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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여름’을 가꾸는 사람들
-척박한 땅에서 뿌리 내리기
공 영 해(시인. 창원문인협회 전 회장)
1. 들어가며
단풍물이 한창일 무렵 『함안문학』 평설을 구두 청탁 받았다. 함안의 문인들과는 동인 관계로 친분이 남달라 어물쩍 반승락을 하고 말았는데, 참 난감하고 막막하였다. 청탁의 구체적 내용을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간지를 본 후에 함안 문학의 발자취를 써 달라는 주문이었다. 며칠 뒤 연간지 『함안문학』 10권(11집에서 20집까지)을 택배로 받으며 둔필의 애옥살이를 실감했다. 시각을 다투는 주문이라 부담감이 커서이다. 정독 후 수집한 정보 정리에 드는 시간만도 만만찮을 텐데…. 함부로 서두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며칠 후 나는 부제를 ‘척박한 땅에서 뿌리 내리기’로 먼저 정하고, 함안 문학의 중심에 서 있는 회원들의 어제와 오늘을 살피는 것으로 논의의 방향을 잡는다. 『함안문학』은 2009년 현재까지 20집이 발간되었으니, 2000년을 기준으로 전반기와 후반기 문학으로 나눌 수 있겠다. 전반기 문학은 이 글의 전개상 후반기 함안 문학을 점검하기 위한 배경적 기능만 부여키로 한다. 함안 문학 태동의 배경과 도약의 발판을 이룬 전반기 주요 문인들의 작품 탐독은 함안 문학의 내실 점검을 위해 우선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런 다음 후반기에 등단하여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는 회원들의 면면 확인과 등단 후 입회한 회원들의 작품 또한 주의 깊게 살펴본다. 아직 등단은 하지 않았으나 함안 문학의 미래의 재원이 될 회원들과 ‘문예창작반 글터’ 또한 염두에 둔다.
이 글은 『함안문학』 11집에서 20집까지를 텍스트로 삼았으며 전반기에 대한 정보는 창간호를 따르기로 한다. 논리적 전개를 지양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후감을 펼쳐 나가기로 하되, 혹 눈이 아둔하여 지나침이 있음은 워낙 굼뜬 작업 탓으로 돌린다.
2. 좋은 텃밭을 어찌 묵정밭으로 묵히랴.
묵정밭이라 하여 이미 그 땅심이 다하였으랴. 땅심으로 자란 열매들 스스로 좋은 알곡되어 찾는 이 많으니 그 좋은 텃밭을 어찌 묵정밭이라 하여 묵히랴.
함안은 예부터 문자향이 서린 고을이다. 현대 한국문학사의 중심에 선 함안 출신 문인들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시인 이상규는 그 인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여항산은 주산이 되고 작은 산들과 지맥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 산자락에서 많은 문사를 배출하기도 하였는데 주산 자락에서 현대 문학의 거봉인 평론가 조연현, 수필가 채낙현, 동쪽으로 뻗친 봉화산을 이은 자양산 자락에선 시인 이석, 그리고 그 지맥에서 시인 홍진기, 이혜선, 조병무, 이수익이 태어났다. 서쪽으로 미령산에 이어 백이산 자락과 그 지맥에서 소설가 이규정, 아동문학의 조현술, 이영호, 시인 주문돈, 그리고 법수의 품속에서 문덕수 시인 등이 배출되었다. 또 한 사람, 문학과 연관하여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이원수 시인이다. 1911년 양산에서 태어난 그는 마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함안금융조합에 취직이 되어 근무하면서 독서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는 등 함안과의 인연을 엮(함안문학 14집 40쪽)”었다고. 위에 든 문인들 이외에도 양우정(시), 주강식(시조), 이달균(시조) 시인이 함안 출신이다.
이처럼 함안은 뛰어난 문인들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지역임을 확인한다. 그러함에도 1990년 이전의 함안은 문학 불모지였다. 밭은 가꾸면 얼마든지 옥토가 될 땅임에도 그 밭을 일굴 일꾼들이 없었다. 동기 부여가 절실하였다. 벌써부터 함안은 한국문인협회 함안지부 결성의 필요성을 느껴왔다. 이에 1990년 홍진기(초대회장), 조현술, 김연동이 발기인이 되고 이상규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여 함안문인협회의 산파역을 맡고 이명호, 안상규, 김상환, 구자운, 강재오, 윤태환, 장영수 등의 회원들이 뜻을 모아 함안 문학의 텃밭을 부지런히 경작하기 시작했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향리 함안을 지키면서 함안을 사랑하는 그런 문인이 함안은 필요하였다. 앞에 든 문인들이 속속 등단하면서 함안 문학은 스스로 일어나 정체성을 확립한다. 후반기(2009년까지)에 들어와서 함안 문학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야말로 함안 문학이 담당해야 할 과제였다. 하여 연간지를 통해 지상(誌上) 문학강좌를 열기도 하고 해마다 문예창작반을 개설하여 문학 가족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다. 봄․가을에 개최하는 도단위 백일장 또한 미래의 문사 배출의 역할 담당에 음으로 기여하게 한다. 함안을 문향이요 예향이라고 이제 함안의 문인들은 떳떳이 말할 수 있다. 이런 자긍심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함안 문학에 불을 지핀 향토 문인들의 꾸준한 역할 담당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1) 큰나무의 그늘을 어찌 잊으랴
나무가 있으면 어찌 그늘이 없으리. 나무가 클수록 그늘도 넓은 법. 여름이 지났다고 하여 어찌 그 그늘을 잊으랴.
