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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데이
< 해피데이 >
입 안이 칼칼하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이 깜박거려진다. 그 사이에 신호가 바뀌었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눈동자를 좌우로 조심스럽게 움직여본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다. 핸들을 잡은 장갑속의 손이 화끈거린다. 발가락도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다. 장갑을 두 개나 꼈는데도 칼바람은 온 몸을 헤집고 들어와 손끝으로 파고든다. 발가락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참아야 한다. 어차피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도로는 아직도 전쟁터다. 출근시간이 지났는데도 청계천은 여전히 차들로 뒤엉켜 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신호등 아래 오토바이들이 부릉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경주마들 같다. 나는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거나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게 되면 저들보다 늦게 된다. 이번 고객은 성질도 엿 같다던데. 사장의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돈다. 씨발, 또 한 소리 듣겠네. 순간 신호등이 점멸한다. 어느 새 옆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앞서 나가고 있다. 욕지기가 목으로 올라온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꼭 한 발씩 늦게 된다. 나는 정신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당긴다. 바로 옆으로 악센트 승용차의 사이드 미러가 스쳐 지나간다. 차창 문이 열리고 잔뜩 찌푸린 얼굴 하나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모른 체 한다. 청계천 도로는 화물차들과 승합차들이 서로 얽혀 앞으로 나아가려고 난투중이다. 뒤에 실린 짐이 무거워서인지 오토바이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사장과 핸드폰으로 입씨름을 벌였는데. 바쁜 건 마음뿐이다.
“아니, 겨우 몇 천원 아끼겠다고 이렇게 큰 짐을 오토바이에 실으라고요?”
“뭐야?”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는 사장의 목소리가 거칠다.
“와서 보슈, 이게 오토바이에 실을 짐인가.”
“그래서 지금 안 간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이렇게 무거운 기계를 어떻게 실으라고.”
“거긴 단골이야. 알면서 왜 그래.”
사장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이럴 땐 하는 수 없다. 나는 기계를 오토바이 짐칸에 싣는다. 쇼바가 땅에 닿을 듯 기계는 무겁다. 시동을 걸자 새삼 뒤에 실은 기계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어본다.
윗부분이 잘려져 나가고 1,2층만 상가로 남아 있는 삼일아파트가 보이는 걸 보니 황학동이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청계천 복원 후 동대문 운동장 쪽으로 옮겼지만 상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 황학동에 남아 있다. 나는 오토바이 속도를 줄인다. 황학동은 아직도 마치 고장 난 구식 시계 속 같다. 돌아도 자꾸 그 자리일 때가 많다. 그나마 좁은 골목길을 택시가 막고 GPS를 설치하고 있다. 나는 짜증이 치미는 걸 참고 뒤로 빠졌다. 겨우 다른 골목길로 돌아간다. 몇 번이나 비슷한 골목길을 헤맨 다음에야 양철 조각에 삐뚜름한 글씨로 동일공업사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맞긴 한 거 같은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 초장부터 재수 옴 붙었다. 청계천내 배달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코스다.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내가 찾을 수 없는 색채카드의 숫자처럼 혼란스럽다. 더구나 운임도 육천 원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은 아침부터 황학동에서 헤매는 바람에 한 시간이나 허비했다. 이 시간이면 인천도 갈 시간인데. 나는 참았던 침을 골목길에 크악, 하고 뱉는다. 좀 낫다. 아침 빈속인데도 입 안에 자꾸 가래가 생겨 목구멍을 막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골목끄트머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는 혹시 동일공업사 사장이 있을까 싶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 걷자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무슨 일이야. 사람이 피투성이네. 빨리 구급차 불러. 깡패들한테 맞았나? 몹쓸 놈들.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그러게. 사채를 쓰고 못 갚았다나봐. 돈도 가려가면서 빌려야지. 누군 몰라서 그러나. 어쩔 수 없으니 그랬겠지. 쯧쯧. 근데 구급차는 왜 이리 안 와.
얼굴은 보이지 않고 회색빛 나는 머리카락만 조금 보인다. 추위 탓인지 머리카락이 곧 바스러질 것 같아 보인다. 나는 고개를 돌린다. 헬멧을 벗어서일까. 코끝이 얼얼할 만큼 춥다. 손가락이 불에 덴 듯 가려워진다. 오늘은 아침 마수걸이부터 이상한 날이다. 사람들 사이로 얼굴이 오종종한 사내 하나가 나서며 왜 이리 늦었느냐며 오히려 화를 낸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공업사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기계를 내려준다. 운임을 받을 때에는 손가락 가려운 걸 잠시 잊기도 한다. 골목길을 돌아 나오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나는 번호를 확인하고서 핸드폰 폴더를 연다. 얼마 전부터 새로 생긴 습관이다.
