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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종교 없는 삶(총418쪽)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필 주커먼 Phil Zuckerman/박윤정 번역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탈종교화다. 무종교시대로 접어든 산업사회다. 미국에서 제일큰 동창회가 다름아닌 [교회졸업동창회]라는 말이 있다.
최근에 미국에서 종교가 없다는 사람의 수가 200%로 증가했다.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절대다수가 교회를 떠난다. 한국의 2015년 통계에서 종교없는 사람이 56.1%이고 10년만에 300만명(9%)이 감소하였다. 무종교의 연령대는 10~40대이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에서 더욱 많다.
왜 이런가? 종교가 기복신앙, 상벌을 전제로하여 포교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흥미를 상실하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를 넘어서]라는 책에서 극락, 천국, 지옥으로 사람들을 회유, 협박하는 종교는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종교와 상관없이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무종교적 윤리(soular ethics)가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강조하였다.
조계종 창시자 지눌사상에 큰 영향을 준 승려 종밀[宗密780~841]도 그의 책 원인론에서 불교의 가르침 5가지 중에서 人天敎(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느냐, 천상에서 사느냐)의 인과응보적 교리는 내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어라는 가르침을 오염시켰고 했다.
인간의 고대 수렵시대에는 거대한 감시자(watcher), 거대한 신들(Big Gods)을 필요로 했지만 오늘날의 산업복지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제도, 기구조직들의 기능이 종교를 대신하고 있다.
덴마크, 스웨덴, 등의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신이 없는 사회지만 범죄율, 부패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낮고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이다. 이 책에서도 신을 믿는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들이 번영, 평등, 자유, 민주주의, 여성인권, 인권, 교육정도, 범죄율, 기대수명이 가장 좋은 편이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은 그의 책 [신의역사]에서 미국이 도덕적으로 낙후한 것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종교의 도그마에서 벗어나면 삶과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 봄에 솟아나는 들풀,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 바람, 햇빛, 물 한방울, 강가의 모래도 너무 경이롭고 놀랍게 느껴진다.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광대한 우주의 경이로운 신비(awsome mysteries)를 하나하나 발견하며 경외감, 환희, 황홀감을 체험할 수 있다. 종교를 넘어서 모든 것을 신기한 눈으로 보면서 살아가는 삶을 경외주의(aweism)라고 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조직화된 종교의 자세가 아니라 진정한 참나의 신앙생활인 것이다. (렘23장24절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니라).
오강만 박사는 모든 종료를 표층종교/심층종교로 구분하며 이것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표층종교---기복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
심층종교---만물과 내가 하나되고 만물이 서로 의존하면서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을 주목적으로 하는 신앙.
종교가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가? 흔히들 무종교인을 하찮음과 연결지어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가지는 우월감에 찬 신앙인들을 맹신자, 광신자라고 부른다.
무종교인들은 죽음의 문제, 삶의 문제, 초월감 같은 것에 대하여 어떻게 해답을 찾을 것인가?
문제를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집단적 사고나 군중심리에 맞서서 자기를 강화할 줄 알며 현세의 일들과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가지고 자연의 장엄함을 영적으로 음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참 신앙의 근본이다.
과학적 탐구를 좋아하고 인간적 공감을 깊게 하며 성숙한 도덕성을 키우고 삶의 유한성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조직화된 종교를 초월하여 참 신앙의 근본이다. 무종교성은 지혜와 경이에 풍요롭고 자랑스러운 원천이 되는 것이다.
종교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한 세계관, 긍정적이고 목적있는 삶의 자세를 지닌다. 미국에서 무종교인은 1950년대에는 5%미만이었는데 1990년대에는 8%, 2001년에는 14%, 2010년에는 16%, 2013년에는 19%, 최근에는 30%로 증가하였다. Time지가 미국사회의 중요한 변화 10가지를 소개했는데 그중에 무종교인의 급증을 지적하엿다.
