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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자아빠의 가르침 원문보기 글쓴이: leader2010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 능력과 자질에 관계없이 이런 영광을 받을 때가 가장 두렵습니다. 제 스스로 잘났다고 착각할까 두렵고, 또 내게 어떤 숙제를 주려고 이런 무거운 짐을 주시나 하는 마음에 두렵습니다. 그래서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
세계가 그녀에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
* 투명한 기업을 일군 김성주 대표
"제 생각에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자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에겐 기술력에 뒤지고, 중국에겐 인건비에 뒤지고... 그 안에서 한국 패션 사업은 점점 낙후되고 있었죠. 성주디앤디를 통해 증명해보이고 싶었습니다. 변방국가로 알려진 한국의 중소기업이, 그것도 여성CEO가 운영하는 기업이 세계로 뛰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제가 사업을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 풍토는 권위적이고 상명하달식의 뻣뻣한 조직구조와 술과 봉투로 상징되는 검은 관행들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모두들 봉투없이 하는 사업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였죠. 그때 결심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깨끗하고 투명하게 일하자구요."
투명함을 지키는 것으로 인해 업계에서 '왕따' 취급을 받았지만, 투명함을 지킴으로 인해 결국 1996년 영국최고의 유통회사인 막스앤스펜서의 한국 내 독점 운영을 파트너로 선정되었다.
* 여성의 경쟁력을 활용하라
사장단 회의에 나가면 젊은 여성이 사장단 회의에 앉아 있는 게 불편하다고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시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성주디앤디를 찾은 대표들을 마중나간 김대표에게 "비서 말고 사장"을 외치다, 대표가 여성임을 알고 일언지하에 발길을 돌린 이도 있었다.
남성 중심의 한국 문화에서 김대표는 불평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역으로 여성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현명한 전략을 선택했다. 일하는 여성들의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인 남성 접대문화에 참석하지 않고, 그 시간에 아이와 함께하거나 잠을 보충하여 다음날 일에 집중하였으며, 바이어들을 술자리 대신 콘서트와 전시회에 초대하는 성주디앤디만의 문화를 개발했다.
"사회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먼저 여성이 변해야 합니다. 자기를 박차고 나오는 늠름한 여성, 당당한 여성이 늘어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사회가 변하도록 해야 합니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남성에 비해 감성이 풍부합니다. 물론 이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잘만 훈련하면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어요. 감성지수와 지성지수가 결합된 우먼지수가 앞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적함수라고 저는 믿습니다."
*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계발을 하라
"온실 속 장미처럼 평생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매우 큰 유혹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반항아 기질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저는 여성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 반항아 기질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저는 여성이었습니다. 남성인 오빠들은 아버지에게 경영 수업을 받으며 대기업의 대표가 되지만 저는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부잣집 마나님으로 살아야 했죠. 여성인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을 넘어서지 않고 남을 컨트롤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더 높은 단계에 도전한다는 심정으로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노력했고, 재벌가의 딸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했고, 배워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심정으로 공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직접 핸드백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나를 이겨내기 위한 저만의 자기계발 과정이었죠."
*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
"외환위기가 올 것을 대비해 재고를 최소화 하고, 위기극복 전략으로 큰 이익을 창출하고 있던 구찌를 과감히 본사에 매각하는 것을 추진했어요. 다행이 유리한 조건으로 매각하는데 성공해 위기를 넘겼죠. 그 후 성주디앤디는 최고급 브랜드 중심에서 탈피해 진정한 중산층을 위한 브랜드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MCM이나 막스앤스펜서가 그것이죠. 성주디앤디가 한 단계 도약하는 시기도 그때였다고 생각됩니다."
올 10월 모든 인수가 마무리되면 성주디앤디가 만든 제품이 전 세계로 수출됩니다. 이제까지 글로벌을 외치는 시기였다면 이제 해보이는 시기라는 생각에서 결정한 일인 만큼, 앞으로 5년 안에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를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계획입니다"
그는 자신의 거친 손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사랑한다. 한국의 왕따에서 회망의 상징이 된 김성주,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가슴 속에 벅찬 희망과 세계를 향한 아름다운 비전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