“창신동에 좀 들렸다 봐. 수영이네 알지. 거기 들려서 옷 받아가기고 남대문 갔다 줘,”
“에이, 정말. 오늘 왜 그래요. 아침부터 내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 청계천만 뺑뺑이를 돌리구. 다른 사람 연락해요.”
“다른 사람 없어. 오늘 고생 좀 해.”
사장이 직접 전화한 걸 보니 사무실에서도 오늘 내 기분을 눈치챘나보다. 아까와는 달리 사장의 목소리가 사근사근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리 나가고 나만 이 근처에 있다는 얘긴데. 어째 기분이 더 나쁘다. 청계천 7가를 빠져나와 동대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동대문 전철역 1번 출구에서 살짝 돌아 조금만 올라가면 창신동길이다. 창신동은 예나 지금이나 늘 어수선하다. 신축건물도 많이 들어서고 길도 넓혀졌지만 몇 미터만 가도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언덕길도 여전히 가파르다. 낙산 성곽으로 올라갈 때마다, 특히 이런 겨울철에는 몹시 힘들다. 그래도 빙판길에 연탄재가 뿌려져 있어 다행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회색 담벼락과 창문에 ‘패턴, 나나인찌’ 라고 적힌 종이가 부적처럼 바람에 팔랑거린다. 다른 담벼락엔 ‘시다 구함’이라는 글씨가 마치 낙서처럼 쓰여 있다. 창신동도 청계천처럼 좌우로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같이 퍼져 있다. 나는 오토바이를 간신히 끌고 올라간다. 큰길가에 있는 성산상회를 따라 들어가면 세 번째 집이 수영이네다. 창신동은 바지나 티셔츠 등 한 가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하청집들이 수백 군데나 몰려 있어 집집마다 취급하는 옷가지들이 다르다.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부가 나란히 앉아 부지런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가 고개만 들고 아는 척을 한다. 겨울철이라 바쁜지 차 한 잔 권하는 법 없이 완성된 점퍼 더미를 건넨다. 얼마 전 집 나간 딸을 바빠서 찾아 나서지 못한다는 수영이네다. 나는 점퍼 더미를 싣고 다시 창신동 길을 내려와 남대문으로 향한다. 벌써 열두 시다. 오늘은 일당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전 내내 청계천 언저리만 헤집고 다니느라 이제 겨우 두 탕을 했으니. 작년에 새로 산 오토바이 할부금 통지서가 자꾸 목을 조른다. 아침을 굶은 탓인지 배도 몹시 고프다. 주머니 속의 돈을 계산해 본다. 사무실에는 일주일마다 육만 원씩 내야 한다. 하루에 만 원꼴이다. 사실 사무실 이래봐야 오더 전화를 받아 주는 일이 전부다. 만 원씩이나 내야 하는 게 아깝다. 사무실 광고전단지를 돌리는 일도, 고객들에게 서비스로 주는 쿠폰비도 모두 우리가 부담한다. 바쁘거나 잊어버려서 고객들에게 쿠폰을 주고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사장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늘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며 한 번도 덜 받는 일이 없다. 뭔가 기울어지는 세상이다. 그래도 사장은 아주 가끔씩 있는 회식자리에서 늘 큰 소리다. 오늘 아침에도 사장은 제일 먼저 나온 나를 제쳐두고 전화로만 출근을 알린 박에게 오더를 먼저 주었다. 안성까지 가는 장거리 오더였다. 나는 이럴 거면 뭐 하러 새벽 댓바람부터 사무실로 출근하겠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사장의 대답은 들어보나마나 뻔하다. 기울어진 세상은 늘 한 쪽으로만 기울어지는 법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 청계천 3가로 방향을 바꾼다. 어쩌면 다마스정도 허탕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경 짐차들이 몇 대 서 있는 사이로 다마스정이 손짓을 한다.
“점심 먹었냐?”
“아직 이다. 너는.”
“나도 아직 이다.”
“벌이도 신통치 않은데 자장면이나 시켜 먹자.”
