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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라! 영원한 마음의 다리로!
2002/06/28 평화의 세기를 향하여 서라벌대학 일행
이케다 SGI회장은 서라벌대학의 ‘명예 교수’ 칭호 수여식에 이어 동대학의 창립자인 김일윤 박사 부부, 정옥교 학장 부부와 세이쿄신문사 본사에서 회견(6월 28일)을 통해 한일 우호의 미래를 전망했다. 이 자리에는 소카대학 와카에 총장, 소카여자단기대학 후쿠시마 학장, 한국SGI 여상락 이사장, 박재일 참의 등이 동석했다.
김 박사는 63세. 한국은 예의를 중히 여기고 연장자를 존경하는 나라.
김일윤 박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케다 회장님께서 정말 건강하시고 젊게 보이시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이케다 회장께서는 참으로 위대한 사업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저는 꽤 연세를 드신 분이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케다 SGI회장 저야말로 고명한 교육자이자 지도자이신 김일윤 박사를 상당히 나이 드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김 박사 아닙니다. 회장님께서는 ‘일본인’에 머물지 않는 ‘세계인’입니다. 참으로 국제적으로 활약하시는 분이라서 꽤 나이를 드신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SGI회장 ‘세계 시민’이신 김 박사야말로 상당히 나이를 드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폭소).
김 박사 고맙습니다.
회장께서는 한국으로서는 가장 가까운 일본의 벗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께서 이렇게 정중하게 맞이해 주시니 ‘형님’인 이케다 회장께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SGI회장 저는 여러분을 ‘아버지’라고 생각하여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문화를, 사상이나 철학을 일본은 귀국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큰 은혜를 일본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에게 배운다
SGI회장 정 학장께서도 잘 오셨습니다.
학장께서는 제주도에서 열린 전문대학장 세미나 및 임시총회에 참석하시고 그 길로 어제(27일) 달려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옥교 학장 아닙니다.
SGI회장 5월 15일의 ‘스승의 날’에는 뛰어난 교육자로서 국무총리표창을 받으신 것 참으로 축하합니다. (동석자의 성대한 박수가)
정 학장 고맙습니다.
SGI회장 교육자를 현창하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또 한국과 일본의 ‘캠퍼스평화문화활동’에 보내 주신 깊은 이해 참으로 고맙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부가 공동으로 주최하여 두나라 우호를 증진하는 패널전시, 세미나 등을 실시. 일본의 약 150곳에서. 한국에서는 112개 대학에서 개최했다.〉
귀 대학에서 실시한 5월28일에는 정 학장께서 몸소 전시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학장 전시장에 가서 놀랐습니다. (의식조사 패널은) 학생의 부모나 형세대가 가지고 있는 한일관계의 견해에 비하여 학생들의 의식이 크게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이전에는 피해자 의식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학생들은 일본을 이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이 든 사람은 젊은이에게 배워야 합니다.
고난을 뛰어넘는 힘
SGI회장 그런데 김 박사께서는 일찍이 아버님을 여의었다고 들었습니다. 박사가 몇 살 때 돌아가셨습니까?
김 박사 만 11살 때입니다.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경주시 근교 농촌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완고하고 엄한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한테 혼이 나고 매를 든 아버지에게 쫓겨 마을을 3바퀴나 돈 일도 그리운 추억입니다(웃음).
SGI회장 그런 ‘엄한 사랑의 단련’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김 박사가 계시는군요.
김 박사께서는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신 후, 경제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학업을 1년간 중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하면서 신문팔이, 기차나 버스에서 행상, 가정 교사, 학원 강사 등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학의 청춘을 보냈습니다.
언젠가 그 때를 회상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하셨더군요. “배운다는 정열만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그런 존귀한 체험을 간직한 박사께 지금 청년들을 위해 메시지를 부탁합니다.
김 박사 저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에서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젊은이여, 큰 이상을 품어라! 그리고 멀리 내다보며 걸어라!”
SGI회장 소중한 말씀입니다.
청년은 미래입니다. 청년은 희망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한한 힘과 사명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보배인 청년을 사랑하고 청년을 존경하고 자기 이상으로 위대한 인재로 육성한다. 그것이 교육자의 혼(魂)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배울 기회를
SGI회장 그리고 천년 고도·경주는 역사적으로 이름도 유명한 ‘교육 도시’ ‘인재 도시’입니다.
7세기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신라의 청년지도자를 육성하는 ‘화랑’의 혼이 맥동치고 있습니다. 그 정신을 박사는 인재 육성의 이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박사께서는 고투의 학생 시절에 가난하여 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진학할 수 없는 청소년의 모습을.
