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동명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메아리치듯 머리속에 남아있는 몽환적인 목소리.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노래에서 목소리는 과연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으면서도 같은 질문에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제이와 동규가 그토록 말하고 싶어했던 목소리는 무었이였을까,더나가 목란과 길위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들을 비참하고 잔혹하게 만드는 소리는 무엇이였을까. 사실 지금에 와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슬픔이라고 얘기하던데 제가 느낀 이 책은 슬픔보다는 절망에 가까웠습니다.
글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은 제이 입니다. 누군가의 원치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 비극적인 출생은 아이의 인생 절반에 거쳐 참으로 불공평하게 이어집니다. 그가 평범할 수 있었던 시간은 돼지엄마의 품 속에서 동규와 함께 지낸 시간 뿐입니다. 돼지엄마의 가출로 고아원에 들어가게 된 제이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따뜻했던 다방의 레지는 살해당하고, 불쌍한 개들을 도와주려 개장수의 차에 구멍을 냈을때 고아원의 원장은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며 어른이 되어야 한다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면 그런 부조리함을 자연스럽게 이해할수 있게 되는걸까요?
이런 세상에서 제이는 변해갑니다. 고아원을 나온뒤 흡사 노숙자와 같은 모습으로 동규를 찾은 제이. 그는 지옥도와 같은 세상속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살아남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도덕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가출 소년 소녀들의 관계는 마치 동물들의 사회와 같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폭력으로 다스리고 그 속에서 난교는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윤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른들은 그들의 그런 관계를 눈치채면서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어른들은 그들의 부조리함을 껄끄럽지만 쉬쉬 넘어가려 합니다.
제이는 폭주족의 우두머리격이 되어 '고아'들의 이야기를 폭력으로 분출합니다. 배달이 늦으면 오만가지 짜증을 내면서, 밤에 폭주를 뛰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잣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이들 역시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의미없는 목소리만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