날씨는 춥지만 다마스정과 나는 다마스 짐칸에서 문을 열어놓고 배달되어온 자장면을 먹는다.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며 지나간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국물 있는 우동을 시킬 걸, 하는 후회를 한다. 자장면은 다마스정이 좋아한다. 나는 우동이 더 좋다. 다마스정은 나보다 서너 살이 더 많긴 하지만 이 바닥이 그렇듯 나는 내 나이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마스정은과 나는 공식적으로는 동갑이다. 다마스정의 전직은 은행원이다. 어느 날인가 내가 돈은 원 없이 만져봤겠다고 하자 다마스정은 원(怨)만 남았다며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였다. 청계천에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다. 다마스정처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왔다며 청계천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사장처럼 청계천을 고향으로 알고 죽어도 떠날 수 없다는 사람들. 나는 두 종류의 사람들 모두에게 하품이 난다. 어차피 하루 벌이에 목을 맨 사람들일 뿐이다. 나는 오늘 이외에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하루를 넘어 생각한다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다.
몇 달 전 일만 해도 그렇다. 그 날은 오랜만에 평택 가는 오더가 들어왔다. 나는 기분 좋게 가을 국도를 달렸다. 논 가운데 있는 공장은 찾기도 쉬웠다. 내가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기계를 내렸다. 공장 상량식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 중이라고들 했다. 들판 가운데에서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기계를 기다린 탓인지 공장 사람들이 내게 고기와 술을 권했다. 나는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주 삼아 술을 두세 잔 마셨다. 가을 들판이 자꾸 내 헬멧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헬멧을 푹 뒤집어써야 했다.
어디를 가든지 나는 관성처럼 청계천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도 나는 나도 모르게 청계천으로 들어섰다. 복원 공사가 한창이던 늦은 밤의 청계천은 쾨쾨한 냄새가 더욱 심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삼일 아파트가 청계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늘 청계천으로 돌아오는 나의 습관이 지겨웠다. 되도록 빨리 청계천을 통과하고 싶었다. 신호등 아래에서 마음이 자꾸 조급해졌다. 신호등이 점멸하는 듯 한 순간, 나는 오토바이의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잡아당겼다. 물컹한 느낌이 온 것은 다음이었다. 웬 사내 하나가 횡단보도에 굴렀다. 밴 한 대가 그제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횡단보도에서 굴렀던 사내는 합의금조로 백팔십 만원을 요구했다. 사내는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며 달덩이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원비는 엑스레이 포함 육 만원이었다. 가벼운 찰과상이라며 의사의 볼펜을 쥔 손이 진단서 위에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당당한 목소리로 합의금을 요구했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다마스정은 내게 사채업자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위반을 했으며 음주 운전자였다. 사내는 나를 보고 서로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아 양심껏 받은 것이라며 크게 선심 쓰듯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사채업자에게 받은 돈을 사내에게 건네주며 양쪽 입가에 억지주름을 잡았다. 사내는 합의금을 받고는 다른 손으로 나의 손을 꽉 잡았다. 사내의 달뜬 얼굴과는 달리 손바닥이 차가웠다. 그때 잡은 양쪽 입가의 주름은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오히려 매일 더 늘어만 간다. 이자가 청계천 골목길들만큼이나 가지를 뻗어 나가 계산이 안 된다. 간단한 계산법도 애해하지 못한다며 핸드폰 속의 사채업자는 나에게 바보 아니냐며 빈정거린다. 모르겠으면 계산은 그냥 맡겨두고 빨리 갚을 생각이나 해. 사채업자의 목소리가 내 삶의 비밀을 쥐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사채업자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그냥 맡겨두고 오늘 하루만큼의 걱정거리만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나는 벅찰 때가 많다. 다마스정은 입가에 자장을 묻히며 열심히 먹고 있다. 오늘 이자를 갚기로 한 날이다. 벌써 몇 번째 미뤄서인지 목소리가 심상치 않던데, 걱정이다. 나는 자꾸 우동 국물이 생각난다. 다마스정은 경차인 다마스로 배달을 하니까 나보다 큰 짐을 실을 수 있어 운임도 더 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운임이 몇 천 원씩 더 비싼 경짐차보다는 오토바이를 더 많이 이용한다. 그러니까 다마스정보다 내가 벌이는 좀 더 나은 편이다. 그런데도 나는 다마스정에게 가끔씩 돈을 빌린다. 사채이자계산법만큼이나 이상하지만 내가 다마스정과 함께 자장면을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마스정이 자장면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한다. 하지만 지난 번 빌린 돈도 다 갚지 못했는데. 또 다시 얘기를 꺼내봐야 다마스정도 별수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사채업자의 목소리가 마지막 자장면발에 실려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린다. 다마스정은 자장면을 다 먹었는지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한참동안이나 읽고 있다.
