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밖에 없는 대조선의 어진중.. 영조 어진

영조어진
[자료설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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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산사애인 | 2008/01/18 18:48 | 우리의 그림
영조임금의 어진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이 어진은 광무4년(1900)에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셔 두었던 경운궁 선원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잃게 된 일곱 분의 어진을 대대적으로 모사할 때 제작된 것으로 당시 육상궁 냉천정에 모셨두었던 영조어진(영조20년에 제작한)을 본떠 그린 것이다.
주관화사(화원)는 채용신과 조석진으로 익선관을 쓰고 가슴과 두 어깨에 오조룡을 금실로 수놓은 홍룡포를 착용한 반신상이고 이 어진은 보물 제932호이다.영조는 조선 제21대 왕으로 이금은 금, 자는 광숙, 호는 양성헌이고, 즉위전 봉호는 연잉군이다.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 태어나 경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인 52년을 재위하면서 각 분야에 걸쳐 두루 치적을 남겼다. 탕평책을 실시하여 왕권을 확립하고 정국의 안정을 이끌어내고 각종 제도 개혁 및 문물 제도를 정비하고 균역법의 실시로 조선을 부흥시켰다. 학문에도 힘써 다방면에 걸쳐 서적을 간행하였고, 직접 많은 글을 짓고 써서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료설명2]
문화재청 홈페이지 문화유산지식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2,09320000,11
검색문화재 설명보기 종 목 보물 제932호
명 칭 영조어진(英祖御眞)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인물화/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 정 일 1987.12.26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 국립고궁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국립고궁박물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조선시대 임금인 영조(재위 1724∼1776)의 초상화이다. 영조는 심각한 당파싸움에 대하여 탕평책을 실시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사회를 안정시켰으며 스스로 학문을 즐겨 문예 부흥기를 이루었다.
이 그림은 51세 때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로 68㎝, 세로 110㎝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머리에는 임금이 쓰는 익선관을 쓰고, 양어깨와 가슴에는 용을 수놓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돌고 있고 두 눈은 치켜 올라갔으며 높은 콧등과 코 가장자리, 입의 양끝은 조각처럼 직선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슴에 있는 각대 역시 위로 올라가 있고, 옷의 외곽선을 따로 긋지 않는 등 조선 후기의 초상화 양식이 보인다.
이 초상화는 영조 20년(1744)에 장경주, 김두량이 그린 그림을 1900년에 당대 일류급 초상화가들이 원본을 보고 그린 것이다. 비록 원본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원본을 충실하게 그린 것으로 현존하는 왕의 영정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