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현파 참고자료
金海金氏 三賢派祖 문정공文貞公 휘 관管 탄생지誕生地에 대하여
〇 동네 이름이 “어병御屛”이라는 지명으로 지어진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고려 충열 왕【충열왕25대 왕(1274~1308)】때의 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〇『당시 이곳 “어병御屛” 동네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고려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며 공로가 있던【김 관管 : (1250~1345)】에게 당시 25대 충열 왕께서 더욱 독려하시면서 병풍 두 자락을 하사 하셨는데 그 후부터「김 관管」이 사는 고향 동리를 병풍을 하사한 동리라는 뜻으로 “어병御屛”으로 개칭하여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〇 이러한 연유로 해서 불러진“어병御屛”이라는 지명은 지금 현재 (2014년)까지도 행정구역명『경남 김해시 한림면 병동리』“어병御屛”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〇 역사의 인물인「김 관管」은 고려 23대 고종 무인(1250년)에 이곳 “어방御屛”에서 태어나 고려조 24대 원종 병인(1266년)에 급제하여 관직이 교서랑校書郞을 시작으로 국자사업 판도판서國子司業版圖判書에 이르기까지 6대(24대 원종. 25대 충열왕. 26대 충선왕. 27대 충숙왕. 28대 충혜왕. 29대 충목왕)에 걸쳐 공복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충목왕 을유(1345년) 2월 19에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나신 분이다.
〇 현재 “어방御屛” 동네 유래와 관련하여 김 관管에게 임금이 하사한 병풍에 관한 기록은 저산서원에「선생先生」의 신도비와 김해김씨「삼현파」대동보에 의하면 김 관管은 유학을 숭상한 인물로서 벼슬 초 중 반 한림원, 판도사 등에서 관직을 거치는 동안 충열 왕이「先生」의 충직함을 인정하고 더욱 선생을 중히 여겨 선생에게 병풍屛風 두자락이좌二座을 내리고〖사어병이좌=賜御 屛二座〗경 선생先生은 과인(충렬 왕)의 “팔,다리”이다. “팔, 다리”가 불안하면 어찌 할고 왕이 지킬 것이요, 이 병풍屛風은 시끄러운 적폐를 막아 가리는 폐소장蔽簫墻이 되어 사악한 많은 무리들을 막을 것이니 경은 충성을 다해 과인을 보필하라 하고 병풍을 하사하였습니다.
이후로부터 동리 이름을 바꾸어“어병御屛”이라 일컬었다.〖자시이후自是以後로 동리개칭洞里改稱 어병御屛이러라〗
〇 또한 현재 김해지역 향토사학자들의 모임인 “김해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자 ①〔김해지리지〕②〔김해지역변천사〕그리고 ③〔김해지형〕등 3권의 책자에서도 “어병御屛”동네 유래와 관련하여 김 관管과 병풍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〇 다시 참고로 파조 문정공 휘「관管」어른의 내력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당시 고려 말 조정(조정)은 원나라의 지배를 받는 치욕적인 역사라 충렬왕(고려25대 1274~
1308) 15년(1289년)에「김 관管」이 세자「충선」을 모시고 원나라 연경에 머물면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손으로 쓰서 귀국할 때 가지고 와 유학儒學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또 그 후 충렬왕 24년(1298년)에【】을 모시고 원나라에 갔는데 신축(1301)5월 도성都城에 큰 화재가 나서 위험에 처한「충선」화염 중에서 구출救出하였습니다.
【※ 후 후 에「충선」은 고려조 26대 충선왕(1308~1313)이시다.】
〇 또 그 후 38년이 지나 기묘(1339)에 27대 충숙왕(1313~1330, 1332~1339)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충혜왕(고려 28대 1330~1332, 1339~1344)이 다시 복위하였더니 원(원나라)이 왕(충혜)을 게양현揭陽縣에 유배하거늘「선생」이 왕을 부축해 악양 岳陽에 이르러서는 왕(충혜)이 별세別世하는 변고가 발생하니.「선생」이 왕(충혜)대신 잔류하기를 청하자 원나라가 그 충정忠情에 감복하여 귀향歸鄕을 허락하니 대행왕(충혜)의 상여를 뫼시고 귀국하였습니다.
