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歷史)과 곡선(江)" 여행
일반적인 관광 여행보다 눈에 보이는 풍경(風景)을 넘어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작은 구도(求道)의 깨우침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남한강 유역의 폐사지와 흥원창(漕倉) 등을 다녀왔습니다.
남한강 유역 폐사지(廢寺地) 여행에서는 고승(왕사, 국사, 대사 등)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각각의 승탑(부도)과 비문들은 일천년 가까운 세월의 두께를 이기고 문화재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오면서 삶의 지혜를 주기도 합니다. 여행한 석조미술 유물들 대부분이 “최고(Best)의 수준”이지만 그 중에서 고달사지 승탑(국보 4호)과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59호)는 “최고를 넘어(beyond best)” 라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남한강은 단순한 강물을 넘어 예로부터 한양과 충청도, 경상도를 잇는 나라의 중요한 길이였고 어쩌면 지금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 것 같으며 인간과 역사와 예술 그리고 자연의 어우러짐 면모가 우리나라의 다른 강보다 더욱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한수를 돌아드니 섬강이 어디매뇨” 구절의 한수(漢水)와 섬강(蟾江)이 흥원창에서는 모두 보입니다. 아마도 이 원주, 여주지역의 고찰(古刹)들의 번영도 남한강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특히 원주는 강원도의 산물이 서울로 이동하는 집산지로 강원도 감영이 있습니다. 감영에 가보면 기록관의 관찰사 명단에 선조 때 정철의 이름이 있습니다.
고달사지 승탑과 법천사지 탑비를 보고 내려온 폐사지의 황량한 벌판에는 목조건축은 간데없고 버려진 석재 유물들이 삭막함을 더해 주는 곳, 시공을 초월한 그 자리에서 옛 영화(榮華)를 그려보는 시간은 "결과와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삶"을, 그리고 도굴꾼들에게 무겁고 상품가치가 없어 천대 받았던 석재들은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격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석양 무렵에 도착한 거돈사지에서 천년 묵은 느티나무에게 삶의 길을 물었더니 "마음이 울적하거든 혹은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거든 가을 폐사지로 오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퇴임하고 6개월 동안 코로나19 감옥살이 후에 저를 힘들게 했던 주변인(周邊人)과 같은 삶에 대한 회의감을 질문했더니 아마도 묵(黙 : 고요함)과 공(空 : 비움)의 이해를 통하여 마음의 치유하면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웃으면서 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어수선 할 때 한번쯤은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추신 : 꼭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권」의 해당 내용을 읽고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가셔서 돌과 논밭, 잡초만 보고 올 수도 있습니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
이십 여년 전 여주 고달사터에 갔을 때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은 일부 유물을 중박으로 옮겨서 다소 서운하지만 그래도 고달사터 부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폐사지 답사는 60살 넘어 가을날에 가는 것도 많은 감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종교를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