후반기 『함안문학』은 4명의 유명 문인들을 조명하고 있다. 조연현, 문덕수, 이석, 양우정이다. 이 분들의 문학과 삶은 회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자랑이 아닐 수 없다.
11집의 머리말에서 이상규(당시 지부장)는 석재 조연현을 화두로 띄우더니, 이듬해 12집(2001년)에서 <조연현의 문학세계․업적 조명 세미나>를 연다. 석재의 제자 이철호는 「석재 조연현 수필세계의 문학성」을, 채수영은 「조연현의 문학 비평과 갈등」을, 조병무는 「석재 조연현의 문단 활동 배경과 성과」를, 정목일은 「석재 문학 조명을 통한 기념사업 방향과 지방문학의 육성」을 각각 다루면서 조연현의 수필 「내 고향 사투리」와 「무명 나병 작가와의 해후」를 소개하고 있다. 이 세미나는 석재 문학 기념사업의 기반 조성을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석재 문학이 현대문학사에서 그 업적이 뚜렷함에도 친일 혐의가 문제되어 기념사업이 아직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석재의 문학과 삶에 대해 그 공과를 분명히 밝히고 이를 있는 대로 수용하여 후인들의 사표(師表)로 삼아야 할 때도 되었다.
15집(2004년)은 <함안이 낳은 시인 문덕수>를 특집으로, 평설과 연보를 싣고 있다. 문덕수는 교수이며 월간 『시문학』의 주간으로, 현대한국시단을 이끌어가는 역량 있는 시인들을 배출한 시인다. 이상옥은 「문덕수론」에서 ‘내면의식에서 상황의식의 깊이까지’를, 이승복은 「내면화된 전쟁체험」이란 제 하에 ‘문덕수의 시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상옥의 평설을 통해 우리는 문덕수가 “이상 이후 내면의식을 가장 밀도 있게 추구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초현실주의적인 자유 연상법에 의해 이미지의 자유로운 조형성”을 통하여, 소재 중심적 시의 한계성을 벗고 표현의 절대적인 자유를 확보하면서 무의미시의 영역에까지 다가간 시인임을 알게 된다. “최근에는 달관의 경지에 도달한 견자의 눈빛으로 사물을 응시”할 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심화 발전시켜 … (중략) … 생태시학의 새로운 구축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인” 시인이 또한 문덕수임을 밝히고 있다.
17집(2006)은 <고 이석 시인의 시와 생애>를 연보와 함께 발표하고 있다. 이광석의 ‘이석 시인의 삶과 시’, 이명호의 ‘내가 아는 이석 시인’은, 지역 문학사에 미친 이석 시인의 업적 및 그의 시적 경향과 인물됨에 대해 조명하고 있어, 후인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이광석은 이석의 작품 세계를 “첫째 자연을 모티브로 한 서정적 세계의 표출, 둘째 심미 의식과 강인한 에스프리, 셋째 전통에 바탕한 자연과의 담백한 조응 등으로 집약”하고 있다.
18집(2007)은 함안 출신의 정치가 양우정(梁雨庭)을 발굴하여 특집으로 묶고 있다. 격변의 정치 현장에서 사상의 희생양이 된 불우한 정치가 양우정은 정치가이기 이전에 이미 시인이었다. ‘나무ㅅ군’ 외 9편의 작품과 서범석의 평설 ‘「낙동강」의 시인 양우정(梁雨庭)’, 이상규의 ‘우정(雨庭)의 뜰에 비가 내리고’, 임채민의 ‘양우정(梁又正)의 문학세계’를 발표하면서 시인 양우정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함안문학』은 함안 출신 문인 조연현, 문덕수, 이석, 양우정의 삶과 문학을 소개함으로써 지역 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기획은 함안 문학이 아니고는 해 낼 수 없는 자부심의 소산이다.
(2) 일꾼들, 마침내 팔을 걷어붙이다
이미 ‘내’ 텃밭이 마련되었으니 실한 일꾼들이 다투어 농사를 짓고 추수를 할 때가 되었다.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나 내 땅을 내가 가꾸는데 땀을 아껴 무엇하리. 마침내 팔을 걷어붙이고 밭을 향기롭게 하다.
이상규는 함안 문학의 태동기에 궂은일을 도맡아 한 일꾼이다. 그는 등단 이후 부지런히 시업에 종사한다. 제1회 가락문학상(2006년), 시집 『시골면장』으로 제19 경남문학상 우수작품집상(2007년), 함안예술인상(2010년 8월), 경남예술인상(2010년 11월)을 수상하며 함안문학의 중심에 서 있다. 시「사랑 가꾸기」(11집)에서 그는 “사랑도 농사일 같아/ 마음밭을 푸시푸실 가꾸어야지/ 거기다 풋풋한 그리움 하나 심고/ 에돌다오는 마음 불러 덥히”고 있다. 그는 ‘묵정밭’을 일구듯 함안 문학을 ‘저리도록 아린 사랑’으로 가꾸어 온 시인이다. 그는 ‘석제 조연현의 업적 조명에 불을 당겼’고(12집 10쪽) 함안 출신 문인들 조명에 앞장서 온 시인이다. “… 네 비어 있는 가슴에/ 시를 한 편 보낸다/ 배고픈 네 영혼에 / 시가 무슨 양식이 될까마는/ 아무리 강물을 퍼 올린들/ 네 가슴 밑바닥이 보일까마는/ 풀잎을 쓰다듬는 바람이었으면 하고…”(「미루어 짐작하고」 -12집) 그는 시를 쓴다. 산문시 「시골 면장」(16집)에 와서 그는 종래의 시경향에서 벗어나고 있다. 서민들의 애환을 구수한 입담으로 엮은 이 연작시에서 우리는 토속어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착을 엿볼 수 있다. 해학과 풍자성을 곁들인 진지한 그의 시작 태도는 독자들에게 시를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시 「곶감」(20집 - 80쪽)에 와서 시인은 ‘까맣게 말라붙은 곶감’으로 조손간의 민망한 분위기를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시 속에 담긴 이런 건강한 해학미가 이상규 시의 특징이다.