도덕성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상호작용하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
신에 대한 믿음없이 어떻게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존재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신을 두려워하거나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가 불러올 파장, 타인들에게 끼칠 해악, 개인적인 즐거움에 대한 이해와 평가들을 바탕으로 결정하여 합리적 결정을 내리고 자기 성찰, 맹신을 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공감을 할 줄 아는 기질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무종교인들의 부모들도 자녀교육에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을 심어준다. 황금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는 것, 환경에 대한 의식, 공감력을 키울 것, 독립적 사고를 함양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이성적 해결에 의지할 것(p.169) 등이다.
나는 분명히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p.350). 이제까지 인간들이 지어내고 상상해 낸 그 모든 신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무신론자라는 명칭 자체도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기쁨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존의 심오한 신비와 존재의 아름다움, 창조의 숭고함에 대한 느낌을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삶에 대한 깊은 사랑을 품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저~기 바깥 쪽에 영원히 미지의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삶과 죽음, 우주와 같은 실존적 문제와 신비들을 경험하고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종교적 인본주의자, 혹은 자연주의자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명칭이 매우 좋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p.354)
이 말의 뜻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세계를 더 좋고 안전한 공정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인간의 잠재력에 낙천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무종교적 인본주의라는 이성과 과학, 이성적 담구를 믿고 민주주의와 관용, 열린 토론, 인권 등에 헌신하는 사람이다(p.355)
무종교적 인본주의자라는 말도 나 자신이 기쁨과 경이, 환희의 순간, 엄청난 지지와 환호성, 사랑을 받을 때는 이 명칭의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경외주의(aweism)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실존의 아름다운 신비, 살아있음이 경이의 원천이고 창조와 시간, 깊은 기쁨과 통렬한 아픔, 숭고한 경외감은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경험할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신비라고 했다.
[미국사회의 무종교적 도덕성]생명을 깊이 존중,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공정한 결과를 갈망하며 불의와 잔인함을 증오하는 윤리적 태도와 이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종교적 강경론자들은 인종차별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온건한 종교인들은 인종차별적 성향이 적다. 인종차별적 성향이 가장 적은 집단은 무종교적 미국인들이며 특히 불가지론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불가지론자라는 뜻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믿는 것도 아닌 사람을 의미하는데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이고 기회주의자, 우유부단함,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을 말한다.
고문허용, 사형제도 지지하는 사람들도 종교적인 사람들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용서보다는 복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무종교인들이 사형반대, 자비로운 태도를 보였다. 종교적 미국인들은 환경보호에 별과 관심이 없고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은 환경보호에 적극적이다.
한편으로 관대함, 자원봉사, 자선기부에서는 무종교인들이 소극적이다. 감옥수감자들 중에 무신론자는 0.5%, 무종교인들의 범죄율이 낮다.
매일매일 사람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만족감을 느낀다(p.54). 우리는 사회적 창조물이다(p.55). 인간의 도덕성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로서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달된 것이다.
[종교주의자의 말]
종교적 믿음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방지해 준다. 종교가 없으면 사회가 무정부주의적으로 되고 혼돈스러우며 취약해지고 무법적인 세상으로 변질, 기독교가 도덕성의 가치, 품위의 마지막 보루이므로 종교가 없으면 사회가 모호해지고 공허해지며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상황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무종교적인 사회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적 화합과 예의, 자유, 평등, 평화, 풍요를 보여주는 반면에 종교적인 사회들은 심각한 수준의 파괴, 혼돈, 불안정, 불평등, 억압, 비도덕, 가난을 보여 준다. 여기에 좋은 사례를 보면 무종교적인 덴마크와 보수기독교국가 자메이카의 현실에서 알 수 있다.
믿음이 강한 나라들(p.89)---나이지리아, 우간다, 필리핀, 콜롬비아, 세네갈, 말라위, 인도네시아, 브라질, 페루, 요르단, 알제리, 베네쥬엘라, 멕시코, 시에라리온 등등
믿음이 약하고 무종교적 성향이 강한 나라들---스웨덴, 덴마크, 체코, 일본, 카나다, 노르웨이, 핀란드, 중국, 뉴질랜드, 한국, 에스토니아, 프랑스, 베트남, 러시아, 불가리아, 네델란드, 슬로베니아, 독일, 헝가리, 영국, 오스트랄리아, 벨기에, 등등
지구상에서 어머니들에게 가장 좋은 나라들을 매년 비영리단체 Save the Children Foundation에서 Mother's Index를 발표한다. 분만 시에 보살핌이 좋고 출산휴가를 주고, 영유아 사망률이 적은 것 등을 고려하여 평가한다. 여기에서 상위10개국은 모두 무종교국가들이고 하위 10개국은 예멘, 말리, 니제르 등의 고도로 강한 믿음을 가진 종교국가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선이라고 주장하는 평화를 기준으로 볼때 종교적인 나라들은 아니다. 오히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들이 높은 수준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세계평화지수 Global Pease Index를 기준으로.)