그것이 훗날 학교 설립의 원점이 되었군요.
김 박사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SGI회장 1966년(박사가 27세 무렵)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단기간에 이수할 수 있는 ‘문화고시학원’을 설립하셨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제1강의록’이라는 통신 교육도 시작하셨습니다.
여성 교육에도 힘을 쏟으시어 현재의 경기여자상업고등학교의 전신인 ‘서울여자상업전수학교’와 ‘연희여자상업고등학교’를 설립.
또 고등교육기관이 적은 고향 경주에 사립학교의 설립을 결의하시어 1980년에 ‘원석학원’을 창립하여 ‘신라고등학교’ ‘서라벌대학’ ‘경주대학’ 등을 차례차례 설립하셨습니다.
김 박사께서는 자신의 신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간 교육은 우리의 미래와 직결하는 문화지속의 원동력”이자 “교육만이 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다”라고.
여자고등학교를 차례차례 설립하셨습니다만, 여성교육에 주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 박사 이케다 회장께서는 일본과 세계가 주목하고 계시며 세계의 많은 현인과 교류하고 계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회장께서 저 같은 하찮은 존재를 이렇게까지 알고 계시는가 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SGI회장 그것은 … 질문에 답해 주세요!(폭소)
김 박사 예(웃음).
여성은 인류의 어머니입니다.
젊은이가 이 나라의 미래라면 그 미래를 여는 것은 (그 젊은이들의 어머니인) 여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동감입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세기’입니다. 시대는 그 방향으로 시시각각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여성 교육이야말로 인류의 초점입니다.
창가 교육의 창시자인 마키구치 초대 회장도 100년 전에 여성을 위한 통신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여성이야말로 평화의 가치를 창조하는 ‘미래에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마키구치 선생님의 확신이었습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SGI회장 김 박사께서는 모교인 경주고등학교 동창회장이 되신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박사는 당시의 교장이신 대시인 청마(靑馬) 유치환 선생을 만나 스승으로 받들고 계시더군요.
〈‘청마’는 호. 본명은 유치환(1908~1967년)〉
청마 선생은 통영 출신으로 ‘생명의 서(書)’등 많은 시집을 내신 시인으로 유명합니다.
뭔가 청마 선생에 대한 추억이 있습니까.
김 박사 시인으로 조예가 깊으신 이케다 박사께서 유치환 선생을 알고 계시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청마 선생 외에도 많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만, 특히 유치환 선생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가까이서 뵐 수가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주는 자연환경이 풍부하고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는 유적도 많아 문학이나 예술에는 대단히 적합한 토지입니다.
유치환 선생은 생애 가장 존귀한 시간을 교장으로서 아름다운 경주에서 보내게 된 것을 기쁘듯이 말했습니다.
선생은 언제나 학교에 오실 때, 큰 길이 아니라 작은 논두렁을 걸어 오셨습니다. 걸으면서 시(詩)를 구상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조회시간에 학생들에게 시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통하여 ‘사람은 누구나 시심이 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경주고등학교에서는 유명한 시인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SGI회장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자연스런 행동으로 청년들의 ‘시심’을 길러주셨군요.
귀국에는 예로부터 서민의 사랑을 받아온 ‘시조’라는 전통적인 정형시가 있습니다. 그 중 이런 시가 있습니다.
“저 위에 서 있는 소나무는 본래 높아서 높은 것이 아니라
서 있는 곳이 높아 높은 것 같이 보이지만
계곡에서 가지가 무성한 큰 소나무야말로 정말 높은 소나무다”
권위나 허영으로 훌륭한 척 해도 허무할 뿐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은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 위대하고 존귀합니다.
‘사람’을 기르는 것은 ‘사람’입니다. ‘마음’을 기르는 것은 역시 ‘마음’입니다.
청소년의 풍요로운 마음을 기르기 위해 먼저 어른이, 먼저 교육자 자신이 자기를 갈고 닦아 고양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SGI회장 귀 대학 교육 목표의 하나에 “건전한 심신을 갖추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육성한다”라고 있습니다.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하여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김 박사 한 인간이 완성을 향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는 법입니다.
낳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 도와 준 친구들의 은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나 선배의 ‘은혜’ 그런 많은 은혜가 있어 비로소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른이 되면 ‘자신만’을 위한 인생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주위 사람들에게 보답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런 운명을 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감명받았습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은혜를 잊은 삶은 인간성의 실격이라 해도 좋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자기 몸을 던져 사회에 공헌한다. 그것이야말로 숭고한 사람의 삶입니다.