“야, 너랑 나랑 동갑이니까, 어디보자. 토끼띠-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 노력 여하에 따라 행복한 날이 될 수도 있다- 해피데이. 행복한 날이란다. 청계도사가 알려주는 오늘의 운세니까 믿어보자.”
내 눈길과 마주친 다마스정 눈가에 잔웃음이 번진다. 나도 아주 가끔씩은 희망이라는 우연을 믿어보고도 싶다. 오후에는 좀 나으려나. 나는 말띠 운세를 흘낏거린다. 오늘의 운세를 다 읽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린다. 사장의 호출이다. 천호동의 성인오락실 부품배달이다. 나는 세운상가에서 부품을 받아 을지로로 빠진다. 청계천을 빠져 나가는데도 이십 분이 넘게 걸린다. 사람들은 퀵서비스를 바람으로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퀵, 하고 발음할 때 바람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천호대교 건너 있는 호텔 지하의 성인 오락실에 도착하니 한 시가 한참 지나 있다. 입구에 벌써 큰 덩치 하나가 나와 기다리고 있다. 덩치는 나와 오토바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버스타고 왔느냐고 첫마디부터 수상쩍게 나온다. 이상하게도 살이 많이 붙은 얼굴들은 인상을 쓰며 얘기해도 주름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대꾸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부품을 건넨다. 덩치는 물건을 받고 나서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접더니 내 쪽으로 날린다.
“옜다. 버스비.”
접혀진 천 원짜리 속, 도산 서원이 내 발밑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헬멧 속의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독수리 오형제를 떠 올린다. 장갑 낀 손이 서늘해진다. 오형제가 다 모여야 힘을 쓸 수 있는 거야. 혼자는 안 돼. 나는 도산 서원을 들어올린다. 지폐 앞 면, 퇴계 이황의 입술이 꽉 다물어져 있다. 나는 만 원을 결국 포기하기로 한다. 더럽게 재수 없는 일진이다. 나는 오토바이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서 재빨리 감자 한 대를 먹이고는 출발한다. 덩치의 씨근대는 숨소리가 천호대교를 건너는 내내 귀에 감긴다. 나는 강변북로로 들어선다. 지나가는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신호등을 건너야 하는 시내도로보다 신호등 없는 강변도로가 내게는 더 안전하다. 물론 교통경찰이 없어야 하지만. 나는 새삼스럽게 집에 있는 망구가 원망스러워진다. 오늘 새벽에도 망구는 나를 보자 입술을 달싹였다. 들어봐야 또 뭔가 먹고 싶다는 얘기겠지 싶어, 말하기 전에 나와 버렸다. 언제부턴가 망구는 늘 먹는 타령이다. 내 얼굴만 보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 두부, 막걸리를 넣어 만든 찐빵에 가래떡, 짬뽕에 탕수육, 족발 심지어 유산슬까지. 망구의 먹는 얘기는 구구절절 사연이 많기도 했다. 어떨 땐 가락까지 넣어 읊어대는 통에 죽을 맛이다. 한 번도 활짝 폈을 것 같지 않은 인생 어디에 그런 사연들이 숨어 있었는지. 가난과 짜증뿐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도 망구의 입을 통하면 아름답기만 하다. 며칠 전에는 머리가 가렵다고 밤새도록 징징대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가위를 들고 되는 대로 망구의 머리를 잘라 주었다. 회색빛 나는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망구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늬네 아버지하고 예전에 창신동에서 순댓국을 먹었는데도 그게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나는 하마터면 망구의 귀를 자를 뻔 했다.