이영자는, “빈 논 무심한 곡식의 그루터기/ 칸칸 원고지로 깔린다/ 내사 소출 같은 거 다지지 않고/ 이 아름다운 원고지에 ‘시’를 뿌”(<아름다운 원고지>-12집)리는 체험적 농촌의 삶을 시로 써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14집에 발표한 수필 <함안에 살면서(2000년 3월)>를 본다. “뉘 불러서 이야기 좀 나눌까 두리번거리면 뒷산의 산새들 먼저 와 지저귀고 책을 펼쳐보는 밤이면 유달스럽게 반짝이는 산촌하늘의 별들이 젊은 시절처럼 눈을 맞추려 합니다. 추녀귀에는 말벌이 제집을 잇대어 짓고 까치 내외가 이웃으로 이사 올 참인지 새벽부터 감나무 가지들을 찍어 나릅니다.” 시인이 살고 있는 시골의 정취가 손에 잡힐 듯 정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그 유명하던 ‘성광집’을 닫고 함안에 삶터를 옮긴 그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의 글에는 진한 생의 아픔이 묻어 있다. 시 <빛바랠수록 진한 것>(16집)에서 자아는 “방충망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보다 이웃 아이 징징대는” 소리가 너무 덥게 느껴짐은 ‘폭염의 세월에 바래어도/ 흔적을 지을 수 없는’ 애달픔 때문이라 했다. 시인은 개인사를 통해 민족사의 아픔까지 진단하고 있다. 그에게 시는 상처의 치유이다.
이명호는 연작시 <방목장날>(11집)에서 장터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농촌 서민들의 애환을 판소리가락의 걸쭉한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다. 부추밭을 애지중지 손질하는 <듬실댁>의 부지런함을 통해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대상에 대한 화자의 사랑은 우리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는 12집에서 기행 수필을 발표한다. ‘강을 따라 삶을 찾아’이다. 약양루와 합강정, 반구정, 와룡정, 광심정 등 정자 순레를 통해 함안의 선비 정신을 풀어 놓는다. 함안문화유적시편 《말이산》(2002) 발간은 그의 애향정신의 소산이다. 연작시 <답사수첩>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왕성한 창작욕을 가진 시인이다. 산문에도 능하며 시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가 10년여에 걸쳐 풀어 놓은 「방목장날」의 해학적, 풍자적 어조의 격랑은 “어느새 봄 물결이 밀려오는”(20집) 장터에 와서도 나무 한 그루, 바람 한 자락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가 즐겨 쓰는 기행시에서는 민족혼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함안 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 또한 기억될 만하다.
함안 문학의 중심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수필가 김상환은 16집(2005년)에서 <잔돈의 가치>외 4편을 선보이고 있다. 생활체험에서 우러난 구수한 입담은 그의 자연 연령에서 우려난 글이다. 간결한 문장에서 오는 속도감과 경쾌감. 거기에 해학과 위트가 적당히 섞여 신선한 감동을 준다. 글속에 케케묵은 티가 나지 않는다. 노인 냄새가 안 난다. 글 속에 완고한 백묵내가 나지 않는다. 소탈하고 재미가 있다. 글을 억지로 만들지 않고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다.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아도 문장이 유려하고 정갈하다. 그의 글에는 허브향기 같은 은은함이 있어 읽음에 부담스럽지 않다. 그의 글 <향기를 날리며> 끝부분을 본다. “우리도 허브처럼 그윽한 향기를 날려 고마운 사람의 마음속에 안겨 줄 수 없을까? 치자꽃처럼, 흰 백합처럼 그윽한 향기를 날리며 행복하게 살 수 없을까? 새 솔잎처럼 예리한 지혜와 풋풋한 향기를 날리며 살 수 없을까?”(16집 114쪽) 이 향기가 김상환의 향기이다.
구자운은 시조와 수필을 함께 쓰고 있다. 인술을 오래 베풀며 생활의 체험을 정연하게 펼쳐 나간 글을 즐겨 다루고 있다. 그의 글은 딱딱하지 않다. 꽃길을 달리다가도 찻집을 만나면 차를 마시는 여유가 있다. <참새 가족 다섯 마리>(19집-150쪽)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사람들은 지혜롭기를 원하며, 자유롭고 겸허하면서 고고한 모습으로 삶을 향기롭게 살고자 한다. 이러한 삶을 사는 모습을 아침마당 참새들에게서 보게 된다. 날이 새면 내 귀에 들리는 아침 마당의 참새 가족은 마루에 발자국 소리 들리면 내 앞에 모여 든다. 내 손끝이 날리는 낱알의 마음에 감사하면서 아름다운 무용과 맑은 노래로 날 반겨 준다. 가족애의 근본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모든 사물과 같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우리 집 아침 마당이다.” 목마르면 샘을 찾듯 그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알고 싶은 대상이 발견되면 그것을 소재로 하여 글을 써왔다고 한다. 그는 전반기부터 연장자로서 함안 문학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다.