‘사학(私學)’의 의의
SGI회장 20세기 초두에 시작한 귀국의 독립운동, 정의로운 항일운동은 교육으로 실력을 양성하고 나라를 구하자는 ‘교육운동’의 측면이 강합니다.
유명한 안창호 선생, 김구 선생, 시인 한용운 선생도 교육사업에 깊이 종사하셨습니다.
그런 민중에 뿌리내린 교육운동을 각지에서 담당한 것은 많은 사립학교였습니다.
우리들의 마키구치 초대 회장, 도다 제2대 회장도 ‘사학’의 중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귀국 교육의 전통에서 볼 때, 사학의 특징은 어떤 점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박사 이케다 선생님께서 한국 교육역사를 깊이 알고 계시어 놀랐습니다. 안창호 선생, 김구 선생, 한용운 선생. 어떤 분도 한국 사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근대 한국에서 사학이 이룬 역할은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공립학교도 제각기 목적이 있었습니다만, 일률적으로 ‘나라를 위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한편 사학은 ‘창립자의 정신’이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민족이 괴로움의 도탄에 빠져 있을 때는 ‘민족의 등불이 되어라!’는 이상을 세운 학교도 있습니다. 또 어느 시대는 나라의 번영을 위해 ‘경제부국을 이끄는 인재가 되어라!’고 호소한 학교도 있습니다.
제각기 창립자의 정신이 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를 세워 학교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학은 ‘창립자 정신’을 교육 철학으로 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곳에 최대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창립정신’이야말로 대학의 혼입니다.
학생을 이해하자
정 학장 우리 대학의 창립은 1981년. 그 이듬해 저는 대학에 부임했습니다.
실은 저도 경주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창립자 김 박사의 후배입니다.
대학에 부임하여 저는 대단한 고생 끝에 대학을 창립한 김 박사의 이념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인격 도야에 중점을 두어 ‘인간 교육’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교수로서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학생을 이해하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동감입니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정 학장 저는 대학에서 학생을 만날 때, 제가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전에 한국SGI 박재일 참의가 대학에 오셨을 때, “학생이 먼저 인사하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훌륭한 교풍이군요”라고 하더군요.
창립자의 마음을 저 나름대로 실천한 결과 나타난 것 중의 하나라고 정말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SGI회장 좋은 이야기군요.
높은 곳에서 학생을 내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학문을 추구하는 동지로서 학생 속으로 뛰어든다. 모범적인 교육자의 모습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SGI회장 김 박사께서는 이전에 ‘한일 문화 교류의 확대와 촉진’이라는 강연에서 두나라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양국 관계의 역사 시정’ ‘학교 교육 내용의 개선’ ‘양국간의 청소년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찬성합니다.
교육에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한일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이 성공리에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대단히 큰 사업이고 큰 전진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두 나라의 견고한 우호 촉진의 기회입니다.
앞으로 어떤 점이 중요하게 될 것 같습니까.
김 박사 저는 이번에 이케다 박사를 뵙게 되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 이케다 박사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있다’고 재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지만, 일본에는 정치가든 학자든 역사인식에서 불충분한 사람이 아직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우리 선조 때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는데도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탁월한 지도자인 이케다 박사께서 한일 역사를 깊이 이해해 주시는 것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두 나라는 말하자면 형제의 나라입니다.
예를 들어 형제라도 때로는 싸움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입이 더러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적처럼 생각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일 간에도 숱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역사를 직시하고 진실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르게 인식하고 청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과제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진정한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저는 두 나라가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GI회장 올바른 말씀입니다.
지금 발언을 그대로 후세에 남기고 싶습니다. 모든 일본인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일본은 귀국에게 아무리 사죄를 해도 부족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케다 회장님! 언제 경주에 오시겠습니까?” “반드시 경주에 와 주십시오”라고 대담을 마치고도 SGI회장에게 방문을 염원하는 일행.
그 일행을 청년이 대표로 민요 〈아리랑〉을 한국어로 부르며 배웅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
아리랑은 민족의 혼이 담긴 노래로 군국주의 치하에서는 일본에 대한 저항심을 담아 민중이 부른 노래를 지금 일본 청년이 부른다.
미래를 위해 과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마주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래를 쌓자! 노랫소리에는 그런 다짐과 기원이.
노래가 끝나자 김 박사는 청년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었다. 정 학장이 제일 앞줄에 선 청년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SGI회장은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청년이여! 한일우호 보배의 다리를 부탁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