망구는, 그래 그땐 망구가 아니었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의 험담을 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엄마의 주변에는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이삼 일에 한 번씩은 뛰어 들어와 대문을 걸어 잠그고는 엄마 없다고 해, 하며 다락으로 올라갔다. 뒤이어 쫒아온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대문에 온갖 악담을 퍼부어 댔다. 대문을 발로 차는 사람도 있었지만 엄마는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다락방 창문으로 대문 밖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온 몸을 붉게 물들였다. 그럴 때의 엄마모습은 독수리 오형제의 백조 ‘쥰’처럼 신비로웠다. 흥, 누가 없는 말 했나. 그러게 사람이 처신을 잘 해야지. 엄마는 다락방을 내려오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동네 싸움에 엄마가 끼지 않은 적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소문을 퍼뜨리지 않으면 만들어 내느라 바빴다. 아버지의 주먹다짐도 엄마의 입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늘 다소곳하게만 보이던 점방 여자와 소문 없이 사라졌다. 엄마가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날 밤 가겟집 아저씨는 우리 집 대문을 밤새도록 발로 찼다. 엄마가 대문 뒤에서 흰 거품을 흘리며 쓰러졌다. 누이와 내가 숨어 있는 장롱 안까지 발길질 소리가 크게 울렸다.
길고 지루한 장마 끝이었다. 아버지가 점방 여자와 사라진지 두 달째였다. 누이가 얼굴에 반점을 달기 시작했다. 검은 반점을 보이던 누이는 베티라는 태풍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날 눈을 감았다. 누이의 죽음은 엄마의 소문처럼 어이없었다. 누이의 죽음이 엄마로 하여금 아버지를 찾게 하였을까. 엄마의 손을 잡고 빗물 웅덩이가 곳곳에 파인 골목길을 하루 종일 돌고 돌아 아버지를 찾았을 때는 눈앞에 안개만 뿌옇게 끼어 있었다. 그날 아버지가 우릴 데리고 간 순댓국집은 시장 통 새우젓국 냄새에 절은,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곳이었다.
망구가 제 정신이 아닌 건 분명하다. 내가 적녹색약을 갖고 있는 것도 망구 탓이다. 동그란 원 속에서 다른 색으로 된 숫자를 찾아보라고 흰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원은 수많은 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러 가지 색들의 점들은 나를 향해 저마다 아우성쳤지만 정작 내게 숫자는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카드들로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색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는 색약판정을 받고서야 알았다. 망구의 X자 유전자를 통해 내게 전해졌을 색에 대한 약(弱). 망구의 색약은 사람의 마음에 켜 있는 신호등을 잘못 판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소문을 입에 달고 있던 것도 마음의 색을 구분 못하는 무의식의 발로였을까. 하지만 나의 색약은 나의 현실이다. 신호등의 색을 정확하게 구별 못하고 점멸하는 순간으로 판단해야 할 때마다 나는 안간힘을 쓴다. 그럴수록 나는 간발의 차이로 늦거나 빠르다. 가야 할 때와 서야 할 때를 구별하는 그 순간의 차이가 늘 내 발목을 잡는다. 천호동의 덩치에게 향했던 분노가 망구에게 옮아간다. 아무래도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겠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미스 남이 기다렸다는 듯 볼멘소리를 한다.
“아까 성인오락실에서 전화 와서 한바탕 했어요. 너무 늦는다고.”
“누군 늦고 싶어 늦나. 요즘 청계천 도로가 말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천 원 주더라. 버스비라고······. 내 참, 더러워서.”
“어딜 가나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아, 근데 왜 자꾸 그런 오더만 주는 거야.”
“그게 내 맘인가요. 오더가 그렇게 들어오는 걸”
미스 남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각이 진다. 몇 마디 더 하다가는 고슴도치처럼 털을 세우고 달려들 것이다. 오히려 사장보다 미스 남이 더 사납게 느껴질 때가 많다.
“커피라도 한 잔 줘 봐. 나 오늘 아주 별로야.”