〇 고려 조정에서는 <직제학>「이인복李仁復」이 교외郊外에 나와 영접하여 이르되“지금상(충혜왕)을 운구해 옴은 선생「선생 김 관管」의 충의忠義라 이에 다행함이 더 할 바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〇 「선생 김 관管」이 충목 왕 을유(1345) 2월 19일에 세상을 떠나니 왕이「이인복 李仁復」을 보내 작(爵:벼슬)과 시호=諡號 문정)을 내리고 또한 장지葬地는 김해군 대산면大山面 저소산楮沼山 신좌辛坐=지금 경남 창원시 의창군 대산면 유등리 저소산)에 하고 국재菊齋「권부權簿」와 익재益齋「이제현李齊賢」이 七관管 십이도徒를 인솔하여 예악을 갖춰 장례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현재“대산면”이 고古지명으로는 “김해군金海郡”이 였다.】
〇「김 관管」은 금관가야국金官伽倻國 시조始祖 수로왕首露王(일대一代)의 후에後裔요, 신라 태대각간 흥무대왕 김유신(13대)의 후손으로서 자字는「희범希範」이오, 호號는「정성靖醒」이오, 시호諡號는「문정文貞」이시다. 지금의 김해 김씨『삼현파三賢派』의 파조派祖가 되는 분입니다.
〇「선생」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는 곳은 현재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리322번지“이며, 이곳에「선생」의 위폐를 모시고 있는 저산楮山書院이 있습니다. 지역 유도회儒道會와 김해김씨삼현파金海金氏三賢派 종중宗中에서는 춘추향사春秋享祀를 올리고 있습니다만
〇 그러나 이곳 김해지역 파조 탄생지에서는 지금까지 삼현파 문중이나, 종중에서도 다 같이 파조이신 문정공 정성헌 선생께서 탄생誕生하신 곳이 어디일까 등에 관한 역사적인 관심과 호기심 유발이 극히 미약 했다고 봅니다.
〇 지금까지 파조어른에 대하여 연상되고 상상이 가는 내력과 역사이야기를 읽을 기회가 없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특히나, 한문세대가 아닌 젊은 종친들은 저산서원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나 또는 삼현파“대동보”역시 그 “비석”이나 “족보” 자체로 존재의미가 있을 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무슨 내용인지를 알지 못하고 지나치고만 있습니다.
〇 현재 김해지역은 김해김씨 도총관 파(파조 김 경신) 종친분 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고 특히, 파조 두분역시 동시대 인물로서 지금까지도 양 문중사이는 우애가 있는 관계로 지내고 있고, 두 종중 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성헌 선생께서 탄생誕生하신 곳이 “어병御屛”이라는 것과 병풍하사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도 삼현파 종인들 보다, 그 분들이 더 잘알고 간심을 나타내고 있는 분 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병풍은 종중 종손이 보전하여 왔는데 현재는 어디에 있는지 등등 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〇 조금 늦었지만 파조 어른의 탄생지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괸 것은 그 탄생지를 중심으로 파생되어 갈 파조 어른에 대한 다소 역사적인 탐구를 연상하게 만들어 줄것입니다. 장기적인 면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종친들에게 홍보할 기회와, 참관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종친 분들의 호기심 유발과 친목 단합하는 기회를 제공 할 수있을 것입니다, 향후 파조어른을 비롯한 직계 후대의 사료를 수집 관람하는 전시관의 설계 등 그냥 상상일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것이빈다, 종중에 많은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 드립니다. 라는 기고문을 11월 24일 (음 10월 초 3일) 파조할아버지 시제에 가서 2014년 정기 총회 유인물에 실려 있어 실어드리오니 한림면 종친분들 께서 파조할아버지 탄생에 따른 유래와 그 위치가 어딘가를 알아주셨으면 감사 드립니다.
부산시 남구 지게골로 168번길 18 (문현동) 金 正雄 족명 昌雄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