윤태환의 <생존>을 본다. “한 조각 육신을 떨군/ 자벌레 뼘을 재다// 트롯트 가락 흩으며/ 열병장군 삶이렸다// 폐타이어에 몸을 묻고/ 콧노래 흥얼대며/ 밀수레 조각배로 물결 속을 헤집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나비 되는 꿈을 안고”. 부제 ‘-시장에서’가 없더라도 우리는 시적 상황 속에 단번에 몰입하게 된다. 배경은 칼바람이 시장 바닥을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 1급 장애인이 살아가고자 하는 치열한 삶을 보여 주고 있다. 설명이 필요 없다. '자벌레‘ 같은 살이라 하여 ‘나비 되는 꿈’조차 버리겠는가. 음지에서 사는 삶에 애정을 보여 준 시인의 따듯한 시선에 공감이 가는 작품. 윤태환은 2002년부터 2년 동안 지부장을 맡아 함안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2007년까지 참여한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다.
강재오는 국어교사로서 장영수 시인과 함께 ‘문예창작교실’을 개설하여 군민들로 하여금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한 시인이다. “굽이치며 솟구쳐도/ 울음 하나 들리지 않는// 묵묵히 순리대로/ 유/ 유/ 히/ 맴돌면서// 깊숙한/ 속내로만 운다/ 그래도 흘러가며”. 그의 시조 <낙동강>(11집) 1연이다. 강물은 자연스럽게 몸을 섞으며 하나가 되어 더 큰 흐름으로 묵직하게 뒤척이면서 용틀임까지 친다. 그런 와중에도 강물은 낯빛 하나 흐림이 없다. 순리와 포용의 흐름을 강물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이는 그의 내면세계와도 상통한다. 그 다음 시에서는 남다른 감성을 보여 준다. “… 길섶에 싸르락/ 하얗게 듣는 소리/ 저렇게 부드러운 눈도/ 소리낼 줄 아는 것을”(<눈․1> 일부) 눈 내리는 논둑길을 우산도 없이 걸으면서 화자는 귀를 열고 있다. 대상을 감각적으로 음미한 작품이다. 그는 봄이 오면 ‘새하얀 폭죽을 여기저기 터’뜨리는 시의 목련꽃을 가득 피우리라.
1994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권충욱은 12집에서 시 <고향 풍경>을 발표한다. “동구 밖/ 늙은 은행나무 뒤로/ 노을이 내리고// 샛길 따라/ 염소 몇 마리/ 종종걸음 하는/ 박꽃 피는/ 낮은 지붕들이/ 저녁 연기에 아득한/ 황혼에 잠기는/ 오랜 동네”는 화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평화경이다. <시를 쓰면>(13집)에서 “세상사는 데는 요령이 필요하며/ 시보다는 돈이 더 필요하다”는 아내의 배금주의에도 “맞다”한다. “세상 사는 데는 진실이 필요하고/ 돈보다는 인간이 더 중요하다”는 학창 시절 선생님의 말에도 “맞다”고 한다. “다 맞다”고 한다. 현대인의 갈등과 시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언제나 하늘을 우러러온/ 침묵의 긴 여정”(<고목> 일부)을 보며 삶이 길이며 길이 곧 삶인 것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관조와 통찰의 시학을 발견한다.
(3) 땅이 비옥하여 그 열매 풍성하도다
십년을 경영해 온 농사이니 그 마을에 경사 없으랴. 일꾼들 너도나도 씨 뿌리고 가꾸니 그 땅이 비옥하여 그 열매 풍성하도다.
『함안문학』은 지령 11호를 맞는다. 2000년도 벽두부터 신인들의 등단은 심상치 않다. 그 동안 꾸준히 문학적 풍토를 일구어 온 전반기 문인들의 경작이 헛되지 않아 이제 함안 문학은 소담스러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먼저 교단 경험을 통해 닦아온 문학적 역량을 제도권에서 당당히 평가 받고 장영수, 김양수 두 회원이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리고 수필에 이강섭과 이병유, 시에 정미영의 등단은 당연한 수확의 하나이다.
장영수는 시조 <가을 멸포> 외 4편으로 2000년 『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한다. “포르르 외기러기/ 깃털에도 불이 붙어// 진다홍/ 노을을 비껴/ 강심 따라 숨는”(<가을 멸포> 중에서) 서경은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심사평은, “씨의 시조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시 정신이 들떠 있지 않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고 진지함을 짐작할 수 있다. … (중략)… 상당한 시작 경륜을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게다가 시조를 빚는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언어의 속성을 알고 제대로 만”질 줄 아는 시인이라 하고 있다. 씨는 지금까지도 문예창작반 전임 강사로 함안 문학의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김양수는 “힘차게 내닫는 물줄기/ 부딪치며 치솟는(<한산폭로 주변> - 12집)” ‘하얀 포말’의 이미지를 통해 비정한 인간의 세계를 고발 풍자한, 톤이 큰 시를 보여 주고 있다. 등단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으나 이미 한 시인으로서의 틀을 갖추고 있다. 이는 오랜 습작으로 터득한 시적 역량일 터. 그는 마침내 시 <낙엽> 외 4편으로 2004년 『문학21』을 통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 심사평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선연한 색상으로 아롱지는 건강한 시”이며 “역사의 소명을 안고 가는 날의 밝음을 향하여 내흔드는 그런 꿈이 서린 시”라 하고 있다. 그는 18집까지 회원으로 활동한다.