그래도 미스 남의 장점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이다. 더 이상 싸워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지 다른 날과는 달리 냉큼 커피를 가져다준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이름표들을 세어본다. 아침에 출근하는 순서대로 이름표를 거니까. 원래는 서른다섯 명이 걸려 있어야 하는데 서른 명밖에 걸려 있지 않다. 최문도의 이름표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돈벌이가 잘 됐다고 시시덕거리더니 어디 성인오락실에라도 박혀 있는 모양이다. 이영식의 이름표도 걸리지 않았다. 광희동 입구에서 봉고차에 치여 한 달째 입원 중이다. 보상은 그런대로 받겠지만 몸은 많이 망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이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도 다마스정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보험에 가입해 볼 요량을 해 본긴 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이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요행수가 오기를 부리게 한다. 장진수의 이름표도 보이지 않는다. 배달할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고객은 외국에서 들여온 비싼 부속품이라며 배상을 요구한다고 했다. 책상 서너 개 놓인 사무실에서 무슨 고가의 부속품인지 모르겠다며 노랗게 질린 장진수의 얼굴이 남 일 같지 않다. 사무실은 오더를 받아줄 뿐 모든 것은 각자의 몫이다. 배달사고도, 크고 작은 교통사고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퀵맨이 된 후 내게는 사람들의 삶이 빨리 돌리는 테이프처럼 그렇게 지나간다. 늘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바라봐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름표는 수시로 바뀐다. 미처 기억하지도 못한 이름표들이 붙었다가 사라진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이름표들이 사무실 한 쪽에 놓인 박스에 들어가 있다가 버려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금을 찾아 모여 들지만 얼마 버티지 못한다.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라고, 빨리 떠나는 사람일수록 떠나는 이유는 더 많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에 앉아 칼바람과 매연을 맡으며 달리는 것은 공중곡예사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마치 다른 곳에는 안전한 일자리가 기다리는 것처럼 말하며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히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강남 가는 오더가 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며 오더가 두 세건 될 때까지 기다린다. 강남까지 다녀오는데 한 건만 가지고는 일당을 채우기가 힘들다. 조금 눈치가 보이더라도 기다려서 같은 방향의 물건을 두 세건 더 챙겨가야 하루 벌이가 된다. 잠시 후 반포동까지 둘러 와야 하는 번거로운 오더가 걸렸지만 하는 수 없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나선다. 핸드폰에서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 음악소리가 길게 울린다. 나는 번호를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는다. 원금을 다 갚은 것 같은데도 사채액수는 자꾸 늘어났다. 요즘은 매일 안부를 묻듯 늘어난 액수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내 오토바이로는 사채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오토바이를 잡은 손길이 자꾸 거칠어진다.
가끔 창신동이나 청계천을 벗어난 사람들을 강남의 작은 지하실 공장에서 만난다. 그들은 청계천이 아닌 강남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지하실을 벗어나지도, 강남을 보지도 못한다. 청계천은 강남에도 있다. 창신동을 떠난 지 몇 년 째 되는 강 사장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옷 샘플을 확인하더니 말없이 운임을 건넨다. 나도 묵묵히 운임을 받아 뒤돌아 나오다가 쿠폰 생각이 난다. 나는 되돌아가서 쿠폰 판에 쿠폰을 붙이고 나온다. 퀵맨의 행동지침은 신속, 정확, 그리고 마지막이 뭔지 알아? 사람들을 마주 보지 말 것. 이거야.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우리가 할 일은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물건을 배달해 주는 것뿐이야. 여기까지가 우리들 일이야. 사람들에게는 장진수건 누구건 다 똑같은 퀵맨 일 뿐이거든. 우린 단지 바람처럼 달려갔다가 바람처럼 사라져야 하는 거야. 장진수는 새로운 퀵맨이 들어올 때마다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새로운 퀵맨들은 장진수의 말을 재미있어 하며 킥킥거리다가 곧 바람처럼 정말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다음 배달할 물건은 서류 봉투이다. 나는 대형 빌딩 안에 들어서면 비상계단부터 찾게 된다. 사람들을 피해 비상계단을 이용한 지 꽤 된 것 같다. 잘 닦여진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으면 내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서 비상계단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이 다른 별에 가야 하는 우주인처럼 초조해지기 때문이다. 대형 빌딩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른 별의 사람들이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청계천에서 수억만 킬로 떨어진 어느 별. 한강을 건너는 일이 내게는 다른 별을 오가는 기분이다. 어느 때인가 나도 같은 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했다. 그 해 봄,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왔다. 그날은 시내 빌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 것 같이 온통 와이셔츠 물결이었다. 을지로에서도, 퇴계로에서도, 명동에서도, 청계천에서도. 작업복 차림의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걷다 보니 명동 성당 안이었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힘차고 절박했다. 내 삶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속에서 그들보다 더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었다. 아주 오래된 꿈처럼 희미해지긴 했지만 6월의 어느 날은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담당자에게 서류봉투를 건네주고 싸인을 받아 비상계단을 두 세 칸씩 뛰어 내려간다. 한겨울인데도 땀이 난다. 핸드폰에서 요란한 신호음이 들린다. 사장이다.
“아까 천호동 성인 오락실. 부품 하나가 빠졌데. 당신보고 다시 가져오래.”
‘당신’ 이라고 하는 걸 보니 사장도 꽤나 곤란한가 보다.