살인률이 가장 높은 나라들은 모두 종교성이 강하고 유신론을 믿는 나라들(콜롬비아, 멕시코, 엘살바도르, 브라질---)이고 살인율이 가장 낮은 국가들은 거의 무종교 국가들이다(스웨덴, 일본, 노르웨이, 네델란드---).
위의 상관관계는 기업체와 정부의 부패정도, 성 전염성질환 비율, 10대 임신율, 문맹율, 병원치료혜택수준, 차량도로와 고속도로의 질, 가정폭행비율, 표현화 언론자유, 환경훼손과 오염, 위생수준, 깨끗한 식수의 이용정도, 투표율 등 다른 모든 척도에서 보더라도 덜 종교적인 사회가 더 종교적인 사회보다 훨씬 잘 살아간다(p.93). 특이한 것은 자살율은 종교적인 사회들이 무종교국가들에 비하여 현저히 낮다(p.93).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에서 세속주의(합리적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선을 싹틔우는데 핵심요인으로 작용하여 사회적 진보에 기여해 왔다.
신권통치의 군주제를 현대 민주주의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세속주의, 인문주의는 많은 기여를 하였다.
파시즘,공산주의,전체주의 정권은 비민주적, 독재, 부패, 멸망의 길을 걸었고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만병통치의 약은 아니라고 본다. 종교에도 온갖 형태의 교리와 신학을 바탕으로 하여 운영하는 과정에서 자애로운 종교도 있고 잔인한 종교도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종교의 상실이나 약화가 사회에 해롭거나 위험한 것은 아니다. 여러 형태의 종교에 참여하지 않고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민주적 상황이면 유기적이고 자유롭게 무종교적 사회와 문화가 평화롭게 생겨나면 매우 긍정적인 결과로 발전할 것이다. 한국의 최근 상황이 그러하다.
사후세계에 대한 불신(p.309)은 자기의 유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World Values Surveys의 조사결과에서 나라별로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헝가리인67%, 미국인64, 독일인61, 프랑스인55, 노르웨이53, 일본인49, 영국인42, 대만인39, 알르헨티나37, 오스트랄리아36. 캐나다27%이다.
죽음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관심꺼리다. 종교적 공동체에 소속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은 외롭다. 여기에서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생물은 죽음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미생물, 식물, 곤충, 동물,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 생물학적으로 보면
1)온도가 안 맞으면
2)영양이 고갈되면
3)바이러스에 걸리면
4)물리화학적 충격을 받으면
이러한 조건에서 생명은 끝이 나게 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우리 지구는 46억년 동안에 모든 생물들이 살고 죽고 하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근본은 태양의 빛 에너지에 있다. 빛에너지를 식물이 받아서 광합성을 하고 그것을 미생물, 곤충, 동물, 사람이 먹고 살아간다.
46억년 간에 쌓이고 쌓인 생물의 시체들은 모두 지구에서 순환되고 있다. 지구에 쏟아지는 태양의 빛에너지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지구의 무게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강국희 첨언)
최근에 미국에서 새로운 장례문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종교적인 장례식을 거부하고 추도식 전문가를 초빙하여 치루는 인구가 30%에 이른다. 추도식은 장례식장이나 해변가, 집마당에서 가족, 친구, 고인이 사랑하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망자의 삶을 회고하면서 음악을 듣고 오래된 사진, 비디오를 보면서 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적이지 않는 추도식을 집전해 주는 전문가들 중에 Quincy Risskov라는 사람이 있는데 56세, 뉴욕주의 버팔로에 거주하고 있다. 버펄로에는 종일 일꺼리가 없고 종교적이지 않은 결혼식/장례식을 집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출생, 결혼, 장례>의 절차에 대하여 그 의미를 높게 부여하고 아름다움, 절절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러한 행사를 통하여 영감, 위안, 평안을 구하려고 한다.