이강섭은 시보다 수필에 능하다. “폭풍이 되어 몰아치기도 했고/ 사막의 열풍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턱턱 막히(<열병> -12집)”는 고통으로 “여러 날 불면의 밤을 보”(<별리> - 12집)내고 있음은 머지않아 맞을 등단의 통과 의례라 해도 좋을 것이다. 수필 <복권>(12집 302쪽)은 아주 재미있는 일화를 들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이다. 그는 마침내 2003년 수필 <무덤 위의 무덤> 외 1편으로 『한국문인』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다. 심사평은, “직무상 겪게 된 특이한 체험을 다룬 수필”, “신세타령 조의 넋두리로 빠지기 쉬운 소재를 시종 차분하게 이끌어간 작가의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하고 있다.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남달라, 2005년 『문학21』에 시 <영혼> 외 4편으로 등단한다. 심사평은, “매우 밝고 건강하”며 “긴장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민족정기를 일으키는 역사의식을 읽게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병유는 산문적 호흡을 시에서 엿볼 수 있다. <한나절 농촌 풍경>(12집)에서 “쑥부쟁이, 개망초, 청개구리/ 굿자리에 맞추어/ 너울너울/ 한마당 춤판”을 벌이고 있다. 그는 시보다 산문에 능하다. 그의 수필 <낙엽을 밟으며’>는 만연체 문장. 낙엽을 통해 삶의 이치를 깨닫는 과정을 잘 풀어가고 있다. 그는 2005년 잘 다듬은 수필 <낙엽을 밟으며>로 『해동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정미영은 15집(2004년)부터 작품을 발표한다. “빳빳하게 참회의 풀을 메겨/ 뜨거운 다짐의 물을 뿜어/ 아프게, 아프게 다림질을 합니다// 반듯한 내일을 위해/ 이제 막 내리는 이슬에 널어/ 수척해진 오늘을/ 꼭꼭 눌러/ 다림질합니다”(<다림질을 합니다> 중에서)에서 보듯 이미 시를 풀어가는 솜씨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그는 마침내 2008년 잘 다린 시 <빨래를 하며> 외 5편으로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다. 심사평을 본다. “… 시어는 빗질되어 결이 곱다. …(중략)…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랑을 시적 미학으로 형상화 …(중략)…, 무게와 빛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놀라운 솜씨”라 하고 있다.
(4) 뿌린 씨가 말이 되고 섬이 되다
풍성한 열매로 다시 씨앗을 뿌리니 뿌린 씨앗을 거둠에 말이 되고 섬이 되다. 이로써 농부들이 합심으로 울력하니 마을이 번성하고 그 소문이 멀리까지 자자하더라.
1) <찻잔> 동인
무엇보다 함안 문학의 오늘을 말함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대목은 ‘찻잔’의 결성이다. 2001년 8월 25일 문예창작교실을 수료한 수료생 38명은 작품집 발간에 뜻을 함께한다. 그 해 12월 1일 마산시 진전면 부재산방에서 작품집 《찻잔》을 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이들은 장차 함안 문학의 큰 재원이 된다. 텍스트에서 스스로 ‘찻잔 동인’임을 밝힌 회원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강동규의 수필 <억새밭의 노래>(14집 237쪽)를 인용해 본다. “억새는 야생풀이기에 밟아도 뿌리 뻗는 고난 시련살이를 한다. 연약하면서도 가을 정취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모습보다 야산 등지에 소리 없이 자라나는 강한 목숨을 가지고 살아간다. 비바람이 늘 치고 흙이 척박한 산비탈에 제자리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무정한 삶이 억새다. 아마도 우리는 그저 가을 풍경으로 가을 이미지로 그 외양만 보았지 그 속에 인고의 생사와 견디어 내는 아픔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억새를 통해 인간의 삶을 발견하고 있다. 문장이 거칠지만 하고자 하는 말을 서두르지 않고 펴나가는 통찰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적확한 어휘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 수련이 그의 과제일 것 같다. 마침내 그는 이를 극복, 2004년 수필 <남해 그리운 바다> 외 1편으로 『문학21』신인상으로 등단한다. 심사평을 본다. “막연한 상상이나 관념으로 쓴 작품이 아니라 생동감이 나고 살아있는 생명감을 느끼게 하는 문장”이며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쏟아낼 수 있는 아취가 있는 작품”이라 평하고 있다. <찻잔> 동인의 첫 성과이다.
정혜자는 일상적 체험을 감각적으로 잘 짠 시를 선보이고 있다. “적은 햇빛을 나누어 잦고도/ 예쁜 고추가 열렸네 …(중략)… 따사로운 햇빛이/ 빨갛게 … /내 눈 속으로 들어와 박혀버렸네/ 하늘이 들어와 가득 차버렸네”(<하늘고추> - 12집)에서 보듯 감각적 정서가 돋보인다. 대상에 대한 개안이 이루어지면 훌륭한 시인이 된 자질을 보이고 있다. 2005년 시 <하늘고추> 외 4편으로 『문학21』을 통해 등단한다. 심사평은 이렇다. “퍽 소담하고 생활이 담긴 정겨운 시”라고.