“씨, 무슨 소리예요. 주는 대로 갔다 줬는데. 아까도 늦었다고 천 원밖에 안 주더니. 나 못가요. 아직 반포동에도 못 들렸고.”
“그쪽에서 꼭 당신보고 가져오래. 늦어도 기다린다고.”
“그 자식이 정말.”
색의 농도를 구분 못하는 내 눈처럼 분노도 구별하지 않는 게 나을 때가 있다. 그러나 농도를 구분 못하는 대신 감정만 더 발달한 것인지 화가 나면 잘 보지도 못하는 적색신호가 얼굴에 켜지는 것 같다. 나는 반포동에 들러 청계천으로 돌아왔다. 청계천은 진화중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청계광장이 보인다. 청계광장 주변은 마치 열대림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새로 올라간다. 청계천 입구는 이제 강남역 사거리 같다.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들, 유명레스토랑들이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퍼져 있다. 청계 1,2가 뒷골목에도 매일처럼 모텔들이 새로 문을 연다. 싸구려 밥집과 여인숙들은 이제 퇴화한 꼬리뼈처럼 찾기 힘들다. 복원된 청계천은 내게 몹시 낯설다. 강남의 한복판을 새로이 단장한 것만 같다. 십 년 넘게 소방기구등을 팔던 상가에서 간이매점을 하던 송씨도 이제는 소식조차 들을 길 없다. 그 자리에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점이 들어서 있다. 서른한 가지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선 서른 한 명 정도의 일자리가 없어져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청계천에 없는 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못 구해. 청계천에서는 대포도 만들 수 있다니까. 사장은 술에 취하면 청계천이 서울의 동맥이라고 했었다. 청계천에서 만든 대포알이 빠를까, 우리 퀵맨이 빠를까. 장진수의 대꾸에 우리 모두는 배를 잡고 웃곤 했었다. 복원된 청계천은 이제 대포를 만들 수 없는 걸까.
학생, 이것 좀 봐. 여기 보라니까. 야, 그냥 가면 어떡해. 오백 원 깎아 줄께. 우리도 남는 거 없다. 내가 동생 같으니까 거저 주는 거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노점 상인들에게 팔을 잡히곤 하던 청계천 주변이 내게는 신기한 마법의 거리였다. 청계천에 가면 원하는 건 뭐든지 얻을 수 있었다. 뜻도 모르는 외국잡지에는 금발의 미녀들 사진이 넘쳤다. 아버지와 누이가 빠져나간 마음 사이에 금발미녀들이 들어왔다.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 한 후 망설임 없이 청계천 세운상가로 들어왔다. 청계천은 분명 서울의 중심이었다. 십 오년쯤 지나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전자대리점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들었을 때에도 쾨쾨한 냄새가 늘 코언저리를 맴돌긴 했지만 청계천은 여전히 서울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청계천에 안착한 나의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그 이후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오히려 잊고 싶은 기억들뿐이다. 안산에서 당구장을 하다가 거덜 냈을 때에도, 수원의 지방대학 앞에서 오락실을 하다가 보증금을 다 까먹고 두 번째 여자에게까지 버림받았을 때에도 생각나는 곳은 청계천이었다. 내 기억 속의 청계천은 일거리가 많았고 무엇보다 밥값이 쌌었다.
나는 오토바이 속도를 높인다. 사무실과는 조금 떨어진 황학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아침에 보니 망구의 입술 주위가 새파랗게 얼어 있었다. 난방이 안 된 방에서 잔 탓 일거다. 내복 위에 지난 번 얻어다 준 얇은 옷만 걸치고 있었다. 황학동에 가서 싸구려 스웨터라도 사다 주어야 할 것 같다. 이 한 겨울에 일을 치루면 더 복잡해진다. 이래저래 나의 계산은 자꾸 헷갈린다. 오후 네 시, 겨울 녘의 이 시간은 하루를 가름하는 시간이다. 나의 네 시는 일당을 채운 날과 그렇지 못한 날들로 나뉜다. 주머니에는 배춧잎 네 장과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이 자리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동전까지 꼼꼼하게 계산 해 본다. 상자 곽 같은 황학교가 보이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익숙한 얼굴들이 청계천에서 사라졌다. 청계천 입구나 중앙 시장 통엔 장사가 그런대로 되지만 나머지 상인들은 지나다니는 청계천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아졌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자꾸 날 좀 보라고 보챈다. 나는 핸드폰을 손으로 꽉 잡아 누른다.
