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은 문화의 곳간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서점들이 몰려 있는 서면은 그래서 문화의 곳간이다. 문화의 중심지다.
서점은 시다. 시집이다. 시집 코너다. 스무 살 무렵 시집 코너에서 만나던 소녀다. 스무 살 무렵 문학청년이 앓던 열병이다. 커피 값을 아껴야 하고 책값이 아쉽던 스무 살 무렵. 서점이 없었다면 내 스무 살 무렵은 난감했겠단 생각이 든다. 서점이 없었다면 어디에서 소녀를 만나고 어디 가서 새 책을 닥치는 대로 봤겠느냔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서점은 시계다. 자명종 시계다. 때로는 여섯 시 정각을 때로는 일곱 시 정각을 땡땡땡 알리던 자명종 시계다. 손목시계도 귀하던 스무 살 무렵. 지나가는 사람에게 쑥스럽게 시간을 물어보지 않아도 시간을 알 수 있는 곳. 책장을 넘기다가 소녀가 올 시간이 됐는지 벽시계를 힐끔거리고 출입문을 힐끔거리던 곳이 내 기억 속의 서점이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내가 아는 출입문은 세 가지다. 종소리가 들리기 전에 열리는 출입문과 종소리에 맞춰 열리는 출입문과 종소리가 들려도 열리지 않는 출입문. 내가 아는 종소리도 세 가지다. 출입문이 열리고 나서 들리는 종소리와 출입문이 열리면서 들리는 종소리와 출입문이 열리기도 전에 들리는 종소리. 서점은 책을 재어둔 만큼이나 종소리를 재어둔 곳간이라고 생각하던 스무 살 무렵. 곳간을 채우는 종소리가 불어나면서 소녀는 종소리에 홀린 듯 파랑새처럼 팔랑팔랑 날아가 버리고 문학청년은 파랑새가 날아가 버린 서점 밖 세상에다 대고 속에 담아 둔 종소리를 토해 낸다. 종소리는 듣는 순간에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세상을 돌고 돌아서 마침내 날아가 버린 파랑새에게 가 닿는 소리라 믿으면서. 서면에 오면 스무 살 무렵 듣던 종소리가 들린다. 돌고 돌아도 파랑새에게 가 닿지 않던 소리가 들린다. 종소리가 들리는 서면에 오면 나는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늦게 온다고 조갑증을 내는 대신에 늦게 온다고 짜증을 내는 대신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작정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조갑증을 내는 바람에 짜증을 내는 바람에 나를 참지 못하는 바람에 날아가 버린 파랑새에게 사과라도 하듯이. 서면은 종소리다. 서면은 서점이다. 종소리가 들리는 서점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서점은 서면에 몰려 있다. 서면에 있는 서점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부산에 퍼져나가고 부산 바깥으로 퍼져나간다. 서면에 있는 서점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려고 부산 사람은 서면으로 몰리고 부산 바깥사람도 서면으로 몰린다. 서면은 종소리의 중심이다. 서점의 중심이다. 서점은 책의 곳간이다. 곳간은 모이는 곳이면서 퍼져나가는 곳이다. 책의 곳간인 서점은 책이 모이면서 책이 퍼져나가는 곳이다. 책이 문화라는 사실을 굳이 부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서점은 문화의 곳간이다. 문화가 모이고 문화가 퍼져나가는 곳간이 서점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서점들이 있는 서면은 그래서 문화의 곳간이고 문화의 중심지다. 서면은 문화의 중심지다. 돈의 중심지이면서 차의 중심지이면서 또 사람의 중심지이면서 서면은 문화의 중심지다. 서점의 중심지다. 종소리의 중심지다. 서면을 걷다가 멈춰 서서 종소리를 들어 보라. 몸의 귀를 열고 마음의 귀를 열고 종소리를 받아들여 보라. 살아오면서 본의 아니게 날려 버린 파랑새를 떠올려 보라. 종소리가 멈추는 순간까지만이라도 멈춰 서서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라. 지나간 날에 젖어 보라.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