조정모의 수필 <산장에서>(15집-243쪽)를 본다. “… 노천명의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를 읊어 본다. 가슴이 떨려 온다. 목이 메인다. 순간에 산장의 분홍색 침대와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을 병마와 생활고와 싸우면서 누하동 집 싸늘한 방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간 노천명의 모습이 오버 랩 된다. 노천명의 시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듯 슬픔이 감돌고 있는 글. 그러기에 향기도 나고 슬프도록 아름답다. 감히 남성이 접근하지 못하는 독특한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내 옆에 노천명도 같이 앉아 있는 느낌이다.” 문장에 믿음이 간다. 글을 이끌어가는 솜씨와 묘사력 또한 뛰어나다. 글 속에 여성 특유의 향기가 풍긴다. 그는 2005년 수필 <행복한 시간>으로 『수필문학』을 통해 당당히 등단한다. 심사평은 이렇다. “주제와 소재가 잘 부합되고 문장 구성도 자연스러우며 표현력도 단단하여 세련미를 보여 주고 있다. 대개 가정주부의 일과는 상식적인 것을 나열하기 쉬운데 평범 속에서 경이를 찾는 솜씨가 대단하다.”
권선자는 시낭송가로도 활약하고 있지만 “오솔길 위에서 마침내 여행을 끝(<동지산에서> - 12집)”내고 “하늘 가까운 데서부터 익어가는 가을/ 오래된 절망 하나 뜨겁게(<감>-17집)” 타는 붉게 무르익은 시심으로 등단의 반열에 오를 준비를 하더니 마침내 그는 2007년 시 <비구니> 외 4편으로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다. 심사평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정시의 정공법을 바탕에 깔고 진지한 개성을 살려 시적 미학을 연출해 내는 표현에 충실한 시인임이 분명하다. 또한 시혼과 상상력의 공간이 맑고 투명하다.”
신순희는 “자연의 조화로움 시에 가득/ 담아보고 싶지만(시인이 아니래요-)/ 혼자서 어쩔 줄 몰라 가슴만 콩닥콩닥/ 애태우는 가짜 시인(<내 자주 가는 길에 2> - 12집)”에서 복사꽃 환한 미소에 위로를 받더니 마침내 자연을 당당히 포용하는 시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2008년 시 <나리꽃> 외 2편으로 『한국문인』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다. 심사평은 이렇게 말한다.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고 보편성의 원리에 접근하여 삶의 순수성을 찾아 공감을 불러오는 작품”이라고.
안춘덕을 본다. 그도 ‘전업 주부’에서 “화려한 빛도/ 향기도 없는 일상의 일들로/ 평생을 매달리고도 늘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시작에 임하면서 “까맣게 타 들어갈 가슴 속까지/ 말갛게 지울”(<봄눈 오는 밤>」 - 12집) 시를 준비하더니, 2009년 <전업주부> 외 4편으로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다. 심사평은 이렇게 말한다. “시에 잡티가 없다. 수식도 하지 않으면서 시를 건조하게 놔 두지 않는다. 가슴으로 쓴 시이기 때문이다.”
유순애는 아직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저것/ 손대면 손댈수록/ 가슴은 자꾸만 비어오고/ 헛손질 겉몸짓에 바둥거(<강의실에서> - 12집)”리는 모습에 믿음이 간다. “찰나의 시선에도 신열이 일고/ 꽃잎마저 앓게 하는(<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12집) 시인의 마음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연희는 11집 <자화상>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휙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자신을 돌아본다. “놀라 비춰본 / 중년의 거울 속에는 / 오갈 데 없는 구겨진 시간들”이 있다. 깨끗한 심성을 찾는 화자의 모습에 신뢰감이 간다. 16집에 발표된 시 <노인․1>을 본다. “평생을 살고도/ 바쁜 마음// 새우등에/ 묵직한 세월이 땀으로 배어 있다.”에서 보듯 대상을 관찰하는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습작 기간이 길다.
이문자는 14집에서 수필 <새집아이>를 선보이더니 20집에 와서야 <냄비 사랑> 외 1편을 발표하고 있다. ‘냄비’와 얽힌 일화 소개와 그에 다른 남다른 애착을 담담한 어조로 써 내려 간 작품이다. 생활 주변에서 얻은 소재를 이토록 밀도 있게 다루기도 힘이 든다. 문장력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박지영은 12집부터 3년 동안 활동한다. 시와 수필을 발표하였으나 소재의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경연의 시 <긴 이별>(14집)에서 ‘외롭고 쓸쓸함’을 극복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19집(2008)에 발표한 동화 <거북 어머니>는 아동문학을 하는 회원이 전무한 함안 문학에 신선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고아가 된 훈이의 삶에 거북이의 등장은 이야기의 반전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건강한 동화이다. 20집에 발표한 3편의 시는 시상의 정제가 요구된다.
2) <창작반 글터>
15집(2004년)은 지면을 할애하여 권말에 ‘문예창작반 글터’를 마련한다. 처음 시도한 기획이다. 구자순, 권용순, 서진수, 이현희, 진용숙의 글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또한 함안 문학의 큰 자산이다. 작품을 본다.
구자순은 “남는 것은 시간/ 시간에 걸린/ 난/ 늘 시리다/ 빈곤한 알몸뚱아리는/ 늘 춥다(<그리움> 중에서)” 추운 그리움을 다 태워 버리고도 늘 서러운 “인연의 씨앗에 걸리운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미지의 조화를 통해 시상을 잘 풀어 나가면 좋은 시의 맥을 찾을 수 있겠다. 시린 삶의 씨앗을 제대로 뿌리는 날은 춥지 않으리.