퀵 서비스란 게 경기를 타진 않지만 점점 경쟁이 심해지는 탓에 눈에 띄게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하루에 몇 만원 버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요즘처럼 날씨가 안 좋은 날이 이어지거나 주말에는 일이 없다. 나의 하루 걱정은 육 만원이다. 오토바이 할부금과 집세, 망구의 약 값 등을 내려면 배춧잎 여섯 장이 매일 내 주머니에 들어와야 하는데. 나는 저녁마다 만 원씩 갈라놓는다. 사무실 운영비 만 원, 집세 만 원, 오토바이 할부금과 유지비 만 원, 망구의 약 값, 점심 값과 생활비 합해서 만 원, 사채 만 원. 매일매일 계산하니 쉽긴 하다. 하지만 하루의 일당을 채우지 못해 건너뛰면 계산은 어려워진다. 요즘은 늘 계산이 어렵다. 나는 단순하게 어제도, 내일도 생각하지 않고 오늘만 계산하기로 한다. 자꾸 목이 마르다. 가판대에서 파는 음료수는 따뜻하긴 하지만 비싸다. 좀 더 싼 음료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다가 동일 공업사에서 받은 육천 원을 모두 먹는 데 쓰는 것 같아 얼른 반환을 누른다. 대신 나는 장갑을 끼고 손을 자꾸 꼼지락거려본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따뜻한 물과 차가 있겠지만 천호동건 때문에 들어가기가 싫다. 장거리라도 걸렸으면. 이 시간이면 천안이나 안성까지는 다녀올 수 있을 텐데. 해가 진 시간에 국도를 달리다보면 마치 내 자신이 우주에 떠다니는 유성 같이 외롭다. 오토바이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온 몸을 칼로 쪼개는 듯한 추위도 현실 같지 않고 꿈속처럼 아스라하게 느껴진다. 감각이 없어지는 손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마주 오는 차의 불빛들이 나를 기다리는 집, 창가에 켜져 있는 포근한 불빛 같아서 달려들고 싶을 때조차 있다. 칼바람을 막을 수 있다면. 따뜻한 방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두 번째 여자의 커다란 가슴이 아쉽다. 하지만 집에는 망구만이 나를 기다릴 뿐이라는 생각이 나를 일깨운다. 망구에게 사다 줄 스웨터를 잊고 있었다. 어디가야 스웨터를 구할 수 있을지. 수영이네한테 점퍼라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주머니속의 핸드폰이 다시 발악하듯 요동한다. 당신, 빨리 사무실로 와. 왜요. 장거리가 있어. 어딘데요. 와 보면 알아. 사장의 말투가 짧게 끊어지는 걸로 봐서 큰 건수인가보다. 사장은 장거리 주는 걸 특혜로 안다. 퀵맨이 많아질수록 사장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우리가 낸 만 원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말이다. 어쨌든 장거리를 많이 주기만 하면 좋겠다. 매일 일당을 채울 수 있다면 사장의 큰 소리쯤이야 상관없다. 어쩌면 어제의 일당까지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토바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바람처럼 휙, 하니 달려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동그란 미스 남의 얼굴이 각지기 직전처럼 구겨져 있다. 사장도 자기 책상이 아닌 소파 한 구석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다. 뭔가 이상하다, 는 생각이 들기도 전이었다. 전화를 안 받으시겠다고. 아예 떼어먹을 생각이었나. 귀에 익은 목소리다. 목소리의 주인은 내 상상보다 키가 작다. 그 뒤로 커다란 사내들이 몇 명 더 있다. 사내들의 얼굴은 각각인데 표정은 하나처럼 보인다. 같은 표정의 사내들은 내게 눈으로 밖으로 나가라고 신호한다. 사장과 미스남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내들에게 둘러싸여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청계천 도로 신호등 왼쪽 불이 깜박거린다. 서라는 신호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아래쪽이 점멸한다. 보행자는 가라는 신호다. 사내들과 나는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넌다. 가야 할 때와 서야 할 때를 구별 할 수 없는 내 등 뒤에서 다마스정이 나를 부른다. 다마스정 뒤로 저만치 천호동 덩치가 다가오고 있다. 인생에는 가끔 계산 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가 보다. 이제야 오늘의 운세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말띠- 사방에 적이 가득.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할 것.’
(원고지 83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참 걱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 낙오자가 되면 거의 회복불능이니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동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