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의나리청청
불빛이 사람을 먹여 살린다.
햇살의 뼈마디 뻐근하게 지쳐 있을 때
어스름마저 꺼져가는 집마다 희망의 등불 밝히려고
땀에 절어 쓰러진 불빛들이 다시 일어선다.
바다로 유입하는 형산강 푸른 물소리를 쫓아
거푸집 속에 코크스 덩어리를 집어던지면
용융된 불빛들이 벌겋게 넘쳐 흐른다.
온 종일 입술 까맣게 탄 피로를 녹이려고
간밤 조수에 가슴 허물린 송도 백사장을 향해
지친 궤도차가 전조등을 켜고 터널을 통과한다.
질로질로 가다가 불빛들이 주조된 슬픔을 끌고 간다.
용광로에 빠진 바다가 파랑으로 술렁거린다.
파철에 부딪혀 돌아온 거친 숨소리가
야적장 철강석더미 위에서 환원반응을 일으키며 비산한다.
구릿빛 연기가 천정 크레인 어깨를 짚고 상승하면
용틀임 하던 장년의 아슬한 꿈이
굴뚝을 비집고 올라 벌겋게 발화한다
쇳물이 흘러간 자리마다 내화 한 고통의 신음 소리
벨트 위에서 강판들이 핏덩이 몸을 풀고 해산한다.
두호 방파제에 몸을 치대며 삐걱이던 기계음들이
또딱새, 또딱새, 또딱새
폐선의 배 밑에 오구굿 서러운 가락을 저민다.
시간의 무게를 못 이기고
처참하게 수거된 기름때 묻은 손 없는 장갑과
발등이 해진 안전화가 턱하고 의자에 주저앉는다
게으르고 나태했던 시절의 배고픔을 억누르기 위해
용광로 속 타는 열망을 끄집어내 제련하면
빛들은 빵을 찍어내고, 옷을 지어내고, 집을 세운다.
쇳물들이 용출하는 아픔을 감추려고
넘칠수록 단단하게 응집한다.
출하를 꿈꾸며 기다리던 잘 정제된 불빛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공장을 빠져나간다.
뜨겁게 달궈진 한낮의 나른하고 뻐근한 삶들이
저무는 아스팔트 위로 방향키를 출렁이며 가고
틀 속에 차갑게 갇힌 응고된 불의 영혼을 주조하려
늦은 저녁잠 떨친 억센 불빛들이
희망의 손놀림으로 점화를 다시 서두른다.
불순물도 없이 어둠이 연화해 녹아내리고
강풍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단단하고 강한 불빛들
영일만으로 가는 길이 훤하다.
의나리청청, 사람이 불빛을 먹여살린다.
♣새의 단상(斷想)
새는 빌딩을 숲으로 여겼다.
인터넷 선들이 바람에 떨며
호르르, 호르르
집 나간 사랑을 부를 때
그것을 숲이 내는 소리로 여겼다.
인터넷 선을 붙들고
대롱거리며 잉잉거리는 애자를
새는 솔방울로 여겼다.
작은 부리로 톡 쪼았다.
목울대까지 찌릿한 소문이 퍼진다.
방수 페인트로 햇빛을 차단한 옥상
푸른 산 깃을 치던 바람들이
빗방울을 물고 와 떨군다.
또르르 배관을 타고
전해지는 숲 속의 향기
새는 그것을
숲이 그리움 삭힌 눈물이라 여겼다.
살다가 엉뚱한 곳에서 귀동냥으로 듣는
바람기 강한 빌딩의 헛소문
새는 가슴이 무너진다.
슬픔을 감당 못한 깃털들이 우수수 빠진다.
그래도 이건 견딜 수 있는 전파
잘못 베어 문 유해물질 촉촉한 열매들
내장을 상하게 할 수도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새는
열매는 물지 않고, 쪼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사랑이라 여겼다.
늘 가까이 다가가면
감전하는 전기처럼
빌딩도 그럴 거라 여겼다.
새는 빌딩을 산으로 여겼다.
검은 선들이
그리움을 접속할 때마다
지지직, 지지직
사랑의 충돌이 심해도
그것을 숲이 내는 소리라 여겼다.
♣구두
낡고 해진 구두를 보면
그 사람 걸어온 길들이 보인다.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그 사람이 밟고 온 게 아니라
세상이 그 사람을 밟고 지나간 것을 알았다.
자식 놈 거덜난 리니지 게임 머니를 충전하기 위해
채워도 자꾸 밑바닥이 공허해지는 안내의 욕망을 결제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진창 길을 달리고,
숨 헐떡이며 가장 낮은 자세로 가지 않은 곳이 없었으리.
도대체 얼마나 많은 풍파에 차이고 시달렸을까.
말 못한 서러움이 실밥처럼 꾸물꾸물 검게 타져 있고
야윈 등처럼 뒷굽이 닳고 허물어져 있다.
흙 묻은 세월을 털고
풀 죽지 말라고 빳빳한 종이를 끼워 넣었다.
해진 구두에 손을 넣으니
말수 적어 무뚝뚝해도
잔정 많은 그 사람 품 처럼 사랑이 가득하다.
첫댓글 용균아 등단을 축하하고 너의혼이 깃든 당선작을 손꾸락 쥐나가면서 칭구들 읽어보라고 여그다 올렸는디 괜찬은거냐 스크랩은 전부금지시켜 놓긴했는데 암튼 이칭구도 기분이좋다 용균아 언재 우리한번 부닥처불자 뭘~~쐐주~잔~ 수원-포항 멀긴해도 기회함 만들자 칭구 좋다는게머여 그지-이.
경근아 고맙다, 파스 필요하면 연락해라,,,
용균아 추카추카 동해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의 정기를 받아 건강하고 가족들 무탈하겠지? 우리 시간나는데로 카페에 들러 서로의 안부를 전하세 잘먹고 잘살고 잘싸시게 ㅎㅎ
용균이가 서교27회기이전에 영교리 우수회원이지.. 너도많이 성숙했는갚다. 글재주도 재법이고. 등단까지 아뭏튼 열심히 살고있는 칭구 축하한다....병무쟁이 칭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