권용순은 “모포기 한참 세다 허리 굽히고/ 넘어간 못줄 따라가랴/ 중참 때를 놓쳐 허둥대다/ 솥뚜껑에 발등만 찧었다.”(<부산댁> 중에서)에서 보듯 서사적 진술로 농사일에 익숙지 않은 부산댁의 모습을 시로 잘 표현하고 있다. 대상을 보다 함축적으로 표현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이미지의 활용도 숙제이다.
서진수는 ‘감나무’를 통해 아버지를 읽고 있다. “거름 먹은 거무튀튀한 감 이파리/ 아버지 얼굴을 닮았다.”(<감나무> 중에서) 왜? 내 앞일 반쯤은 염려되어 눈을 뜨고 임종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전개의 묘를 잘 알고 있다. 밝은 이미지의 운용이 기대된다.
이현희는 4편의 시를 발표하고 있다. “산마루에 물드는 저녁노을 한 줌/ 가슴에 담아 커피향에 적시면(<하루> 중에서)”이라든가, “아침이면/ 앞개울에 무지개 빛 깃털 나부끼며/ 은빛 물결로 삶을 펼쳐간다.”(<즐거운 오리>)라든가, “남해/ 보리암 뜨락에/ 봄 햇살이 걸어와 마당가에 졸고” 등의 표현은 기성 시인 못지않은 운용이다. 조는 봄 햇살을 깨워 시와 함께 놀기 바란다.
진용숙의 시 <산에서>는 “풀섶마다 송이송이/ 시간을 묶어 숨겨 두었던/ 사랑마저/ 생각의 끈조차/ 바람에 삭아 있었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미지의 처리가 예사롭지 않다. 시간의 물상화는 그의 습작 기간이 결코 하루아침이 아님을 엿볼 수 있다.
16집(2005년)에 권말의 창작반 글터에는 김외숙, 이연희의 시를 싣고 있다.
김외숙은 3편을 발표하고 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봄비처럼 잔잔히 스며드”(<기억>)는 ‘기억’은 이미지가 밝고 시상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안이한 시상의 전개와 소녀적 낭만은 시를 무력하게 한다. 간결한 호흡의 시상 전개는 장점일 수 있다.
이현희는 전호에 이어 시 4편과 수필 1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시상 전개가 더 안정적이다. 그러나 고답적 취향의 향수는 신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5) 찾아와 함께 농사짓는 자 많더라
마을의 소문이 향기로우니 찾아와 함께 농사지으려는 자 있으매 기꺼이 손을 잡고 씨 뿌림을 같이 하더라.
2001년 3월 27일 강동규, 신순희, 배선현, 이문자, 박지영 입회. 강동규, 신순희, 이문자, 박지영은 전술한 바와 같고 배선현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14집(2004)부터 시로 등단한 이남순과 『시와시학』으로 등단한 창원대 총장을 역임한 이수오의 잘 익은 서정시가 합류한다. 그리고 이석영, 함태임, 김경연이 입회한다.
이남순은 14집부터 시로 참여하다가 16집부터 시조를 발표하고 있다. “꽃같이 살자더니 봄바람은 돌아지고/ 발등에 편편 샇인 빛 바랜 옛 노래가/ 쓸어도/ 쓸어도 정은/ 눈 내리듯 쌓여만 가오”(<가는 봄> 둘째 연)에서 보듯 가락을 타는 그의 서정적 정조는 건강하고 믿음직하다. 그는 마침내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마중물>로 당선하며 시조 세계에 당당히 발을 내딛게 된다. “살아 네 가슴에 푸르게 가 닿기 위해/ 어수선한 욕망의 깃발, 하나 둘 걷어내고/ 무저갱 아래로 아래로 조심조심 내려간다.”(<마중물> 1연) “꿈꾸는 자유를 위해/ 찬란한 부활을 위해”(<단추>중에서) ‘단추’는 “밤이면 올실을 풀 듯 사슬을 벗겨내는” 것이다. 거기 “청록빛 세상 하나가 숲이 되어 일어”(<청계천> 중에서) 서는 날을 시인은 살고 있다. 작품 활동이 활발한 유망주이다.
이수오는 14집부터 16집까지 활동한다. 그는 시 <외로움>에서 “동행하는 이 없어도/ 잔잔히 떨리는 한 말씀,/ 그 외로움이 향기로워/ 오늘 하루분의 향기를 머금고,” 좁다란 외길을 가고 있다. 화자의 외로움은 하루분의 향기로 극복된다. 학문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철학적 사유를 그는 은유의 틀에 담아 풍어내고 있다. <산에서․5>를 보자. “숲 속을 지나며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꿈결 같은 기쁨으로 설레이며/ 저 맑고 푸른 하늘 속으로/ 어제의 모든 일들은 한순간 사라진다” 그래서 산은 화자에게 ‘일상의 고통을’ 벗는 공간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그 공간은 현실 도피적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외로움을 향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공간이다.
함태임의 <도솔암>은 각각 ‘애달픈 사랑’의 감정을 아직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이석영의 <달>은 “빙그레/ 엷은 분/ 모시/ 두르고// 늦은/ 저녁상/ 받고 있네.”처럼 이미지 처리가 깔끔하여 군더더기가 없다. 그러나 이석영은 15집부터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15집에서 만나는 조정래는 이미 소설집『잊혀간 왕궁 아라』와 『사라진 뱃사공』를 낸 소설가이다. 그런 그가 시를 발표하고 있다. 시 「말이산에서」(15집 -145쪽)는 상징적 어휘가 계절을 넘나들며 ‘눈꽃’이 되어 새벽에 날리기도, “쇠를 벼르는 정교한 손길도/ 흙을 다듬는 섬세한 손길도” “쓸쓸한 가을”이 되는가 하면, “햇살이 불꽃으로 내리는/ 제국의 여름”을 지나 “흙 속으로부터 타오르는 불꽃으로” 잉태의 봄을 펼쳐지기도 한다. 장시임에도 단숨에 읽혀진다. 시상의 전개가 도도하다. 부활의 이미지가 불꽃처럼 뜨겁다. 뜨거워서 숨이 막힌다. 조정래는 어휘의 생물적 감각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이다.
