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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치원신봉초등학교1회 원문보기 글쓴이: 정수기(김정숙)
60여년간 연기를 이끌어온 15명의 국회의원 | |||||||||||||||||||||||||||
[여의도 나들목][역대 국회의원 프로필] 제헌 진헌식 의원부터 현역 정진석 의원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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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대 연속 자유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유지원 의원(1913~1981)은 청년시절부터 전국청년총연맹 중앙위원, 대한청년단 총본부 단장 등 왕성한 활동을 했고 이후 국방위원장을 지낸 이력도 있다. 5대 성태경 의원(1917~1993)은 교편을 잡다 일본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며 관직에 올랐다. 국회 사법ㆍ농림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을 지내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일본중앙대학 법과를 졸업한 전공을 살려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가까웠던 6, 7대 김용태 의원(1926~2005)은 대덕 출생으로 63년 공화당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5선의 위업을 달성했다. 8대부터 10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대전에서 내리 승리를 거머쥐었다. 여당인 공화당의 원내총무 직을 6년 넘게 맡으며 실세 자리에 머물렀고 민간인으로서 몇 안 되는 5.16 군사 쿠데타 주체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김 두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각별한 아낌을 받았다고 한다. 정계를 떠난 뒤 87년에는 신민주공화당 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JP와의 연을 이어가다, 90년대에는 해외문화교류사업에 전념했다. 8, 9대 김제원 의원(1913~1987)은 전 경향신문사 사장이었다. 8대 총선에서 공화당 공천을 받아 대덕ㆍ연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신도회장, 세계불교신도우조회 부회장을 거치며 종교 활동을 챙겼다. 중선거구제로 바뀐 9대에는 신민당의 유진산 의원과 함께 선출됐다. 금산 출생의 유진산 의원(1905~1974)은 9대에 금산ㆍ대덕ㆍ연기 지역 국회의원으로 선출됐지만, 이 때가 벌써 7선 째였다. 3대 총선에서 금산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4, 5대 연이어 금산 국회의원으로 지냈다. 6대에는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7대와 8대에는 신민당 의원으로 계속 정계에 머물렀다. 민주당 시절 원내총무를 지냈고 신민당에서는 수석부당수, 대표위원을 역임했다. 유진산은 1970년 신민당의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김영삼을 지원하며 승리를 예상했으나 결국 김대중 후보가 신민당을 대표해 대선에 출마하게 됐다. 10대 공화당 공천을 받아 승리한 이준섭 의원(1933~)은 연기 출생으로, 중앙정보부에 오래 몸을 담았다. 공화당에서 원내부총무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한국석유개발 부사장, 대한 송유관 공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10, 11, 12대 연거푸 당선된 류한열 의원(1938~)은 9대 의원이었던 유진산 의원의 아들이다. 신민당의 공천을 받아 10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이후 11, 12대에는 민한당 후보로 금산ㆍ대덕ㆍ연기 지역의 지지를 얻었다. 신민당 부총재, 민한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 후 13대 총선에는 무소속으로 충남 금산 국회의원이 되었고, 지난 16대에서 한나라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돼 당 상임운영위원, 충남도지부장 등 굵직굵직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선정한 낙선의원 명단에 포함되면서 17대 총선에서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11, 12대 재선에 성공한 대덕 출생의 천영성 의원(1929~)은 육군대학과 미 공군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에 올랐다. 86년에 일어난 이른바 ‘국방위 회식사건’ 당시 국방위 공군소장 출신 자격으로 자리에 있었다. 13대 이인구 의원(1932~)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대덕ㆍ연기에서 당선됐고, 이후 15대 총선에서는 자민련 후보로 대덕구 국회의원이 됐다. 계룡건설산업 설립자이자 현 명예회장이며, 계룡장학재단 이사장이기도 하다. 현재 대전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4대 박희부 의원(1938~)은 출생지가 천안이며 국민당 공천을 받아 14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도로공사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17대 총선에도 출마했으나 시민단체에 의해 낙선대상 의원으로 낙인찍혀 무릎을 꿇었다. 김고성 의원(1941~)은 15대 총선에서 자민련 후보로 당선됐다. 원내수석부총무, 중앙위원회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신물질을 개발하는 사업에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6대에 이어 현역 국회의원으로 지내고 있는 정진석 의원(1960~)은 2000년 자민련의 공천을 받아 공주ㆍ연기 지역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의 길을 걷게 됐다. 17대 총선당시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게 패하면서 잠시 정계를 떠나있었지만, 2005년 4.30 재보선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워싱턴 특파원 등 기자생활을 오래했다. 자민련 수석부총무, 대변인을 지냈고 현재는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자리에 있다. 정 의원의 부친은 정석모 전 의원이다. 17대 총선에서 낙선바람을 돌파하면서 당당히 당선의 기쁨을 누렸던 이가 오시덕 의원(1947~)이다. 그러나 당선된 지 1년도 안된 2005년 1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ITM그룹의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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