무종교인들은 결혼식장에서 두 사람은 신의 은총에 의하여 한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든가, 장례식장에서 더 좋은 세상 천국에 갔다든가 하나님의 옆에서 살게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신에게 기도와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의미있는 진정성이 담긴 의식을 통하여 서로 화합하고 평안을 얻고 싶어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서 특별하고 진실되고 진심이 묻어나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퀸시의 추도식 준비는 어떻게 하는가!(p.319)
먼저 망자의 친지들을 만나서 상실감에 귀 기울리면서 사랑하던 고인을 어떤 식으로 추모하고 싶은지 묻고 의식에 포함시킬 것인지 물어보고 추도식 구상을 한다. 고인이 사랑하던 시, 음악을 장례식에 집어넣고 장례식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포함시키고 싶어하는 사적인 특별한 내용도 수용한다. 당사자의 특별한 개성에 맞는 고유의 추도식으로 만들기 위한노 력이다.
추도식에서 용서, 인성, 몇가지 공통적인 문제점들을 강조하고 죽음에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할지 살짝 덧붙인다.
“죽음으로 인해 망자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망자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기억이라는 새로운 국면 속으로요. 추도식에서는 앞으로 며칠, 몇 주, 몇 달, 몇 년 동안 망자를 기억해 줄 무언가를 보거나 듣거나 만지게 될텐데 그런 순간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이런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생애는 다음 생애를 위한 준비라고 마음먹고 믿음으로 그런 생각을 충족시켜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국립존엄사센터 Peg Sanden의 말(p.324-325)---1994년오리건주의 주민투표에서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를 통과시켰다. 불치병으로 6개월내에 죽으리라고 진단 받으면 치사량의 약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서면이나 구두로도 가능하고 2명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 서명 후 14일이 지나면 치사량의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오리건주는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이 40%, 성경을 신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쓴 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0%이며, 주민20%는 무신론자/불가지론자들이다.
무종교인이 증가하는 이유?
무종교인은 수천년 전에도 있었다.
1) BC7세기 인도의 철학자 집단 차르바카(Carvaka)의 이야기, 2800년 전에 가장 종교적집단이있었지만 여기에서도 회의주의적 사람들에 의한 자연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종교성향의 사람들이 있었다. 차르바카는 힌두교의 초자연주의를 거부한 유물론적 사상가, 종교적 권위자들을 심하게 조롱하면서, 우리가 오감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하고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2) BC3세기 중국, 순자의 철학에서도 무종교성을 볼 수 있다. 자연세계가 바로 천국이며 도덕성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구축해 나가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2000년 전에는 중국의 왕충이라는 사람이 세계의 경이로운 배후에 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은 없으며 행운, 불운도 우연의 결과이고 불멸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3) BC고대 이스라엘 유대인 철학자 코헤렛(Kohelet)의 글에 성경 전도서의 저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말에 모든 삶이 무의미하며 죽음 이후의 삶은 없다고 주장하고 가능한 것을 즐기고 이웃사랑, 좋은 일을 하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쳤다.
성경 욥기의 알려지지 않은 저자는 고대 유대인들의 의심, 회의주의가 매우 강했다. 특히 유대인 철학자 히위 알발키(Hiwial-Balkhi)는 공공연하게 회의주의를 제기하였고 율법서 토라의 신성함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여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잃게 하였다(p.107).
고전주의시대(고대로마, 그리스인들)에도 불가지론, 반종교성, 비판적 태도가 많이 표출되었다. 특히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후의 삶은 없으며 가장 불가사의한 것들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경험이 본질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p.107).
Epicurus도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고 죽음이라는 결말을 피할 수 없으므로 더욱 절실하게 현재의 삶을 즐기려 노력하고 이 생애는 즐겁고 좋은 것이며 확실히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가르쳤다.
Democritus는 모든 신성한 것의 존재를 부정하고 개인의 도덕성은 자기존중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어떻게해도 신의 존재는 확인이 어렵다며 불가지론을 폈다.