16집부터 노승문, 김태영, 구자순, 조선옥, 박향순, 강홍중이 입회한다. 노승문은 18호에 처음 시 3편을 발표한다. 시간을 오래 곰삭인 시작 경륜을 엿볼 수 있다. “이제껏/ 소리하지 못한 욕심의 새벽은/ 내 혼을 깨우고/ 신중하지 못함을 나무라며/ 훌훌 던져버리고// 일년을 살아도/ 아낌없이 떠날 줄 아는 나를 닮으라는/ 낙엽의 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온다.”(「낙엽의 소리」 부분) 가작이다. 등단에 조급한 지망생들이 배워야 할 시정신이다.
조선옥의 시 「빈 의자」에서 ‘의자’는 이승과 저승의 가교적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좋은 발상이지만 시어의 절제가 아쉬운 시이다. 박향순의 수필 「정」을 본다.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주변적 소재를 작품으로 잘 빚고 있다. 사변적 어휘의 절제를 요한다. 『한국문인』을 통해 등단한 강홍중 시인은 함안 사랑의 향토적 서정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꿈에 시가 잠을 깨울 때」(20집)에서 시인은 시를, “비 갠 후 잠시 깨어난 오색 무지개/ 한가한 분수에 주렴을 펼쳤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라 노래하고 있다. “더 파란 꿈”은 시인의 내일이다.
17집부터는 『문학세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조명래 시인이 처음으로 참여하여 상실의 시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눈앞에 그려지는 우리가 함께라면/ 햇볕 그을린 어둠 속/ 강물 모여 어디론가 흘러가는/ 남은 삶의 조각들을 모아서/ 손끝이 아리도록/ 기워보고 싶”(「모래톱」일부 -20집)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자못 애틋하다. 「눈 오는 밤」에서처럼 “영혼의 낱장”을 “햇볕 좋은 날 야문 봄처럼” 심은 시가 기대된다.
20집(2009)에 와서 시에 조승래, 역사소설 〈정인홍과 광해군〉을 쓴 조평래가 입회한다. 우주적 공간 속의 하잘 것 없는 인간의 삶을 관조하는 시를 들고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조승래 시의 여유는 “구릉도/ 강아지 뒹굴 자리/ 남겨 두었더라”(「목련 아래」- 20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2010년『시와시학』봄호 신춘문예를 통해, 주제를 다루는데 정밀하고 정서의 소통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평을 받으며 시「정읍을 지나며」 외 3편으로 재등단하는 치기까지 보인다.
조평래는 무려 120쪽의 분량에 해당하는 시나리오 「내 남자의 상처」를 발표하며 지역 문학의 특성상 낙후된 시나리오 분야에 청신호를 보낸다. 그의 입회는 함안 문학의 새로운 출범을 상징하기도 한다.
<함안의 고전>을 연재해 온 김종운의 역량은 잊을 수 없다. 〈율간 이중현의 시편에 담겨진 부끄러움〉」과 한문수필 2편의 비중은 실로 크다. 무슨 까닭인지만 11집까지만 활동하고 그의 이름은 사라진다. 칠언율시를 발표해 온 이명성 또한 13호까지만 작품을 발표하고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3. 나오며
나그네는 좋은 그늘이 있으면 쉬고 소매를 끄는 인심이 있으면 옷자락을 맡긴다. 향기로운 마을이 있어 술을 권하니 집집마다 웃음소리 청량하도다.
이상에서 『함안문학』 후반기 호를 통해 함안 문학의 발자취를 회원들의 작품 세계를 통해 더듬어 보았다. 너무 숲이 우거져 있어 나무 하나하나를 다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11집(2000년) 부록의 ‘한국문인협회 함안지부 회원주소록’을 보면 총회원수가 42명이나 된다. 그 중 등단 회원은 9명(장영수 포함)에 지나지 않는다. 10년 후인 20집(2009년)에서는 37명의 회원 중 등단 회원은 25명에 이른다. 이는 『함안문학』이 그만큼 내실을 다져가고 있음을 말한다. 함안은 예비문인들이 많다. 이 재원들을 더욱 단련시켜 건실한 농사꾼으로 연장을 잡게 하는 것이 함안 문학의 과제이다. 말이산을 중심으로 살아온 가야 제국의 후예들, 이들은 지금도 땀 흘리며 ‘제국의 여름’을 가꾸어 가고 있다. 제국의 가멸찬 문화 건설이 이들의 꿈이다. 문화의 융성은 고을의 삶의 질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음이다. 이제 『함안문학』은 부지런한 농사꾼들이 많고 일구어야 할 땅도 비옥해졌으니 이웃 문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장성군 문인협회 회원 작품 초대’(13집)뿐만 아니라, 초대 문학으로, ‘출향문인편’, ‘경남시조시인편’, ‘경남아동문학편’ 등의 지면을 개방해 왔듯 앞으로도 지역문학을 선도하는 입장에 서서 ‘제국의 여름’을 건설하기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