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미래이다.
(부제 - 어르신을 통해 나의 미래를 만들어 보다.)
사회복지사_강종용
- 경험을 통해 전해주는 예언.
6월의 무더위. 작년보다 더욱더 무덥게 느껴지는 2010년의 6월.
지금의 더운 날씨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과거의 여름을 여러번 지내왔기 때문이다. 28번의 여름을 지내온 나는 70번 이상의 여름을 지내온 어르신을 만나러 오늘도 사무실을 나섰다.
어르신이 쉽게 나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빨간색상의 차량, 노란조끼, 그리고 환한 미소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저 멀리서부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하회탈의 미소와 허수아비의 반가운손으로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무조건반사가 시작된다. 밝은 인사와 통통한 손으로 어르신의 손을 잡으면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오늘이 이루어진다. 사실 어르신은 우리에게 낡은 모습,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약자, 어느 기관마다 꼭 잡아야 하는 대상자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앞서 지나간 우리의 가까운 미래이다.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대처해야 하는지 그 답을 말해주고 있는 예언가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 28번의 사계절을 통해 나는 계절마다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그리고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예언할 수 있다. 비록 낮은 확률이지만 예언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르신은 70번 이상의 사계절을 겪으면서 내리는 여러 가지에 대한 예언은 분명 나보다 더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다. 사이언스매거진보다 더 확실한 결과를 미리 나는 들을 수 있다.
“엊그제가 음력 무슨 날인데 날씨가 안 좋다. 나중에 채소들이 크게 못자라겠구만.”
“어르신. 엊그제가 음력으로 무슨 날인데 채소와 무슨 연관이 있나요?”
“원래 음력 무슨날에는 날씨가 덥고 비도 한번쯤은 와줬어야 하는데... 올해는 그런 날씨가 아니라서 채소들이 크게 자랄 시기를 놓치게 되었어.”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내 앞의 계신 어르신은 아마 사이언스매거진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실 만큼의 세대는 아니라고 자그마하게 장담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아니면 그들의 조상들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사실들을 듣고 따라함으로써 우리가 연구한 과학의 결과를 연구가 아닌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 마음이 편한 안식처.
벌써 어르신과의 대화에 재미가 들어서 어린이로 돌아간 나를 어르신은 자신에게 늘 편안한 휴식처이자 삶의 공간인 자그마한 마루로 나를 인도하셨다.
그리고 마루와 사뭇 어울리지 않는 데팔 회사의 코드달린 주전자에 물을 끓이시고는 커피 한잔을 대접해 주셨다. 코드달린 주전자는 어르신이 나에게 자랑하고 싶으신 것 중의 하나인 커피포트였다. 나도 커피는 마셔봤기에 맥심 모카골드(믹스)가 맛있다고 얘기 하고 싶었지만 어른신이 가지고 계시는 빨간색의 커피 믹스는 맛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우리 거창에는 인심이 좋다는 것을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의 소중한 습관이자 우리의 인심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개인주의의
현 시대에 지친 어른들의 바램이다. 커피 한 모금이 입안을 데워줄 때쯤 다시 어르신은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얘기 하신다.
“대도시에 있는 아들이 나보고 자꾸 오라고 하는데 나는 못가겠어.”
“어르신. 그래도 아드님이 어르신이 걱정되고 또 함께 있고 싶어 그러는게 아닐까요?”
“가면 뭐하노! 아들 출근하제, 며느리 출근하제, 얘들 학교가제, 그러면 나는 혼자 그 큰 아파트에서 무얼할꼬? 길도 몰라서 나가지도 못하고, 나가면 문이 자동으로 잠겨서 얘들 올 때까지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는 싫타! 편하게 고마 여기 있는게 낫다.”
나는 장래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장만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그 집이 아파트가 될 수도 있기에 청약저축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돈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집이 신원면, 고제면, 웅양면, 북상면등 거창중에서도 외곽지역의 면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 본적도 없다.
오히려 그러한 면단위는 당연히 어르신들이 사는 곳이며, 젊음이들이 살기에는 매우 불편하고 문화 생활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지역이라는 역시 생각하고 있다.
토론이 시작되는 시간이 왔다.
어르신의 주거지와 나의 주거지는 전혀 반대의 지역이자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르신. 그래도 아파트에 있으면 어디가기 편하고 쓰레기 버리기 편하고 이래저래 편하잖아요.”
“편하면 뭐할끼고? 마음이 답답하고 재미없는데 말야.”