11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은 인간은 천국을 말하지만 여기 말고는 천국이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이 신의 존재와 종교에 대하여 불가지론, 회의주의, 무신론, 자연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라고 부르는 것들의 초기형태가 수 천년 전부터 분명히 존재하였다. 인간은 워낙 다양성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간단히 구분하기 어렵다.
무신론자, 기독교인, 무종교인, 종교인 등의 딱지를 붙인 상자 속에 모든 사람을 분류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종교인들도 어떤 면에서는 무종교적인 태도를 취할 때도 있고, 뿐만 아니라 무종교인들의 경우에도 어느 면에서는 환경에 따라서 종교적일 때가 있다. 이런 복합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말이 나왔는데 사회학자 David Voas는 전통종교를 추종하지 않고 다양한 초자연적 믿음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모호한 충신도들(Fussy fidelists)라고 부른다. 이들은 부모가 믿는 기독교를 피하면서도 유령, 환생을 믿는다.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카르마가 영적이고 우주적 실재로서 우주에 스며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또 종교적인 믿음을 유지하면서도 종교조직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성당, 믿음을 유지하면서도 종교조직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성당, 모스크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신을 믿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서 종교단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에서 탈종교화의 원인---미국의 보수교인들이 공화당과 손잡고 낙태불법화, 동성애반대, 학내 기도 지지, 금욕옹호 성교육, 줄기세포 연구반대, 복지재정축소, 이스라엘 지원, 총기규제반대, 대 테러리즘 전쟁찬양, 카록릭 사제들의 소아성애 스캔들에 환멸, 성범죄자들을 고발하지 않고 시골 성당으로 좌천, 6000 여명의 사제들이 성문제로 연루되어 500명이 투옥되고 강간, 추행, 은폐에 대한 혐오감이 확산되면서 탈종교화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 기독교인이 많은 지역을 Bible Belt라고 부르는데 복음주의,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중남부, 동남부 지역들이다.
사후세계 문제(p.159)---아이들의 질문에 “삶은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은 너무도 큰 행복이다. 이 행복한 감정으로 세계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느끼는데 신이 있다고 믿어야할 이유는 없다”고 대답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평화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살아있지 않지만 여전히 세계/자연의 일부라고 인식한다. 세계의 일부로 되돌아가고 우리 몸은 모든 것들의 일부분이 된다. 죽으면 세계의 일부가 되어 대지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답은 종교인의 물음에 대하여 정직하게 밝히면서도 종교를 폄하하거나 조롱, 무시하지 않는 능력있는 자세이다. 이런 답변에서 보면 방어심보다 자신감이, 스트레스보다 편안함이, 폐쇄적 마음보다는 개방성이 풍겨나온다.
도덕적 가치문제--신에 대한 믿음 없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덕적 토대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실행 가능한 도덕의 뼈대를 만드는데 유신론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서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로써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 신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사람을 좌파니, 우파니, 중도니 하면서 구분하는 것도 편리한 면은 인정하지만 사람을 그렇게 단순 분류하기는 어렵다.
<<박윤정 번역자의 글 요점>>
21세기의 종교는 명상이다라는 말이 기억난다.
명상의 본질이 부단한 자기성찰과 주의집중을 통해서 내가 진정 어떤 존재인가를 찾아 가는 것, 생각이 빚어낸 온갖 망상과 분리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하나님은 천지에 충만), 이런 깨우침을 바탕으로 내가 곧 너고 우리라는 인식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무종교인이나 종교인, 명상가, 비명상가, 모두에게 삶의 근본적인 가치와 태도를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라고 본다. 출발점은 무종교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었지만 최종목적지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을 수 있는 덕목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본다.
종교인과 무종교인을 피상적으로 나누고 자기 멋대로 정의하고 서로 비난하기 전에 그 밑바탕의 본질을 알고 실천하는 것, 이 실천 속에서 지금 시대에 필요한 탈종교적 종교를 새로이 세워나가는 것, 이 세움을 통해서 혼돈의 시대를 함께 평화롭고 따뜻하게 헤쳐 나가는 것, 그럴 수 있는 힘을 키우는데 이 책이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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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국희박사 글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