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집터에서 좀더 걸어가면 있는 건국준비위원회 자리
건너편엔 당시 휘문고가 있습니다
국민들이모여 대화를 위해 큰소리로 여몽을 부르면 집에서 입던 모시옷 바람으로
휘적휘적 오셔서 일장 연설을 하셨다고 합니다
건국동맹터 옆으로 좀 걸어가면 수은회관있고 약간더가면
잘못된 증언으로 엉뚱한곳에 건국동맹터 기념석이 있습니다
1944년 8월10일 건국동맹 결성 터 앞. 뒤 쪽의 건물이 건국동맹을 결성했던 삼광한의원 터.
동학 천도교 본당
1945년 조선인민당, 1947년 근로인민당 결성의 자리였던 천도교당 앞
수은회관내 위치한 이 강당에 모여서 결의나 집회를 하였다 합니다
한옥마을옆(당시 헌병사령부)
한국의집 입니다
주말이라 이곳에서 전통혼례를 올리는 몇팀이 있더군요
당시엔 정무총감(부총독) 엔도 류사코? 관저입니다
몽양은 총감의 요청으로 협의를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품위를 유지하기위하여 세단을 지인으로부터 빌려타고 오셨답니다
1945년 8월15일 아침 몽양 선생이 이 곳에 오셔서 엔도 정무총감과 담판을 벌였던 곳.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있던 독립 투사들이 8월16일 석방되면서
비로서 서울 거리에 해방의 물결이 넘쳤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한옥마을로 점심도시락 배달이 지연돼서 묘소로가서 참배후 식사를 하게 됩니다
수유동 묘소
몽양의 원래무덤은 북한산인가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장됐습니다
이땅이 국토부소속이어서 내놓아라 했었는데 우찌된일인지
박정희 말한마디에 재정부소속이 돼서 현재는 누구도 내놓으란말을 못한다 합니다
대를 이어서 정선생님이란분이 관리를 해주고 계십니다.
기억나는것을 적어보겠습니다.
이승만은 초기 상당히 진실된 부분이 있었으나 이후 대부분 변질됨
이승만은 극우익분자인 맥아더의 직속이었다
맥아더는 호전적인 성향을 우려한 트루먼에게 이후 팽~당함
하지중장이 이승만의 집권을위해 필요한게 뭐냐 물었을때
매일 한시간 라디오 방송을 해달라고 했다
이후 국민적 영웅이됨
기댈곳이없었던 당시 지도급들은 미국의 도움을 원했고 일정부분 미군정의 도움이 있었다
좌우합작위원회-덕수궁 석조전(이승만의 학생동원 데모등 방해공작으로 결렬됨)
조선인민당-남노당 박헌영이 친일파는 다 빼자고했고 그럴경우 유력인사들이 다빠지게 되므로
결국 박헌영의 탈당으로 실패 이후 근로인민당을 창당했으나 그해 암살됨
남노당과 대립되는 장안파 공산당이 있었다(소규모, 리더는 정백)
해방전 나름대로의 정보로 해방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미리 건국준비를 하셨으나
색안경낀 사람들의 눈엔 해방후 한자리 할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음
당시 김일성은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공산당의 일개 지부에 지나지않았던 세력이 운좋게 70여명이 소련쪽에게 무기를 지원받고 귀국
북쪽인사들을 다 구금하고 장악함
장악만했을뿐 머 아는게 없었던 일성은 남측과 연대를 위해 몽양에게 접근했고
몽양역시 해방전에 일본과 관계했던것처럼 민족의 화합을 위해선 일성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명성만 자자했을뿐 돈버는일에는 미숙했던 몽양에게 일성은 두딸의 모스크바 유학을 여담처럼 약속함
암살후 가족은 심리적 불안감과 호구지책으로 월북함
암살배후
차를 타고는 주로 다니시던 혜화동 로타리에서 트럭이 앞을 가로막고
뒤따르던 백의사소속 암살자에게 1차 저격을 받으셨으나 미수에 그침
2차 저격역시 같은 방식였고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하심
숨이멎는 순간 마지막 말씀은 조선... 조국... 두마디
돌아가신지 15분만에 경찰총감 장택상이 오고
그시각에 종로에선 몽양이 사망했다는 대자보가 도배하듯 붙여진것 당시상황을 종합해보면
암살배후가 장택상이고 그위로는 이승만이 있었다는것을 어렵잖게 유추할수있다
몽양에 대해선 지금도 좌파다 어쩐다 말들이 많으나
몽양은 어느쪽에 치우치기보다 상대가 일제던지 좌파던지 누구던지
한결같이 이념을 초월하여 해박한 지식과 인품으로 세련되고 유니크하게 접근하여
민족의 실익이 무엇인지에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신분임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평소 자주 말씀하시던 혈농어수血濃於水(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말씀 한구절에
선생의 모든뜻이 담겨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첫댓글 본문중 김일성 관련 내용은 답사중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올렸으나 여태 몽양에 대하여 몰랐듯이 김일성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는점이 많았다는걸 며칠전 만보님과 양주에 다녀오는길에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박정희때부터 왜곡되게 학습받아졌던 역사가 머리굵어진 지금도 찾아서 공부하지 않은이상 왜곡되어 남아있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