“어르신이 이렇게 마을 깊은 곳에 살고 계시는데 아드님도 그렇고 행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고, 또 혼자계시니까 심심하시고, 식사도 챙겨드시기 힘들 수도 있잖아요.”
“야야. 아들집에 가나 여기 있나 똑같다.”
- 자연속에서 미래를 살다.
이내 어르신은 나의 마음속에 깊은 생각을 남기시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숲속에서 그래도 이래 늙은이들끼리 사는 곳에 밭도 있고 돌아다니는 고양이도 있고 안 외롭다. 그 아파트에 가면 방 한구석에서 벽보고 있을까? 티비는 지네들끼리 떠드는데 나는 재미도 없더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자연을 나는 놓치고 토론에 참석한 기분이였다. 대부분의 어르신댁의 주변에는 자연이 함께 어울러져 있다. 집보다 마당이 더 큰 집, 집에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집, 마당에 밭이 넓어서 채소가 늘 풍성한 집등. 내가 PC게임에 재미를 느낄 때, 어르신은 채소가 자라는 것을 보고 재미와 기대를 가지시고,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응원할 때, 어르신은 붉은 노을보다 더 오래 농작물을 응원하신다.
자연속에서 재미와 편안함을 느끼시는 어르신에 비해 인위적인것에 만족을 느끼고 있는 나의 모습.
오히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지켜야되는 걱정없이 자연의 흐름대로 살고 계시는 어르신과 작은 것도 모으고 가질려고 욕심을 부리고 그것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는 여지껏 어르신이 생활이 어렵고 그래서 근심도 많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벽속에서 티비만 보고 사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어르신이 더 안쓰럽게 생각하시고 가엽게 보여질 수 있는 모습이다.
자연은 지겨움이 없다. 그래서 어르신은 70여년을 자연과 살면서도 여전히 감사하고 편안함과 재미를 가지고 계실 수 도 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70의 나이가 되면 빌딩숲속에서 벽에 의지하며 자그마한 방 한칸을 지키는 짐이 되는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연이 주는 바람과 먹을거리를 가지고 넓지는 않지만 나의 휴식 공간에 나의 배우자와 친구와 함께 내일의 근심 없이 오늘을 감사하게 보내는 존재가 될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내 앞에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답이였다.
어르신은 내가 도움을 드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삶을 배워야 하는 존재이다.
내가 25살의 나이일 때, 어르신에게도 25살의 나이가 있었다.
내가 26살의 나이에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할 때, 어르신은 이미 10년 뒤의 그날을 살았었다.
그리고 내가 27살의 나이에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어르신은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계셨다.
역시 그리고 다시 낡은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우리에게 미래를 만들게 해주는 존재이다. 그들속에서 삶에 실패한 어르신이 계신다면 그 어르신에게 인생에서 실패한법을 실패하지 않고 배울 수 있으며 성공한 어르신이 계신다면 그 어르신의 삶을 통해 나 역시 성공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예언, 미래 혹은 미신을 통해 내다보는 앞으로의 삶 이러한 것이 나쁘거나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것에 믿음과 기대를 크게 가지기 보다 확실한 미래를 알 수 있는 어르신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 이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글을 통해 말하고 싶다.
당신이 손을 내밀었을 때, 그들은 당신의 손을 잡으며 아무런 부탁 없이 그저 반갑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마음을 전해 줄 것이다.
만남을 가지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르신과 만남을 가지자.
대화를 하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르신과 대화를 하자.
미래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에 지금 시작하자.
커피한잔이 비워질 쯤 어르신은 나를 재촉하신다. 바쁜거 아니까 어서 나서라고 재촉하신다.
돌아서는 나에게 허수아비의 아름다운 손은 고맙다고 계속 흔들고 있었다.
딱딱한 책상과 나의 시선을 모두 빼앗는 PC 화면속에서 나는 이렇게 글을 남기고 싶다.
지금 나는 미래를 만나고 있는 시간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나의 미래는 빌딩숲속에 숫자로 적힌 높은 건물의 벽으로 둘러쌓인 에어콘으로 시원한 방이 아닌 흙의 냄새가 나는 나무그늘에 강바람이 부는 마당에 편히 쉬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노인은 미래를 보고 싶어하는 오늘의 청년을 언제나 그랬듯이 기다리고 있다.
내일이 되면 나는 또다른 미래를 보고싶어 어르신을 만나러 간다.
첫댓글 선생님 멋진글 잘 읽었어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실습생입니다 당신의 따듯한 마음이 글속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아요