 먼저 왕궁에 들어가 독단적으로 즉위식을 거행하고 그 뒤에 다른 귀족들의 승인을 받아 기정사실화시켰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원성왕 즉위설화 [元聖王卽位說話]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한국사사전편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